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드 카일러 8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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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352회 작성일소설 읽기 : 위드 카일러 84화
위드 카일러
위드 카일러 4권 - 9화
“언제까지 레켄 성에 머무실 생각입니까?”
에리카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
르완 성이 몬스터에게 빼앗겼으니 갈 곳이 마땅치 않았다.
물론, 그라다 왕국의 어딜 가더라도 에리카를 반길 것이다. 플로렌 백작은 죽고, 기반이 되어 줄 수 있는 르완 영지는 되찾기 힘들었지만 에리카에게는 여자로서 어딜 가더라도 뽐낼 수 있는 미모와 영지를 잃었다 하더라도 언제고 다시 찾을 수 있는 백작가의 계승권이 있었기 때문이다.
당장 레켄 성에서만 하더라도 데코 크리스티안 백작의 차남인 링턴 크리스티안이 에리카의 미모에 반해서 온갖 아부를 떨어대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에리카는 단순히 위드의 손님일 뿐이지만 현재 레켄 성에서 가장 훌륭한 대접을 받고 있는 사람이었다.
“그라다 왕국으로 돌아가시는 편이 어떻겠습니까?”
월터의 물음에 에리카는 말과 함께 살며시 눈을 돌렸다. 그녀의 눈동자가 머문 곳은 멍하니 시간을 보내고 있는 한 남자였다.
“생각해보죠.”
그 모습에 월터는 씁쓸하게 웃었다.
‘많이 변하셨군요.’
에리카의 어떤 모습이 변했는지는 월터만이 알고 있을 뿐이었다.
“언제까지 이러고 있어야 하는 겁니까?”
지루하다는 듯 가일이 묻자 커닝이 어깨를 으쓱거렸다.
“모르지.”
“하아-! 이거 소중한 시간을 허비하는 것 같아서 영 찝찝하네!”
가일의 말에 루카가 눈을 번뜩였다.
“허비하지 않으면 될 것 아냐? 어때? 한 번 할까?”
주먹을 쥐는 루카의 모습에 가일은 됐다는 듯 손을 휘저었다.
“싫습니다! 괜히 붙어서 자존심과 몸이 망가지느니, 시간을 허비하는 게 나을 것 같습니다.”
“야! 멍청하게 시간을 보내는 것보다는 몸이라도 한바탕 실컷 움직이는 게 백번은 낫지! 어때? 한 번 하고 싶은 생각이 온몸을 잡아 흔들지?”
자신이랑 붙고 싶어서 환장한 사람처럼 몸을 들썩거리는 루카의 모습에 가일은 혀를 차며 몸을 일으켰다. 그러자 루카가 커다랗게 웃음을 터트렸다.
“크하하하하! 역시 가일답다!!”
“오해하지 마십시오. 루카 형님 말씀대로 멍청하게 시간을 보내는 것보다는 차라리 에리카 양의 아름다운 얼굴이라도 한 번 더 보는 게 나을 것 같아서 일어난 것뿐이니.”
가일의 말에 루카의 얼굴이 비틀리듯 일그러졌다.
그러다 실실 웃으며 말했다.
“에리카 양은 네가 바라보기에 너무 어려운 사람 아니냐? 에리카 양이라면 자국에서 찜해 놓은 사람이 꽤 많을 텐데? 그리고, 당장 레켄 성만 하더라도 링턴 크리스티안도 있고. 아! 최고로 위험한 상대도 있구나!”
루카의 말에 가일이 얼굴을 찡그리며 물었다.
“최고로 위험한 상대는 누굽니까?”
루카가 히죽히죽 웃었다.
“당연히 영주님이지 누구냐!”
“제기랄!”
가일은 쓰게 뱉어내고는 등을 돌려 걸어가기 시작했다. 그런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루카가 더욱더 약을 올렸다.
“너는 영주님 상대가 아니니까 일찌감치 포기해라! 괜히 헛지랄 하다가 자빠지지 말고! 크하하하하하!!”
통쾌하다는 듯 웃어재끼는 루카의 모습에 커닝이 피식거렸다.
“그만해라. 저러다 저 자식 울겠다.”
“울기는 사내놈이.”
“그래도 모르는 거지. 킥킥!”
“그런가? 크하하하하!”
좋아서 죽겠다는 듯 웃어대는 커닝과 루카의 모습에 가스파가 눈썹을 씰룩거렸다.
“니들은 지금 우리 꼴이 어떤지 알면서 그렇게 웃고 떠드냐?”
가스파의 말에 루카가 그를 바라보며 쏘아붙였다.
“그럼? 울기라도 할까? 씨팔! 어차피 할 일도 없는데…….”
말과는 다르게 언제 웃고 떠들었냐는 듯 루카는 얼굴을 찌푸리며 고개를 돌렸다.
“영주님이 정신을 제대로 차려야 뭘 하더라도 할 텐데…….”
커닝의 말에 루카와 가스파가 맞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어떻게든 위드를 위로하려고 했었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현재의 상태는 그 스스로 깨고 일어나지 않는 이상은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잠시 침묵으로 시간을 보내다 가스파가 입을 열었다.
“슬슬 이곳도 시끄러워지겠군.”
프레타 성이 몬스터들에게 넘어갔으니 그 바로 곁에 위치하고 있는 레켄 성이 위험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마나 다행스러운 일이라면 레켄 성은 프레타 성과 다르게 몬스터의 침략에 맞서 아주 훌륭하게 준비를 해놓은 상태라는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훌륭하게 준비를 해놨다고 하더라도 히드라와 바질리스크를 선두로 몬스터들이 끝도 없이 달려들면 결국은 레켄 성도 프레타 성과 다르지 않을 것임을 그들은 잘 알고 있었다.
특히, 히드라와 바질리스크는 생각만 해도 머리털이 삐쭉 설 정도로 공포스러운 존재였다.
“이러니저러니 하더라도 결국은 레켄 성에서 또 싸워야겠지.”
커닝의 말에 루카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야지. 그게 먼저 간 동료들에 대한 보답이기도 하니까.”
하늘을 가만히 바라보는 히덴 가르시아에게 그린 형제가 다가왔다.
슈비츠 그린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
“연합군에게서 정식으로 지원 요청이 들어왔다고 합니다.”
히덴 가르시아는 하늘에 두었던 시선을 거둬들였다.
“지원 가능한 인원은 지원요청을 받아들이도록 하게.”
“알겠습니다.”
이번에는 슈란츠 그린이 물었다.
“길드로 돌아가시지 않으실 겁니까?”
“돌아가야지. 하지만, 지금은 아니라네.”
“카일러 준남작 때문입니까?”
히덴 가르시아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런 그의 모습에 슈란츠 그린이 이번만큼은 그냥 넘어갈 수 없다는 듯 물었다.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가르시아 님께서 왜 이토록 카일러 준남작을 신경 쓰시는 것입니까? 그가 마법계에 큰 도움을 준 것은 사실이지만 그 역시 길드에서 합당한 아니, 더욱 커다란 보상을 해주지 않았습니까?”
“음…….”
“혹시, 카일러 준남작의 몸에 새겨진 마법문신 때문입니까?”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지만 그것이 긍정을 회피하기 위한 행동이 아니라는 것쯤은 슈란츠 그린도 잘 알고 있었다.
위드 카일러 준남작의 몸에 새겨진 마법주문은 분명 마법계를 한 바탕 뒤집어 놓을 수 있을 정도로 커다란 연구물이 될 수 있다.
만약, 히덴 가르시아가 그것을 노리고 있다면 차라리 지금의 행동을 이해하기가 쉬울 것이다.
“가르시아 님.”
히덴 가르시아는 슈란츠 그린과 그 곁에서 자신 역시 궁금하다는 듯 바라보고 있는 슈비츠 그린을 한 차례씩 바라보고는 입을 열었다.
“나 역시 궁금할 뿐이네. 왜 자꾸 카일러 준남작이 마음에 걸리는지.”
결국은 자신도 알 수 없다는 히덴 가르시아의 대답에 그린 형제는 더 이상 물을 수가 없었다.
“후우…….”
한숨만이 흘러나왔다.
***
“요즘 들어서 업무가 너무 많다보니 내 본의 아니게 카일러 준남작에게 소홀한 점이 많았네. 그 점은 내 탓이 아니니 자네가 이해해주도록 하게.”
크리스티안 백작의 말에 위드는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다른 때라면 감히 준남작이 백작의 말을 허투루 듣는다면서 화를 내겠지만 지금은 그저 얼굴을 찌푸리는 것으로 화를 대신했다.
‘이런 놈이 무슨 영웅이라고.’
지금 페르만 왕국 내에서는 많은 이들이 위드 카일러 준남작을 영웅시하고 있다. 지금은 몬스터에게 성을 빼앗겼지만 그래도 가장 오랫동안 성을 방어해 냄으로써 페르만 왕국을 그라다 왕국처럼 위기에 빠트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크리스티안 백작은 결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몬스터를 방어해 낸 것은 어디까지나 마법사 길드와 대륙 10대 용병단인 오브라이언 용병단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라고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
만약, 프레타 성이 아닌 다른 곳이었더라도 그 만한 지원이 있었다면 누구든 위드만큼은 해냈을 것이라고 믿었다. 특히, 자신의 레켄 성이었다면 아직까지도 잘 막아내고 있었을 거라고 확신했다.
오히려 크리스티안 백작에게 위드는 그만한 지원을 등에 업고도 몬스터의 침략을 막아내지 못한 무능한 인간으로 찍혀 있었다.
그것도 모자라서 패배의 고통 속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하루 종일 멍하니 지낸다는 하녀들의 말은 크리스티안 백작의 기분을 더욱더 짜증스럽게 만들기 충분했다. 지금만 하더라도 명백히 자신의 업무가 많다고 탓을 하고 있음에도 아무렇지도 않게 고개만 끄덕이고 있으니 어처구니가 없을 뿐이었다.
“프레타 성도 이제는 몬스터들의 손에 떨어졌으니 다음은 이곳이 될 텐데 이렇게 업무가 많아서 제대로 방비를 할 수가 없어서야 원.”
은근히 너 때문에 정작 해야 할 일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듯 말하는 크리스티안 백작의 말에 위드보다도 곁에서 듣고 있던 에리카가 눈살을 찌푸렸다. 피에나 역시도 크리스티안 백작이 위드에게 좋은 감정을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을 알기에 그를 바라보는 눈빛이 결코 좋지 않았다.
“듣자하니 브리자스 영지가 꽤 어려움을 많이 겪고 있다고 하더군. 그래서 왕국 내에서도 왕국군을 편성해서 군대를 파견한다고 하던데. 이왕이면 카일러 준남작이 그 군대에 힘을 보태는 것이 어떻겠나? 이 기회에 영지를 빼앗은 몬스터들에게 복수도 벌일 겸. 알아주는 명장들과 병사들로 이번 왕국군을 편성하기에 브리자스 지방은 물론이고, 라네시 영지와 프레타 영지까지도 되찾을지도 모르는 일인데.”
말만 살짝 돌렸을 뿐, 더 이상 레켄 성에서 빌붙지 말고 왕국군에 들어가 싸우라는 말이었다.
크리스티안 백작의 말에 에리카가 얼굴을 찌푸리며 나서고 말았다.
“카일러 준남작은 당분간 휴식을 취해야 합니다. 당장은 왕국군에…….”
“어디로 가면 되는 것입니까?”
항상 멍하게만 있던 위드의 눈동자가 반짝였다.
“위드!!”
주제도 모르고 나서는 에리카의 모습에 불편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고 있던 크리스티안 백작은 위드의 물음에 얼굴 가득 환한 미소를 머금으며 대답했다.
“브리자스 성으로 가서 기다리고 있으면 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