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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영제국의 폐급장교 155화

무료소설 대영제국의 폐급장교: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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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읽기 : 대영제국의 폐급장교 155화

 155화 서부전선 시작 (1)

 인정이라곤 1도 없을 것만 같던 신도 이번에는 내 기도를 들어주셨다.

 우리 대대는 해변이 모두 제압된 직후에 투입될 예정이었다. 그 소식을 들었을 땐 얼마나 기뻤는지.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지를뻔했다.

 "상부에선 신형 전차들의 첫 무대가 해변에서 치러지는 것을 원하지 않거든. 참 다행인 일이지. 안 그런가, 그레이 대위?"

 "그래도 설욕전의 기회를 다른 중대에 빼앗겨서 아쉽습니다."

 내 말을 들은 브랜슨 대령은 마음에도 없는 소리 하고 자빠졌네-라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그러는 본인도 웃고 있으면서.

 보병들과 함께 해변에 상륙해 전투를 치를 영광은 다른 부대가 떠맡게 되었다. 부항스크린을 장착한 셔먼 전차들과 발렌타인 전차들이 줄지어 상륙정으로 기어 올라갔고, 보병들도 차례대로 서서 순서를 기다렸다.

 바닷물이 총구 안으로 들어가는 불상사를 막기 위해 비닐로 감싼 총을 든 보병들의 얼굴은 심히 좋지 않았다. 자기들이 첫 빠따로 독일군과 싸우게 생겼으니 당연히 기분이 좋을리가.

 우리 차례가 되려면 한참 기다려야 하기 때문에 잠시 눈 좀 붙이려고 하는 순간, 제레미가 뜬금없이 말을 걸어왔다.

 "진짜로 출정입니까?"

 그 말을 들은 게이츠 원사가 어이없다는 말투로 말했다.

 "그럼, 너는 이게 뭘로 보이냐? 소풍 가는 것처럼 보이냐?"

 "아니, 도무지 현실 같지가 않아서 그런 겁니다. 벌써 출정이라니...... 이렇게 빨리 가게 되리라곤 상상도 못 했는데."

 "뭣하러 상부에서 우리들에게 비싼 밥 먹였겠냐. 이거 먹고 가서 열심히 싸우라고 먹인 거 아니겠어."

 배식통에 담긴 스테이크를 봤을 때 이런 순간이 오리란 것을 직감했던 나는 점잖게 한마디 했다. 사실, 제레미가 저런 반응을 보이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정확히 언제 출정하게 될 거라고 말도 안 해줬으면서 갑자기 출정이라고 하면, 누구나 다 당황할 만하지.

 "참, 그러고 보니 너희들은 3년 전 프랑스에 없었겠구만?"

 "그땐 아직 입대도 하지 않았으니까요."

 "너희들은 축복받은 거야. 3년 전 프랑스에서 독일군에게 쫓길 땐 정말이지 죽는 줄 알았다니까. 안 그렇습니까, 원사?"

 "그렇죠. 그러고 보니 벌써 3년이라니. 시간 한번 참 빠르네요."

 게이츠 원사는 눈 깜짝할 사이에 흘러버린 시간을 곱씹듯이 흰머리가 수북한 머리칼을 쓸어넘겼다.

 "노파심에서 하는 말입니다만, 이번에는 제2의 됭케르크 같은 일이 일어나진 않겠죠?"

 "제 손목을 걸고 장담하건대 그런 일은 없을 겁니다. 애초에 독일군에게 그럴 전력이 남아있다면 진작에 런던을 함락시켰겠죠."

 "하하, 대위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시니 마음이 놓입니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잡담을 나누다 보니 어느새 우리 차례가 되었다. 유도병의 신호에 따라 전차를 움직여 수송선에 올랐다. 먼저 탑승을 완료했던 수송선들은 이미 항구를 떠나 프랑스 해변을 향하고 있었다.

 1943년 5월 1일 새벽의 일이었다.

 ***

 연합군 함선들이 코르시카를 떠나기 무섭게, 남프랑스의 레지스탕스 조직들도 일제히 행동을 개시했다.

 그들은 통신선을 절단하고, 발전소와 철로에 폭탄을 설치하였으며 도로에는 지뢰를 매설했다.

 "온다, 지금이야!"

 "터뜨려!"

 철로에 설치한 폭탄이 터지자, 열차는 그대로 선로에서 이탈하였다.

 "비상, 비상!"

 "적습입니다!"

 비시 프랑스군 경비대가 황급히 달려왔을 땐 레지스탕스들은 이미 자리를 뜬 뒤였다.

 발전소와 철로 등 각종 중요 시설이 레지스탕스의 공격을 받고, 거기다 연합군 폭격기들의 공습까지 가해지자 비시 프랑스 정부에는 비상이 걸렸다.

 "아무래도 사태가 심상치 않습니다."

 마침 늦은 시간까지 잠을 자지 않고 업무를 보고 있던 피에르 라발은 황급히 페탱에게 연락을 취했다. 레지스탕스가 관공서를 습격해 불태우거나 통신선을 절단하는 일은 종종 있었기에 별로 특이한 일은 아니었지만, 이번에는 수상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이 각지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난 테러, 거기에 연합군의 공습까지. 무슨 일이 일어난 게 분명했다.

 "즉시 전군에 비상태세를 걸게."

 사태가 심상치 않다는 말에는 페탱 역시 동의했다. 하지만 그 뒤의 안건에 관해선 의견이 갈렸다.

 "연합군의 상륙이 초읽기에 들어간 것일지도 모릅니다. 현재 프랑스군의 전력으로 적들이 상륙하면 이를 막을 방도가 없습니다. 따라서 당장 독일군에게 지원을 요청하심이-"

 "그렇게 되면 이곳 남부조차도 독일에게 완전히 넘어가지 않겠는가?"

 비시 프랑스에도 독일군이 주둔하고 있긴 하지만 손에 꼽을 정도로 극소수였다. 당연히 이 정도 숫자로는 연합군을 막을 수 없다.

 연합군을 막으려면 독일군의 지원이 필수적이었지만, 그랬다간 북부에 이어 남부까지도 완전히 히틀러의 손아귀에 넘어가고 만다. 페탱은 겨우 기둥만 유지하고 있는 프랑스의 자치권이 먼지처럼 사라져버리는 일을 우려하고 있었다.

 "하지만 원수 각하, 적들을 막으려면 불가피한 선택입니다. 오히려 우리가 지원을 요청하지 않는다면, 히틀러는 우리가 연합군과 내통하고 있는 것으로 간주할 겁니다. 그랬다간 프랑스는 정말로 끝입니다!"

 "......알겠네. 내 독일군에 지원을 요청하지."

 "감사합니다, 각하. 각하의 선택을 프랑스는 영원히 기억할 겁니다."

 전화를 끊은 페탱은 대기 중이던 부관을 시켜 즉시 파리의 독일 주둔군 사령부로 연락을 넣었다. 부관이 그의 지시를 이행하러 뛰어간 사이, 노원수는 무너지듯 자리에 주저앉았다.

 세계 최강대국이었던 프랑스가, 한때 동맹이었던 자들의 공격을 막기 위해 적이었던 자에게 지원을 요청하는 신세가 되다니......

 "대체 어쩌다가 일이 이렇게까지 되었는지......"

 페탱의 넋두리를 들어줄 사람은 주변에 없었다. 5월이 시작되었지만, 여전히 공기가 차갑게 느껴졌다.

 ***

 "지원 요청?"

 "그렇습니다, 각하."

 비시 프랑스가 지원을 요청했다는 말을 듣는 순간, 하이드리히는 잠이 싹 달아나는 기분이었다.

 연합군의 침공이 시작된 것이다.

 언젠가 이날이 올 줄은 알고 있었지만, 그 날이 하필이면 오늘이라니. 거기다 프랑스 북부가 아니라 비시 프랑스가 위치한 남부로 올 줄이야. 하이드리히는 피가 바짝바짝 마르는 느낌이었다.

 빌어먹을, 아무래도 그 작자들에게 거사를 서둘러야겠다고 말해야겠군.

 "우선 베를린에 연락하게. 연합군이 곧 프랑스에 상륙할 것 같다고 말이야."

 "알겠습니다."

 ***

 폭격이 한바탕 훑고 지나간 뒤, 뒤이어 날아오른 수송기들이 하늘을 가득 메웠다.

 "뛰어! 뛰어!"

 수송기에서 뛰어내린 미군과 영국군 공수부대원들을 향해 대공포화가 날아들었지만 그들이 몰타와 시칠리아에서 경험했던 것에 비하면 아이들 소꿉놀이 수준이었다.

 큰 피해 없이 지상에 착지한 공수부대원들은 목표지역으로 뛰어갔다. 그들의 임무는 적군의 방어시설들을 점령하거나 폭파하여 아군의 상륙을 지원하는 것이었다.

 "손 들어! 움직이면 쏘겠다!"

 "하, 항복하겠소! 쏘지 마시오."

 안 그래도 사기가 낮은 프랑스군은 연합군과 싸울 의지가 거의 없었다. 미군 공수부대원들이 총을 겨누자, 비시군 병사들은 얌전히 무기를 내려놓고 투항했다.

 이미 대세는 연합군에게 기운 지 오래.

 어차피 이들은 프랑스를 독일의 손아귀에서 해방시켜 주러 오지 않았나? 그렇다면 굳이 피를 흘려가며 싸울 이유가 하나도 없다.

 물론, 모두가 같은 생각은 한 것은 아니었다.

 "쏴, 쏴! 저놈들, 영국 놈들이다!"

 "항복할 때 항복하더라도 영국 놈들은 한 놈이라도 더 쏴 죽이고 항복해!"

 여전히 영국에 대해 반감이 깊은 몇몇 비시군은 영국군 공수부대를 상대로 격렬하게 저항했다.

 하지만 사기도, 무장도 형편없는 군대가 정예 공수부대를 상대로 이길 수 없는 법.

 "지미, 수류탄을 던져라. 론, 분대원들을 이끌고 엄호사격해!"

 "나머지는 나를 따라 돌격한다!"

 "예!"

 항복을 거부하고 저항하던 비시군은 영국군 공수부대의 공격에 하나둘씩 제압당했다.

 그리고 아침이 시작될 무렵, 남프랑스 바르주 해안에 연합군의 대규모 함대가 모습을 드러냈다.

 ***

 해안가에 위치한 비시군의 해안포 진지는 모두 공습으로 파괴되거나, 사전에 강하한 공수부대에게 장악되었다.

 점령되지 않은 몇몇 진지들이 있긴 하지만, 기껏해야 기관총과 대공포 등이 전부.

 바르주 해안에 나타난 연합군은 아무런 저항도 받지 않고 해변에 상륙할 수 있었다.

 잔뜩 긴장한 채 수송선에 올랐던 병사들은 막상 총알이 날아오지 않자 당황했다. 어리둥절하던 그들은 이내 진실을 깨닫곤 웃음과 환성을 터뜨렸다.

 "드디어 우리가 돌아왔다!"

 "히틀러야, 기다려라!"

 기껏 기술자들과 정비병들이 애를 써가며 장착한 부항스크린을 쓸 필요도 없이 전차들도 유유히 해변에 상륙했다.

 현재까지 적군의 저항은 사실상 제로.

 이것이 무혈입성이 아니면 무엇이겠는가.

 "이번에는 운이 우리를 좀 따라주는 것 같습니다."

 해변에 유유히 상륙하는 병사들을 보며, 게이츠 원사가 내게 말했다.

 <라이언 일병 구하기>나 <마이웨이>에서 봤던 치열한 상륙전을 예상하던 내겐 정말이지 뜻밖의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아니, 상륙전이 이렇게 쉬운 거였어?

 실상은 독일군이 없었기에 가능했던 일이지만, 그래도 이 정도로 피해가 적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뭐,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고 무사히 상륙에는 성공했으니 딱히 상관은 없지만.

 주변을 둘러보니, 해변을 배경으로 사진까지 찍는 병사들도 있었다. 얼굴에는 살았다는 안도감과 여유가 넘쳐 흘렀다.

 현재까지 작전은 아무런 차질 없이 계획대로 착착 진행되고 있었다. 앞으로도 이러면 좋을 텐데.

 -여기는 둥지. 각 소대는 응답 바람.

 -참새 수신.

 -까마귀 수신.

 "뻐꾸기 수신."

 -우리는 현 시간부로 캐나다군을 지원하여 A-1 지점까지 진출한다. 참새는 캐나다군 9중대, 까마귀는 11중대, 뻐꾸기는 12중대와 합류하여 움직이도록. 이후의 행동 여부에 관해선 추가적인 지시가 있을 때까지 각자의 개별판단에 맡기겠다.

 "수신 완료."

 미제 트럭과 브렌건 캐리어에 나눠탄 보병들이 우리의 합류를 기다리고 있었다. 특이하게도 철모 대신 공수부대용 베레모를 쓴 대위 한 명이 전차로 다가와 내게 말했다.

 "브렛 대위라고 합니다. 만나서 반갑소."

 "반갑습니다, 그레이 대위라고 합니다."

 그는 내가 누구인지 알아보진 못했다. 어쩌면 관심이 없거나, 알고 있는데 티를 내지 않았던 것일 수도 있다. 그가 관심을 보인 것은 바로 전차였다.

 "생전 처음 보는 전차군. 크롬웰 개조형인가요?"

 "뭐, 비슷합니다. 이름은 코멧이고, 주포는 크롬웰보다 강력합니다. 속도는 조금 떨어지지만."

 "그렇군. 마침 우리 중대에 차량이 부족해서 그런데, 전차 뒤에 우리 애들 좀 태워도 되겠소?"

 "물론이죠."

 대위가 손짓하자, 전차 한 대당 보병 6~8명이 전차에 올라타 자세를 잡았다. 출발 준비가 끝나자, 브렛 대위는 M6 스태그하운드에 탑승하여 출발 신호를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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