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영제국의 폐급장교 199화
무료소설 대영제국의 폐급장교: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150회 작성일소설 읽기 : 대영제국의 폐급장교 199화
199화 전후처리 (4)
"물론 그 부분은 모두가 아는 사실입니다."
스탈린의 처칠의 말에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이번 전쟁에서 죽은 영국인들의 수가 소련 인민들보다 많습니까? 독일이 영국에 상륙해서 런던을 위협하고, 잉글랜드 남부 지방에 살던 사람들을 죄다 죽이거나, 노예로 끌고 가기라도 했습니까?"
"소련이 입은 피해가 크다고 해서 그것이 우리에게 양보를 강요할 이유가 되는 것은 아닐 텐데요?"
"영국이 소련보다 2년 일찍 파시스트들과 싸웠다고 소련 인민들의 몫을 강탈할 이유가 되지도 않지요."
"허어, 그렇습니까? 우리 영국인들은 과거에 소련이 나치와 손잡고 폴란드를 침략했다는 사실을 모르지 않습니다. 폴란드와 핀란드는 대체 무슨 잘못을 했길래 공격한 겁니까? 그들도 파시스트였습니까?
그리고 왜 우리 영국을 염탐하려고 했습니까? 우리가 검거한 스파이들이 말하길, 전부 다 당신네들이 시켰다고 그러던데, 어디 그 이유나 한번 들어봅시다."
"지금 말 다했소?"
처칠이 역린을 건드리자, 스탈린의 표정이 험악해졌다.
시작부터 살얼음판 같았던 회담장의 분위기는 당장이라도 폭발할 것만 같은 상태가 되었다. 루스벨트가 간신히 그 둘을 중재했다.
"두 분 다 잠시 진정하시죠. 서로에게 화를 내기 위해 마련한 자리가 아닌 대화와 타협을 위해 마련된 자리니까요."
"끄응."
"으으음."
처칠이 뚱한 얼굴로 자리에 앉아있는 동안, 루스벨트는 스탈린에게 말을 걸었다.
"스탈린 서기장, 우리 솔직해집시다. 귀국이 원하는 것은 보다 더 많은 독일 영토가 아닙니까?"
"맞습니다."
루스벨트는 지도를 살폈다. 지도에는 소련군과 연합군 사이의 경계가 빨간색 줄로 표시되어 있었다.
어차피 넓은 독일 영토 전체를 미군과 영국군이 관리하기엔 벅찼다. 덩달아 스탈린도 한 뼘의 독일 영토라도 더 받아내지 않는 이상 결코 물러서지 않을 기세였다.
아직 일본과 전쟁 중인 상황 속에서 일본을 완전히 굴복시키려면 소련의 협력은 필수적이었다. 따라서 줄 건 주고, 저들의 신뢰와 호감을 받아오는 편이 더 이득이리라.
"쾨니히스베르크와 단치히는 소련에 넘기도록 하겠습니다. 포메른의 일부도요. 그리고 베를린 또한 그 특수성을 고려해 베를린의 절반을 소련이 직접적으로 관리할 수 있게 배정하겠습니다. 어떻습니까?"
스탈린은 루스벨트의 제안이 기쁜 눈치였지만, 이것만으론 부족하다는 눈치였다. 루스벨트는 이럴 경우에 대비하여 마지막 카드를 아껴두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폴란드와 핀란드 문제 말입니다."
뜨거운 감자인 폴란드와 핀란드가 언급되자 스탈린의 표정이 미묘하게 달라졌다. 미끼를 물었군.
"우리 미합중국은 이 두 국가의 문제에 관해선 소련의 의견을 전적으로 존중하겠습니다."
"호오?"
스탈린과 달리, 처칠은 남몰래 한숨을 내쉬었다. 애초에 소련에게 넘어간 이상, 이 두 나라를 어떻게 빼 오는 게 힘들다는 것은 알고 있었기에 그도 체념하고는 있었다.
"어떻습니까? 이 정도면 충분히 만족스러운 제안 아닙니까, 서기장?"
루스벨트는 처칠을 오랫동안 설득하여 독일 동부 영역 일부를 소련에게 넘겨주고, 폴란드와 핀란드 또한 포기하기로 합의했다. 하지만 스탈린이 여기서 만족하지 않는다면, 처칠의 분노를 어떻게 막을 수가 없었다. 이 때문에 루스벨트는 제발 스탈린이 이 제안을 받아들이길 빌었다.
"...좋습니다. 그렇게 하지요."
휴.
다행히 스탈린은 루스벨트의 제안에 만족했다. 처칠은 여전히 불편한 얼굴이었지만, 딴지는 걸지 않았다.
이외에도 유럽의 국경선 문제를 두고 협상이 계속되어 슬로바키아와 베사라비아가 소련의 몫으로 넘겨졌다. 스탈린은 독일의 전쟁 수행에 협력하며 독소전에 참전했던 이탈리아와 헝가리, 루마니아도 손봐주길 원했지만 루스벨트와 처칠이 단호하게 거절했다.
"이미 소련은 베사라비아를 넘겨받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루마니아는 연합국의 일원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소련이 무슨 권리로 우리 동맹국을 처벌한다는 말이오?"
"이탈리아의 항구를 소련에 무상으로 넘기라고요? 이미 영국이 모두 전세를 내서 그럴 항구가 없습니다만."
"헝가리 땅이었던 카르파티아는 이미 소련이 점령했잖습니까. 나머지 처벌은 우리한테 맡겨도 될 것 같소이다."
두 정상이 강하게 나오자, 이번에는 스탈린이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공짜로 독일 영토와 슬로바키아, 베사라비아를 넘겨받았으니 더 욕심을 부렸다간 기존에 손에 넣은 것들도 위험해질 우려가 있었다.
회의 결과, 소련은 독일 동부 지역 일부와 베를린의 절반을 손에 넣었으며, 폴란드와 핀란드 문제에 관해서도 연합국의 묵인을 승인받았다. 베사라비아는 다시 소련에 합쳐질 것이며, 슬로바키아는 체코로부터 분리되어 공산정권이 수립될 예정이었다.
"유럽 문제가 얼추 해결되었으니, 이제 아시아 문제로 넘어갑시다."
식사가 끝나면, 마땅히 후식을 먹어야 할 차례였다. 미국과 영국 입장에선 이 '후식'도 '식사'나 다름없었지만.
"하나 묻겠습니다. 스탈린 서기장, 당신은 대일전에 동참하실 의향이 있습니까?"
"물론이죠."
설마 하는 심정으로 스탈린에게 질문은 던진 루스벨트는 의외로 원하는 대답이 나오자 눈에 띄게 기뻐했다.
일본과의 전쟁을 빠르게 마무리 짓기 위해선, 소련의 참전이 반드시 필요했다. 미국 혼자만으로 일본을 충분히 꺾을 수 있지만, 그러자면 너무나도 많은 미국의 젊은이들이 희생될 터였다.
자식과 남편을 전쟁터에서 잃은 사람들이 많아질수록, 루스벨트 정부는 설 자리를 잃을 것이고, 지지도가 줄어든다는 것은 곧 선거에서 패배할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것을 의미했다.
올해 대선에 출마하는 것이 목표인 루스벨트에겐 반드시 피하고픈 일이었다.
"대신, 조건이 있습니다."
"말씀해주시지요."
"일본이 보유한 남사할린과 쿠릴열도, 그리고 홋카이도를 전후 소련의 영토로 인정해주시죠. 그리고 만주에 소련군이 주둔하는 것 또한 허용해주셨으면 합니다만."
"남사할린과 쿠릴 열도를 합병하는 것은 찬성합니다. 대신 홋카이도는 조금 생각을 해봐야 할 것 같군요. 만주 문제도 중국과 따로 대화를 해봐야겠습니다."
사할린이야 러일전쟁 전에는 러시아 영토였고, 쿠릴 열도 또한 러시아와 일본 사이에서 분쟁이 있었던 곳이니 소련이 차지하는 것쯤이야 상관없는 일이다.
하지만 홋카이도는 애매했다. 홋카이도까지 넘어가면, 소련은 일본 본토에 한 발자국 가까워지는 데다 만주 문제에선 장제스가 결코 용납하지 않을 터였다.
"그런가요? 그래도 뭐, 좋습니다. 일단 남사할린과 쿠릴 열도 문제는 인정하신 걸로 생각하겠습니다."
"물론이죠."
일본 본토 문제는 일본부터 조진 뒤에 생각하기로 결정.
그리고 이 다음은-
"한반도는 어떻게 하실 겁니까?"
"한국인들은 30년 넘게 일본의 노예 상태로 있었으니 마땅히 해방시켜야지요."
"그럼 한반도의 통치는 누가 맡게 되는 겁니까?"
"그것 역시 나중에 고민해봐야 할 문제입니다만, 제 생각엔 미국과 영국, 소련, 중국 이 4개국이 협력하여 관리하는 것이 가장 현명한 방책이라고 생각합니다."
"저 역시 동의합니다."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그럼 한반도 문제는 나중에 자세히 논의하는 걸로."
***
"철수 말입니까?"
"그렇게 됐네."
매일 아침마다 일어나 소련군과 얼굴을 마주하며 경계근무를 서길 며칠째,
난데없이 상부로부터 철수하라는 지령이 내려왔다.
다른 부대와 임무를 교대하는 것도 아닌, 그냥 철수였다.
"상부에서 말하길, 총리께서 직접 스탈린과 담판을 지으셨다는군. 무슨 대화가 오갔는지는 모르지만, 확실한 사실은 슬로바키아를 소련에 넘겨주기로 했다는 것일세."
공산주의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서 발광할 그 양반이 무슨 생각으로 소련에게 슬로바키아를 넘겨줬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아무튼 이로 인해 우리는 슬로바키아에서 철수하게 되었다.
우리는 헝가리가 아닌 체코로 향했다. 독일의 통치에서 해방된 체코의 치안유지가 우리의 새 임무였다.
열차편으로 체코의 브르노에 도착한 우리가 맨 처음 본 것은 축제 분위기의 체코 시민들이었다.
건물마다 체코 국기가 게양되었고, 영어와 체코어로 된 현수막들이 곳곳에 걸려 있었다. 이제 갓 걸음마를 뗀 아이부터 지팡이를 짚고 다니는 노인들까지 모두의 얼굴에선 웃음이 가득했다.
"독립 만세! 해방 만세!"
"체코슬로바키아 만세!"
"정말로 전쟁이 끝난 게 실감이 나는군."
흐뭇한 얼굴로 거리를 응시하던 무어 소령이 말했다. 일제로부터 해방된 우리나라 사람들도 딱 이런 모습이 아니었을까.
"지금쯤 영국도 비슷한 광경이겠지?"
"그렇지 않겠습니까. 아직 일본이 남아있지만."
"아, 젠장. 그래, 쪽발이들이 남아있었지. 빌어먹을."
무어 소령은 뒤늦게 생각났다는 듯이 괴로운 표정이 되었다.
"제리들도 백기를 들었는데, 그놈들은 언제쯤 항복할지 모르겠구만. 그놈들이 빨리 뒈져야 우리도 집에 갈 수 있을 텐데."
"그러게 말입니다."
무어 소령의 말을 듣다 보니 문득 궁금해졌다.
이제 완벽히 혼자가 된 일본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지 말이다.
뭐, 보나 마나 또 쓸데없는 망상 따위나 하고 있겠지만.
***
"이제 지구상으로 영미와 맞서고 있는 나라는 오직 황국뿐이오."
일본의 자칭 살아있는 신, 천황인 히로히토의 표정은 평소처럼 무뚝뚝했지만, 목소리에는 일말의 불안이 담겨 있었다.
한때 유럽을 넘어 전 세계를 지배할 것만 같았던 독일은 끝내 항복했고, 일본만이 미국이 주도하는 연합국과 맞서고 있는 상황.
전황은 매우 절망적이었다. 절대국방권이 붕괴되었으며 사이판을 점령한 미군은 필리핀에 상륙을 감행했고 나아가 일본의 본토인 이오지마와 오키나와까지 노리고 있었다.
드넓은 중국 대륙에서 연전연승을 이어나가던 일본 육군도, 장제스가 이끄는 중국군의 반격으로 점점 수세에 몰리는 형편이었다.
냉정하게 볼 때, 일본의 패전은 확정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다만 어떻게 패전을 맞이하느냐만 아직 정해지지 않았을 뿐.
"폐하, 염려하지 마시옵소서. 황국은 독일과 달리 태양신의 가호를 받는 나라가 아니옵니까."
"그렇사옵니다, 폐하. 폐하께선 근심을 멀리하시옵소서. 옥체에 해가 될까 염려되옵니다."
"조만간 해군이 승전보를 보내올 것입니다. 그러니 안심하시지요."
대신들의 말에 히로히토는 짜증이 치솟았다. 세 살배기 아이가 봐도 지금 전황이 극도로 불리한데, 대신이라는 작자들은 이따위 뜬구름 잡는 소리나 하고 있다니.
이러니 전쟁에서 지지.
"남 듣기 좋은 소리만 하지 말고 무언가 현실적인 방안을 내란 말이오! 그대들은 내가 지도조차 읽지 못하는 머저리로 아는 건가? 지금 누가 보더라도 황국이 수세에 몰려 있는 상황이 아니던가!"
히로히토의 호통에 대신들은 움찔했다. 사이판 패전의 책임을 지고 사임한 도조를 대신해 총리직에 오른 고이소 구니아키 역시 딱히 할 말이 없어 입만 우물거렸다.
"전쟁을 끝낼 수 있는 유일한 방책이 생기면 다시 찾아오시오. 오늘은 이만 물러가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