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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영제국의 폐급장교 169화

무료소설 대영제국의 폐급장교: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1,096회 작성일

소설 읽기 : 대영제국의 폐급장교 169화

 169화 판터 쇼크

 "적의 신형 전차라고?"

 "그렇습니다, 각하."

 영국 발칸원정군 총사령관으로 임명된 알렉산더는 이제 막 업무를 끝내고 저녁식사를 하러 가려던 참이었다. 하지만 부관의 보고가 그의 발목을 붙잡았다.

 "루마니아와 불가리아 국경 부근에서 독일군과 전투 중이던 제7전차연대가 최초로 교전했다고 합니다. 처음에는 독일군이 노획한 T-34인 줄 알았습니다만, 이내 다른 전차라는 사실을 아서 그레이 대위가 알아차렸다고 합니다."

 "아서 그레이? 그 친구는 잊을만하면 튀어나오는군. 그래서, 피해는 어느 정도인가?"

 "적의 손실은 전무한 반면, 아군은 코멧 5대가 격파당하고 보병 수십 명이 전사했습니다."

 처참한 교환비에 알렉산더는 저도 모르게 눈살을 찌푸렸다.

 "그게 말이 되나? 우린 5대나 당했는데, 적은 한 대도 못 잡았다고? 게다가 제7전차연대는 경험이 풍부한 베테랑 부대라고 들었는데?"

 "안타깝게도 그렇습니다. 적의 신형 전차는 아군의 공격을 모두 튕겨냈다고 합니다."

 "허, 이런."

 코멧의 HV포를 모두 도탄 시켰다는 것은, 전면 방어력이 타이거와 최소 동급이거나 그 이상이라는 뜻이었다. 거기다 평균 교전 거리를 훨씬 뛰어넘는 거리에서 단 일격에 코멧을 격파했다고 하니, 주포의 위력도 88과 비슷하렷다.

 "산 넘어 산이로군. 가뜩이나 타이거로도 충분히 골치 아픈데, 이제는 신형 전차라니."

 알렉산더는 저녁 식사를 뒤로 미룬 채 다시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런던에 보낼 보고서를 급히 작성하기 시작했다.

 ***

 "자네가 아서 그레이 대위인가?"

 "그렇습니다만?"

 "뭣 좀 물어볼 게 있네. 자리에 앉게나."

 "옙."

 판터한테 처참하게 깨지고 다음 날, 사단본부로부터 소령 2명이 파견 나왔다. 한 명은 키가 멀대처럼 크고, 다른 한 명은 잘생겼지만, 머리가 많이 벗겨진 상태였다.

 척 보기에도 무척이나 깐깐해 보이는 이 두 아저씨들은 대뜸 나를 붙잡곤 이것저것 질문을 던져댔다. 다른 장교들도 많은데, 왜 하필 나냐고요.

 "적 전차가 신형이라는 것을 가장 먼저 파악했다고 들었는데, 사실인가?"

 "그렇습니다."

 이것 때문이었군. 어째 나만 콕 집어서 묻는다 싶었어.

 "어떻게 그걸 알아차렸지? 고작 3, 4초 남짓한 시간이었다고 들었는데."

 그야 내가 미래에서 왔으니까요......라고 말은 못하겠고, 급한 대로 미리 생각해둔 말을 입에 담았다.

 "그야 생김새부터가 T-34와 현저히 차이가 났으니까요."

 "어떻게?"

 "자세히 말해보게나."

 "전에 프랑스에서 직접 교전해봐서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만, T-34는 차체 전면에 기관총좌와 조종수용 해치가 달려 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 목격된 신형 전차에게선 그것들을 발견할 수 없었습니다.

 거기다 포탑 전면부의 생김새도 다르고, 주포 끝에는 머즐 브레이크도 달려 있었습니다. 이것도 T-34에는 없는 물건입니다.

 따라서 T-34가 아니라 적의 신형 전차가 분명하다고 판단을 내렸습니다."

 내 대답을 들은 소령 둘은 벙찐 표정이 되었다. 잠시 후 머리가 벗겨진 소령이 믿을 수 없다는 말투로 물었다.

 "겨우 몇 초 되지 않는 그 짧은 시간에 그런 판단을 내렸단 말인가?"

 "어? 아, 그렇습니다만."

 "정말 대단하군. 눈썰미가 남다르구만."

 두 아재는 내 대답에 감탄하며 돌아갔다. 곧이어 적 신형 전차에 대한 대책회의가 열렸다.

 "우선 상부로 보고가 올라가긴 했는데, 대응책 마련까지 시간이 제법 걸릴 걸세. 그전까지는 우리 선에서 처리할 수밖에 없어."

 브랜슨 대령의 말.

 "일단 상부에선 그 신형 전차의 방호력이 타이거 이상이라고 추측하고 있네. 화력도 타이거와 비슷하고."

 "맞습니다."

 "하지만 장점만 있는 물건이 없듯이, 이놈한테도 분명 무슨 약점이 있을 거야. 그렇지 않겠나?"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그런고로, 그레이 대위. 자네가 보기엔 이 전차의 약점이 뭐라고 생각하나?"

 갑자기 훅 들어오네. 누가 보면 내가 이놈을 만든 줄 알겠다.

 어차피 이런 질문이 올 걸 알고 미리 생각해둔 말이 있었지만, 잠시 생각하는 척을 했다. 시간이 1분 정도 흘렀을 때, 나는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대대장님도 아시다시피 적의 신형 전차는 이제까지의 독일 전차들과는 형상이 많이 다릅니다. 그 흔한 3, 4호부터 타이거까지, 전부 수직장갑이었죠. 하지만 이번에 나타난 전차는 소련의 T-34처럼 경사장갑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렇지."

 "경사장갑의 장점이 뭐겠습니까? 상대적으로 얇은 수치의 장갑에 경사를 줌으로써 방호력을 향상시킨 것이죠."

 "맞는 말이네."

 "대신, 빛이 있으면 그림자가 있듯이 단점도 있습니다."

 경사장갑의 가장 큰 단점.

 바로 중량의 증가가 필수적이라는 것이다.

 "늘어난 중량을 감당하려면, 필수적으로 다른 부분의 장갑을 줄여 하중을 낮춰야 합니다. 따라서......"

 "따라서?"

 "측면과 후면의 장갑이 상대적으로 얇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원 역사의 판터는 전면부 방어력이 티거 이상이었지만, 하중을 줄이기 위해 측면과 후면을 희생시켰다. 그렇지만 사실 측후면이 얇은 건 판터뿐만이 아니라 거의 모든 전차들이 가진 문제점이었다.

 "즉, 전면 대신 측면과 후면을 집중적으로 노릴 수밖에 없다, 이건가?"

 "그렇습니다."

 "그건 다른 전차들을 상대할 때도 똑같이 적용되는 게 아닌가?"

 어. 맞아.

 하지만 방법이 이것밖에 없는데 어쩌라고?

 아니다, 하나 더 있긴 했지. 샷 트랩(Shot Trap)이라고, 포방패 하단을 쏘아 포탄이 아래로 굴절되게끔 유도해 상판을 관통해 격파하는 방법이 있긴 하다.

 하지만 이는 반쯤 운에 기대야 할 정도로 어려운 전술인 데다, 측면과 후면을 노리는 것보다 조준이 더 어려운 방법이다. 따라서 패스.

 "하지만 방법이 그것밖에 없습니다. 그나마 적과 비교해 아군의 전차수와 기동성이 우위에 있으니 그 점을 활용하여 측면으로 돌아 공격하는 것만이 현재로선 유일한 해결책입니다."

 비록 전차의 성능에선 코멧이 판터보다 밀리지만, 숫자만큼은 판터보다 우위에 있다.

 게다가 독일은 이제 막 판터 양산에 들어가 아직 수가 그렇게 많지 않을 터.

 현재까지 유일한 방법은 숫자와 기동성으로 밀어붙여 압살하는 방법밖에 없다.

 ***

 독일의 야심작 판터가 모습을 드러낸 곳은 루마니아뿐만이 아니었다.

 "모두 주의! 적 전차다!"

 "철갑탄 장전해!"

 동부전선의 소련군도 전장에 모습을 드러낸 판터와 마주쳤다. 처음으로 판터와 마주한 소련군 전차병들은 그 생김새를 보고 갸우뚱거렸다.

 "저놈은 뭐지? 암만 봐도 T-34 같은데......"

 "설마 아군 아냐?"

 "야 이 멍청한 놈아. 전면에 철십자 안 보이냐? 파시스트 놈들이 노획한 것이 분명해."

 독일군이 노획한 T-34와 전장에서 마주치는 경우가 종종 있었기에 처음에는 다들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상대가 4호 전차든, T-34든 어차피 쳐 죽여야 할 상대라는 점에선 같았으니까.

 "이거나 먹어라, 파시스트 놈아."

 호기롭게 주포를 발사한 T-34 전차병은 곧 파시스트 놈들이 불길에 휩싸인 채 전차 밖으로 기어 나오리라 예상했다. 하지만, 예상과 다르게 포탄은 가볍게 튕겨 나갔다.

 "뭐야, 도탄이잖아?"

 "그, 그럴 리가 없는데."

 적과의 거리는 겨우 400m 안팎. 76mm 주포로도 T-34의 전면장갑을 충분히 관통할 수 있는 거리다. 하지만 저놈은 76mm 철갑탄을 정면에서 튕겨냈다.

 적 전차의 생김새가 T-34와 다르다는 것을 알아차렸을 때는 이미 늦은 뒤였다.

 쾅!!!

 "제냐가 당했다!"

 "저놈은 T-34가 아냐! 파시스트들의 신형 전차다!"

 "장전 서둘러!"

 뒤늦게 적이 T-34가 아닌 신형 전차라는 사실을 알아차린 소련군이 일제 사격을 가했지만, 판터는 멀쩡했다. 전면부에 한해서라면 티거보다 방어력이 훨씬 뛰어난 게 판터였다.

 이윽고 언덕을 넘어 나타난 판터들까지 대열에 합류해 포문을 열자, T-34 서너 대가 순식간에 불타올랐다.

 "제기랄, 쨉이 안 돼!"

 "야, 그놈 데려와라! 그놈!"

 T-34로는 안 된다는 것을 깨달은 소련군은 서둘러 최종병기를 투입했다. T-34와 비슷하게 생겼지만, 장갑이 더 두꺼운 T-43과 KV-1의 차체로 만든 SU-152 자주포가 그것이었다.

 "거리 450, 발사!"

 T-43이 먼저 판터를 향해 불을 뿜었지만, 76mm 포탄은 판터의 장갑에 별다른 손상을 주지 못하고 도탄 되었다. T-34와 같은 76mm 주포를 장착한 T-43은 방어력은 T-34보다 월등했지만, 화력만큼은 하나도 차이가 없었다.

 판터가 불을 뿜자, T-43의 전면장갑이 관통되며 폭발이 일어났다. 거리가 가까운 탓에 장갑이 별 효과가 없었던 것이었다.

 "이반이 당했습니다!"

 "나도 알아 등신아! 조준 끝났냐?"

 "예! 쏠까요?!"

 "당장 쏴!"

 하지만 SU-152는 달랐다. 방어력에선 T-43보다 떨어지지만, 152mm 곡사포를 탑재하여 화력에서는 T-43을 아득히 초월하는 SU-152가 불을 당기자, 판터는 대폭발을 일으켰다. 장갑이 충격에 못 이기고 찢어지면서 전차 내부의 탄약들까지 유폭한 것이었다.

 "드디어 저 괴물을 잡았습니다!"

 포탑이 떨어져 나가 활활 타오르는 판터를 보고 신이 난 포수가 소리쳤다. 하지만 전차장은 웃을 수 없었다. 자신을 향해 포탑을 돌리는 판터들을 본 전차장의 말이 빨라졌다.

 "후진, 후진해! 빨리!"

 한 대의 SU-152를 향해 판터 3대가 집중사격했다. 내부의 탄약들이 일제히 폭발하자 전투실이 통째로 뜯어지면서 거대한 불꽃이 주변의 보병들까지 집어삼켰다.

 믿었던 최종병기들까지 허무하게 격파당하자, 소련군은 충격에 빠져 물러났다. 동시에 임무를 완수한 판터들도 조용히 철수했다. 격파된 전차들의 잔해만 덩그러니 남겨둔 채로.

 ***

 "허, 파시스트 녀석들. 이번에는 또 이런 괴물을 만들다니."

 보고서를 받아든 스탈린이 혀를 찼다. 그의 앞에는 주코프가 심각한 얼굴을 한 채 묵묵히 서 있었다.

 "그 티거라는 놈도 골치 아픈데, 이번에는 판터라고? 거기다 우리 군의 T-43도 별 효과가 없어?"

 "그렇습니다, 서기장 동지. 현재까지의 교전 사례들 중에 파시스트들의 신형 전차에 유의미한 타격을 준 것은 SU-152가 유일합니다."

 문제는 그 SU-152조차 티거나 판터 같은 고성능의 전차들을 상대로 대등한 싸움이 힘들다는 것이었다. SU-152의 152mm 주포에 맞으면 그 어떤 전차든지 한 방에 격파되거나 전투 불능에 빠졌지만, 재장전이 너무 느렸다.

 게다가 반동이 커서 명중률도 심하게 낮아, 근거리까지 접근하지 않으면 명중시키기가 힘들다는 점도 소련군의 발목을 잡았다.

 "T-43은 T-34보다 방어력이 좋아 여러모로 호평이지만, 속도가 T-34보다 느린 데다 주포도 같은 76mm 주포를 탑재한 탓에 파시스트 중전차를 상대론 효과를 보기 어렵습니다."

 "으으음."

 T-43의 문제점은 그것뿐만이 아니었지만, 주코프는 말을 아꼈다. 애초에 T-43의 양산을 명령한 것은 다름 아닌 스탈린이었으니까.

 그런 스탈린 앞에서 T-43의 문제점을 하나하나 나열하며 조목조목 깐다? 나 죽여줍쇼 하고 말하는 것이 다름없었다.

 "그놈의 화력이 문제로군. T-43에 85mm 주포를 다는 방안에 대해선 어떻게 되었소?"

 스탈린 본인도 76mm 주포로는 부족하다고 판단하여 85mm 주포를 탑재하는 방안을 고려하라고 지시했었다. 이쯤이면 결과물이 나와야 할 시기일 텐데.

 "T-43에도 85mm 주포를 탑재한 시험 차량이 주행과 사격 테스트를 모두 성공적으로 마쳤다고 합니다."

 "그렇군. 그럼 그놈을 서둘러 생산하도록. T-34보다 장갑도 두껍고, 화력도 강력하니 파시스트 놈들의 중전차를 잡는데 더 수월하지 않겠소.

 그리고, 우리도 신형 중전차를 개발 중이지 않소? 그놈은 언제쯤 완성된다고 하오?"

 "겨울이 시작되기 전에 완성된다고 합니다, 동지."

 "그걸론 너무 늦소. 하루라도 빨리 완성시켜서 내 앞에 내놓으라고 전하시오. 조국이 위기에 처해있는데, 한시라도 빨리 완성시켜야 하지 않겠소."

 "즉시 전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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