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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영제국의 폐급장교 201화

무료소설 대영제국의 폐급장교: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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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읽기 : 대영제국의 폐급장교 201화

201화 떨어지는 태양 (2)

 

 

메이지 유신 이후로 일본은 서양 열강들이 깜짝 놀랄 정도로 어마무시한 발전을 거듭했다.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에서 연이어 승리를 거둬 동북아의 패자로 급부상했고,

 

1931년에는 만주사변을 일으켜 드넓은 만주 땅을 통째로 집어삼켰다.

 

여기에 자신감을 얻은 일본은 6년 뒤 중국 전역을 지배할 야욕으로 중일전쟁을 일으켰다.

 

중국의 수도 난징을 점령하는 등 전쟁 초반은 일본에게 유리하게 돌아갔다. 하지만, 일본의 예상과 달리 장제스는 끝까지 항복을 거부하며 결사 항전을 부르짖었고, 1년 안에 중국의 항복을 받아내리라 자신했던 일본은 전쟁이 장기전으로 빠지자 당황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은 여전히 자신들이 유리하다고 착각했다. 유럽에서 전쟁이 일어나고, 미국이 석유 금수 조치를 단행하자 일본은 석유 수출을 금지한 미국을 공격한다는 희대의 결단을 내렸다.

 

프랑스는 독일에게 무너졌고, 영국은 궁지에 처해 있으며 미국은 덩치만 클 뿐 실전 경험이 없는 오합지졸들뿐이다.

 

황국은 수년간 지나에서의 전쟁으로 실전 경험이 풍부한 정예병들이 지천에 널려 있고, 해군 역시 세계 최고 수준이다. 그러니 무엇이 두려우라.

 

진주만 공습 이후 일본은 승승장구했다. 드넓은 동남아 식민지 전역을 석권하고, 인도와 호주를 위협했다. 자만하던 미 해군은 크나큰 피해를 입고 물러났다.

 

승리가 머지않은 듯 보였다.

 

그러나,

 

오늘날의 일본은 과거의 기상을 모두 잃어버린 채, 겨우 숨만 붙어있는 형편이었다.

 

"뛰어, 뛰어! 새끼들아!"

"멈추지 마라, 돌격!"

 

1944년 2월 19일, 미군은 이오지마에 상륙했다.

 

이오지마의 일본군 수비대는 해변에 상륙한 미군과 전력으로 맞붙었지만, 삽시간에 섬 내부로 밀려나고 말았다.

 

그리고,

 

"덥다, 더워."

"이놈의 날씨는 도저히 적응이 안 된다니까."

"좆같은 정글, 좆같은 쪽발이 새끼들."

 

버마의 영국군도 동쪽으로 전진하기 시작했다.

 

***

 

버마 주둔 일본군은 괴멸하여 태국으로 퇴각한 지 오래였다.

 

인도에서 열차를 타고 버마에 도착한 우리 대대는 태국 진공의 선두에 섰다. 지금 눈앞에 보이는 강만 지나면 태국이었다.

 

포병과 공군이 강 건너편의 일본군 진지를 두들기고 공병들은 강에 부교를 설치하는 동안 우리는 우리 나름대로의 전투를 치렀다. 바로 벌레들과의 전투였다.

 

"소대장님, 죄송한데 혹시 살충제 남는 거 없습니까?"

"옛다. 이게 마지막이니까 아껴서 써."

 

목구멍과 눈이 따가울 정도로 살충제를 뿌려댔음에도 불구하고 이놈의 역겨운 벌레들은 죽지 않고 꾸역꾸역 나타나 우릴 향해 달려들었다.

 

동남아의 벌레들은 유럽의 벌레들과는 차원이 달랐다. 크기도 더 큰 데다, 겁도 없고, 생명력도 더럽게 질겼다. 인간으로 치면 독가스를 마시는 느낌일 텐데도 이놈들은 용케 죽지 않고 우리한테 들러붙어 고통을 주었다.

 

"쪽발이들과 싸우기 전에 화병으로 먼저 죽겠습니다, 빌어먹을."

 

게이츠 원사 왈. 그는 눈 깜짝할 사이에 모기한테 물려 코가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사정을 모르는 사람이 본다면 술 마신 거 아니냐고 묻기 딱 좋은 모양새다.

 

뺨에 달라붙어 피를 빨아대는 모기를 때려잡자 손에 찐득한 피가 묻어나왔다. 이게 전부 내 피인지, 아니면 다른 누군가의 피가 섞여 있는 지 생각하는 동안 닉은 욕지거리를 하며 축축한 수건으로 땀을 닦았다. 더워도 너무 더웠다.

 

-아, 아. 자랑스러운 대영제국 육군 장병들에게 고한다. 이미 대세는 우리 편이다. 유럽은 평정되었으며, 이제 지구에서 대영제국의 유일한 적은 일본뿐이다.

 

지옥같은 유럽 전장에서 살아남은 제군들이라면 일본군을 상대하는 일쯤은 아무것도 아닐 것이다. 놈들의 무기는 우리보다 빈약하며 사기는 극도로 저하되어 있다. 반면 그대들에겐 대영제국이 만든 최고의 무기가 들려 있다. 히틀러의 독일도 무너뜨린 우리다. 단숨에 적들을 무찌르고 도쿄까지 가는 거다!

 

몽고메리 이 양반, 말은 존나게 잘해요. 우리가 벌레들에게 물어뜯길 동안 정작 본인은 선풍기 바람이나 쐬면서 연설문이나 읊어댈 거면서.

 

고대도 아니고 장군씩이나 되는 양반이 후방에 있는 게 당연한 일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후방에서 안락하게 지내고 있을 높으신 분들을 생각하니 괜스레 짜증이 났다. 무더운 날씨 때문에 가만히 있어도 온몸에 열이 차오르는 듯했다.

 

"후딱 끝내고 시원한 콜라나 마셨으면 소원이 없겠네."

"솔직히 이런 곳에선 홍차보다 콜라가 더 어울립니다."

 

포격이 끝나고, 부교도 다 완성되었다. 공격을 알리는 신호탄이 허공을 가르고, 무전망에서 브랜슨 대령의 목소리가 울렸다.

 

-대대, 전진!

 

미리 정한 순번대로 각 중대 전차들이 나란히 부교를 건넜다. 잡목과 수풀이 많은 정글에선 육중한 센추리온보단 그보다 훨씬 작고 가벼운 마틸다, 발렌타인 같은 전차들이 더 효과적일 테지만 상부에선 굳이 센추리온들을 투입시켰다.

 

뭐어, 베트남의 정글에서도 센추리온이 대활약했으니 안 될 건 없지만, 그래도 낭비라는 생각이 드는 것은 사실이다.

 

-중대, 전진. 강물이 깊으니 모두 주의하도록.

 

가뜩이나 물도 깊은데 통짜 쇳덩이인 전차가 빠졌다간 대참사가 날 터였다. 때문에 조종수들은 신중하게 전차를 몰아 부교를 건넜다.

 

부교를 건너 태국에 들어서자, 포격과 공습으로 초토화된 진지들이 나타났다. 구덩이 주변에 즐비한 빨간 물체들은 아마도 포탄을 맞고 죽은 일본군의 조각들이리라.

 

가뜩이나 더운 날씨 때문에 시체의 부패 속도는 상상 이상이었다. 이미 시체들은 벌레들로 들끓었고 매캐한 화약 냄새와 시체 썩는 악취에 코가 문드러질 것 같았다. 아직 전투는 시작도 않았는데, 벌써 머리가 욱신거렸다.

 

캉!

 

-주의! 전면에 적이다!

 

"드디어 시작됐군."

 

선두 차량으로부터 들어온 무전을 들은 나는 상체를 숙이고 적의 공격에 대비했다. 곧이어 전차의 발포음이 귀청을 울렸다. 뒤이어 정면에서 쏟아지는 총탄이 전투의 시작을 알렸다.

 

"존나게 쏴재끼는군, 개새끼들."

"어디부터 쏠까요, 대위님?"

 

녹색 배경 사이사이로 총구의 발사광이 보였다. 그보다 더 큰 불꽃은 대전차포나 전차의 발사광인 듯 싶었다.

 

"일단 11시에 있는 적 기관총 진지부터 처리하죠. 유탄 장전!"

"유탄 장전!"

 

덜커덩 소리와 함께 약실이 닫혔다. 덩달아 주포도 표적을 조준했다.

 

"쏴!"

 

독일군을 상대로도 가공할 위력을 보였던 17파운더는 일본군에겐 재앙 그 이상이었다.

 

유탄이 폭발하자 나무 서너 그루가 쓰러지면서 참호의 일본군을 덮쳤다. 총성 사이로 들리는 적의 비명을 들으니 머리의 두통이 조금은 완화된 듯했다.

 

쏟아지는 총탄을 뚫으며 전진하는 와중에 일본군의 전차들이 나타났다. 치하와 하고 10여 대가 기관총을 발사하며 제법 매서운 기세로 달려왔지만, 센추리온과 비교하자면 꼬꼬마들이나 다름없었다.

 

"적 전차들입니다. 철갑탄으로 재장전합니까?"

"아뇨, 그대로 쏴요. 어차피 저놈들 장갑은 형편없으니까."

 

본래 전차 같은 장갑차량은 철갑탄으로 상대하는 게 이치에 맞지만, 상대가 일본군이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원체 장갑이 얇은 데다 대전 후반기 물자 부족으로 장갑의 질까지 떨어지는 일본군 전차라면 굳이 철갑탄을 쓸 필요가 없었다.

 

게다가 이쪽은 티거, 판터도 한 방에 날려버리는 17파운더. 결과는 안 봐도 뻔한 일이었다.

 

"쏴!"

 

장전해둔 유탄을 그대로 쏘자, 치하는 대폭발을 일으키며 주저앉았다. 포탑이 날아가고, 전투실이 통째로 뜯겨나가 완전히 분해되고 해도 무방할 정도였다.

 

유탄을 써도 상대방을 충분히 제압할 수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전차병들은 철갑탄을 쐈다가 포탄이 전차를 앞뒤로 뚫고 날아가는 광경을 목격했다. 포탄 단 한 발에 의해 하고 3대가 연속으로 관통당하는 경우도 있을 정도였다.

 

-쪽발이들아, 맛이 어떠냐?

 

-이게 전차다, 이 원숭이 새끼들아!

 

17파운더의 어마무시한 위력에 무전망은 환성과 조롱으로 가득했다. 호기롭게 싸움을 걸어왔던 일본군 전차들은 3분도 되지 않아 모두 격파당해 불덩이로 변하고 말았다.

 

"아직도 저런 폐품 따위를 전차라고 굴리다니. 해군에 투자한 것의 반의반이라도 전차에 투자했어도 이런 일은 없었을 텐데."

"그러게나 말입니다. 배는 잘 만드는 놈들이, 정작 전차는 못 만들다니, 나 원 어이가 없어서."

 

***

 

"영국군이 온다!"

"저, 전차다! 전차가 있어!"

"사격 개시! 물러서지 마라!"

 

위풍당당한 영국군과 달리, 그들을 상대하는 일본군들은 죽을 맛이 따로 없었다.

 

보유한 화포들 중에서 그나마 관통력이 높은 1식 속사포가 센추리온 전차들을 향해 연이어 불을 뿜었지만, 포탄은 전차의 장갑에 흠집도 내지 못하고 튕겨 나오기 일쑤였다.

 

"공격이 안 먹힙니다! 죄다 튕겨 나오고 있습니다!"

 

포탄이 자꾸만 튕겨 나오자 패닉에 빠진 포수가 울먹이는 목소리로 소리쳤다. 마찬가지로 초조한 얼굴로 적 전차들을 바라보던 조장이 포수의 머리를 때리며 소리쳤다.

 

"이 등신 같은 새끼야! 그럼 궤도를 쏴! 적어도 놈들의 발이라도 묶어야 한단 말이다!"

 

장갑을 도저히 관통할 수 없자, 일본군은 궤도라도 끊어보려고 시도했지만 센추리온들이 연달아 발포하여 그들을 통째로 날려버렸다.

 

대전차포가 맥없이 당하자, 비장의 카드인 전차들이 나섰다.

 

"천황 폐하 만세!"

"돌격 앞으로!"

 

기합이 잔뜩 들어간 전차병들이 모는 치하와 하고들이 영국군을 향해 돌진하며 포를 쏘았다. 일본군 전차병들은 자신들이 과거 무진전쟁 시기 소총과 기관총으로 무장한 막부군을 향해 발도공격을 감행한 사무라이들이라고 생각했겠지만, 영국군 전차병들 입장에서 그들은 사무라이가 아니라 겁 없이 달려드는 토끼들이나 다름없었다.

 

17파운더 주포가 작렬할 때마다 일본군의 전차 2, 3대가 동시에 불길에 휩싸였다. 철갑탄의 관통력이 너무 높은 나머지 전차를 통째로 관통해 뒤에 있는 전차까지 관통한 것이었다.

 

비장의 카드인 전차들까지 허무하게 전멸하자, 사기가 바닥에 떨어진 일본군은 천황의 명령이고 나발이고 그대로 도주했다. 일본군의 방어선을 하나씩 유리장처럼 박살 내며 영국군은 전진을 거듭했다.

 

1차 목표는 태국의 수도 방콕이었다.

 

***

 

-친애하는 영국 국민 여러분, 우리 대영제국군은 적의 방어선을 분쇄하고 전진 중입니다. 현재 아군은 방콕에서 불과 80km까지 전진하였으며.......

 

-속보입니다. 오늘, 이오지마에서 일본군과 전투 중인 미 해병대가 이오지마의 수리바치 산 정상에 성조기를 꽂았다는 기쁜 소식입니다. 이 소식이 전해지자 백악관에선.......

 

"영미군의 진격이 빠르군. 이러다 금방 도쿄까지 가겠어."

 

영어로 된 라디오 방송을 러시아어로 통역하는 통역가들 사이에서 차를 마시던 스탈린은 대뜸 자리에서 일어나 창문 너머를 바라봤다. 독일 패망의 축제 분위기는 어느새 사그라들고, 평상시의 차분함이 모스크바 시내를 차지하고 있었다.

 

전쟁이 끝났으니 시민들은 다시 전쟁 이전의 생활로 되돌아가 일상의 평온함을 누리고 있다. 그러나 시민들과 달리 병사들은 여전히 군대에 묶여 있었다.

 

또 하나의 전쟁을 위해서.

 

"바실렙스키 동무, 준비는 어떻소? 잘 진행되어 가고 있는 것 같소?"

 

스탈린에게 이름이 호명된 바실렙스키는 의자에서 벌떡 일어섰다.

 

"예, 서기장 동무. 현재까지 100만에 달하는 병력이 만주 국경에 배치되었으며 나머지 50만 병력의 배치도 곧 완료될 예정입니다.

 

또한 보안을 위해 무전이 아닌 유선전화로만 지령을 내리고 있으며 이를 위반한 연대장 두 명을 본보기로 처형했습니다. 지금까지 보안에 헛점은 없습니다."

"흠, 동무라면 잘해내겠지. 앞으로도 쭉 그러면 되오."

 

바실렙스키의 보고에 만족한 스탈린은 보드카를 잔에 따랐다.

 

"러일전쟁의 복수를 해줄 차례가 왔구만."

 

러시아를 무너뜨리고 동북아의 강자로 떠오른 일본이, 자신들이 쓰러뜨렸던 그 상대에게 무너지는 상상을 하며 스탈린은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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