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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영제국의 폐급장교 160화

무료소설 대영제국의 폐급장교: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1,050회 작성일

소설 읽기 : 대영제국의 폐급장교 160화

 160화 운명의 날

 프랑스는 빠른 속도로 해방되고 있었다.

 "여러분, 드디어 제가 돌아왔습니다!"

 "드골! 드골!"

 파리를 비롯한 북프랑스는 여전히 독일의 지배하에 있지만, 연합군이 상륙한 남프랑스는 사정이 달랐다.

 연합군의 기만술에 넘어간 독일이 어영부영하는 사이, 연합군은 진격에 진격을 거듭하여 비시 프랑스의 강역 상당 부분을 해방했다.

 독일군은 보르도에서 리옹에 이르는 지점까지 대대적으로 퇴각하였고, 미처 퇴각하지 못한 독일군은 투항하거나, 야산과 고성에 짱박혀 무기한 농성 모드에 들어갔다.

 알제리에서 날아온 드골이 프랑스 땅을 밟자 사람들은 꽃을 던지며 환영했다. 라 마르세예즈가 연주되는 가운데, 드골을 선두로 한 자유 프랑스 정부 인사들이 행진하며 사람들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해방의 날이 멀지 않았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반드시 승리할 것입니다. 저 잔악무도한 악당들을 끌어내고 자랑스러운 프랑스의 위대한 국기를 내걸 것입니다. 우리는 파리를 해방할 것이며, 나아가 베를린을 손에 넣을 것입니다!"

 "드골! 드골! 드골!"

 드골이 목청껏 소리칠 때마다 프랑스인들은 이에 화답하듯 드골을 연호하며 박수를 쳤다.

 "승전 기념식치곤 너무 이른 것 같은데요."

 그 광경을 조금 떨어진 거리에서 지켜보던 게이츠 원사의 말. 디데이로부터 이제 겨우 한 달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이렇게 성대한 행사는 내가 생각해도 조금 이른 게 아닌가 싶다.

 "사기 진작용으로 쓰일 사진이 필요한가 보죠. 가끔씩 이렇게 너스레를 떨어줘야 사기 유지에 좋으니까."

 나는 자유 프랑스 정부 인사들을 따라다니며 사진을 찍어대는 기자들을 가리켰다. 그러자 게이츠 원사가 씩 웃었다.

 "오호? 그건 생각 못했군요. 어째 점점 갈수록 생각하시는 게 정치인들과 비슷해지시는 것 같습니다?"

 "속세에 물든 것뿐이에요."

 자유 프랑스 인사들의 행진 다음에는 미군과 영국군의 차례였다. 특히 프랑스인들의 시선을 사로잡은 것은 바로 티거였다.

 "자, 여러분! 이걸 보십시오! 독일군의 최신예 전차도 결국엔 우리의 상대가 되지 못했습니다!"

 이번 행사에 동원된 티거는 내가 격파한, 포탄이 뚫고 지나간 구멍과 불에 그을린 흔적이 그대로 남아있는 상태의 티거였다. 상태가 멀쩡한 티거는 이미 수송선 편으로 영국에 보내졌기 때문이었다.

 전차수송차량 뒤를 따라 우리 대대가 나란히 움직였다. 나는 게이츠 원사와 함께 포탑 밖으로 상체를 내밀고 나를 향해 함성을 지르는 프랑스인들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마치 영화배우라도 된 것 같은 기분이군요. 나쁘지 않은데."

 나야 전에 여러 번 행사를 뛰어서 사람들의 환호에는 그럭저럭 익숙하지만, 게이츠 원사는 이렇게 많은 사람들에게서 환성을 받는 것이 처음인지 들뜬 표정이었다.

 "승전 기념식치곤 너무 이르다고 말했던 거 알죠, 원사? 그새 생각이 바뀌셨습니까?"

 "아뇨, 생각은 그대로입니다. 다만 피할 수 없어서 즐기는 것뿐이죠."

 저 현란한 말솜씨 보소. 역시 원사 짬밥은 무시할 수가 없구나.

 기념식이 끝난 후, 부대 주둔지로 복귀한 우리는 그대로 침대에 드러누웠다. 지난번 전투에서 대대 전체가 상당한 손실을 입은 탓에, 우리는 한동안 후방으로 빠져 휴식과 재편성을 받게 되었다.

 전장에서 나와 이렇게 마음 편히 쉴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지덕지지만, 이런 상황에서조차 불만을 가지고 있는 친구들은 있는 법이었다.

 "소대장님."

 "왜."

 "저희는 이곳에 온 지 며칠이 지났는지 아십니까?"

 "한 나흘 됐지. 그건 왜?"

 "나흘이나 지났는데, 왜 아직까지 외출 허가가 떨어지지 않는지 궁금해서 그렇습니다."

 제레미의 말뜻은 이렇다. 아니, 후방에 왔으면서 왜 외출 안 보내주는 거야?

 눈앞의 이놈처럼 외출 금지 사항에 불만을 가진 녀석들이 적지 않았다. 기껏 죽을 고비를 넘기고 후방에 왔는데, 외출 금지라니.

 별다른 일과가 없다지만 하릴없이 막사에 죽치고 있는 것도 고역이긴 하다.

 "어쩌겠냐? 윗분들 지시사항인데. 꼬우면 장군 되던가."

 "아아니, 그래서 말이 안 되잖습니까? 그토록 개고생을 했는데 돌아온 게 막사에 감금이라니! 소대장님은 억울하지도 않으십니까?"

 "응. 안 억울해."

 참고로 덧붙이자면, 윗분들이 생각 없이 병사들에게 외출 금지령을 때린 게 아니다.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너 모르냐? 외출 나갔다가 프랑스 여자들이랑 눈 맞아서 사고 친 애들이 성병까지 걸린 탓에 의무대가 폭발할 지경이라잖냐. 이게 기자들 귀에 들어가는 바람에 군단 전체가 뒤집어져서 난리가 난 거. 그 때문에 외출 금지령 떨어지는 것이고."

 몽고메리가 직접 연설(을 방자한 경고)까지 했었다. 요즘 군기 위반 사고가 미칠듯이 늘고 있어서 앞으론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가차 없이 처벌한다고.

 이 같은 조치 덕분에 아리따운 프랑스 여자와의 오붓하고 뜨거운 하룻밤을 잔뜩 기대하고 있던 병사들은 졸지에 닭 쫓던 개 신세가 되어 신세 한탄이나 하고 있었다.

 "그래도 니들 심심하지 말라고 오늘 저녁엔 술도 나온다니까 참아라. 게다가 어차피 니들 중에 불어 할 줄 아는 놈 한 놈도 없잖아?"

 "하, 인생의 청춘을 나라를 위해 바치고 있는데 돌아오는 게 없다니. 천하의 대영제국이 어쩌다 이 지경이 되었는지 통탄스러울 따름입니다."

 "알았으니까 빨리 꺼져. 나 잘 거야."

 1시간 뒤,

 겨우 잠잠해졌다 했는데, 제레미의 다급한 외침이 들렸다.

 "소대장님! 소대장님!"

 녀석은 소음으로 내 단점을 방해한 것도 모자라 이제는 내 몸까지 흔들어댔다. 잠에서 깨기도 전에 짜증이 확 밀려온 나는 신경질적으로 물었다.

 "또 뭔데?"

 별일도 아닌 걸로 사람 깨워봐라. 그땐 진짜 아주 죽-

 "라디오 좀 들어보십쇼!"

 "라디오?"

 라디오는 또 갑자기 왜?

 제레미를 따라 내무반으로 가자 얼마 안 되는 소대원 모두가 라디오 앞에 모여 있었다.

 -......시 한 번 알려드립니다. 방금 들려온 소식입니다. 진위 여부는 확실치 않지만, 히틀러가 죽었다는 소식입니다. 다시 한 번 알려드립니다. 방금 전해진 소식에 따르면, 독일의 총통 히틀러가 죽었다고 합니다......

 ......히틀러가 죽어......?

 ***

 "이젠 정말로 시간이 없네."

 이제까지 침착함을 유지해오던 베크의 말투에서 조급함이 묻어나왔다.

 "독일의 패망이 점점 사실화되고 있어. 하루라도 빨리 거사를 일으켜야 해."

 다급한 베크와 달리, 하이드리히의 얼굴에는 여유가 가득했다. 본래 그는 파리에 있어야 했지만, 최근 프랑스 상황을 히틀러에게 보고하기 위해 독일로 왔다.

 "이틀 뒤 늑대소굴에서 회의가 열립니다. 마침 히틀러뿐만 아니라 괴링, 힘러까지 모두 참석한다고 하더군요."

 하이드리히는 미소를 지으며 자신이 들고 온 서류가방을 탁자 위에 올렸다.

 "자아, 모두 주목하시지요."

 참석자들의 시선은 하이드리히에게, 정확히는 그가 들고 온 서류가방 안에 든 물건으로 향했다.

 하이드리히가 꺼낸 물건은 직사각형 모양의 작은 상자였다.

 "이게 무엇인지 아시는 분 계십니까?"

 당연하게도, 그 물건의 정체가 무엇인지 아는 사람은 없었다.

 "이놈의 정체는 바로 폭탄입니다. 자그마치 영국인들이 만들었죠."

 "영국에서 만들어졌다고?"

 상자의 정체가 폭탄이라는 말에도 놀라지 않던 사람들이, 영국에서 만들었다는 말을 듣곤 깜짝 놀랐다.

 "아, 오해하지 마시길. 제가 영국인들과 아는 사이라서 이걸 받은 게 아니라, 체포한 레지스탕스 놈들에게서 얻은 겁니다. 사용설명서와 함께 말이죠."

 금발의 짐승은 능글거리는 말투로 폭탄의 사용법에 대해 설명했다.

 우선, 볼펜처럼 생긴 뇌관을 상자에 있는 작은 구멍에 삽입한 뒤, 꼭지 부분을 옆으로 돌리면 타이머가 작동하며 15분 뒤에 폭발한다. 그 15분 사이에 폭탄을 터뜨릴 장소에 놔두고 현장을 빠져나오면 끝.

 "가방을 히틀러의 탁자 밑에 놔두는 일은 제가 맡을 예정입니다. 폭탄이 터지고, 히틀러가 죽었다는 것을 확인하는 즉시 연락할 테니, 그 뒤의 일들은 여러분들에게 맡기겠습니다."

 가장 중요한, 히틀러를 죽이는 일은 하이드리히가 맡았다. 회의 참석자들 중에 몸수색에서 제외되는 몇 안 되는 이가 바로 하이드리히였기 때문이다.

 위험부담이 가장 큰 임무인 만큼, 음모자들은 하이드리히에게 SS 및 경찰 통합 조직의 수장이라는 대가를 약속했다. 그와 더불어 과거사에 대한 세탁도 함께.

 "자네만 믿고 있지."

 "염려하지 마십시오."

 이틀 뒤, 늑대소굴.

 예정대로 회의가 열렸다.

 "하일 히틀러."

 "아, 자네로군. 먼 길 오느라 고생 많았네."

 "아닙니다, 총통 각하."

 하이드리히는 히틀러가 내민 손을 맞잡았다.

 ***

 "우선, 프랑스 전선 상황부터 먼저 설명드리겠습니다."

 회의가 시작되고, 요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전황 설명을 시작했다. 연합군이 여기에, 아군은 여기에, 적의 손실은 얼마나 되고......

 "총통 각하. 죄송하지만 파리에서 중요한 연락이 오기로 해서 잠시 가봐야 할 것 같습니다."

 하이드리히는 미리 생각해둔 변명을 히틀러에게 얘기했고, 히틀러는 아무런 의심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게. 아직 자네 차례는 멀었으니까."

 하이드리히가 회의실을 떠난 후에도, 그 누구도 탁자 밑의 서류가방에 대해 알지 못했다.

 "현재 보르도에서 리옹에 이르기까지 아군이 방어선을 형성했지만, 적기의 공습과 파르티잔들로 인해 부대와 물자의 통행이 극도로 제한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크음."

 히틀러는 프랑스 전역의 지도를 내려다보며 생각에 잠겼다.

 제공권은 적에게 넘어간 지 오래. 반격을 가하기 위해 병력을 집결시키려고 해도 그놈의 공습 때문에 쉽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동부전선의 소련군도 최근 공세를 개시한 탓에 동부전선 병력을 빼기도 곤란했다.

 "벨기에-북프랑스 방면의 병력들을 동원하게."

 "하지만 이 병력들은 연합군의 상륙을 막기 위한 예비-"

 "언제까지 놈들이 오기만을 기다릴 건가? 파리가 넘어간 뒤에? 놈들의 주공은 남쪽이야. 그러니-"

 맹렬한 화염이 회의실 내부를 휩쓸었다.

 ***

 베크와 비츨레벤, 카나리스를 비롯한 음모자들은 한데 모여 말없이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몇 시간 동안 담배만 피운 탓에, 하얀 벽지는 누렇게 변색되었고 공기는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탁했다. 그러나 방안의 누구도 창문을 열어 환기할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영원과도 같은 침묵이 계속될 때,

 "각하! 각하!"

 카나리스의 부관이자 아프베어의 차장 한스 오스터 소장이 헐레벌떡 뛰어왔다.

 "하이드리히로부터 연락입니다!"

 "성공했나?"

 여기서 성공은 히틀러의 죽음을 의미했다. 지금 이 자리에 있는 모두의 공통된 관심사는 오직 히틀러의 생사 여부였다.

 "어떻게 되었나? 놈은? 어떻게 되었지?"

 "히틀러는......"

 ***

 처음에는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조차 알지 못했다.

 "......하! 총......! 각하......!"

 자신을 애타게 부르는 수많은 목소리를 듣고서야 히틀러는 간신히 눈을 떴다.

 모렐이 서둘러 진통제를 투여한 탓에 통증은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다만 졸릴 뿐이었다. 과거에 그가 프랑스의 진창에서 전령으로 이틀을 내리달았을 때처럼.

 만신창이가 된 측근들의 모습, 창문 너머로 보이는 불길과 연기를 보고서야 히틀러는 자신이 폭탄에 맞은 것이란 사실을 깨달았다.

 누가? 연합군의 공습? 특수부대? 그도 아니면 제국 각지에 기생충처럼 숨어있는 배신자들이?

 "총통 각하?! 정신이 드십니까?"

 그의 충실한 부하, 링게였다. 히틀러는 그에게 자신은 괜찮다고, 그저 피곤할 뿐이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이상하게도 입이 좀처럼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젖 먹던 힘까지 짜내고서야 겨우 몇 마디 말을 내뱉을 수 있었다.

 "나는...... 괜찮아......"

 "총통 각하, 부상이 심각하십니다! 지금 당장 수술을-!"

 "그보다...... 누가...... 이런......"

 갑자기 목구멍 깊숙한 곳에서 울림이 전해지더니, 참을 틈도 없이 입에서 피가 쏟아져나왔다. 그리고 몸이 빠른 속도로 차가워지며 다리에서부터 감각이 서서히 희미해졌다.

 히틀러는 자신에게 죽음이 다가오고 있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겁이 나거나 두렵지는 않았다. 그저 아쉽다는 생각만 들뿐.

 전쟁은 아직 한창이었다. 비록 전황이 예전과 같지 않지만, 불굴의 의지를 가진 독일군이 적을 분쇄하고, 다시 전 유럽을 손에 넣으리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하지만, 신은 그에게 그 광경을 보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 모양이었다.

 나도 여기까지인가...... 전쟁이 한창인데, 독일이 승리를 거두는 광경을 보지 못하고 떠나야 한다니......

 수많은 상념을 이승에 남겨둔 채, 히틀러의 영혼은 침묵의 바다로 천천히 떠밀려갔다. 그가 앗아간 수많은 이들의 원혼들이 지나간 길을 따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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