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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영제국의 폐급장교 168화

무료소설 대영제국의 폐급장교: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1,139회 작성일

소설 읽기 : 대영제국의 폐급장교 168화

 168화 강적 출현

 지중해를 가로질러 그리스의 수도 아테네에 도착하여 막 배에서 내릴 준비를 하는 와중에 새 명령이 하달되었다.

 "모두 동작 그만!"

 "?"

 "상부로부터 명령이다. 모두 배에서 내리지 말고 그대로 대기해라!"

 본래 계획대로라면 우린 아테네에 내려서 열차를 타고 그리스-유고슬라비아 국경을 넘을 예정이었다.

 하지만, 루마니아에 주둔한 독일군의 움직임으로 인해 계획에 차질이 생겼다.

 "루마니아 남부, 그러니까 불가리아 국경 인근에서 전투가 시작되었네."

 상황 설명을 하는 브랜슨 대령의 표정이 자못 심각했다.

 "방어만 할 것이란 예상과 달리, 제리들이 적극적으로 공격을 퍼붓는 중이야. 불가리아 정부에선 우리한테 빨리 지원군을 보내달라고 난리를 치는 중이고."

 원래대로라면 우리는 유고슬라비아군과 합류해 루마니아 국경에 전개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독일군의 공격을 받은 불가리아가 급히 HELP를 연발하는 바람에 상부에선 급한 대로 우리더러 불가리아군을 지원하라고 지시한 것이었다.

 "마침 아군이 감청한 적의 교신에 따르면 제리들은 베오그라드를 공격할 의향은 없는 것 같다는군. 대신 루마니아 플로이에슈티 유전 보호를 위해 불가리아 북부를 장악하고자 하는 모양일세."

 발 한 번 딛어보지 못한 아테네를 뒤로한 채 배는 출발하였고 사흘 뒤 우리는 겨우 땅에 발을 붙일 수 있었다.

 카발라에서 내린 우리는 그날 저녁에 국경을 넘어 불가리아로 진입했다.

 목적지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격렬한 공습이 지나간 뒤였다. 산등성이 너머로 짙은 회색 연기가 뭉게뭉게 솟구쳤으며, 수레에 짐을 실은 피난민들이 남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모두 하차! 꾸물거리지 마라!"

 "이제부턴 전장이다. 다들 정신 바짝 차려."

 정비병들이 전차를 점검하는 동안 짧은 회의가 열렸다. 우리 중대에게 주어진 임무는 보병들과 함께 독일군이 탈취한 마을을 탈환하는 것이었다.

 나는 소대를 지휘해 측면에서 공격하는 임무를 맡았다. 소대로 돌아와 곧 있을 공격 신호를 기다리는 동안, 수통에 든 홍차를 홀짝이던 게이츠 원사가 대뜸 질문을 던졌다.

 "마을에 있는 적군의 규모는 어느 정도랍니까?"

 "아, 별거 없어요. 보병만 1개 중대라는데."

 "전차나 돌격포는요?"

 "발견하지 못했답니다. 아예 없는 건지, 아니면 우리가 찾을 수 없도록 매복을 철저히 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연대본부에선 없는 것 같답니다. 전차가 이동하면 으레 궤도 자국이 남기 마련인데, 찾지 못했다는군요."

 "적들이 없애버렸을 가능성이 있지 않습니까?"

 "그렇죠. 그런데 전차나 돌격포가 있다고 해도, 타이거는 절대로 아닐 테니까 그건 걱정하지 마요."

 설령 전차가 있다고 해도, 기껏해야 4호 전차나 3호 돌격포 따위겠지.

 -중대, 전진!

 공격 신호가 울리자, 전차들이 일제히 마을을 향해 움직였다. 대기하던 보병들도 자리를 박차고 나와 좌우로 전개했다.

 우리가 맡은 구역은 탁 트인 들판이었다. 장애물이 없어 전차가 기동하기엔 안성맞춤인 환경이지만, 동시에 엄폐물이 없어 적의 공격에 그대로 노출된다는 치명적인 단점도 있었다.

 마을까지의 거리가 500m 정도로 좁혀졌을 때 어디선가 총성이 울렸다. 무어 소령이 직접 1소대를 이끌고 공격하기로 한 방향에서였다.

 이윽고 적의 총격이 시작되었다. 급작스레 가해진 공격에 보병 서너 명이 당했지만, 전체적인 면에서 봤을 때 그리 격렬한 공격은 아니었다.

 "2시 방향에 있는 농가로부터 기관총 사격. 유탄 장전."

 포를 쏘기 전에 우선 공축 기관총으로 제압을 시도했지만, 적은 총격을 멈추지 않고 계속해왔다. 기관총이 안 먹히면 유탄을 쏠 수밖에.

 "쏴!"

 유탄을 한 방 먹여주자 그제야 기관총 사격이 끊겼다. 아군 보병들이 약진해서 담을 뛰어넘자, 연달아 폭발이 일었다.

 "젠장, 함정이다!"

 "위생병!"

 우리 보병들이 담을 뛰어넘을 것을 예상했는지, 적은 담 뒤편에 보병을 배치하는 대신 지뢰를 깔아뒀다. 다시 총탄이 날아와 허우적거리며 도움을 청하던 부상병의 관자놀이를 꿰뚫었다. 제레미가 즉시 총탄이 날아온 방향으로 기관총을 쏘아댔다.

 "들이박아!"

 전차가 전속력으로 들이박자, 돌담은 스티로폼처럼 쪼개지며 와르르 무너져내렸다. 뒤이어 궤도 아래서 폭발이 일었다. 대인지뢰를 밟은 것이다.

 "걱정하지 마십쇼! 궤도에 이상은 없습니다!"

 "좋아, 좋아. 그래야지. 그대로 쭉 가자."

 사람이 밟았다면 다리가 날아갔겠지만, 강철로 된 무한궤도는 무사했다. 그렇다고 그 충격이 어디 간 것은 아니니 어느 정도 손상은 가해졌겠지만, 당장 굴러가는데 이상만 없으면 됐다.

 마을로 진입한 뒤, 처음으로 대전차포 공격이 가해졌다. 하지만 측면도 아니고 정면에서, 그것도 PaK 36으로 가해진 공격이라 무리 없이 튕겨냈다.

 "뭐야, 저놈들은? 아직도 저런 폐기물 따위를 쓰고 있다니."

 퇴물이 된 지 오래인 PaK 36으로 어떻게든 이쪽에 유효타를 먹여주기 위해 낑낑거리는 독일군들이 안쓰럽기까지 했다. 주포를 쏘기도 전에 보병들이 수류탄을 던져 대전차포를 처리했다.

 마을을 접수하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아군은 별 피해 없이 마을을 탈환했다. 보병들은 어느 정도 사상자가 나왔지만, 대신 전차는 단 한 대도 잃지 않았다. 이 사실만으로도 꽤나 큰 성과였다.

 하지만 문제는 지금부터였다. 상부에 마을 탈환을 보고하기 무섭게 새로운 지령이 떨어졌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냉수를 들이키다 그만 사레가 들려 구토가 나올뻔한 걸 겨우 넘겼다. 무어 소령도 난감하다는 표정이었다.

 "저희는 이제 막 전투가 끝났습니다. 그런데 전진하라는 말씀이십니까?"

 "안타깝게도 그렇다네."

 브랜슨 대령이 이제 막 전투가 끝나 휴식이 필요하다고 보고했지만, 명령은 달라지지 않았다. 정찰기의 보고에 따르면, 독일군은 소수에 무기도 변변찮다. 지금 공격을 가한다면 충분히 적들을 물리칠 수 있다는 이유였다.

 상부에서 직접 공격을 지시한 곳은 마을에서 4km가량 떨어져 있는 고지였다. 이 고지를 점령하면, 아군은 루마니아 국경으로 이어지는 주요 골목들을 관찰하기 용이했다.

 마침 고지에 있는 적군 병력도 소수라고 하니, 공격이 마렵지 않을 리가 없었다. 물론 그 부담은 현장에 있는 병사들의 몫이었지만, 높으신 분들이 그런 걸 신경 쓸 리가 없었다.

 ***

 "모두 일어서. 10분 뒤에 출발이다."

 "아니, 어디로 간다는 말입니까?"

 전투가 끝나 느긋하게 차를 끓이던 보리스가 놀라서 반문했다. 입에서 절로 한숨이 새어 나왔다.

 "상부 명령이야. 저기 보이는 고지가 새 목표야. 저곳을 점령하라는군."

 "이제 겨우 물이 끓기 시작했는데......"

 별 피해 없이 마을을 점령해서 좋아했는데, 이게 독이 되어 돌아올 줄이야. 어차피 피해도 별로 없으니 이참에 고지까지 점령하라는 상부의 지시에 짜증이 치밀어올랐지만, 애초에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병사들은 욕을 쏟아내며 전차에 올랐다. 탄약의 소모가 적었던데다 연료도 충분해서 재보충은 필요 없었다.

 "일이 이렇게 됐지만 어쩌겠냐. 다행히 고지에 있는 적들도 소수라고 하니 금방 끝내고 쉬자고. 알겠냐?"

 "알겠습니다."

 소대원들의 대답에는 힘이 하나도 없었다. 잠시 뒤 무어 소령이 무전기에 대고 출발 명령을 내렸다.

 ***

 "영국군이 움직이고 있습니다. 서둘러 지원을!"

 독일군 보병중대의 지휘관 막스 요이츠 대위는 무전으로 지원을 요청했다.

 그의 중대에 대전차화기라곤 위력이 간당간당한 PaK 38 3문이 전부였다. 아예 없는 것보단 낫지만, 이런 것들로 영국군 전차중대를 막을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조금만 기다려라. 지금 지원군이 그리로 가고 있다. 곧 도착할 것이다.

 다급한 막사와 별개로 무전기 너머에서 들리는 목소리는 태연하기 짝이 없었다. 막스는 솟구쳐오르는 분노를 억누르며 겨우 입을 열었다.

 "지원군의 규모는 어느 정도입니까?"

 -신형 전차 1개 소대에 보병 2개 소대일세.

 신형 전차라고? 혹시 타이거를 말하는 건가? 막스는 의문이 들었지만, 그가 묻기도 전에 무전이 끊어졌다.

 영국군이 자신들을 얼마나 만만하게 보는지 포격도 없이 공격해왔다. 어느새 고지 아래까지 온 영국군 전차들이 일제히 포문을 열자 주변에 포탄이 빗발쳤다. 사방에서 고함과 비명이 울려 퍼졌다.

 "엎드려, 새끼들아!"

 "살려줘!"

 "젠장, 지원은 아직인가?"

 지원군이 도착하는 게 빠를지, 아니면 영국군이 이 고지를 점령하는 게 더 빠를지 막스는 분간할 수 없었다. 절망적인 마음으로 곧 있을 전투를 준비하는데, 희망적인 소식이 들렸다.

 "중대장님, 지원군이 도착했다고 합니다!"

 지금까지 들었던 소식 중에 가장 반가운 소식이었다. 곧이어 영국군 전차들의 엔진음과는 다른 소리가 들렸다. 틀림없이 아군 전차들이 내는 소리이리라.

 "뭐야, 저건? T-34인가?"

 그런데 아군 전차의 생김새가 생각하던 것과 영 딴판이었다. 전면이 경사진 걸 보면 절대로 4호 전차는 아니었다. 막스는 소련에서 노획한 T-34를 끌고 나타난 줄 알았지만, 자세히 보니 T-34도 아니었다.

 T-34와 달리 차체 전면에 기관총과 조종수용 해치가 없었고, 주포도 훨씬 긴데다 머즐 브레이크까지 달려 있었다. 생전 처음 보는 전차였다.

 처음 보는 아군 전차가 불을 뿜자, 영국군 전차가 밥솥처럼 폭발하며 선홍색 화염을 내뿜었다.

 ***

 -우측에 적 전차 출현!

 -4호차 피격!

 "이번엔 또 뭐야?"

 어째 일이 너무 술술 풀린다 했다. 나는 가벼운 짜증을 느끼며 보리스에게 전차를 우측으로 돌리라고 지시했다.

 안타깝게도 피격당한 4호차로부터의 생존자는 없었다. 하필이면 유폭이 일어나는 바람에, 탈출할 틈도 없이 전원 즉사하고 말았다.

 -찾았다. 9시 방향, 거리 1200!

 -적은 소련제 T-34다!

 T-34라고? 독일군이 이번에도 T-34를 끌고 온 건가? 가만, 거리 1200이면 T-34의 주포로는 조준이 힘들 텐데......

 적의 실물을 보는 순간, 온몸의 피가 멈추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아군 전차장들이 말한 'T-34'는 T-34가 아니었다. T-34와 닮았지만 더 크고 더 강력한 전차, 5호 전차 판터였다.

 "모두 주의! 저놈은 T-34가 아냐! 적의 신형 전차다!"

 -신형 전차라고? 그게 무-

 말이 끝나기도 전에 판터에서 발사된 포탄이 아군 전차를 꿰뚫었다. T-34의 76mm 주포로는 어림도 없는 거리지만, 판터의 75mm 주포로는 충분한 거리였다.

 차체 전면이 관통당한 전차의 해치에서 온몸에 불이 붙은 전차병이 튀어나와 괴성을 지르며 몸부림쳤다. 게이츠 원사가 허락도 받지 않고 즉시 발포했지만, 판터는 포탄을 보기 좋게 튕겨냈다.

 "도탄 되었습니다!"

 다른 전차도 적을 향해 발포했지만, 이 역시 도탄. 전면 방호력만큼은 티거보다 뛰어난 판터답게 포탄을 쏘는 족족 튕겨 나가기 일쑤였다.

 설상가상으로 적은 한 대만 있는 게 아니었다. 도합 6대의 판터가 나타나 공격을 퍼붓자, 3대의 아군 전차가 연이어 격파되었다.

 -중대, 전투 중지하고 퇴각한다!

 불리함을 깨달은 무어 소령은 지체없이 퇴각 명령을 내렸다. 나는 적의 조준을 흩트려놓기 위해 연막탄을 꺼내 던졌다. 연막이 퍼지자 적들도 공격을 중단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데 무작정 포탄을 쏠 수 없는 노릇이었다.

 연막이 꺼지기 전에 우리는 전속력으로 달려 마을로 되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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