위드 카일러 9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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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398회 작성일소설 읽기 : 위드 카일러 97화
위드 카일러
위드 카일러 4권 - 22화
가일의 말에 월터가 고개를 저었다.
“그런 행동은 알레이스 후작의 명령을 이행하는 것이 아니네. 자네의 말대로 알레이스 후작이 보병대가 전면전을 벌이면 공격하라는 식으로 지시를 내린 것은 아니지만, 작전 명령 자체가 몬스터들의 수가 어떻든 무조건적으로 전면전이 벌어지면 뒤를 공격하라는 것이니 그런 변명은 통할 수가 없네.”
“내 말이 그거야! 너 바보냐? 바보야?”
루카가 신나서 월터의 말을 거들자 가일은 어이가 없었다.
“루카 형님은 죽고 싶어서 환장했습니까? 뭐가 그렇게 좋다고 그러는 겁니까?”
“…….”
가일이 혀를 차며 말하자 루카는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오늘은 가일을 상대하기가 참 까다롭다고.
치릉!
위드가 검을 뽑아들었다.
“가죠.”
자질구레하게 뭐라고 말을 하기보다는 다른 이들보다 먼저 달려들어 한 마리의 몬스터라도 더 죽이는 것이 프레타 병을 위하는 것이라는 걸 잘 안다.
프레타 병은 두려움을 애써 털어내며 각자 손에 쥔 무기를 들어 올렸다.
“전군! 전지이이이인!!”
위드는 말과 함께 가장 먼저 달려갔다.
‘아직은 확실히 어리군.’
오브라이언은 그렇게 생각하며 앞장서서 달려 나가는 위드의 등을 바라봤다. 자신이었다면 이런 식으로 무모하게 달려가기보다는 우선적으로 병력의 배치부터 새로 짰을 것이다.
경험의 차이.
위드와는 비교 자체가 되지 않을 정도로 수많은 전장을 돌며 살아온 오브라이언은 누구 못지않은 전략과 전술이 머릿속에 자연스럽게 쌓여 있었다.
“왜 가만히 있었죠? 당신이라면 얼마든지 좋은 전술을 말해줄 수 있었을 텐데?”
옆에서 아일린이 묻자 오브라이언이 간단하게 대답했다.
“묻지 않았으니까.”
“…….”
아일린은 가끔 생각한다. 오브라이언의 이런 성격이 짜증스러울 때가 있다고.
바로 지금처럼…….
“가르시아 님! 준비가 끝났습니다!”
이마를 타고 흘러내리는 땀을 닦으며 슈비츠 그린이 말하자, 히덴 가르시아가 수고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는 그린 형제가 그린 원형 마법진의 중앙에 섰다.
더블(Double) 마법진!
마법의 위력을 두 배로 증폭시켜주는 마법진이다.
그런 더블 마법진이 이 중으로 그려져 있었다. 이는 위력을 네 배로 증폭시켜 주는 마법진으로써 히덴 가르시아가 직접 창안해낸 마법진이었다.
단! 지금 가르시아의 능력으로는 마법을 펼치면 곧바로 마나 고갈로 정신을 잃을 수밖에 없었다.
“괜찮으시겠습니까?”
마법진을 그린다고 절반 이상의 마나를 사용한 슈란츠 그린의 물음에 히덴 가르시아가 웃으며 대답했다.
“걱정 말게.”
히덴 가르시아의 고집을 꺾을 자신도 없었고, 무엇보다도 지금의 암울한 상황을 조금이라도 바꾸기 위해서 생각해 낸 더블 이중 마법진은 최선의 선택이기도 했다.
히덴 가르시아가 눈을 감고 메모라이즈에 들어가자 마법진 주변의 용병들이 신기한 눈으로 그를 바라봤다.
에리카 역시도 처음 보는 더블 이중 마법진의 모습에 두 눈을 반짝이며 서 있었다.
후우우우우우웅-!!
바람이 불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이들의 눈엔 그저 바람이 부는 것만 같았지만 조금이라도 마나를 느끼고, 사용할 줄 아는 이들이라면 이것이 단순한 돌개바람이 아닌 마나 폭풍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마법진을 중심으로 마나 폭풍이 일었고, 마법진이 조금씩 희미하게 빛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대, 대단해…….”
처음 보는 엄청난 마나 폭풍과 마법진에 에리카는 눈도 깜빡거리지 못했다.
지금 자신의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는 것은 마법을 배우는 입장에서 대륙에 오직 여섯 명 밖에 존재하지 않는 6클래스 상급 마법사인 히덴 가르시아의 마법이니 어떠한 것도 놓칠 수가 없었다.
메모라이즈를 끝낸 히덴 가르시아가 눈을 뜨며 앞으로 위드와 프레타 병이 맞서 싸워야 할 몬스터들을 바라봤다.
마법 구현을 위한 마법주문 영창에 들어갔다.
“모든 힘의 근원이여, 모든 존재를 활활 태워버릴 붉은 화염이여, 지금 그대의 힘을 빌려 내 앞의 적을 상대하려 하니 그대의 힘을 보여라! 번 플레어(Burn Flare)!!”
번- 쩌어억!!
마법진 주변으로 일어났던 마나 폭풍이 마법진으로 흡수되듯 빨려 들어갔다. 그리고 동시에 마법진에서 엄청난 빛이 뿜어져 나왔다.
쿠구구구구구…….
땅이 흔들린다.
지진이라도 날 것처럼 미친 듯이 요동치며 흔들린다.
쿠와아아아앙!!
몬스터들이 밀집되어 있던 지역.
특히, 오우거가 유난히도 많이 있던 부근의 땅이 쩍! 벌어지며 새빨간 화염이 뿜어져 나왔다.
“아아아-!!”
에리카는 자신의 눈앞에서 벌어지는 기적에 가까운 마법에 탄성을 내뱉지 않을 수가 없었다.
비단, 그녀뿐만이 아니었다.
주변의 용병들과 몬스터들을 향해서 내달리던 위드와 프레타 병, 그리고 저 멀리 페르만 왕국군까지 모두가 입을 벌려야만 했다.
무려, 반경 200미르(m)에 가까운 지역에서 뿜어져 나온 화염은 그 안에 있던 몬스터는 물론이고, 주변의 몬스터들까지도 한순간에 잿더미도 남기지 않고 깨끗하게 소멸시켜 버렸다.
더블 이중 마법진의 위력을 똑똑히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뿜어져 나오던 화염이 잦아들고, 갈라졌던 대지가 다시 원상태로 회복되자 그 공간이 훤하게 비어버렸다. 몬스터들은 그들대로 순간적으로 두 눈만 껌뻑거려야 했다.
털썩!
“가르시아 님!!”
슈비츠 그린이 급히 효력을 잃고 사라져가는 더블 마법진 안에서 쓰러진 히덴 가르시아를 부축했다. 그는 축! 늘어져서 완전히 혼절을 한 상태였다.
“와아아아아-!!”
“죽여어어어!!”
동시에 위드와 프레타 병이 몬스터들의 후방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또 다른 지옥의 시작이었다.
***
전쟁은 사람을 미치게 만든다.
피 냄새에 미치고, 살인에 미치고, 전장의 뜨거운 열기에 미치고, 살을 베고, 뼈를 가르는 쾌감에 미치고, 마지막에 가서는 완전한 광기에 물들어 승패가 갈리기 이전에는 쉽게 빠져나오지 못한다.
“흐흐흐흐!!”
콰드드득!
솜털이 바짝 설 정도로 뼈가 짓이겨지는 소리에도 병사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웃음을 흘리며 손에 들린 철퇴를 기계적으로 휘둘러댄다.
퍼어억!
콰자작!
철퇴는 주변의 모든 몬스터들을 향해서 휘둘러진다. 오크의 머리통을 깨트리고, 고블린의 가슴팍을 부셔놓으며, 리저드맨의 어깨, 트롤의 발등까지 평상시라면 겁을 먹고 덤벼들지도 못할 중, 대형 몬스터를 향해서도 주저 없이 철퇴를 휘둘러댔다.
그리고 그 결과 병사는 트롤의 손톱에 머리부터 가슴까지 쪼개져 쓰러졌다. 그 와중에도 병사의 얼굴엔 한 점의 고통스런 표정도 없다.
광기.
광기에 물들면 고통도, 죽음도 느끼지 못한다.
그런 광기에 물든 병사들이 주변에 빼곡했다. 지휘관이 아무리 애를 써서 고함을 내질러도 그들의 귀는 막혀있고, 몸은 주변의 몬스터들을 향해서 달려들고 있었다.
전쟁의 가장 무서운 점은 문화의 손실, 자연의 파괴, 살인과 약탈과 같은 것이 아니다.
전쟁의 가장 무서운 점은 멀쩡한 사람을 미치게 만든다는 것이다.
“우헤헤헤헤헤…….”
정신 나간 얼굴로 침을 질질 흘려대며 주변 몬스터들을 향해서 정신없이 검을 휘둘러대는 20세가량의 청년 병사.
한 눈에 보더라도 처음 전쟁에 참여하는 신병으로 보였다. 묻지 않아도 어째서 이런 초보 병사가 전쟁에 투입되었는지는 뻔하다.
돈에 팔려 왔으리라.
전쟁이 일어나면 가난에 쪼들리는 평민들은 자신의 목숨을 담보로 많은 돈을 받고 누군가를 대신해서 전쟁에 참여할 수 있는 일이 많아진다.
자신이 희생하면 남은 가족들은 당분간은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다. 가족들은 전쟁에 나가면 죽을 수도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아버지, 형, 오빠, 동생을 말리지 못한다.
그 만큼 가난은 그들에게 있어서 최고의 고통이다.
서걱!
청년 병사의 눈 없는 검은 앞에서 얼쩡거리던 오크의 머리를 반이나 파고 들어갔다.
“우헤헤헤헤…….”
콰직!
그러나 곧이어 옆에서 날아온 몽둥이에 가슴이 함몰된 청년 병사의 몸이 뒤로 쿵! 쓰러졌다. 즉사를 면한 청년 병사의 눈동자가 서서히 본래대로 돌아오기 시작했다.
“크으으으으…….”
고통이 물밑 듯이 밀려들자 청년 병사의 눈에 두려움과 공포의 그림자가 아른거린다.
그리고 또 다른 그림자, 자신이 들고 있던 검을 머리에 반쯤 박아 놓고 있는 오크가 벌겋게 충혈된 눈으로 바라본다.
오크는 청년 병사의 검을 자신의 머리에서 직접 뽑아 들고는 치켜들었다.
반짝.
칼날에 오크의 핏물이 지저분하게 묻었음에도 햇볕에 반사되어 반짝거린다.
푸우욱!
“커헉!”
자신이 지니고 있던 검에 가슴을 꿰뚫린 청년 병사의 눈동자가 급격하게 커졌다가 줄어들기 시작한다.
그리고 서서히 감기는 눈동자.
“에, 에반…….”
어린 동생의 이름을 부르며 청년 병사의 몸이 축! 늘어졌다.
꽈직!
잔인하게도 오크는 청년 병사의 얼굴을 처참하게 밟고 지나가갔다.
또 다른 광기에 물든 병사를 향해서. 손에 들린 검은 오크의 마음을 한결 가볍게 만들고 있었다.
***
“상황이 생각보다 쉽게 풀리지 않는군.”
알레이스 후작의 말에 바스틱 백작이 고개를 끄덕였다.
“중, 대형 몬스터들의 수가 생각보다 너무 많아서 그렇습니다.”
애초부터 예상하고 있던 일이긴 했다.
그래서 기사단을 적절하게 분배해 기사단의 기사들이 무조건적으로 대형 몬스터만을 상대하고 있음에도 그 수가 쉽게 줄지 않았다.
또한, 기사들의 공격을 받지 않는 대형 몬스터들이 이리저리 날뛰면서 병사들을 죽이고 있었기에 그 피해가 만만치 않은 것도 문제였다.
거기에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생각보다 기병대의 교란 작전이 잘 먹혀들어가지 않는 것도 전술을 방해하고 있는 큰 요인 중의 하나였다.
본래의 의도대로라면 기병대가 파고들어 몬스터 무리를 이리저리 흩트려 놓으면, 우왕좌왕하는 사이에 보병대가 강력하게 밀고 들어가야 하는데 기병대가 지나가더라도 순식간에 몬스터들이 그 틈을 메우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다보니 보병대가 몬스터들을 강하게 압박할 수 없었고, 이래저래 하나, 둘 의외의 상황이 생기면서 전술적 능력이 전혀 발휘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었다.
자신의 뜻대로 전투가 풀리지 않자 인상을 찌푸리고 있던 알레이스 후작이 문득, 몬스터 후방을 바라보며 물었다.
“도대체 조금 전의 그 마법은 뭔가?”
“가르시아 님께서 사용하신 것 같습니다.”
그 정도는 알레이스 후작도 충분히 짐작하고 있는 일이다.
그가 묻고자 하는 것은 도대체 무슨 마법이기에 그토록 엄청난 살상력을 발휘 하냐는 것이었다.
바스틱 백작도 알레이스 후작이 묻는 바를 모르는 것이 아니었다. 알면서도 원하는 답을 하지 못 한 이유는 그 역시 모르는 것이기 때문이다.
마침, 마법병단의 지휘를 끝내고 콜러 백작이 다가왔다.
“콜러 백작! 그렇지 않아도 잘 왔네. 도대체 아까 그 마법은 무엇인가?”
물을 것을 예상이라도 하고 있었는지 콜러 백작이 곧바로 대답을 하기 시작했다.
“아까 펼쳐졌던 마법은 6클래스의 번 플레어라는 화염 계열 마법입니다. 본래는 아까 펼쳐졌던 마법 효과의 약 20%가량 밖에 발휘되지 않은 것이 정상입니다. 그 정도로 넓은 지역에 그토록 강력한 마법 공격력이 생성된다는 것은…… 저로서도 이해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제야 이해가 간다는 듯 알레이스 후작이 고개를 끄덕였다.
“결국, 가르시아 길드장께서 뭔가 우리가 모를 방법으로 마법 효과를 증폭시켰다는 소리로군.”
“그렇습니다. 번 플레어가 펼쳐지기 이전에 마나 폭풍이 있었습니다. 아마 총사령관님께서도 느끼셨을 겁니다.”
알레이스 후작은 고개를 끄덕였다. 콜러 백작의 말대로 히덴 가르시아가 마법을 펼치기 이전에 마나 폭풍이 있었다.
“마나 폭풍과 관련이 있다는 소리로군.”
“그렇습니다. 제 추측이 맞는다면 더블 마법진을 사용한 것이 틀림없습니다만…….”
“그 효과가 더블 마법진보다도 커서 이해할 수 없다는 소리겠지?”
“그렇습니다. 더블 마법진이라면 아까의 절반가량이나 겨우 미칠 정도의 영향력이 발휘됐어야 정상입니다. 도대체 무슨 방법으로 그토록 마법 효과를 증폭시켰는지 모르겠지만 이는 분명 학계에 알려지지 않은 가르시아 님만의 특별한 방법일 것이 분명합니다.”
“그렇겠지.”
알레이스 후작은 고개를 끄덕였다.
어느 정도 일정 경지에 오른 검사들 중엔 남들이 모르는 특별한 필살기가 있기 마련이다. 마법사라고 해서 그런 것이 없으리란 법은 없었다.
“생각보다 카일러 준남작과 프레타 병의 활약이 대단합니다.”
콜러 백작의 말에 알레이스 후작이 씁쓸하게 웃었다.
“이번 전투는 내 예상대로 진행되는 것이 하나도 없군.”
알레이스 후작의 눈은 어느새 위드와 프레타 병에게로 향해 있었다.
베케일 백작과 몇몇 귀족들로 인해서 어쩔 수 없이 사지로 몰아넣어 마음이 편하지 않았는데 다행스럽게도 아직까지는 잘 싸워주고 있었다.
그리고 답답하게까지 느껴지는 다른 전투 상황과 다르게 그들의 전투는 마음속 깊이 후련해짐을 느끼게 해주었다.
“지금 남아 있는 지휘관과 호위기사들을 모두 준비시키도록 하게.”
“예?”
갑작스런 알레이스 후작의 명령에 바스틱 백작과 콜러 백작이 무슨 말이냐는 듯 그를 바라봤다.
“카일러 준남작을 도우러 가야겠네.”
“예?! 초, 총사령관님!”
화들짝 놀라는 바스틱 백작의 외침에 알레이스 후작은 몸을 일으켰다.
“보게. 어쩌면 이 전투를 가장 빨리 끝낼 수 있는 열쇠는 저들이 지니고 있을지도 모르네. 그렇다면 열쇠를 찾으러 가야지.”
알레이스 후작의 눈은 여전히 위드와 프레타 병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총사령관님! 하지만…….”
“명령이네!”
“……예.”
바스틱 백작은 대답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콜러 백작 역시도 부랴부랴 마법병단으로 달려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