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영제국의 폐급장교 17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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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011회 작성일소설 읽기 : 대영제국의 폐급장교 173화
173화 충격과 공포 (2)
"동무들, 전진이다!"
"어머니 러시아를 위해!"
소련군의 공세는 우크라이나와 발트, 두 곳에서 이루어졌다.
발트 방면 군의 목표는 에스토니아로 진입하여 발트해로 진출하는 것이었고,
우크라이나 방면 군은 키예프를 탈환하고 드네프르강을 건너는 것이 목표였다.
이번 공세에는 소련군 최신형 전차 T-43-85도 투입되었다. 기존의 T-43과 달리 85mm 주포를 탑재한 T-43-85의 등장은 독일군에겐 결코 유쾌한 일이 아니었다.
"11시 방향에 티거다! 거리 800!"
"발사!"
76mm 주포라면 불가능한 거리에서 85mm 주포는 한 번에 티거의 측면장갑을 뚫을 수 있었다.
소련군에게 측면을 보인 티거는 85mm 포탄이 명중하자 폭발을 일으키며 주저앉았다.
"동지, 명중입니다!"
"좋았어!"
시뻘건 불길을 내뿜으며 타들어 가는 독일산 강철 호랑이를 본 포수가 주먹을 불끈 쥐며 말했다.
소련군의 공세가 시작되자 동부전선에선 증원 요청이 쇄도했다.
드네프르강 변을 따라 구축된 방어선이 소련군을 잘 막아내고 있었지만, 암만 방어선이 튼튼해도 병력이 없으면 아무 의미가 없었다.
"동부전선에 병력 증원 요청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드네프르 방어선이 뚫리면, 동부전선은 끝장이오. 당장 병력을 증파합시다."
영국군의 예상대로, 공세가 시작되자 독일군의 시선은 동부전선으로 향했다.
동시에 루마니아 남부의 연합군도 움직이기 시작했다.
***
"강하 1분 전! 모두 마음 단단히 먹어!"
"다시 한번 말한다! 문어는 대걸레에 답어는 빗자루다! 까먹으면 내 손에 죽는다! 알겠냐?"
"예!"
강하지점에 도착하자, 공수부대원들은 지체없이 수송기에서 뛰어내렸다.
"지상에서 보자!"
영국군과 미군, 캐나다군, 그리고 소수의 폴란드 공수부대원들이 강하를 시작했다.
대낮에 하늘에 피어난 수천 개의 낙하산 꽃들을 본 독일군은 즉시 비상이 걸렸다.
대공포와 기관총이 불을 뿜는 가운데, 먼저 수송기에서 뛰어내린 병사들이 지상에 착지했다.
칼로 낙하산 줄을 끊어낸 그들은 서둘러 적진을 향해 돌격했다.
1초라도 빨리 적 진지를 제압해야 전우들이 산다. 더 많은 전우들이 살아남을수록, 작전은 성공할 확률이 올라간다.
작전이 성공하면, 독일은 유전을 잃게 된다.
유전을 잃은 독일은 전쟁을 할 수 없다.
훈련 내내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었던 말이 그들을 움직이는 원동력이 되었다.
"아아아악!"
어느 공수부대원이 던진 수류탄에 팔이 날아간 병사가 상처를 부여잡고 자리를 나뒹굴었다. 총탄이 오가고, 수류탄이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가 작렬했다.
하지만 루마니아군은 달랐다.
연합군 공수부대와 죽자 살자 교전하는 독일군과 달리, 루마니아군 병사들은 하늘에서 내려오는 연합군 공수부대원들을 향해 총을 쏘지 않았다. 오히려 그 반대의 행보를 보였다.
"항복한다. 쏘지 마라!"
"?"
"뭐야, 이놈들......?"
대다수의 루마니아 병사들은 이미 오랜 전쟁에 지쳐 있었다. 전투력은 뒤떨어지지만, 적어도 독일군이 자신들을 고기방패쯤으로 여긴다는 사실을 모르지 않았던 루마니아군은 독일을 위해 목숨을 바칠 생각이 없었다.
루마니아군이 교전을 포기하고 항복하자, 독일군의 방어계획은 어긋나기 시작했다.
***
공수부대의 강하 소식이 전해진 뒤, 우리에게도 진격 명령이 내려졌다.
-중대, 전진!
이번에도 선두는 우리 중대가 맡았다. 포병대의 포격이 끝나자마자 전차들이 시동을 걸고 사지를 향해 움직였다.
중대의 선두에는 지뢰 제거장치를 장착한 크롬웰 전차가 있었다. 전차들이 좌우를 경계하며 진격하는 가운데, 하늘 위로 스핏파이어 편대가 소음을 일으키며 날아갔다.
"야, 보리스. 조종 똑바로 안 하냐?"
전차가 자주 앞뒤로 들썩거리자, 보다 못한 게이츠 원사가 소리쳤다. 그러자 보리스가 억울하다는 듯이 소리쳤다.
"제 잘못 아닙니다! 지면이 울퉁불퉁하다고요!"
"나 원 참. 이래서야 조준도 못하겠구만."
진격은 아직까지 순조로웠지만, 지면이 울퉁불퉁한 탓에 진동이 심했다. 어찌나 진동이 심한지 멀미가 날 지경이었다. 이럴 줄 알았다면 멀미약이라도 하나 챙겨 먹을걸 그랬나.
30분 뒤, 우리는 포격이 휩쓸고 지나간 자리에 도달했다. 포탄이 만들어낸 거대한 크레이터들이 즐비한 가운데, 곳곳에 유기된 독일군 장비들과 시체들이 보였다.
"저건? 아무리 봐도 88 같군."
"4호 전차도 있군요."
전차와 야포, 대전차포가 망라한 것을 보니 대대급 규모의 부대로 추정되었다. 우리가 오는 것을 눈치챘거나, 또는 일상적인 이동 중에 포격에 당한 듯했다.
석탄처럼 새까맣게 타들어 간 시체들 하며 흉물스럽게 일그러진 각종 장비들을 보니 지옥도가 따로 없었다. 귀신이라도 나올 것 같은 으스스한 광경이었다.
하지만, 귀신은 없어도 생존자는 있었다.
쾅!
"정지, 측면에 적 보병이다!"
선두의 크롬웰이 별안간 불길에 휩싸이며 정지하자 뒤따르던 전차들도 일제히 정지했다. 측면에서 날아온 포탄에 맞은 것이었다.
"아아아아아!"
몸에 불이 붙은 전차병이 괴성을 지르며 전차 밖으로 나오는 가운데 보병들은 즉시 전차에서 내려 좌우로 산개했다. 이윽고 적 보병들이 나타나자 수십 개의 총구에서 불이 뿜어졌다.
"커헉!"
적병 한 명이 입에서 피를 토하며 쓰러졌다. 저들도 수류탄을 던지며 반격을 가했고, 두 명의 아군이 수류탄을 맞고 날아가 전차에 처박혀 머리가 으스러졌다.
"이 새끼들이!"
분노한 게이츠 원사가 공축 기관총을 갈겨 도주하는 독일군들을 벌집으로 만들었다. 전투는 금방 종료되었다. 기습을 가한 적군은 모두 전사했고, 아군은 전차 한 대와 병사 7명을 잃었다.
"이 새끼들, 이건 또 뭐야?"
"그놈 참 요상하게 생겼네."
사살한 적군의 시체를 수색하는 과정에서, 아군 병사들이 처음 보는 무기를 발견했다.
쇠막대기 끝에 탄두가 달려 있는 막대사탕 모양의 무기. 보병들은 생전 처음 보는 무기에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나는 한눈에 그것이 무엇인지 알아차렸다.
"판처파우스트잖아, 이거......"
판처파우스트, 일명 히틀러의 요술봉. 2차대전 당시 연합군이 가장 두려워했던 휴대용 대전차화기이자, 일단 맞추기만 하면 격파 못 한 전차가 없다는 최고의 가성비를 자랑하는 악마 같은 녀석이다.
단점이라곤 짧은 사거리와 일회용이라는 것뿐인데, 이전까지 쓰던 흡착지뢰나 대전차수류탄에 비하면 단점이라고 부를 수도 없는 것들이다. 심지어 대량생산으로 숫자도 많아서, 대전 말 독일에는 총은 없어도 판처파우스트는 보급받은 병사들이 넘쳐날 지경이었다.
가뜩이나 티거, 판터만으로도 머리가 아픈데 이젠 판처파우스트라니. 복잡했던 머리가 터질 것만 같았다.
"이걸로 또 골치 아파지겠구만."
"어째서 말입니까?"
눈치 없이 묻는 닉에게 나는 한심한 눈으로 쳐다봤다. 명색이 전차병인 놈이 이런 기본적인 것도 모르다니. 배움이 더 필요하구만.
"이놈을 좀 봐라. 네가 보기엔 이게 어떤 용도로 쓰이는 물건 같냐?"
"어...... 혹시 대전차용입니까?"
"그래. 지금까지 전차를 잡으려면 화염병이나 대전차수류탄을 들고 전차에 직접 돌격하거나 대전차포가 필요한데, 이놈만 있으면 적당한 거리에서 쏘기만 하면 돼. 아까 크롬웰이 한 방에 터지는 거 봤지? 관통력도 대전차포 수준이라는 소리야.
게다가 이 루마니아 촌구석에 있는 놈들도 들고 다닌다는 것은 이미 거의 모든 전선에 다 뿌려졌다는 뜻이고. 이걸로 더 살아남기 힘들어졌어."
무어 소령도 판처파우스트를 보곤 한눈에 이게 보통 물건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노획한 판처파우스트는 즉시 후방의 사령부로 보내졌고, 부대는 다시 진격을 재개했다.
***
"영국군이 현재 북상 중!"
"적들의 이동로가 예상과 다릅니다. 아무래도 이곳을 우회해서 곧장 플로이에슈티로 진격하려는 속셈인 듯합니다."
"뭐라고?!"
후방에 낙하한 공수부대와 예상과 다른 영국군의 기동.
적들의 의도를 간파한 독일군은 서둘러 대책 마련에 돌입했다.
"지금 즉시 병력을 보내 적들의 기동을 차단하도록!"
"적의 폭격으로 다리와 철로가 끊겨 이동이 불가능합니다."
"그럼 서둘러 복구하면 되지 않나."
"자재를 보관하는 창고와 공병대가 폭격을 맞아 피해가 심각합니다. 때문에 복구에는 다소 시간이 걸릴 것으로......"
"빌어먹을! 적들의 의도를 빤히 알고도 여기서 손가락만 빨아야 한다는 건가?"
연합군도 독일군이 눈치채고 대응하는 것을 막기 위해 다리와 철로는 보이는 대로 폭격을 퍼부어 끊어버렸다.
남은 방법은 하나뿐.
"할 수 없군. 루마니아군을 동원하는 수밖에."
독일군은 부쿠레슈티 방어 전면에 자국군을 투입하고, 상대적으로 중요도가 떨어지는 외곽 지역에 루마니아군을 배치했다.
루마니아군의 전투력이 떨어지는 것도 있지만, 그들을 믿을 수 없다는 판단에서였다. 현재 독일과 루마니아는 여전히 동맹 관계지만, 루마니아가 항복하는 것을 독일이 억지로 틀어막았기 때문에 두 나라 군대는 빈말로도 사이가 좋다고 말할 수 없는 입장이었다.
"그치들을 믿을 수 있겠습니까? 이미 영국군 공수부대와 교전 중일 때 기지 방어를 맡은 루마니아군 중대가 교전 한번 없이 항복한 일이 있지 않습니까?"
"하지만 어쩌겠나? 방법이 없는데. 그래도 자기네들 나라인데, 알아서 싸우겠지."
***
"뭐? 우리더러 영국군과 싸우라고? 지금 장난하나?"
독일군으로부터 출전을 명령받은 루마니아군은 코웃음을 쳤다.
여태껏 고기방패 취급이나 하면 대놓고 무시나 하던 것들이 이제 와서 대신 죽으라고 명령하면 그대로 따를 줄 알았나?
처음엔 영토 확정을 위해 독일과 동맹을 맺고 전쟁에 끼어든 루마니아였지만, 전쟁이 길어지고 독일의 패색이 짙어지면서 루마니아인들은 지휘고하를 막론하고 전쟁에 흥미를 잃은 지 오래였다.
급기야 그리스, 유고, 불가리아가 편을 갈아타고 연합군에 합류하자, 루마니아도 서둘러 연합군과 협상에 들어갔다. 하지만 이를 눈치챈 독일에 의해 루마니아의 탈주 시도는 좌절되었고, 국왕과 내각은 독일군에게 체포되었으며 나라는 독일의 괴뢰국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자연스레 루마니아군에 대한 독일군의 취급도 나빠졌다. 예전까지는 전투력이 약하다고 비웃기는 해도 나름 동맹군 취급은 해줬었지만, 이제는 그런 것도 없다.
모든 보급은 독일군이 최우선이었고, 루마니아군은 뒷전이었다. 식량이 부족해 독일군에게 지원을 요청해도 돌아오는 대답은 알아서 해결하라는 비꼼뿐.
무엇보다 루마니아군에겐 제대로 된 전차나 대전차포가 없었다. 예전에 히틀러가 우호의 상징으로 증여했던 4호 전차와 3호 돌격포는 독일군이 다시 가져갔고, 남은 전차라곤 퇴물로 전락한 프랑스제 르노 R35와 체코제 전차뿐.
그런 상황에서 영국군 기갑부대를 상대하는 것은 자살행위나 마찬가지.
이미 '동맹군'에게 정나미가 떨어진 루마니아군은 그들을 위해 목숨을 바칠 생각이 없었다.
"영국군이 오고 있습니다!"
"백기 올려."
"......잘 못 들었습니다?"
"백기 올리라고. 우린 저들과 싸우지 않는다. 독일 놈들이나 열심히 싸우라고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