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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영제국의 폐급장교 159화

무료소설 대영제국의 폐급장교: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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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읽기 : 대영제국의 폐급장교 159화

 159화 호랑이들 (2)

 군대는커녕, 아직 졸업도 못한 고등학생 시절에 온 가족이 다 같이 영화 <퓨리>를 보러 간 적이 있다.

 스크린을 통해 볼 수 있었던 티거의 위용은 무척 압권이었다. 현란한 CG와 카메라 워크를 통해 긴박감 넘치는 장면을 잘 연출해냈다는 것은 둘째치고, 실제 전장에서 티거와 마주친 전차병들의 심정이 저랬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내가 그 당사자가 되니까 장난이 아니다.

 적이 티거라고 인식하는 순간, 호흡이 거칠어지면서 심장이 미칠 듯이 뛰었다. 수십 번이 넘는 실전을 거쳤지만, 이토록 살이 떨리기는 처음이었다.

 "조준 완료! 쏩니까?"

 "쏴!"

 우렁찬 폭음과 화염을 내뿜으며 날아간 포탄은 티거의 포방패에 명중했다. 하지만, 충분히 관통하리라고 여겼던 예상과 달리 포탄은 허무하게 튕겨 나갔다.

 "젠장, 도탄이군. 재장전!"

 아무래도 각도가 좋지 않았거나, 주포의 실제 성능이 스펙보다 뒤떨어지거나 둘 중 하나였다.

 닉이 약실에 포탄을 집어넣자, 게이츠 원사는 내게 묻지도 않고 서둘러 주포를 격발시켰다. 그러나 게이츠 원사가 주포를 격발시키기 바로 직전에 놈이 움직이는 바람에 포탄은 빗나가고 말았다.

 "놈이 이쪽을 조준한다! 보리스, 후진해!"

 서서히 돌아가는 포탑을 본 내가 서둘러 명령을 내렸다. 보리스도 번개같이 반응하여 전차를 즉각 후진시켰다. 티거의 포탄은 전차 코앞에 떨어졌다.

 "닉, 경심철갑탄 장전!"

 나는 이후에도 도탄이 나는 불상사를 대비하여 경심철갑탄(APCR, Armour Piercing Composite Rigid)을 쓰기로 했다. 텅스텐으로 탄자를 만들어 기존의 철갑탄보다 관통력이 더 높은 히든카드 같은 녀석이다.

 이전에 상대했던 전차들은 대부분 철갑탄 선에서 정리가 가능했지만, 티거는 다르다. 그렇다면 더 강한 놈으로 상대할 수밖에.

 "장전 완료!"

 "조준 완료!"

 "발사!"

 나는 기도하는 마음으로 티거를 응시했다. 일직선으로 날아간 포탄이 불꽃을 튀기며 적의 장갑판에 착탄하는 순간, 티거는 기동을 멈췄다.

 뭐지? 잡았나? 적이 움직임을 멈췄다고 해서 안심할 순 없었다. 놈이 멈춰선 이유가 조준을 위해서일 수도 있다.

 포탄이 명중한 자리에 난 구멍으로 가느다란 연기가 새어 나왔다. 이것만 보면 틀림없이 격파였지만, 티거는 달랐다. 전차 내부에 전차병들이 멀쩡히 살아있는 것인지, 놈의 거대한 포탑이 돌아가기 시작했다. 이전보다 확실히 느려졌지만, 분명히 움직이고 있었다.

 "저놈 아직 덜 죽었어! 한 발 더 먹여!"

 "옙!"

 아까 맞은 자리 바로 옆에 한 발을 더 먹여준 후에야 티거는 완전히 숨을 거뒀다. 전차병 2명이 포탑 상면의 해치를 열고 밖으로 빠져나오자, 제레미가 냉큼 기관총을 발사했지만 거리가 멀어서인지 맞지 않았다.

 "드디어 저 괴물을 잡았습니다!"

 관측창으로 상황을 관전하던 보리스가 외쳤다.

 -뻐꾸기 2, 피격! 탈출하겠다!

 보리스가 환성을 지르기 무섭게 무전기로 들려온 소식은 뻐꾸기 2의 피격 소식이었다. 측면 하단에 88의 직격을 받은 뻐꾸기 2에서 승무원들이 기어 나오고 있었다. 곧 선홍색 불길이 전차를 완전히 집어삼켰다.

 "보리스, 우로 돌아! 닉, 철갑탄 장전!"

 "예!"

 ***

 "명중!"

 88mm 철갑탄에 측면을 명중당한 코멧 전차에서 불길이 치솟고, 적 승무원들이 전차 밖으로 몸을 내빼는 광경을 본 비트만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

 이로써 남은 전차는 단 2대.

 비록 적에게 한 대가 당하긴 했지만, 전차의 수와 성능 모두 이쪽이 훨씬 더 우위에 있다. 동부전선에서 그랬던 것처럼 모조리 박살 내주지.

 "볼, 2시 방향으로 포탑 돌-"

 말을 끝내기도 전에 전차의 측면에 충격이 가해졌다.

 노련한 전차병인 비트만은 이것이 적 전차가 아니라 대전차포의 공격임을 즉각 알아차렸다. 과연 좌측에 위치한 적의 대전차포가 이쪽으로 포구를 겨두고 있었다.

 "쳇, 대전차포 먼저 상대하도록 한다. 유탄으로 재장전해!"

 "알겠습니다!"

 탄약수가 재장전하는 사이, 볼은 말없이 포탑을 돌려 적을 조준했다. 육중한 88의 포구가 자신들에게로 향하는 광경을 본 대전차포병들은 황급히 두 번째 포탄을 장전했다.

 조준과 장전 모두 동시에 끝나자, 비트만은 주저 없이 명령을 내렸다.

 "쏴!"

 쾅!!!

 유탄에 맞은 대전차포가 수박처럼 으깨지고, 팔다리가 떨어져 나간 대전차포병들의 몸뚱이가 허공으로 치솟았다. 비트만은 섬광을 보자마자 시선을 돌려 새로운 목표물을 탐색했다.

 그의 시선에 주포를 고정한 코멧이 들어오는 순간, 코멧의 주포에서 불꽃이 튀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충격.

 "웃!"

 각도가 그와 부하들의 목숨을 구했다. 오른쪽으로 3도만 틀어져 있었어도, 장갑판은 관통되었을 것이다.

 철갑탄이 명중한 자리에는 기다란 탄흔이 남았다. 적은 공격이 실패하자 잽싸게 전차를 움직였다. 하지만 비트만은 놓치지 않았다.

 "볼! 우측에 적 전차다! 조준할 수 있겠나?"

 "해보겠습니다!"

 적은 전속력으로 움직이고 있어서 조준하기가 여간 까다로운 게 아니었다. 조종수도 전차를 움직여 볼의 조준을 도왔다.

 "발사!"

 묵직한 진동과 전차의 주포가 후퇴하면서 철갑탄이 허공을 갈랐다.

 비트만의 티거에서 발사된 포탄은 코멧의 포탑 측면에 닿았다. 하지만 각도가 좋지 않았던 탓에 포탄은 손가락으로 버터 표면을 만지듯이 그대로 미끄러지고 말았다.

 "젠장, 도탄이군."

 움직이기 바쁘던 적이 멈춰 섰다. 그 말인즉, 이젠 저쪽에서 공격할 차례라는 뜻이었다. 비트만도 그걸 모르지 않았기에 재깍 명령을 내렸다.

 "조종수, 좌측으로 틀어!"

 비트만은 차체를 틀어 적의 공격에 대비했다. 하지만, 적이 노린 부분은 차체가 아니었다.

 콰직!

 포탑 좌측에 충격이 전해지는가 싶더니, 포탑 내부의 전등이 깜빡거리면서 포탑 회전이 멈추었다. 포탑이 고정된 채 움직이질 않자, 천하의 비트만조차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볼, 어떻게 된 거냐?"

 포탑이 돌아가지 않자 당황한 것은 볼도 마찬가지였다.

 "아무래도 방금 전 충격으로 포탑링이 망가진 모양입니다!"

 "이런 젠장, 하필이면 지금......!"

 조금 전에 명중한 포탄에 의해 포탑링이 파손되어, 포탑이 그대로 고정되어 움직이지 않게 된 것이었다.

 주포는 정상적으로 작동이 되지만, 포탑을 돌릴 수 없으니 돌격포처럼 차체를 돌려 적을 조준해야만 했다.

 그 사이, 조준을 끝낸 적이 그들을 겨냥했다.

 ***

 "나이스!"

 순간적인 판단이 빛을 발했다. 처음에는 차체를 노리려고 했지만, 적도 미리 눈치를 까고 차체를 돌려 어디를 노려야 할지 감이 잡히질 않았다.

 그때 머리를 스치듯이 포탑과 차체 사이, 포탑링을 노리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게이츠 원사는 용케 포탄을 적 포탑과 차체 사이에 박아넣는데 성공했고, 그 결과 티거는 목고자가 되었다.

 포탑이 돌아가지 않자, 임기응변으로 차체를 틀었지만 이미 이쪽은 재장전까지 끝내놓은 상태.

 "조준 완료!"

 "쏴!"

 적이 무거운 몸뚱이로 힘겹게 차체를 돌리는 동안 이쪽이 먼저 발포했다. 철갑탄에 맞은 궤도가 보기륜째로 박살 나자, 적은 움직임을 완전히 멈추었다.

 포탑링이 고장 난 데다 궤도까지 망가졌다? 그럼 이제 그 전차는 끝난 것이나 다름없다. 적을 조준할 수도, 움직일 수도 없으니까.

 "보리스, 전진! 놈의 옆으로 치고 들어간다!"

 "예엡!"

 이제 남은 일은 적의 측면에 포탄을 꽂아 넣는 것뿐.

 적의 측면으로 움직이는 순간, 왼편에서 포탄이 날아왔다. 포탄은 아슬아슬하게 빗나갔지만, 등에는 소름이 돋았다. 겨우 몇 초 차이로 죽음을 비껴갔다고 생각하니 절로 식은땀이 흘렀다.

 "좌측에 적 전차!"

 두 대의 티거가 손발이 잘린 제 동료를 구하러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뻐꾸기 3은? 어디서 뭘 하는 거-

 포탑이 차체에서 분리된 뻐꾸기 3의 처참한 광경이 눈에 들어오고서야 현재 남은 전차가 나 하나뿐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빌어먹을, 나 혼자서 티거 2대를 상대하라고?

 다행히 이쪽에겐 대전차포가 있다. 대전차포병들이 티거 두 놈을 향해 열심히 포탄을 쏘아대자, 한 대가 방향을 틀었다. 나는 자기 동료한테 맡기고, 자기는 대전차포를 상대하려는 생각이었다.

 "보리스, 잔해 뒤로 피해!"

 티거를 정면에서 상대하는 것만큼 멍청하고 위험한 일은 없다. 일단 아군 전차의 잔해 뒤로 피한 다음, 기회를 엿볼 생각이었다.

 하지만 잔해 뒤로 몸을 피하려는 찰나, 적탄이 날아와 궤도를 끊어놓았다.

 "우측 궤도 피탄!"

 보리스의 공포에 질린 보고가 바늘처럼 귓구멍을 후벼팠다. 게이츠 원사가 서둘러 포탑을 돌렸지만, 적이 재장전하고 쏘는 것이 더 빠를 터였다.

 놈은 움직이지 않고 멈춰 서서 이쪽을 조준하고 있었다. 거대한 주포 끝의 포구를 보는 순간, 머리가 정지하며 아무 생각이 들지 않았다.

 최후를 직감한 그때, 기적이 일어났다.

 우측에서 포탄이 날아와 티거의 주포에 명중한 것이었다. 순식간에 고자가 된 티거는 황급히 후진을 시도했고, 대전차포대를 공격하던 티거도 동료를 따라 나란히 후진했다.

 "살았다, 아군이야!"

 "신이시여, 감사합니다!"

 할리우드 영화의 장면처럼 적절한 때에 지원군이 도착한 것이었다. 코멧보다 덩치가 조금 작은 크롬웰 전차들이 속도를 올리며 달려와 주포를 쏘아댔다.

 전차의 성능으로만 따지면 티거가 압승이지만, 현재 전투가 가능한 티거는 겨우 한 대. 반면 지원군으로 나타난 크롬웰의 숫자는 눈에 띄는 것들만 10대.

 아무리 티거가 뛰어난 전차라고 해도 1 VS 10은 곤란한 법이다. 티거가 퇴각하자, 독일군 보병들도 서둘러 퇴각했다. 그들에겐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공군까지 나타나 싸움에 가세했다.

 티거와의 첫 전투는 아슬아슬하게 아군의 승리로 종결되었다.

 ***

 "수고했네, 자네. 고생 참 많았어."

 전투가 끝나고, 무어 소령이 친히 홍차를 내게 건네며 한 말이었다.

 "저기 널린 잔해만 봐도 자네가 얼마나 고생했는지 알 수 있겠더군."

 "하마터면 바지에 오줌 지릴 뻔했습니다. 농담이 아니라 진짜로 말이죠."

 아직도 다리가 후들거려서 똑바로 서 있을 수 없을 정도였다. 무어 소령은 이해한다는 듯이 진지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타이거라는 놈, 정말 괴물이 따로 없는 것 같군. 에이스인 자네조차 이렇게 애를 먹었을 정도면......"

 "중대장님은 별일 없으셨습니까?"

 "나? 당연히 나도 고생 좀 했지. 불행 중 다행으로 타이거는 없었지만."

 무어 소령도 적 전차들과 만나 제법 피 터지게 싸운 모양이었다. 중대에 남은 전차가 겨우 5대밖에 되지 않았으니까.

 "이번에 우릴 공격해온 놈들은 하필이면 제리들 중에서도 최정예인 LSSAH 사단이라네. 히틀러의 이름이 붙은 만큼, 싸울 줄 아는 녀석들이었지. 그놈들 때문에 피해가 커. 나도 까딱 잘못하면 황천길 갈 뻔했다네."

 "중대장님도 살아남으셔서 다행입니다."

 "그래, 하지만 그렇지 못한 친구들이 많지."

 무어 소령은 씁쓸한 표정으로 잔해들을 바라봤다. 겨우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멀쩡히 살아있던 부하들이, 지금은 불귀의 객으로 변하고 말았다.

 이와 별개로, 얼굴에 한가득 미소를 짓고 있는 사람들도 있었다.

 "저들은?"

 "아, 사단본부에서 온 친구들일세. 자네가 쓰러뜨린 타이거를 보러 왔다네."

 사단본부에서 파견 나온 장교들은 그 귀중한 타이거를 손에 얻게 되어 잔뜩 신이 난 상태였다. 포탑링과 궤도가 망가진 것만 빼면 전체적으로 멀쩡한 상태였으니까.

 그들과 함께 온 구난전차는 다른 것들은 모두 재껴두고 티거부터 우선 견인하기 시작했다. 이놈은 이제 본국으로 보내져 기술자들에 의해 철저히 분해되고 연구될 터였다.

 같은 시각,

 티거의 원주인은 부하들과 함께 트럭을 타고 집결지로 향하고 있었다. 트럭에는 그들과 같은 신세인 전차병들과 부상병으로 가득했다.

 "하마터면 큰일 날 뻔했습니다, SS 소위님."

 "그래. 네 말대로 진짜로 죽을 뻔했지."

 남들이라면 무사히 살아남은 것에 감사하겠지만, 비트만은 달랐다. 그는 간발의 차이로 적에게 패했다는 사실에 울분이 터질 노릇이었다.

 그 영국군 전차장이 누구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도 전투에는 제법 도가 튼 놈이 분명했다. 포탑이 고장 나자마자 궤도를 노려서 기동까지 완전히 봉쇄하고, 측면으로 돌다니.

 아군 전차의 도움이 아니었더라면 오늘이 인생의 마지막 날이 되었으리라.

 언젠가 다시 적과 만나게 된다면, 그땐 반드시 오늘의 설욕을 해주리라. 비트만은 조용히 다짐하며 눈을 감았다.

 그리고 베를린.

 "연합군의 진격이 예상외로 빠릅니다."

 "소련군도 다시 진격을 시작했고."

 "한시라도 빨리 거사를 일으켜야 합니다."

 검은 오케스트라도 행동을 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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