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영제국의 폐급장교 148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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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993회 작성일소설 읽기 : 대영제국의 폐급장교 148화
148화 이탈리아의 운명 (5)
"로렐라이 작전은 대성공입니다!"
"축하드립니다, 총통 각하!"
"하하하하하하하!"
한동안 뭐 하나 제대로 되는 일이 없어 골치를 썩이던 참에 로렐라이 작전의 성공은 분명 기쁜 소식이었다.
무솔리니를 구출해 다시 권좌에 앉히고, 방해꾼이었던 국왕과 바돌리오 일당은 모조리 생포하는 데 성공했다.
이탈리아군의 무장해제도 순조롭게 이루어졌다.
이게 성공이 아니면 무엇이겠는가?
하마터면 이탈리아가 통째로 연합국에 가담하여 순식간에 오스트리아가 전장이 될뻔했다. 참으로 아찔한 순간이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이탈리아를 성공적으로 장악했으니, 변수가 없는 한 오스트리아는 안전할 것이다.
물론, 좋은 소식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시칠리아의 아군으로부터 전문입니다. 이탈리아군 중에서 전투를 거부하고 연합군에게 투항하는 병력의 숫자가 빠르게 늘고 있답니다."
"때문에 사실상 시칠리아의 방어는 아군이 도맡아서 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독일이 이탈리아를 뒤엎자, 전투력은 약해도 자존심 하나만큼은 강했던 이탈리아군 병사들은 독일을 위해 싸우는 것을 거부하고 투항하기 시작했다.
"자기네 나라를 위해서도 대충 싸우는 놈들이 건수를 잡아서 항복하는 거지. 어차피 그놈들이 열심히 싸워주리라곤 기대도 안 했어."
"아군이 감당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섰습니다. 총통 각하, 그들을 조속히 이탈리아 본토로 철수시켜야 합니다."
"그렇게 하게."
"이탈리아군은 어떻게 합니까? 모두 포로로 하기엔 그 수가 워낙 많습니다."
"흐음......"
이탈리아군이 미덥지 못한 데다 전투력도 형편없긴 하지만, 그렇다고 그 많은 숫자를 모두 수용소로 보낼 수도 없는 노릇. 게다가 병력도 부족한 상황에서 멀쩡한 군대를 그냥 포기하는 것도 멍청한 짓이다.
"자진해서 아군에게 협력할 의사를 밝힌 이들은 즉시 석방시키고, 다시 싸울 의향이 있는 자들도 조사해서 무장시키도록 해. 못해도 후방 경비 같은 업무 정도는 맡길 수 있겠지. 물론, 허튼짓하지 못하게 감시 잘 붙이고."
"그렇게 하겠습니다, 각하."
히틀러의 명령으로, 포로가 된 이탈리아군 중에서 '뜻이 맞는 전우들'은 다시 무장할 수 있게 되었다. 협력을 거부한 자들은 얄짤없이 수용소로 직행했다.
"우리 덕에 죄수 신세에서 풀려났으니, 이제 무솔리니는 우리가 하는 말은 절대로 거부하지 못할 거야. 이참에 이탈리아와 맺었던 조약들 중에 우리가 손해 보는 것들은 모두 수정하게.
참, 우리가 이탈리아를 지켜주는 것이니까 비용을 우리가 낼 필요도 없지 않겠나?"
"맞습니다, 총통 각하!"
동맹국이긴 하지만, 내심 이탈리아를 못마땅한 눈초리로 보고 있던 군부는 히틀러의 의견에 적극 찬성이었다.
가진 것은 쥐뿔도 없는 주제에 입만 살아서 꺼드럭거리는 이탈리아인들을 언젠가 한 번 손 봐줘야겠다고 벼르고 있던 참이었는데, 그 기회가 지금 찾아온 것이다.
"쥐트티롤도 되찾아와야지. 거긴 원래 독일인들이 살던 곳이었으니까, 마땅히 독일에 합쳐야지."
이미 히틀러와 독일군 수뇌부의 머리에는 이탈리아를 벗겨 먹을 생각으로 가득했다.
그리고, 무솔리니는 이러한 독일의 속내를 알아도 거절할 수 없는 입장이었다.
지도자를 잘못 뽑은 대가를, 이탈리아인들은 이제 본인들의 피와 땀으로 치를 예정이었다.
***
히틀러로부터 직접 '철수해도 좋다'는 허가가 떨어지자, 시칠리아의 독일군은 미련 없이 배에 올랐다. 철수 준비는 진작에 끝냈으니, 배만 타고 가면 끝이다.
"자아, 서둘러라!"
"중장비와 부상자들 먼저 태워!"
"전차가 1순위, 돌격포가 2순위, 장갑차와 트럭은 그다음이다!"
후방의 안전한 퇴각을 위해 최전선에 남겨진 전우들이 피땀을 흘리는 동안, 철수작업은 속속 진행되었다.
철수를 방해하기 위해 하루에도 여러 번 공습이 가해졌지만, 이런 경우에 대비하여 메시나의 항구 일대는 대공포로 도배를 한 상태.
"2시 방향에 적기다! 사격!"
"쏘아!"
스핏파이어가 나타나던, 허리케인이 나타나던, MG34부터 20mm, 88mm 대공포가 일제히 불을 뿜으면 연합군 조종사들은 감히 접근할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독일군이 시칠리아를 떠나는 동안, 연합군은 메시나를 향해 전력으로 질주하고 있었다.
***
"바람이 기가 막힌 것 같습니다."
메시나로 향하는 길에서 닉이 내게 건넨 말이다.
크롬웰의 장기인 기동성을 120% 살릴 수 있는 도로를 만난 덕분에, 우리는 지금 그 어느 때보다 빠르게 질주하고 있었다.
맨날 굼벵이처럼 움찔움찔 기어서 가다가, 모처럼 드라이브를 하듯 신나게 달리니까 절로 콧노래가 나온다. 포탑 밖으로 상체를 내민 닉도 기분이 좋은지 얼굴에 웃음꽃이 가득했다.
"이 속도라면 내일 메시나에 도착하겠는걸?"
"메시나에 도착하면 뭐합니까?"
"뭘 하긴. 그곳에 제리들이 있으면 당연히 싸워야겠지."
"제발 저희들이 도착할 즈음에는 제리들이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동감이야."
쾅!!!
드라이브는 굉음과 함께 솟아오른 폭약 연기로 막을 내렸다. 폭음이 울리고 연기가 보이기 무섭게 나는 포탑 안으로 들어와 무전기를 잡았다.
"젠장, 이번에는 뭐야?"
-지뢰다!
-정어리 1이 당했다!
간악한 독일군이 도로에 함정을 설치해 둔 것이다. 그것도 평범한 대전차지뢰가 아니라, 155mm 유탄과 연결된 IED(Improvised Explosive Device, 급조폭발물)를.
급조폭발물이란 이름과 달리, 위력만큼은 결코 급조가 아니었다. 탑승자 전원 사망. 전차는 완파. 거기다 도로 봉쇄는 덤.
도로 밖으로 나가 기동하기엔 지형이 문제였다. 사람 머리통만 한 돌들이 도처에 깔린 탓에 전차가 움직이기에도 뭣한 곳이다.
거기다 시작된 독일군의 공격까지. 환장의 콜라보 3종 세트가 따로 없다.
"씨발, 돌겠네, 진짜."
"욕은 나중에 하셔도 좋으니 우선 표적이 어디에 있는지 알려주십쇼."
"잠깐만요, 지금 찾는 중이니-"
갑자기 시야에 들어온 빛 때문에 반사적으로 눈을 감는 찰나, 또 한 대의 전차가 완파되었다. 단 일격에 포탑이 날아가고 불기둥이 홍수처럼 터져 나온다.
이 정도 위력이면 빼박 88이다. 아니면 그보다 더 큰 구경의 화포거나.
-11시 방향이다. 적은 11시 방향에 있다!
나보다 먼저 적을 발견한 차량으로부터 무전이 들렸다. 즉시 그리로 시선을 옮기자, 경악스러운 광경이 보였다.
"저, 저놈이 여기에 왜 있어?"
눈에 들어온 것은 디커 막스(Dicker Max) 중자주포. 워썬더를 했다면 한 번쯤 마주쳤을 놈이다.
그런데 이 새끼가 왜 시칠리아에 있냔 말이야. 죄다 동부전선으로 갔다가 그곳에서 격파된 줄 알고 있었는데?
"조준 끝냈습니다, 쏠까요?"
"어? 아, 쏴!"
당황한 나와 달리, 게이츠 원사는 적이 누구든 간에 조준부터 하고 봤다. 포탄이 발사되었지만, 빗나가고 말았다. 망할.
"닉, 재장전!"
놈이 다시 발포하였고, 또 아군 전차 한 대가 당했다. 이번에도 어김없이 유폭을 일으켜 차체와 포탑이 분리되었다. 88mm보다 더 강력한 105mm 포탄이 내리꽂혔으니, 당연한 결과다.
"장전 끝!"
"발사!"
제발 이번에는 맞아라는 심정으로 바라본 결과, 포탄이 놈에게 명중했다. 폭발이 일어난 직후 놈은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그러나 적은 디커 막스 한 대만 있는 게 아니었다. 디커 막스는 한 대뿐이었지만, 체코제 38(t) 경전차에 PaK 40 대전차포를 탑재한 마르더는 여러 대였다.
놈들이 일제 사격을 가하자 2대의 전차가 추가로 격파당했다. 다행히 이때 공군이 나타나 적들을 향해 기관포를 갈겨댔고 그 결과 마르더 3대를 잡는데 성공했다. 남은 놈들은 승무원들이 차량을 버리고 도주했다.
전투는 채 10분이 걸리지 않았지만, 피해는 어마무시했다. 전차 5대 격파에 30명 전사, 7명 부상. 거기다 잔해로 길이 막힌 것은 덤이고.
구난차량이 도착해 길을 막은 잔해들을 모두 끌어낸 후에야 행렬은 다시 움직일 수 있었다.
***
몽고메리는 물론, 우리에게도 매우 안타깝지만, 독일군의 깜짝 파티는 이번이 끝이 아니었다.
메시나에 도달하기까지 우리는 총 4번의 전투를 더 치러야만 했다. 그나마 피해가 많았던 경우는 디커 막스와 조우한 첫 번째가 마지막이라서 다행이랄까.
쾅!
"젠장, 또 지뢰야?"
"공병, 아니, 그놈 데려와! 싸그리 갈아엎게."
독일군은 본대의 퇴각을 위해 소수의 분견대만 남겨둔 채 미련 없이 철수했고, 그 소수의 분견대도 땅에 지뢰와 IED를 매설한 직후 현장을 떠났다.
땅에 묻힌 지뢰는 적 전차와 대전차포 다음으로 가장 위험한 적이었다. 터지기 전까지는 어디에 묻혔는지 알 수 없어서 말이지.
이런 경우에 대비하여 우리는 지뢰제거전차라는 든든한 대비책을 만들어놨다. 투입 시기가 조금 많이 늦은 감이 없진 않지만, 생산된 놈이 얼마 없어서 어쩔 수 없다.
지뢰제거장비를 부착한 마틸다 전차들이 선두에 서서 움직이자, 독일군이 매설한 지뢰와 각종 폭탄들이 요란한 소리를 울리며 터졌다. 그리고 우리는 전차들이 개척한 길을 따라서 전진했고.
"진작에 이랬어야 했는데."
"그러게나 말입니다. 이 얼마나 편리한 물건인지......"
하지만, 지뢰제거전차로도 어떻게 못하는 게 있다.
바로 적 대전차포.
펑!
매복한 대전차포에 명중당한 마틸다가 불타오르자, 부대는 즉시 전투태세에 돌입했다.
지칠만하면 나타나는 제리들에게 우리는 두 손 두 발 다 들고 말았다. 징글징글한 녀석들 같으니라고. 그냥 너희들도 저 이탈리아 친구들처럼 얌전히 항복하면 어디 덧나냐? 응?
***
영국군이 온갖 고생을 하며 메시나로 향하고 있을 때,
"전진! 전진!"
"모두 멈추지 마라!"
패튼이 지휘하는 미군도 메시나로 전력 질주 중이었다.
물론 미군도 그들의 앞을 가로막는 적들과 싸워야만 했다. 하지만 전공에 눈이 돌아간 패튼은 독일군이 길을 가로막을 때마다 같은 명령을 반복했다.
"우회한다."
"예?"
"못 들었나? 우회하라고."
"하지만 앞에 적들이-"
"저놈들은 뒤에 있는 친구들에게 맡기고, 우리는 오직 전진만 한다! 무슨 일이 있어도 영국 놈들보다 먼저 메시나를 손에 넣어야 한단 말이다!"
어차피 길을 틀어막은 독일군은 소수. 상당수는 메시나에 있거나 메시나를 떠난 뒤다.
따라서, 후속 부대에 뒤처리를 맡기고 선두는 적들을 우회해 계속 전진만 한다, 이것이 패튼의 방침이었다.
물론 상황이 여의치 않으면 전투를 치러 적들을 쫓아내기도 했다. 그리고 전투가 끝나기 무섭게 도주하는 적들은 그대로 내버려 둔 채 진격을 재개했다.
"각하, 큰일 났습니다!"
"무슨 일인가?"
"기름이 다 떨어졌습니다!"
"그래서 어쩌라고? 기름이 다 떨어졌으면 내려서라도 가! 지체할 시간 따윈 없다고!"
방치된 전차와 차량들은 후속 부대가 인계하면 되니, 최소한의 병력만 남겨둔 채 진격한다는 참으로 놀라운 발상.
그리고 그 발상은 성공을 거두었다.
영국군보다 먼저, 메시나에 도착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메시나다!"
"어? 아무도 없어?"
미군이 메시나에 도착했을 때, 그곳에 독일군은 없었다.
단 한 명도.
인근 주민들한테 사정을 들으니, 독일군은 이미 1시간 전에 모두 배를 타고 떠났다는 것이다. 배에 실지 못한 물자를 모두 불태운 채로.
미군이 메시나에 도착하고 1시간 뒤, 영국군도 메시나에 도착했다.
메시나에 도착한 영국군이 마주한 광경은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자신들을 기다리고 있는 패튼이었다.
"어이, 신사 나리들. 너무 늦다고. 기어서 온 건가?"
"아, 이거 실례했습니다. 아서 그레이 대위입니다!"
"오, 어째 눈에 익은 친구 같더니 전에 아프리카에서 만났던 그 친구로구만?"
전차에서 내려 경례하는 내게 패튼은 자신만만한 미소를 지으며 손을 내밀었다.
"자네들, 너무 늦어. 기다리느라 목 빠지는 줄 알았네. 앞으론 좀 일찍 다니도록. 알겠나?"
"며, 명심하겠습니다."
"이게 무슨......"
원수는 외다리 나무에서 만났다고 했던가. 몽고메리도 현장에 도착해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표정으로 주위를 둘러봤다.
사방에서 펄럭이는 성조기들이, 그의 눈에는 자신을 조롱하는 것처럼 보이는 모양이었다.
"아, 오셨소이까? 난 분명 영국군이 우리보다 먼저 도착했을 줄 알았는데, 이제 보니 아니더구만. 기다리느라 지쳐서 언제쯤 올지 내기라도 할까 생각하던 참이었는데, 하하핫."
척 보기에도 일부러 열 받으라고 내뱉는 패튼의 말에, 몽고메리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실제로 둘이 이런 분위기였구나.
음, 좋지 않아. 아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