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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영제국의 폐급장교 146화

무료소설 대영제국의 폐급장교: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1,097회 작성일

소설 읽기 : 대영제국의 폐급장교 146화

 146화 이탈리아의 운명 (3)

 "결국 일이 이렇게 되고야 말았군."

 무솔리니의 실각 소식을 보고받은 히틀러는 자리에 앉아 뇌까렸다.

 무솔리니의 후임으로는 이탈리아군 총사령관인 피에트로 바돌리오가 임명되었다.

 총리로 임명된 바돌리오는 여전히 독일과의 동맹이 유효하다고 발표했지만, 독일과 이탈리아 수뇌부 중에서 그 말을 믿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이미 히틀러는 이전부터 이탈리아 국왕과 정부가 무솔리니 몰래 연합국과 접촉을 시도 중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고, 바돌리오의 발표도 자신들을 안심시키기 위한 철저한 기만임을 간파했다.

 "병신 같은 무솔리니. 자기네 나라 하나 제대로 다스리지 못하는 작자가 무슨 전쟁을 한다고. 정말이지 한심하기 짝이 없군."

 "그렇습니다, 총통 각하. 그자만 아니었어도 우리가 지중해와 아프리카에서 싸울 일은 결코 없었을 겁니다."

 "무솔리니와 이탈리아가 그동안 한 일이라곤 우리의 발목을 잡은 것뿐입니다."

 참모들도 그간 숨겨두고 있던 동맹국에 대한 감정들을 토로하자, 히틀러는 격하게 고개를 끄덕거렸다.

 "내 말이! 무솔리니, 그 작자가 욕심만 부리지 않았어도 전쟁은 우리의 계획대로 흘러갔을 거요! 대독일의 아들들이 아프리카 사막에서 헛되이 죽는 일도 없었을 테고, 우리는 소련과의 전쟁에 더욱 집중할 수 있었겠지! 그런데 망할 무솔리니와 마카로니 놈들 때문에 다 그르치고 말았소! 빌어먹을 패배주의자들 같으니라고!"

 한때 무솔리니를 존경하고 숭배했던 히틀러였지만, 지금은 얘기가 달랐다.

 파시즘의 선두이자 새로운 유럽을 이끌어나갈 강력한 지도자인 줄로만 알았던 무솔리니는 집 안 정리 하나 못하는 광대임이 드러났다.

 그가 벌인 여러 실책은 히틀러에게 실망을 넘어 분노와 혐오를 가져다주었다.

 하지만 무솔리니에 대한 감정이 어떻든 간에 그가 한배를 탄 동지이며, 무솔리니의 몰락이 히틀러 자신에게도 결코 좋은 일이 아니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았다.

 그리고 앞으로 처리해야 할 일이 산더미같이 많다는 사실도.

 "아무튼 무솔리니가 실각했으니, 틀림없이 이탈리아는 적과 강화하고자 할 거요. 이미 스위스에서 미국과 영국의 외교관들과 여러 차례 접촉했다는군."

 "어쩌며 내일이라도 저들이 백기를 내걸지 모르는 일입니다. 하루빨리 작전을 속행하시는 편이 좋을 것 같습니다."

 "맞습니다. 이탈리아인들은 더 이상 믿을 수가 없습니다. 조금이라도 꾸물거리다간 이탈리아 남부에 있는 병력이 역으로 포위되어 섬멸당할 수도 있습니다."

 요들이 말하고 카이텔이 지원사격을 하자, 히틀러는 결심을 굳혔다.

 "로렐라이(Loreley) 작전을 개시하게."

 ***

 -이탈리아의 새 총리 피에트로 바돌리오는 성명을 발표하여 독일, 일본과 맺은 조약은 여전히 유효하며, 동맹국으로서의 의무를 다할 것이라고 발표했습니다. 이에 독일도 즉각 이탈리아 신정부의 결단을 환영하는 성명을 발표하며, 이탈리아에 대한 지원을 약속했습니다. 다음 소식입니다.......

 무솔리니의 실각 소식이 전해지기 무섭게 다음날 라디오에서 흘러나온 뉴스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번 달아오른 분위기는 쉬이 사그라지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게, 무솔리니가 실각했다는 소식이 전해진 직후 투항해오는 이탈리아군의 수가 확 늘어났으니 말이다.

 "쏘지 마라!"

 "항복한다, 항복."

 "나, 영국 좋다. 무솔리니, 역겹다."

 혼자서, 또는 삼삼오오 모여 백기나 군복을 벗어서 들고 서투른 영어를 하며 항복해오는 이탈리아 병사들을 본 아군은 전쟁이 곧 끝날지도 모른다는 강한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

 "역시, 파스타 녀석들도 전쟁에 지친 거야. 틀림없어."

 "제리들이 마카로니 녀석들의 반이라도 닮았으면 좋으려만."

 무더기로 항복해오는 이탈리아군과 달리, 독일군은 여전히 치열하게 저항했다.

 하지만 정찰기의 보고에 따르면 독일군 대다수가 방어에 필요한 최소한의 부대만 남겨둔 채 메시나로 퇴각 중이라고 한다.

 덕분에 아군은 수월하게 진격할 수 있었다. 치열한 전투가 예상되었던 오거스타는 의외로 쉽게 수중에 들어왔고, 기세를 몰아 카타니아로 전진했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카타니아를 지키는 적군의 저항은 완강했다.

 하필이면 카타니아에 주둔 중인 독일군은 독일군 중에서도 정예인 제1 공수사단으로 그들은 피해에 상관없이 최대한 오랫동안 도시를 사수하라는 지령을 받은 상태였다.

 거기다 이탈리아군 사단들도 매우 드물게 인원과 장비가 완편된 정예부대였다.

 하필이면 시칠리아에 있는 정예부대 모두가 카타니아에 짱박힌 탓에, 그 피해는 고스란히 아군에게로 돌아왔다.

 더군다나 적은 앞에만 있는 게 아니었다.

 "적의 저항이 너무 거세서 진격할 수 없다고? 우리가 저놈들보다 숫자도 많고 제해, 제공권 모두 우위에 있는데? 그걸 지금 말이라고 하나? 할 수 없다는 말 말고 노력을 해야지, 노오력을!"

 진격이 지체되자, 몽고메리가 직접 일선 부대들을 돌아다니며 독려-라고 쓰고 갈굼이라 부르는-해댔다.

 적군의 방어가 워낙 탄탄한 탓에, 카타니아를 그대로 두고 우회하는 방안도 검토되었지만, 지형상의 문제가 있는데도 주요 골목마다 배치된 적군이 통행을 방해했기에 결국 카타니아를 점령하고 진격하는 방법밖에 없었다.

 아군이 카타니아에 발이 묶긴 동안, 패튼이 지휘하는 미군은 쾌속으로 진격하며 시칠리아 서부를 휩쓰는 중이었다.

 당연하게도 그 소식을 들은 몽고메리는 더욱 열을 냈다.

 "돌겠네, 정말. 앞에 있는 놈들은 죽어도 길을 비켜줄 생각이 없고, 위에서는 왜 진격 안 하냐고 계속해서 쪼아대는 판국이라니."

 "그게 군인의 숙명 아니겠나, 대위."

 말은 멋지게 했지만, 정작 당사자인 무어 소령도 얼굴에 피로가 역력했다.

 목욕한 지가 오래되어서 머리카락은 떡 졌고, 턱에는 거뭇거뭇한 수염이 자라나 험악한 인상이 되었다.

 사실 나도 크게 다르지 않은 상태지만, 무어 소령은 나이가 있어서 그런지 생김새가 영락없는 산적이었다. 사극에 나와도 전혀 어색함이 없는 외모다.

 "그래도 조금만 더 버티자고. 무솔리니가 실각했으니, 이탈리아는 금방 항복할걸세. 이탈리아가 무너지면, 독일도 얼마 버티지 못할 거고. 그때까지 참자고. 여태껏 잘 버텼으니."

 "음, 중대장님. 초 치는 것 같아 죄송합니다만 제 생각으로는 그렇게 쉽게 끝날 것 같지 않습니다."

 "어째선가?"

 "무솔리니와 달리, 히틀러는 결코 호락호락한 상대가 아니라서 말이죠. 이탈리아와 달리 독일은 본토까지 밀리지 않아서 히틀러에 대한 국민의 지지가 탄탄합니다. 게다가 히틀러의 지도로 프랑스 함락이라는 어마어마한 성공을 본 독일인들이 쉽게 히틀러를 배신할지도 의문이고요. 이탈리아가 항복한다고 해도, 독일이 이탈리아를 그냥 놔둘지도 의문입니다. 이탈리아가 무너지면 바로 오스트리아가 위협받게 되는데, 저들이 그걸 가만히 지켜보고만 있을 리 없지 않습니까?"

 "듣고 보니 그렇군. 그럼 자네가 생각하기엔 독일이 앞으로 어떻게 할 것 같나?"

 "아마도...... 무슨 수를 써서라도 무솔리니를 다시 권좌에 앉히려고 할 것 같습니다. 자기 말을 들으려는 꼭두각시가 필요하니까 말입니다."

 무솔리니의 실각이 역사보다 더 이른 시기에 일어났다는 점만 빼면 흐름 자체는 거의 그대로다. 따라서 뒤에 일어날 일들도 크게 다르진 않을 것이다.

 어디까지나 시기의 문제일 뿐.

 어쩌면 벌써 일이 진행되고 있을지도 모른다.

 ***

 "연합국과의 강화는 어떻게 되어가고 있나?"

 "비교적 순탄하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폐하."

 "다행이군. 그럼, 우리의 요구사항을 저들이 받아들였단 말인가?"

 비토리오의 물음에 바돌리오는 잠시 머뭇거렸다. 허나 언제까지 숨길 수도 없는 노릇이었기에 그는 사실대로 고하는 편을 택했다.

 "폐하의 왕위 유지와 군주제 인정 요구만 받아들여졌습니다."

 바돌리오의 대답에 비토리오는 눈살을 찌푸렸다.

 "그것이 무슨 뜻이지? 설마......."

 바돌리오는 침통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거렸다.

 "나머지 요구조건에 대해선 수용 불가 입장을 내비쳤습니다."

 비토리오는 연합국에게 항복 조건으로 자신의 왕위와 군주제 유지 외에도 리비아, 알바니아 등 기존의 식민지 유지, 발칸반도 침공 등을 내걸었다.

 연합국은 왕위와 군주제 유지를 제외한 그 어떤 요구사항도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이었다. 그 때문에 항복 협상은 지지부진하게 진행되고 있었다.

 "폐하, 외람되오나 이 이상 협상을 끄는 것은 현실적으로도 불가능하고 매우 위험합니다. 아직 이탈리아에 있는 독일군의 수가 적은 지금 항복해야만 합니다."

 바돌리오는 국왕의 요구를 연합국이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란 점을 알고 있었다.

 전쟁을 일으킨 국가의 식민지를 그대로 남겨놓을 정도로 저들의 아량이 넓지 않다, 계속해서 협상을 끌다간 되려 연합국의 요구만 더 가혹해질 뿐이다.

 지금 당장 항복해도 모자랄 판인데, 아직도 헛된 망상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니!

 바돌리오는 어이가 없었지만, 세상 물정을 모르는 비토리오는 여전히 망상 속에서 빠져나오기를 거부하고 있었다.

 "그러면 자네는 저들의 요구를 모두 받아들이자는 말인가? 나라가 결딴나게 생겼는데? 이제까지 그토록 수많은 희생을 냈는데도 우리가 건지는 게 아무것도 없다면, 국민이 어떻게 생각하겠는가? 절대 안 되네! 그래, 에티오피아는 포기해야겠지. 하지만 리비아와 알바니아만큼은 남겨놔야 해. 그리고 발칸반도 침공도. 이미 시칠리아가 초토화된 마당에, 본토마저 전쟁터가 되는 일만큼은 피해야 해!"

 "폐하, 폐하의 뜻은 잘 알겠습니다만은 이제 그만 결단을 내리셔야......."

 "큰일 났습니다!"

 문을 박차고 들어온 부관의 말에 바돌리오는 하려던 말을 멈추고 그를 노려보았다.

 아무리 자신이 신임하는 부관이라지만, 이 자리가 어느 자리인데 저리 무례할 수가!

 "자네, 지금 이게 무슨 짓인가! 여기가 어느 안전이라고......."

 "죄송합니다만, 지금 이러고 계실 때가 아닙니다! 지금 당장 몸을 피하셔야 합니다!"

 부관의 다급한 외침과 동시에 들려온 총성에 국왕과 총리는 그제야 심상치 않은 일이 일어났다는 것을 깨달았다.

 총성은 서서히 커지더니, 이제는 폭발음도 함께 들렸다.

 "이, 이게 대체 무, 무슨 일인가?"

 "독일군의 기습입니다. 서둘러 대피하셔야 합니다!"

 "아, 알겠네."

 "폐하를 먼저 모셔라! 당장!"

 독일군은 바돌리오의 예상보다 훨씬 일찍 행동을 개시했다.

 ***

 같은 시각, 남부에 주둔한 알베르트 케셀링 공군 원수도 즉각 행동을 개시했다.

 "이탈리아군을 즉시 무장 해제시킨 후 우리의 감시하에 둔다. 저항하는 자는 가차 없이 사살해버려."

 "예!"

 평소 인자하고 활기찬 성격인데다, 독일군 장성들과 사이가 나쁜 이탈리아군 장성들과도 사이좋게 지내 그들로부터 신뢰를 받았던 케셀링이었지만, 판단과 행동에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었다.

 "손 들어, 새끼들아!"

 "배신자 새끼들!"

 사기도, 전투력도 낮은 이탈리아군은 독일군이 불시에 습격해오자 저항 한 번 하지 않고 항복했다.

 저항을 시도하는 이들이 없지는 않았지만, 오래가지 못했다.

 로마에 공수부대가 강하하고, 남부에선 케셀링이 이탈리아군을 무장 해제하는 동안, 실각 후 국왕의 명령으로 유폐되어 있던 무솔리니는 자신의 옛 숭배자이자 현 상전이 보낸 '친절한 독일인 청년들'과 마주했다.

 "자, 자네들은 누군가?"

 자신을 호위-감시-하던 헌병들과 경찰들을 기관단총과 수류탄으로 쓸어버린 한 무리의 병사들을 보며 무솔리니는 당혹스러워했다.

 하지만 이어진 대답을 듣곤 굳었던 얼굴이 밝아졌다.

 "실례했습니다, 두체. 저는 오토 슈코르체니 SS 대위라고 합니다. 총통 각하께서 두체를 구출하기 위해 저희를 보내셨습니다."

 "총통이? 총통이 보냈다고?"

 "그렇습니다. 이제 염려하지 마시지요. 저희가 모시겠습니다."

 "고맙네. 총통이 날 도우러 오리라고 굳게 믿고 있었지!"

 자신을 암살하러 온 연합군의 특수부대가 아니라, 히틀러가 자신을 구출하기 위해 보낸 독일의 특수부대라는 사실을 알게 된 무솔리니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실각하고 이곳에 유폐된 후, 그는 국왕과 신정부가 자신을 협상용 카드로 써먹기 위해 연합국에게 넘기는 일을 가장 두려워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걸로 그럴 걱정은 사라졌다.

 독일의 통수를 치고 전쟁에서 빠지려던 이탈리아 신정부의 계획은 완전히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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