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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영제국의 폐급장교 204화

무료소설 대영제국의 폐급장교: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1,071회 작성일

소설 읽기 : 대영제국의 폐급장교 204화

204화 떨어지는 태양 (5)

 

 

오늘도 상쾌한 아침!

 

...이 되기는 틀린 것 같다.

 

빌어처먹을 모기 새끼들.

 

새벽 2시가 넘어서야 잠들어서, 6시가 되기 전에 일어났는데도 팔뚝과 목에 큼지막한 분홍색 자국들이 생겨났다.

 

온몸에 살충제를 향수마냥 뿌리고 잤는데도 이 좆같은 모기들의 공격을 막아내지 못했다. 오히려 평소보다 더 많이 물린 것 같았다. 빌어먹을.

 

한국(21세기)과 유럽(20세기) 모기들은 동남아의 모기들에 비하면 귀여운 수준이었다.

 

이놈들은 '진짜'다.

 

너무 가려워서 총검으로 피부를 긁고 싶은 충동까지 일었다. 혹시 나만 그런 건가 싶어 주변을 둘러보니,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나마 덜 억울하네.

 

"좋은 아침...이라곤 말할 수 없을 것 같군, 제군들. 이놈의 모기들 때문에 말이지."

 

브랜슨 대령은 기분이 매우 좋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게 모기한테 물린 부위가 하필이면 손가락과 손가락 사이라서 말이다.

 

회의 내내 그는 한 손으로 모기한테 물린 부분을 긁어댔다.

 

"오늘 우리는 무슨 일이 있어도 방콕에 입성한다. 완전 점령은 무리라고 해도, 방콕에 입성하는 것만으로 일본군의 사기가 바닥으로 떨어질 것이라는 상부의 예측이 있었네. 이미 놈들의 사기는 떨어진 지 오래라 뭔 상관이겠냐만은."

 

브랜슨 대령은 각 중대별 지정구역에 대해 설명하다가, 뒤늦게 떠올랐다는 듯이 이마를 때렸다.

 

"참, 그 소식을 전해주는 것을 깜빡했군. 어제 소련이 일본에게 정식으로 선전포고했다네."

"소련이 말입니까?"

 

소련의 참전 소식을 들은 내가 무의식적으로 반문했다. 브랜슨 대령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쪽발이들에겐 엎친 데 덮친 격이지. 소련군의 진격이 예상외로 빨라 상부에서도 제법 놀랐다고 하네. 어쩌면 놈들이 우리보다 먼저 도쿄까지 갈지도 모르겠어. 아, 물론 배가 있다면 말이지만."

 

아직 히로시마에 원폭이 투하되기도 전인데, 소련이 참전할 줄이야. 생각보다 빠른데. 지금 미군은 아직 오키나와도 못 가지 않았나?

 

소련의 참전은 일단 나쁜 소식은 아니었다. 실제 역사에서 일본의 항복 원인 1위가 바로 소련의 참전으로 평화협상에 대한 기대가 완전히 무너졌기 때문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종전이 앞당겨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하지만, 마냥 좋아하기에도 뭣한 일이었다. 어째서냐고? 그건 바로 내가 영국인이기 전에 한국인이기 때문이다.

 

일본의 패망이 빨라지는 것은 분명 기쁜 일이다. 허나, 그 시점이 문제다.

 

아직 미군이 오키나와에 상륙하기도 전인데, 역사대로라면 원폭 투하 이후에나 참전했던 소련이 벌써 참전해버렸다.

 

만약 소련군이 내가 아는 역사와 비슷한 속도로 진격할 경우, 미군이 오키나와에 상륙할 즈음에는 한반도까지 진입할지도 모른다.

 

내가 생각하는 최악의 가정은, 한반도가 분단되는 것을 넘어 아예 소련군에게 완전히 넘어가는 일이었다.

 

"이러면 완전 나가리인데."

 

무슨 일이 있어도 이 일만큼은 피해야 한다. 소련에 의해 빨간 맛으로 물들어버린 한반도, 21세기의 대한민국 대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라니.

 

그 끔찍한 일이 실현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괜히 식은땀이 흐르면서 온갖 상념이 휘몰아쳤다. 이 일을 피하려면 관동군이 소련군을 상대로 오랫동안 버텨주거나(살다살다 일본군의 건승을 바라게 될 줄이야), 히로히토가 얼른 생각을 고쳐먹고 빨리 GG를 치는 것뿐이다.

 

그런데 원폭도 없는데 그게 될까?

 

"마지막으로 이번 작전에 함께 하기로 한 친구들이 있네. 2개 중대 인원들로, 1중대와 함께 싸울 예정이야. 한국광복군이라고, 저어기 한국이라는 일본 식민지에서 온 친구들이라고 하더군."

 

한국광복군?

 

아니, 그게 왜 여기서 나와?

 

***

 

"버마 전선에 광복군을 보내자고요?"

 

광복군 총사령관 지청천의 물음에 김구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답했다.

 

장제스의 호의와 지원 덕분에, 광복군은 이전과 비교하면 180도 달라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장족의 발전을 이룰 수 있었다.

 

소총이 없어 부지깽이나 목총으로 훈련을 받던 병사들은 소총과 기관총으로 무장했고, 명목상 존재만 할 뿐 실제로는 없는 병과나 다름없던 기갑병과에도 전차가 들어왔다. 비록 국민혁명군이 사용하다 광복군에게 떠넘긴 탱켓이 대부분이었지만, 가진 게 하나도 없던 광복군 입장에선 이조차도 감지덕지였다.

 

"곧 종전도 다가오는데, 그때까지 아무 일도 하지 않으면 종전 후에는 필시 우리 입장이 곤란해질걸세. 비록 큰일을 맡지는 못하더라도, 우리도 뭔가 했다는 것을 보여줘야 나중 가서 할 말이 있지 않겠는가?"

 

김구의 말에 광복군 수뇌부는 일제히 고개를 끄덕였다.

 

종전 후 국제사회에서 조금이라도 목소리를 내기 위해선 공적이 필요하다. 아무리 보잘것없는 공적이라도, 아예 없는 것보다 훨씬 낫다.

 

"버마 전선 파병안에는 또 한 가지 중요한 이유가 있네. 우리는 지금 장대인의 개인적인 호의 덕분에 여기까지 왔지만, 우릴 마땅찮은 눈으로 보는 이들이 장대인 주변에 많이 있네. 그 때문에 우리 광복군에 제약이 많이 걸려 있고.

 

허나 버마에서 영국군을 도와 그들의 승리에 일조한다면, 나중에 우리가 중국의 영향력에서 벗어나고자 할 때 어느 정도 도움이 될 걸세."

 

중국 정부의 지원 덕분에 탄생하고, 성장할 수 있었기에 광복군은 중국 국민혁명군의 통제를 받는 상태였다.

 

오갈 곳 없는 처지인 자신들을 환대하고 극진하게 보살펴준 장제스에 대한 호의는 차고 넘쳤지만, 한편으로는 국민혁명군의 광복군에 대한 통제와 간섭이 못마땅했던 김구는 이번 기회에 영국군과 접촉하여 새로운 외교 통로 개척을 꾀했다.

 

이러한 계산 하에 광복군 대원들은 버마 전선에 투입되어 영국군을 도와 수많은 작전에 참여했다.

 

일본군이 버마에서 물러나자, 광복군 수뇌부는 이참에 전투부대를 파견하여 일본군과 교전하겠다는 뜻을 영국군에 타전했다.

 

이를 거부할 이유가 딱히 없던 영국군은 광복군의 제안에 동의했고, 그리하여 광복군은 고대하던 설욕전을 치를 수 있게 되었다.

 

***

 

우리와 함께 작전하기로 한 광복군은 2개 중대 규모로, 비록 소대에 불과하지만 기갑차량까지 보유하고 있었다.

 

내가 아는 광복군은 전차는커녕 장갑차도 없었다고 들었는데, 이 역시 역사가 바뀌면서 생긴 일이 아닌가 싶었다.

 

"어, 그 한국 뭐시기라는 병사들이 저 친구들인 것 같은데요?"

 

보리스가 가리킨 곳에는 광복군 병사들을 열을 갖춰 대기 중이었다. 정말로 광복군이 맞았다.

 

전생이 한국인이라 그런지 광복군 병사가 들고 있는 태극기를 보는 순간,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지를뻔했다. 뜻하지 않게 학창 시절 친구와 만난 기분이랄까?

 

하지만 광복군을 보고 흥분한 이는 나뿐인 듯했다(당연한 일이지만). 오히려 부하들은 그들이 영 못 미더운 듯이 눈살을 찌푸렸다.

 

"저것 좀 보십쇼, 대위님."

 

게이츠 원사가 가리킨 것은 측면에 태극기가 그려진 L3 탱켓이었다. 게이츠 원사가 정색하는 것도 당연했다. 그 유명한 치하조차 저놈과 비교하면 티거로 보일 정도니까.

 

"허, 설마 저딴 깡통을 타고 일본군과 싸우러 온 건가?"

"어어, 보기엔 허접해도 보병들 상대론 그래도 없는 것보다 나으니 들고 온 게 아닐까요?"

 

원래 한국인이었던 내가 나서서 광복군을 변호했지만, 게이츠 원사에겐 통하지 않았다. 되려 역효과였다.

 

"차라리 없는 게 더 나을 겁니다. 괜히 표적만 될 테니까요. 규모는 작아도 나름 정예라고 하길래 설마 했는데, 저래서야 그냥 민병대 수준 아닙니까?"

 

광복군이 가지고 온 기갑차량 중에는 셔먼과 스튜어트도 있었지만, 다수가 L3 같은 탱켓들이었다. 광복군 입장에서는 나름 기갑차량이라고 가지고 온 모양이지만, 센추리온을 타는 영국군 입장에선 어처구니가 없을 따름이었다.

 

게이츠 원사뿐만 아니라 다른 병사들의 표정도 비슷했다. 맙소사, 내가 뭘 본 거지? 저래서야 제대로 싸울 수 있겠어? 라고 묻는 듯한 표정.

 

어음. 대놓고 못 믿겠다는 티 팍팍 내는 시선 때문에 내가 다 민망할 지경이다. 지금의 나는 저들과 아무 관련이 없는데.

 

"섣부른 판단은 금물입니다. 일단 싸워보면 알게 되겠죠."

"대위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신다면야...."

 

이 영국인들이 자신들을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는지 모르는 광복군은 곧 있을 전투에 대비하여 무기를 점검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아무래도 첫 전투라 다들 긴장되는 모양인지 모두가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그래도 일본과 맞서겠다는 신념 하나만 가지고 고국에서 멀리 떨어진 이곳까지 온 사람들이라 승리를 향한 갈망 하나만큼은 그 누구보다 확고해 터.

 

마음만큼은 같은 한국인으로서 나는 저들에게 무언의 응원을 보내며 조용히 전차에 탑승했다.

 

10분 뒤, 공격 명령이 떨어졌다.

 

***

 

-중대 전진!

 

늘 하던 대로 공격 신호가 떨어지자 첫 빠따로 우리가 튀어 나갔다. 전진하면서 나는 흘끗 뒤를 돌아봤다. 우리들이 출발하자, 광복군 병사들도 움직이기 시작했다.

 

"모두 앞으로!"

"대한독립만세!"

 

이게 얼마 만에 듣는 한국어인지. 광복군은 주변의 영국군에 뒤처지지 않으려는 듯 목청껏 함성을 지르며 돌격했다. 그 모습을 보니 가슴이 벅차올랐다. 결국엔 나도 영혼만큼은 어쩔 수 없는 한국인인가보다.

 

팅! 티팅!

 

"우왓."

"얼른 안으로 들어오십쇼, 대위님. 위험합니다."

 

오랜만에 만나는 동포들에(정확히는 조상님들) 정신이 팔린 나머지, 적의 총격을 가할 때까지 상체를 너무 내놓고 있었다. 하마터면 종전을 코앞에 두고, 독일군도 아닌 일본군과 싸우다 전사할 뻔했다. 후대에 비웃음거리가 되기 싫으면 더욱 주의할 수밖에.

 

"정면에 대전차포!"

 

이번에도 1식 기동 속사포였다. 포탄 서너 발이 날아왔지만 단 한 발도 센추리온의 장갑을 뚫지 못했다. 88도 튕겨내는 마당에 겨우 47mm 따위에 뚫릴 리가 있겠냐만은.

 

하지만 탱켓 같은 경장갑차량이라면 얘기가 달랐다. 일본군은 센추리온을 포기하고, 뒤따르는 광복군을 향해 포탄을 발사했다.

 

센추리온 사이로 날아간 포탄이 L3에 명중하여 폭발하자, 한국어로 된 비명 소리가 들렸다.

 

"으아아아!"

"살려줘!"

 

기세 좋게 돌격하던 광복군 병사들이 포탄에 맞아 나자빠지고, 처참하게 망가진 탱켓에서 겨우 살아남은 승무원들이 비명을 지르며 빠져나왔다.

 

"젠장, 발사!"

 

서둘러 발포하여 적 대전차포를 진지째로 날려버렸지만 곧바로 다음 포탄이 날아왔다. 일본군은 센추리온은 포기한 채 철저히 광복군만 노렸다. 이쪽은 몇 발을 쏴도 격파할 수 없으니 확실하게 잡을 수 있는 놈만 잡겠다는 의지였다.

 

"보리스, 차체 틀어! 뒤에 있는 저 친구들을 보호하게!"

"옙!"

 

차체를 비스듬하게 틀어 적의 공격을 차단한 뒤, 쌍안경으로 발사광을 찾았다. 광복군 병사들은 센추리온 뒤에 숨어 겨우 숨을 골랐다.

 

"찾았다. 2시 방향으로, 거리 300!"

 

게이츠 원사가 포탑을 돌려 조준할 준비를 하는데, 다른 전차가 먼저 선수를 쳤다. 유탄에 맞은 대전차포 진지가 폭발하면서 사람의 팔다리가 주변에 쏟아졌다.

 

왼쪽을 돌아보자 포구에서 연기를 내뿜고 있는 광복군의 M4 셔먼을 발견할 수 있었다.

 

"쳇, 이쪽이 먼저 쏘려고 했는데."

 

표적을 뺏긴 게이츠 원사는 멋쩍은 듯이 툴툴거렸다. 그러거나 말거나 광복군의 셔먼은 힘차게 돌격하며 기관총을 난사했다. 쏟아지는 총탄에 맞은 일본군 병사들이 참호에 널브러지고, 일본군의 공격에 잠시 위축되었던 광복군 병사들도 이내 함성을 지르며 셔먼을 뒤쫓아갔다.

 

"우리도 뒤처지지 않게 얼른 움직이죠. 보리스, 전진해."

 

광복군과 함께한 아군의 진격은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전투가 시작되고 20분 뒤, 우리는 방콕 시내에 진입했다.

 

방콕 시내에는 일본군이 가득했다. 총성이 끝없이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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