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영제국의 폐급장교 171화
무료소설 대영제국의 폐급장교: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109회 작성일소설 읽기 : 대영제국의 폐급장교 171화
171화 반격이 시작되다
1937년, 중일전쟁이 시작된 뒤로 장제스의 국민혁명군은 일본군에게 밀려 후퇴에 후퇴를 거듭했다.
세간의 인식과 달리, 일본군에게 나름의 출혈을 강요하긴 했지만, 수도 난징을 비롯한 대다수의 주요 도시들과 영토를 내준 채 내륙으로 밀려난 중국의 앞날은 어두워 보였다.
하지만, 미국이 본격적으로 전쟁에 끼어들고 대중원조가 시작되면서, 전세는 급변했다.
전차는커녕 장갑차조차 없어 일본군의 전차 앞에 고전을 면치 못했던 국민혁명군은 미제 전차들과 각종 신형 무기들로 완전히 무장할 수 있었다.
"내 눈으로 직접 보고도 믿겨지지 않는구먼."
뒷짐을 진 채 말없이 자신의 앞을 지나는 국민혁명군 대열을 응시하던 장제스가 말했다.
"정녕 이전의 군대와 같은 군대가 맞는지 의심스럽소."
중화민국의 임시 수도 충칭에서 이뤄진 열병식에 모습을 드러낸 국민혁명군은 1년 전과 비교하면 180도 달려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낡디낡은 19세기 말의 구식 소총을 들고 다니던 보병들은 전원이 미제 M1 개런드로, 탱켓 따위로 이루어졌던 기갑부대들은 육중한 미제 경, 중형전차들로 완편되었다.
무한궤도를 굴리며 지나가는 셔먼 전차의 차체에 큼지막하게 새겨진 필승(必勝)을 본 장제스는 저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다.
"이게 다 귀국 덕분이오. 우리 중국은 절대로 귀국의 도움을 잊지 않을 것이오."
"하핫. 칭찬이 너무 이르십니다. 아직 일본군과의 본격적인 전투 전이지 않습니까."
장제스의 옆에서 열병식을 지켜보던 드럼이 손사래를 쳤다. 열병식에 동원된 군대들은 열병식이 끝나는 대로 전선으로 보내져 일본군과의 전투에 투입될 예정이었다. 그래서인지 병사들의 표정은 비장하기 그지없었다.
뿌듯한 마음으로 열병식을 지켜보는 장제스였지만, 한편으론 아쉬운 마음도 컸다. 이 무기들이 1937년에도 있었다면, 지금쯤 대륙에서 왜놈들을 깡그리 몰아낼 수 있었을 텐데......
그의 속마음을 읽은 것인지 드럼이 쾌활한 말투로 덧붙였다.
"이제 쪽발이들은 끝입니다, 끝. 이번 해가 끝나기 전까지 톈진과 베이징을 탈환하고 만주까지 밀고 들어가는 것이 목표입니다. 그리고 내년 여름에는, 도쿄에서 축배를 드는 것이고요."
"장군의 말은 반드시 현실이 될 거요. 내 장담하리라."
듣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웅장해지는 말이었다. 도쿄. 이 길고 잔인한 전쟁을 시작한 곳. 그곳에서 승리를 기념하는 축배를 든다. 얼마나 가슴이 벅차오르는 말인가.
장제스는 전쟁이 끝나면 반드시 도쿄에서 승리를 기념하는 연회를 열어 전쟁으로 스러져간 동포들의 넋을 위로하리라고 다짐했다.
그의 다짐을 확인하듯 하늘에선 P-51 머스탱 편대가 날아갔다.
***
"발사!"
"쏘아!"
미국으로부터 지원받은 미제 야포들로 무장한 국민혁명군의 포병대가 일본군 진지로 포탄을 쏘아 올림과 동시에 대반격의 막이 올랐다.
중국군 포병들은 조국을 침략한 살인귀들에게 자신들의 손으로 직접 불벼락을 내려준다는 사실에 흥분하여 힘든 줄도 모르고 기계처럼 움직였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모자라는지 장교들은 연신 병사들을 재촉했다.
"더 빨리! 그렇게 느려터져서야 왜놈들을 잡을 수 있겠냔 말이다!"
"우로 3! 다시, 쏴!"
그동안 최전선에서는 교전이 자주 벌어졌지만, 대부분 작은 총격전이었고 포격과 전차를 동반한 대규모 전투는 늘 일본군의 몫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지금까지 일본군의 포격에 시달리던 국민혁명군이 역으로 일본군을 향해 포격을 날려대자 일본군은 당황했다.
"엎드려! 대가리 들면 뒤진다!"
"장교들은 엎드리지 마라! 황군의 위엄을 지켜야-"
포탄이 우박처럼 쏟아지는 가운데, 칼을 빼 들고 설교하던 소좌의 머리통이 포탄 파편에 수박처럼 터지는 것을 본 일본군 병사들은 더욱 자세를 낮추었다.
포격은 10분 뒤에 끝났지만 아직 위기가 끝난 것이 아니었다. 진짜 위기는 이제 겨우 시작이었다.
"이 소리는 또 뭐야?"
"지진......은 아닌 것 같고......"
포격으로 죽은 동료들의 시신을 수습하느라 다들 정신이 없는 가운데, 저 멀리서 굉음이 들려오며 땅이 진동했다.
"저, 전차다!"
"뭐어? 지나놈들이?"
자신들을 향해 굴러오는 국민혁명군 전차부대를 본 일본군 병사들의 눈이 접시만큼 커졌다. 그도 그럴 게, 중일전쟁 개전 때부터 참전한 극소수의 고참병들을 제외한 다수의 병사들은 국민혁명군의 전차를 처음 보았기 때문이다.
여태까지 그들이 봤던 전차는 일장기가 그려진 일본군 전차들뿐이었다. 일본군 병사들은 국민혁명군을 가리켜 전차도, 비행기도 없는 무지한 오합지졸들이라고 비웃곤 했다.
"저건 미제 M4 전차잖아?!"
"지나놈들이 어떻게 저걸?"
그런데 전차라니. 그것도 일본군이 보유한 전차 중 가장 강력하다고 평가받은 치하 전차보다 몇 배는 강한 미제 전차들이라니. 두 눈으로 직접 보고도 믿을 수 없는 광경에 혼이 나간 병사들은 두 다리가 얼음처럼 굳어 움직일 수조차 없었다.
"발사!"
차체 측면에 국민혁명군을 의미하는 하얀 태양이 그려진 M4 전차의 75mm 주포가 불을 뿜자, 일본군들이 허공으로 튀어 올랐다.
주포에 이어 기관총도 열심히 불을 뿜어 적들을 볼링 핀처럼 줄줄이 고꾸라뜨렸다.
본격적인 전투가 시작되고 1시간도 되지 않아 국민혁명군은 최전선의 일본군 병력들을 빗자루처럼 쓸어넘기며 진격을 거듭했다.
***
국민혁명군의 반격이 시작되자 후방의 일본군 사령부에는 전선이 돌파당했다는 보고들이 쏟아졌다.
"지나군이 전선을 돌파하고 진격 중이라고?"
"무적의 황군이 다른 것도 아니고 겨우 지나군 따위에게 밀리다니, 이게 말이 되는 소리냐?"
'나의 황군은 그렇지 않아!'를 외치던 일본군은 전선이 돌파당한 이유가 다름 아닌 국민혁명군의 전차라는 사실에 또 한 번 충격을 받았다.
"전차? 전차라고? 지나군에게 전차가 있단 말이냐?"
"예. 그것도 미제 M4 전차가 목격되었다는 보고가-"
"그럴 리 없다! 난리통에 잘못 본 것이겠지! 어떻게 지나 놈들이 미제 전차를 굴릴 수 있겠느냔 말이다!"
"하지만 사단장 각하, 지나군에게 전차가 있는 것만큼은 사실로 보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도 전차를 써서 지나 놈들에게 황군의 무서움을 제대로 알려줘야지."
전차는 전차로 상대한다. 참으로 당연한 이치로, 일본군의 대응은 상식적이었지만 문제는 전차 간의 성능 차이는 고려하지 않았다는 것이 문제였다.
사실 고려했다고 해도 치하 따위가 전부인 일본군에게 다른 대책이 있는 편은 아니었지만.
"목표, 거리 400! 철갑탄 장전!"
"장전 완료!"
"발사!"
치하의 47mm 1식 전차포가 맹렬히 불을 뿜었지만, 포탄은 M4의 전면장갑을 노크하곤 도탄되었다.
"빌어먹을, 도탄입니다!"
"시무라, 재장전! 나카노, 궤도를 노려라! 전면은 암만 쏴도 소용이 없어!"
전차장은 미제 M4 전차는 장갑이 두꺼워 전면을 뚫는 것은 무리니, 격파하려면 측후면을 노리거나, 그도 힘들면 궤도를 쏴서 기동불능에 빠뜨려야 한다고 배웠던 것을 기억해냈다.
하지만 재장전이 끝나기도 전에 M4의 주포가 자신에게로 향하는 광경을 보곤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이런......"
75mm 철갑탄을 정통으로 맞은 치하는 포탑이 날아가고 전면장갑이 통째로 뜯겨나가며 완전히 파괴되었다.
간혹 훈련이 덜 된 탄약수의 실수로 철갑탄 대신 유탄이 발사되는 경우가 있었지만, 치하의 얄팍한 장갑은 유탄조차 완벽하게 방호하지 못했다.
폭발의 충격으로 장갑을 고정시켜둔 리벳들이 내부로 튀면서 전차병들을 벌집으로 만들었다.
M4 셔먼은 물론이고, 그보다 한 단계 아래인 M3 스튜어트와 M3 리조차 일본군에겐 사신이나 다름없었다. 이들 미제 전차는 일본군의 공격을 가뿐하게 튕겨내며 잔해와 시체들을 만들어냈다.
싸움은 하늘에서도 벌어졌다. 일본 육군 항공대 소속의 하야부사와 국민혁명군의 머스탱 편대가 서로의 꼬리를 물고 늘어지며 총탄을 갈겨댔다.
"좋아, 잡았다."
6년이나 이어진 전쟁통에서 실력을 갈고닦은 일본군 조종사들은 결코 만만한 존재가 아니었다. 기체의 성능은 국민혁명군이 더 우위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교전이 시작되자마자 머스탱 2대가 추락했다.
연기를 늘어뜨리며 추락하는 머스탱을 보며 미소를 짓던 일본군 조종사는 이내 자신의 뒤를 따라잡은 머스탱이 총탄을 쏟아내자 소스라치게 놀라 황급히 기수를 낮추었다.
"저놈 놓치지 마! 진춰우를 죽인 놈이야!"
"따라잡아!"
하지만 국민혁명군 조종사들도 그동안 놀고만 있었던 게 아니었다. 미국식 맹훈련과 실전으로 다져진 그들은 일본군조차 깜짝 놀랄 정도로 실력이 향상되어 있었다. 게다가 숫자는 국민혁명군이 더 많았다.
일본군의 우세로 시작된 싸움이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일본군에게 불리해졌다. 기체에 불이 붙고, 조종실이 박살이 난 채로 추락하는 하야부사의 수가 늘기 시작하자 일본군은 혼란에 빠졌다.
빌어먹을. 지나 놈들이 이렇게 강했었나? 하지만 알량한 자존심은 중국인들의 실력이 는 것이 아니라 기체의 성능이 압도적이어서 그런 것이라고 단정 지었다.
저놈들이 강해진 것이 아니다. 전투기가 더 좋은 것일 뿐이다. 따라서 우리가 밀리는 것은 어쩔 수 없는......
한 줄기 총탄이 긁고 지나가자, 또 한 대의 하야부사가 연기를 내뿜으며 지상으로 추락했다.
***
국민혁명군의 선전과 미국의 랜드리스에 미소를 짓는 이는 장제스뿐만이 아니었다.
연합국의 일원임에도, 그 존재조차 아는 사람이 드문, 대한민국 임시정부에도 희소식이 전해졌다.
"그게 정말입니까, 대인?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주석 김구는 장제스가 한 말을 듣곤 자기도 모르게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그런 김구를 장제스는 웃으며 앉으라고 손짓했다.
"너무 흥분하셨습니다, 그려."
미국의 원조물자는 국민혁명군을 강군으로 탈바꿈시켰다. 불과 1년 전까지만 해도 국민혁명군은 기본적인 소총과 장구류조차 부족해 몇 세기 전의 구식 엽총이나 부지깽이로 훈련을 받는 일이 있었지만, 지금은 말단 병사들조차 M1 개런드나 M3 기관단총을 들고 다녔다.
여유가 생기자 장제스는 국민혁명군 산하에 있는 한국광복군을 떠올렸다. 임정을 하등 도움도 안 되는 군식구 취급하는 국민당 관료들과 달리, 장제스는 임정이 오랫동안 일본에 맞서 투쟁해왔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임정에 호감을 가지고 있던 장제스는 최근 넘쳐나는 무기들 일부를 광복군에 지원하기로 결심했다. 장제스로부터 그 소식을 직접 전달받은 김구는 가슴이 벅차올랐다.
"뭐라 감사의 말을 전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대인. 이 은혜를 어떻게 갚아야 할지......"
"허헛, 함께 왜놈들과 싸우는 동지인데 당연한 일 아니겠습니까. 전 세계가 대륙의 투쟁을 외면할 때, 오직 한국만이 뜻을 함께하였으니 그에 대한 보답이라고 생각하시지요."
물론 장제스가 지원하기로 한 무기들이 모두 최신품은 아니었다. 그 반대로, 절반은 국민혁명군이 쓰던 몇십 년 전의 구식 무기들로 미제 무기로 재편되면서 호환성 문제로 애물단지가 된 터라 이를 광복군에 떠넘기는 것이었다.
하지만 무기가 부족해 병사들이 부지깽이로 훈련을 받는 판국이었던 광복군은 이조차 감지덕지였다. 게다가 지원받은 무기 목록 중에는 기갑차량도 있었다.
비록 전차라 부르기에도 애매한 탱켓들이 다수였지만, 장제스가 통 크게 넘겨준 M3 스튜어트와 M4 셔먼도 있었다.
소총 대신 목총이나 나무 막대기를 들고 훈련을 받던 광복군 대원들을 보며 자주 한숨을 내쉬곤 했던 김구는 눈물을 글썽거렸다. 드디어 오랜 원한을 풀 때가 온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