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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영제국의 폐급장교 165화

무료소설 대영제국의 폐급장교: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1,130회 작성일

소설 읽기 : 대영제국의 폐급장교 165화

 165화 재앙은 예고하지 않고 찾아온다

 "제리들이 사절을? 그것도 SS라고?"

 "예, 각하."

 마침 전방에 시찰을 나온 몽고메리는 독일군이 사절을 보냈다는 소식에 어리둥절했다.

 "그놈들이 무슨 할 말이 있다고 사절을 보낸 건지 모르겠군."

 부상자 수습을 위한 휴전이나, 포로 교환 따위를 위해 사절을 보낸 것일 수도 있었다. 물론 몽고메리는 그럴 생각이 전혀 없었다.

 "돌려보냅니까?"

 "음...... 아니. 그럴 필요는 없네. 기왕 여기까지 왔으니 한 번 만나보지."

 "알겠습니다."

 잠시 뒤, 부관의 안내를 받아 몽고메리의 앞에 도착한 SS 장교는 반사적으로 오른팔을 올려 나치식 경례를 했지만, 몽고메리는 신경도 쓰지 않았다.

 "게오르크 파울러 SS 대위입니다. 파울 하우서 SS 대장의 명령으로 왔습니다."

 "그렇군. 나는 몽고메리일세. 거두절미하고, 용건이 뭔가? 되도록 빨리 말해줬으면 좋겠군."

 몽고메리의 차갑기 그지없는 태도에도, 파울러는 눈썹 하나 움직이지 않았다. 그는 담담한 어조로 하우서의 말을 몽고메리에게 전했다.

 "그렇다면 거두절미하고 말씀드리겠습니다. 파울 하우서 SS 대장 각하께서는 항복하실 예정입니다. 항복에 앞서, 사절로 저를 이곳에 보내셨습니다."

 "자, 잠깐만, 항복이라고?"

 차갑고 딱딱한 태도를 유지하던 몽고메리는 항복이라는 말을 듣는 순간 저도 모르게 당황한 모습을 보였다.

 "지금 항복이라고 했나?"

 "그렇습니다."

 협상이나 포로 교환 따위를 예상하고 있던 몽고메리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이내 그의 입꼬리가 귀에 걸릴 정도로 올라갔다.

 이게 왠 떡이냐? 그러잖아도 상대는 독일군 중에서도 최정예인 무장친위대 기갑군단이다. 비록 여러 번 타격을 입어 전투력이 약화된 상태이지만, 저들을 격멸하려면 영국군도 어마어마한 희생을 치뤄야 할 터였다.

 그런데 항복이라고? 호랑이가 알아서 가죽을 벗어서 건네는 격이 아닌가!

 "대신, 조건이 있습니다. 전 부대원들에게 인도적인 대우를 약속할 것과 부상자들을 즉시 치료할 것을 요청하셨습니다. 이러한 요청들이 모두 받아들여진다면, 지체없이 항복하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렵지 않은 부탁이군. 걱정 말게. 우린 러시아인들과 다르니까."

 파울러는 손에 들고 있던 하우서의 친필 서신을 몽고메리에게 건넸다. 글이 모두 독일어였던 탓에, 몽고메리는 통역장교를 불러와 서신에 적힌 글들을 해독했다.

 내용 자체는 별거 없었다. 사절의 말은 모두 자신의 명령에서 나온 진실이며, 그 어떤 속임수나 계책이 없다는 것이었다.

 흥분이 가시고, 다시 냉정함을 되찾은 몽고메리가 물었다.

 "하나만 묻지? 겨우 며칠 전까지는 사자처럼 싸워대다가 왜 갑자기 항복하려는 건가? 그 이유가 듣고 싶네."

 "그 건에 관해선 하우서 SS 대장 각하께 직접 듣는 편이 나을 것입니다."

 "거 사람 째째하기는."

 파울러가 떠나기 전, 몽고메리는 혹시 적의 속임수가 아닌가 의심했다. 항복하는 척 시간을 끌면서, 몰래 공격을 할 준비 중인 게 아닐까?

 하지만 날이 밝자, 자신의 의심이 지나친 걱정에 지나지 않았음을 알 수 있었다.

 ***

 "맙소사......"

 두 눈으로 똑똑히 보고도 믿을 수 없는 광경이다.

 "실화냐?"

 사단본부에서 독일군이 군단째로 항복해올 것이라고 말했을 땐 허세인 줄로만 알았다. 그냥 병사들 사기나 좀 올려주려는 차원에서 하는 말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진짜였다니.

 날이 밝기 무섭게 백기를 내건 차량들이 줄지어 아군 전선으로 넘어왔다. 차량마다 병사들로 가득했으며 무기를 소지한 이는 소수의 장교들뿐이었다. 꼴에 자존심은 있어서 우리에게 투항하기 전에 전부 파기한 모양이었다.

 "살다 보면 별일이 다 생긴다던데, 진짜 오래 살고 볼 일입니다."

 투항병들의 행렬을 조용히 지켜보던 게이츠 원사가 말했다.

 "심지어 그 SS가 이렇게 무더기로 투항해오다니......"

 "그러게나 말이에요."

 베를린이 함락된 후에도 항복 선언 전까지 독일 곳곳에서 치열하게 저항했던 게 SS였다. 심지어 항복 후에도, 일부 SS 병사들이 연합군 진지를 습격하거나 테러를 일으킨 일도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반대가 되어, 군단급에 달하는 SS 병력들이 통째로 항복해오고 있다. 확실한 사유는 모르지만, 대충 듣자 하니 신정부 측에서 SS를 해체하려고 하니까 항복해오는 거란다.

 자기들을 싫어하는 작자들 말을 듣느니 차라리 항복을 택하겠다? '가질 수 없으면 부숴버리겠어'와 비슷한 마인드인가?

 끝없이 이어지는 투항 행렬을 지켜보는데, 몽고메리가 지프차를 타고 나타났다. 이윽고 맞은편에서 달려온 슈빔바겐에서 한 무리의 SS 장교들이 내렸는데, 기억에 있는 얼굴들이 보였다.

 "저 제리 놈, 장군 같은데 안대를 찼습니다, 그려?"

 "아마도 저 사람이 파울 하우서 SS 대장일 겁니다."

 하우서는 내 기억대로 안대를 차고 있어서 멀리서도 눈에 띄었고, 그 옆의 덩치 큰 남자는 요제프 디트리히인 듯싶었다. 몽고메리가 그들에게 다가가 손을 내밀자, 하우서는 그 손을 잡았다.

 ***

 "버나드 로 몽고메리요. 만나서 반갑소이다."

 "당신이 그 몽고메리로군. 파울 하우서요. 만나서 반갑소."

 하우서와 달리 몽고메리는 얼굴에서 웃음꽃이 떠나질 않았다.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강적이었던 SS 기갑군단의 항복을 받아 냈으니, 대장, 아니 원수 진급은 따놓은 당상이렷다.

 철천지원수인 패튼이 부들거릴 장면을 떠올리니, 벌써부터 하늘을 날아다니는 기분이었다.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뭣 좀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말해보시구려."

 "얼마 전까지 아귀처럼 싸웠으면서 갑자기 항복한 이유가 뭡니까?"

 직설적인 성격인 몽고메리답게, 첫 질문부터 도발적이었다. 허나 하우서는 이런 질문이 나올 줄 알고 있었다는 듯 무덤덤했다.

 "더 이상 싸울 이유가 없어졌기 때문이오."

 "싸울 이유가 없어졌다니, 그건 또 무슨 말이오?"

 "말 그대로요. 우리는 우리의 총통과 조국을 위해 목숨을 바쳤지. 하지만 총통이 죽고, 우리는 졸지에 총통을 암살한 반역자들이 될 처지에 처했소.

 신정부 놈들은 우릴 희생양으로 삼을 계획이오. 하지만, 우린 놈들의 계산대로 움직여줄 생각이 없소. 그래서 항복한 거요. 아시겠소?"

 "뭐, 대충은 알겠군요."

 사실 몽고메리는 적이 무슨 이유로 항복했든 간에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중요한 것이 적이 항복한 이유가 아니라, 항복했다는 사실이다.

 몽고메리는 휘파람을 불며, 독일군과 정반대편으로 향하는 병사들을 행렬을 응시했다. 백기를 내건 독일군 차량과 달리, 영국군 병사들은 중기관총을 탑재한 하프트랙과 장갑차를 타고 독일군이 온 곳으로 향하는 중이었다.

 "이제야 일이 좀 풀리는 것 같구만!"

 하늘 위에 떠 있는 구름과 땅바닥을 꾸물꾸물 기어가는 개미들조차 아름답게 보이는 몽고메리였다.

 ***

 예상대로, 제2 SS 기갑군단의 투항은 전 전선에 걸쳐 어마어마한 후폭풍을 불러왔다.

 SS 기갑군단이 갑자기 항복해버리자, 독일군의 전선에는 거대한 구멍이 뚫렸다. 그리고 영국군은 그 구멍 안으로 병력을 밀어 넣어 '구멍 넓히기'에 나섰다.

 "전진! 전진하라!"

 "우리 앞에는 적이 없다! 이대로 기름 떨어질 때까지 내달려!"

 독일군이 미처 대응책을 생각하기도 전에, 이미 구멍은 도저히 막을 수 없을 정도로 벌어져 영국군 병사들을 블랙홀처럼 집어삼켰다.

 당연하게도, 독일군에겐 대재앙이나 다름없었다.

 "급보입니다! 여, 연대본부에 대규모 적 출현!"

 "연대본부에?! 아니, 대체 놈들이 무슨 수로 거기까지 갔다는 건가?"

 "포위당했습니다! 서둘러 탈출을!"

 "어째서 토미들이 여기서 튀어나오는 거야?!"

 SS 기갑군단의 항복 덕분에, 순식간에 독일군의 전선 내부로 침입한 영국군은 곧장 독일군 사냥에 나섰다.

 수많은 부대들이 후방에서 갑툭튀한 영국군 전차에 깔아뭉개지거나, 졸지에 고립되어 꼼짝달싹 못하는 처지에 빠지고 말았다.

 이렇게 포위된 독일군 부대들 중에서 몇몇 부대는 용감하게도 포위망을 돌파하려 했고 우리는 그 시도를 막기 위해 투입되었다.

 "닉, 유탄 장전!"

 "유탄 장전!"

 우리 중대에 할당된 적은 육군과 공군이 혼성된 독일군 1개 대대였다. 전차와 돌격포를 싸그리 긁어모아 전면에 배치한 덕분에 원 주둔지였던 마을에서 어느 정도 진격할 수 있었다. 하지만 여기서부턴 안 될걸.

 "장전 완료!"

 "쏴!"

 불타오르는 4호 전차를 지나쳐 필사의 탈출을 시도하던 하노마크는 유탄에 맞고 탑승한 보병들과 함께 저세상으로 떠났다. 탈출로에 아군이 매복한 줄 모르던 독일군은 지금 사방에서 쏟아지는 포화를 정통으로 처맞고 있었다.

 포화에 그대로 노출된 탓에, 독일군은 막대한 피해를 입었다. 그런데도 어떻게든 탈출하려고 애쓰는 모습이 안쓰럽기까지 했다.

 그래도 봐주지 않을 거지만.

 "11시 방향에 4호 전차다! 철갑탄 장전!"

 "장전!"

 떡두꺼비처럼 엔진 위에 보병들을 잔뜩 태운 4호 전차가 달려오다가 정지했다. 사격을 위해 정지한 줄 알았는데, 자세히 보니 부상병들을 태우기 위해서였다. 전차에 먼저 탑승한 병사들이 부상병들을 향해 손을 내미는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그 모습을 보자 선뜻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내가 사격 명령을 내리지 않자, 게이츠 원사가 의아한 듯이 물었다.

 "대위님? 조준 다 끝났습니다. 쏠까요?"

 "쏘, 쏴!"

 "쏴!"

 전차가 피격되자, 전차에 탑승한 보병들도 덩달아 허공으로 날아갔다. 안타깝지만 이게 전쟁이었다.

 전차가 박살 나고, 더는 희망이 없다고 생각한 독일군은 그제야 저항을 멈췄다. 용케 격파되지 않고 남아 있던 장갑차에 백기가 올라가자, 나는 즉시 무전으로 소대에 명령을 내렸다.

 "전 차량 사격 중지. 적은 항복하고 있다."

 이어 무어 소령도 중대 전체에 사격 중지 명령을 내렸다. 아군이 사격을 중지하자, 독일군 몇 명이 슬금슬금 우리 쪽으로 다가왔다.

 "항복하겠소, 영국인. 부상병들을 치료해주시오."

 조금 전까지 적들을 한 명이라도 더 죽이기 위해 총알을 날려댔는데, 지금은 죽어가는 적 부상병들을 치료하기 위해 아군 위생병들이 바쁘게 돌아다녔다. 보면 볼수록 참 아이러니하다니까.

 "그러게 빨리 항복했으면 이런 일도 없었을 텐데."

 "제리들이 다 그렇죠. 그러니 또 전쟁을 일으킨 거 아니겠습니까."

 어느새 포탑 밖으로 나온 게이츠 원사가 휘파람을 불었다. 한바탕 피바람이 불고 지나간 전장은 처참하기 짝이 없었다. 시체와 사람 내장이 사방에 널려있는 참혹한 광경.

 나름 베테랑이라고 자부할 수 있는데도 이 광경만큼은 도저히 익숙해지질 않는다.

 그래도, 예전과 달리 요즘에는 희망이란 게 하나 생겼다. 조금만 더 버티면, 이 짓거리도 곧 끝난다는 희망.

 독일군은 지금 프랑스 전역에서 붕괴하고 있다.

 ***

 몽고메리와 영국군이 넝쿨째 굴러온 호박에 즐거운 비명을 지르는 동안,

 베를린에서도 비명과 절규가 끊이질 않았다.

 "빌어먹을 SS 새끼들!"

 베크가 주먹으로 책상을 내리치자, 컵이 엎어지면서 물이 탁자 위로 흘렀다. 하지만 누구도 놀라거나 화를 내지 않았다.

 이 순간 모두가 베크와 같은 심정이었으니까.

 "하우서의 투항 소식이 전해진 뒤로, SS 부대들이 동시다발적으로 투항하고 있습니다."

 신정부 수립 이후, 국방군 총사령관직을 맡고 있는 에르빈 폰 비츨레벤이 말했다.

 계획대로라면 SS 부대들이 맡던 구역은 새로 파견한 국방군 부대에 장비 및 물자와 함께 인계하고, SS 부대들은 독일 본토로 불러들여 무장해제를 진행할 예정이었다.

 독일 본토 및 동부전선에 주둔한 SS 부대들의 무장해제는 비교적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었지만, 문제는 프랑스였다.

 하우서의 제2 SS 기갑군단이 갑자기 투항해버리자, 프랑스 전장에서 연합군과 대치하던 SS 부대들이 줄지어 연합군에 투항하기 시작했다.

 SS 부대들의 투항으로 전선 곳곳에 구멍이 뚫렸고, 그 결과 프랑스의 독일군은 대혼란에 빠지고 말았다.

 연합군은 손대지 않고 코 푼 격이었지만, 독일군, 특히 SS의 무장해제로 강화를 꿈꾸던 신정부 입장에선 대재앙이었다.

 "이미 전선은 엉망 그 자체입니다. 지금이라도 총퇴각 명령을 내려서 전선을 프랑스 동부로 옮겨야 합니다."

 비츨레벤이 말했다. 어차피 연합군의 상륙을 허용한 시점부터, 프랑스의 상실은 사실상 시간문제였다. 특히 전선이 엉망이 된 지금은 더더욱 그렇고.

 조금이라도 피해를 줄이기 위해선, 전선을 뒤로 크게 물려서 전선을 재정비하는 것뿐. 비츨레벤은 파리를 포함한 프랑스 서부와 중부 지역 일대를 과감하게 포기하고, 프랑스 동북부와 이탈리아 국경으로 퇴각해 전선을 재정비할 것을 주장했다.

 "......그렇게 하게. 동부전선은 요즘 어떻지?"

 "아군이 필사적으로 방어하고 있습니다만, 전선이 너무 넓습니다. 동부전선도 축소하는 편이 이로울 겁니다."

 비츨레벤이 만슈타인의 주장대로, 드네프르 강 서쪽으로 병력을 퇴각시키는 방안을 제안했다. 비록 우크라이나 동부의 공업지대를 고스란히 소련에게 내준다는 것이 마음에 걸렸지만, 지금은 전선을 축소해 병력을 재정비하는 것이 더 급했다.

 "각하, 방금 전 속보가 들어왔습니다."

 드네프르 강을 따라 구축할 방어선에 대한 논의가 시작되려는 찰나, 부하의 보고를 받고 잠시 회의장 밖으로 나갔던 카나리스가 심각해진 얼굴로 되돌아왔다.

 "무슨 속보인가?"

 "발칸반도에서 일이 터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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