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영제국의 폐급장교 154화
무료소설 대영제국의 폐급장교: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122회 작성일소설 읽기 : 대영제국의 폐급장교 154화
154화 아침이 오기 전에 (3)
"작전 준비는 어떤가."
"모두 순조롭게 진행되어가고 있습니다. 병사들의 사기도 높습니다."
"그렇군."
부하의 답변에도 아이젠하워는 긴장의 끈을 놓지 못했다.
"행여 독일군이 알아챘을 가능성은?"
"현재로선 없다고 해도 무방합니다. 아군이 감청한 적의 교신과 병력 및 물자 이동 모두 지극히 평균입니다. 우리의 기만에 적들이 완벽하게 걸려든 것 같습니다."
"그래도 안심하기엔 아직 이르네. 여전히 독일군은 무시할 수 없는 상대일세."
낙관적인 보고에도 아이젠하워는 시종일관 얼굴이 굳어있었다.
수십만 장병들의 목숨과 전쟁의 흐름에 그 자신의 어깨에 실려 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너무 오랫동안 회의에 몰두했던 것 같군. 조금 쉬어야겠어."
아이젠하워는 옆에 놔둔 약모를 집어 들며 말했다.
"자네도 같이 걷지."
***
"날씨 한 번 좋구만."
"그러게 말일세."
흐린 것으로 유명한 영국의 날씨치고 오늘은 무척 쾌청한 날이었다. 주변을 둘러보니, 모처럼 나들이를 나온 시민들도 제법 눈에 보였다.
"어째 주름이 더 늘어난 것 같은데? 그 자리도 영 별로인가 봐?"
"흰머리도 늘었네. 빌어먹을."
부하이자 동기인 오마 브래들리의 농담에 아이젠하워는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빨리 히틀러 놈을 족쳐야지 원. 그놈 때문에 탈모가 심해졌어. 포로로 잡으면 내 직접 그놈 머리를 밀어버릴 생각일세."
"히틀러 핑계 대지 말게. 예전부터 탈모는 심했으면서."
"지금 말 다 했나?"
웨스트포인트에서 공부하던 시절로 돌아간 것마냥 농담을 나누던 둘은 어느샌가 다시 진지한 얘기로 돌아왔다.
"자네가 보기엔 이번 작전의 성공확률이 얼마나 된다고 보나?"
"정확히 50 대 50일세."
"생각보다 높군.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가 뭐지?"
"뭐긴. 상대가 독일군이고, 자네가 있기 때문이지. 내 나름대로 다 머리를 굴려서 내린 결론이란 말일세."
"예끼, 이 사람. 아부하기는."
"그건 그렇고, 자네가 전에 말했던 할 얘기란 건 뭔가? 아주 중요한 정보를 접수했다면서?"
"그래. 자네한테만 얘기함세. 확실하지는 않네만, 지금 독일 놈들도 내부에서 내분이 일어난 모양이야."
"내분이라고?"
브래들리는 자신도 모르게 눈을 가늘게 떴다.
"정확히는 히틀러와 나치를 원래부터 마음에 들어 하지 않던 융커들 말일세. 그들 중에서도 몇몇이 히틀러에 은밀히 반기를 들려고 준비 중인 모양이야. 그놈들이 얼마 전 스웨덴에서 우리 측 요원들에게 접촉해왔네."
"뭐라고 말하던가?"
"자신들이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잡으면 전쟁을 끝내겠다고 하더군. 대신, 조건이 있더군."
"무슨 조건?"
"전쟁을 일찍 끝내는 대신 자신들이 집어삼킨 오스트리아와 주데텐란트, 폴란드 서부를 영토로 인정하게 해달라고 요구했다네. 그리고 군대 해체도 없고, 전범 재판도 자기들끼리 처리한다는군. 거기다 소련군과 싸우는데 필요한 물자도 지원 좀 해주고."
브래들리는 어이가 없음을 넘어 실소까지 나왔다.
"그나마 제정신이라는 놈들도 순 정신병자 새끼들이군. 그놈들은 우리가 자기네들 요구를 들어줄 거라고 생각하는 건가?"
"내가 보기엔 아무래도 그런 것 같아. 당연히 우리 정부와 영국 측에선 힘들다고 대답했지. 그렇게 협상이 흐지부지되긴 했는데, 그래도 저놈들이 말하는 쿠데타 건은 진심인 모양이야."
아이젠하워는 가슴주머니에 넣어둔 담뱃갑을 꺼내 한 개비는 자기 입에 물리고, 다른 한 개비는 브래들리에게 건넸다. 불은 브래들리가 붙였다.
"허면, 그놈들이 말하는 쿠데타는 언제 일으킨다고 하던가?"
"그건 자기들도 모르는 모양이야."
"모른다고?"
"정확히 말하자면, 쿠데타는 일으킬 생각이 있는데 그걸 언제로 하는지 아직 자기들도 정하지 못했다는 뜻이지."
"허. 괜히 히틀러가 정권을 잡은 게 아니군."
둘이 마지막 담배 연기를 빨아들일 때, 공습경보가 울리면서 폭음이 뒤따랐다. 독일군이 또 V2를 날린 것이다.
화창한 날씨를 만끽하던 시민들은 서둘러 방공호로 뛰어갔다. 아이젠하워와 브래들리도 서둘러 사령부로 향했다. 방공호 안에는 이미 사령부 인원들로 가득했다.
"이놈의 V2도 이젠 지긋지긋하군. 저놈들은 안 지치나 몰라."
날마다 공습을 날려 V2 기지와 V2 생산공장을 잿더미로 만들어도, 독일군은 어떻게든 공장과 기지를 복구해 V2를 날려댔다. 비록 피해는 그리 큰 편이 아니지만, 잊혀질만할 때 즈음에 어김없이 날아오는 V2에 사람들은 넌더리를 쳤다.
"빨리 프랑스를 탈환해야겠어. 그래야 앞으로도 이런 일이 없지."
"동감일세."
***
유럽에서 연합군이 프랑스를 탈환할 대규모 작전을 준비하는 동안, 바다 건너 아시아에서도 또 하나의 소용돌이가 일고 있었다.
"이게 그 말로만 듣던 M4 전차로군. 듣던 대로 무척 튼튼하고 강하게 생겼소."
장제스의 말에 주중 군사고문으로 와있던 휴 드럼도 방긋 미소를 지었다.
"그렇습니다, 각하. 이 M4 전차는 일본군이 보유한 그 어떤 전차보다 월등합니다. 쪽바리들은 뭔 수를 써도 결코 이놈을 이기지 못할 겁니다."
"암, 그렇고 말고. 이 전차들만 있다면 이제 왜놈들도 끝장일 거요. 루스벨트 대통령께 내 감사 인사를 전해야겠구만."
장제스의 말은 진심에서 우러러 나온 말이었다. 미국은 약속대로 장제스가 그토록 원하던 최신 군사 장비들과 필요한 물자를 아낌없이 보내주었다.
지금까지 미국이 보내준 장비들은 지금까지 중국이 일본과의 전쟁에서 상실한 장비들을 모두 보충하고도 남을 정도였다. 참으로 어마어마한 물량이 아닐 수 없었다.
특히 장제스와 중국군 수뇌부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은 단연 M4 셔먼이었다. 경전차인 M3 스튜어트만 해도 치하나 하고 따위를 굴리는 일본군 입장에선 사신이나 다름없는데, 그보다 몇 배는 더 강한 M4 셔먼이라면? 지옥에서 올라온 염라대왕이 따로 없다.
지금까지 중국군이 굴리던 전차들은 독일제 1호 전차나, 이탈리아제 L3, 영국제 빅커스 전차 같은 경전차 또는 탱켓들 뿐으로, 그마저도 수량이 현저히 부족해 일본군의 기갑전력 앞에 맥을 못 추리고 있었다.
하지만 태평양 전쟁이 발발하고, 미국의 지원이 시작되면서 중국군은 그 어느 때보다 발전을 거듭하고 있었다.
19세기에나 쓰이던 낡은 엽총을 들고 다니던 병사들은 쌔끈한 미제 소총과 기관단총을 들었고, 야포도 없어 드럼통과 쇠파이프로 만든 조악한 박격포로 무장했던 포병들은 육중한 미제 대포들로 일본군을 괴롭혔다.
전차의 경우, 1차대전 때 쓰였던 프랑스제 르노 FT-17를 일선에서 굴리던 와중에 수백, 수천 대 단위로 도착한 M3 스튜어트와 M3 리, M4 셔먼의 등장으로 이제야 제대로 된 기갑부대를 창설할 수 있게 되었다.
물론 무기만 좋다고 다 되는 게 아닌지라, 미군 교관들의 엄하고 혹독한 훈련은 필수였다. 그렇게 훈련을 마치고 전장에 나간 부대들은 일본군과의 전투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고 있었다.
"미국이 우리 중국의 동맹이라 참으로 다행이 아닐 수 없소. 내가 알기론 천하의 대영제국도 미국의 지원 덕분에 겨우 위기를 넘긴 것으로 알고 있소만."
"하하, 영국인들도 미합중국의 지원 없이 열심히 분투했습니다만, 아주 거짓이 아니라곤 말할 수 없군요."
"루스벨트 대통령께 다시 한번 감사하다고 전해주시구려."
장제스와 드럼의 웃음 뒤에는 사실 복잡한 사정이 존재했다.
원래대로라면, 지금 중국이 받은 물자들 모두 소련에 갈 예정이었다.
하지만 케임브리지 사건으로 소련과 관계가 악화된 영국의 반대 및 미국 국민들의 반감으로 FDR 행정부는 소련에 군사 장비를 지원할 수 없게 되었다.
당장 식량과 의약품을 보내는 것조차 안 좋게 보는 국민들이 많은데, 전차, 비행기 같은 군사 장비를 보낸다. 당장 국민들 입에서 대통령이 빨갱이라는 소리가 튀어나올 테고 의회도 들고 일어설 가능성이 높다.
그렇게 원 역사에선 소련군의 손에 넘어가 독일군을 죽이는데 사용되었을 각종 미제 장비들이, 중국군에 의해 일본군을 죽이는 데 사용되었다.
다만 중국 해안가와 동남아 전역이 일본군 수중에 있는 탓에, 가벼운 물자는 수송기 편으로 인도에서 중국으로 보내졌고, 대다수의 물자들은 소련을 통해 중국으로 전해졌다.
그 과정에서 일어나는 '몇몇 물자의 분실 사고 및 횡령' 문제에 관해선 미국은 소련에 책임을 추궁하지 않았다. 아무튼 중국은 소련을 통해 물자를 안정적으로 공급받을 수 있고, 소련은 필요한 장비들을 '불의의 사고로 손실했다'는 핑계를 대며 손에 넣을 수 있게 되었으니까.
***
코르시카에 갇혀 훈련에만 매진하게 된 지 어느새 두 달이 다 되어 간다.
외박, 휴가 모두 불가에 날마다 이어지는 훈련 때문에 다들 심신이 지친 상태.
그래도 가족이나 연인에게 편지를 쓰거나, 우편물을 받는 것도 가능하고 주말에는 외출이 가능한 데다 어쩌다 한 번씩 술이 지급되어 한바탕 회포를 푸는 것도 가능했다.
하지만 열흘 전부터는 이런 것들도 모두 불허되었다.
편지 쓰는 것은 허용, 하지만 편지 보내는 것은 안 됨.
외출? 당연히 불허. 술? 응, 이젠 없어~
안 그래도 코르시카라는 깡촌 중의 깡촌에 처박혀 훈련만 하는 데다, 이제는 술, 외출, 편지 같은 숨구멍조차 막아버리니 그야말로 죽을 맛이었다.
이러한 조치들은 모두 보안 유지를 위해서라는 명목으로 이루어졌다.
"아니, 휴가는커녕 외출도 안 보내주면서 이제는 편지랑 술도 안 된다니, 이게 말이 돼?"
"이게 노예지 뭐야?"
병사들의 불만 게이지가 차곡차곡 적립되는 것이 당연지사. 무표정으로 지내는 병사들의 수가 부쩍 늘어난 것이 눈에 확 띌 정도면 말 다 했다.
"소대장님, 대체 뭐 때문에 이렇게까지 하는 겁니까?"
"당연히 보안 유지 때문이지. 그럼 뭐겠냐?"
"아니, 지금까진 한 번도 이런 일이 없었잖습니까?"
"높으신 분들 결정은 나 같은 일개 대위 따리가 어떻게 막겠냐. 니들 고생하는 거, 난 알고 있으니까 조금만 참아라. 나중에 풀어주겠지."
소대원들의 불만을 어르고 달래서 잠재우는 일은 전적으로 내 몫이었다.
소대원들은 대체 상부가 무슨 생각으로 이렇게까지 하는지 알 턱이 없지만, 나는 그 이유를 대충 알고 있었다.
디데이가 가까이 온 것이다.
실제 역사에서, 노르망디 상륙작전 이전에 연합군은 2주 동안 병사들을 격리했다. 전쟁의 명운이 걸린 초대형 작전이니만큼,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조치였다.
나도 불편한 게 이만저만이 아니지만, 앞으로의 일을 생각하면 지금까지의 불편과 불만이 쑥 들어간다. 내 머릿속에는 오로지 프랑스에서 마주치게 될 독일군 생각뿐이었다.
지금까지의 전쟁도 치열했지만, 앞으로는 더욱 치열해질 것이다. 게다가 독일의 장비도 빠르게 업그레이드될 테고.
과연 지금까지 내게 따라주었던 행운이 계속해서 따라줄는지.
온갖 걱정과 고민들로 하루하루를 보내는데,
"우와, 이게 다 뭐야?"
"오늘 군단장님 생신이신가?"
"스테이크에 햄, 계란, 아이스크림까지!"
병사들은 물론 장교들까지 눈이 획 돌아갈 정도로 호화스러운 만찬이 열렸다.
전시에, 그것도 최중요 작전을 앞둔 시점에 갑자기 늘 주던 짬밥 대신 호사스러운 식사가 나온다?
배식 칸에 가득한 큐브 스테이크를 본 순간, 머릿속에 종이 울리는 느낌이었다.
마침내 그 순간이 온 것이다.
이 전쟁에 종지부를 찍을 순간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