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영제국의 폐급장교 139화
무료소설 대영제국의 폐급장교: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110회 작성일소설 읽기 : 대영제국의 폐급장교 139화
139화 지중해 전략
순회공연을 끝내고 부대로 복귀하자, 중대는 재건이 얼추 완료된 상태였다.
나 역시 새로운 부하들을 맡게 되었다.
이 친구들이 나쁜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예전의 승무원들이 그리워졌다.
정도 정이지만, 그간 수많은 실전을 함께하며 호흡을 맞췄기에 따로 지시를 내릴 필요 없이 알아서 일을 처리하는데 도사였다.
그런데 새로 온 녀석들은 아직 신병들이라서 그런지 어리바리 한 티가 대놓고 팍팍 났다.
그치만 어쩌겠나.
앞으로 이 친구들과 싸워야 할 텐데.
처음부터 다시 차근차근 가르치는 수밖에.
“빨리 안 뛰어? 이 새끼들아! 동작 봐라!”
게이츠 원사도 간만에 샤우팅을 치며 신병들의 혼을 반쯤 빼놓았다.
신병들이 허둥지둥거리며 뛰어다니는 모습은 언제 봐도 질리지 않는다.
“병사들 상태는 좀 어떤 것 같나?”
“뭐, 초짜 티를 벗으려면 시간이 조금 걸릴 것 같습니다.”
“그렇군. 별수 없지. 숙련병들이 죄다 죽거나 포로가 됐으니까. 아쉬운 대로 이 친구들하고 잘해봐야지.”
무어 소령은 말하면서도 내심 걱정이 되는지 한숨을 쉬며 담배를 피웠다.
언제 다시 실전에 투입될지 모르기에 하루도 거르지 않고 훈련에 훈련을 거듭했다.
덕분에 병사들은 죽을 맛이었지만, 훈련에서의 땀 한 방울이 전장에서의 피 한 방울을 줄여줄 것이란 말이 있듯 지금 고생해야 전장에서 살 수 있다.
그러니 좀 참아봐, 이 자식들아.
다 너희를 위한 거라니까?
그렇게 매일같이 훈련에 매진하는 와중에, 리비아의 추축군이 항복했다는 소식이 들렸다.
이로써 추축군은 아프리카에서 완전히 퇴출당하였다.
리비아 해방 소식이 들리고 며칠 뒤, 이동 명령이 내려졌다.
***
“결국 아프리카를 완전히 빼앗기고 말았습니다.”
“크흠.”
다소 침울한 얼굴로 전황을 보고하는 요들과 달리, 히틀러는 겉으로 보기엔 표정에 큰 변화가 없었다.
아프리카에서 밀려난 건 뼈아팠지만, 큰 손해는 없었다.
원래 아프리카는 독일이 아니라 이탈리아의 강역이 될 예정이었으니까.
히틀러의 관심사는 오직 레벤스라움이 될 소련과 동유럽의 영토들이었지, 아프리카가 아니었다.
다만 아프리카를 빼앗겼다는 건 지중해와 남유럽이 위협받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했기에 대책이 필요했다.
“연합군의 다음 목표가 어디가 될 것 같나?”
“제 생각으로는 몰타와 시칠리아가 될 것 같습니다만.”
요들은 연합군이 몰타와 시칠리아를 공격하리라고 내다보았다.
하지만 몰타와 시칠리아 중에서 어느 곳을 먼저 공격할 것인지에 대해선 그도 갈피를 잡지 못했다.
“영국이 본래 자신들의 영토였던 몰타를 먼저 공격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반대로 그 점을 역이용해 몰타를 건너뛰고 곧바로 시칠리아로 직행할 가능성도 있소이다.”
허나 연합군의 다음 목표가 지중해 전구가 아닌 다른 지역이 되리라는 주장도 만만찮았다.
“디에프를 보십쇼. 지중해는 미끼고 놈들은 프랑스로 올 수도 있습니다.”
“프랑스보단 이탈리아가 더 가능성이 높지 않겠나?”
“시칠리아에서 로마를 거쳐 독일 국경까지 오려면 2년은 걸릴 겁니다. 하지만 적들이 프랑스에 상륙하면 독일 국경까지는 금방입니다.”
“으으음.”
장군들의 의견이 쉽사리 모이지 않는 가운데, 히틀러는 동부전선 문제를 먼저 언급했다.
“국방군은 현재 어디까지 진격했지?”
“현재 모스크바 외곽입니다, 총통 각하.”
“언제쯤 모스크바를 점령할 수 있겠나?”
“이번 해가 끝나기 전에는 점령을 완료할 수 있을 겁니다.”
“반드시 그렇게 하게. 최대한 빨리 소련을 무너뜨리고, 남은 전력을 돌려 연합군을 상대한다. 여기서 더 늦어지면 안 돼. 내 말 명심하도록.”
“명심하겠습니다.”
하나 마나 한 이야기를 반복하며 별 의미 없는 다짐을 받아낸 히틀러는 그제야 만족한 듯 슬쩍 미소를 지었다.
소련을 무너질 것이다.
내년 봄이 오기 전에는, 반드시.
물론 연합군이 그때까지 놀고만 있을 가능성은 희박하다.
연합군의 상륙은 사실상 확정인데, 문제는 그들이 어디에 상륙하냐는 것이다.
역시 이탈리아일까? 아니면 프랑스?
가능성이 낮지만, 그리스에 상륙할 수도 있다.
그리스가 연합군에게 넘어가면 루마니아의 플로에스티 유전이 위협받게 되고, 동시에 발칸반도와 터키를 통한 철광석 수급도 끊기게 된다.
따라서 연합군이 발칸반도에 상륙하는 사태에 대한 대비책도 마련해야 했다.
베를린이 연합군의 다음 목표를 두고 왈가왈부하는 사이, 연합군은 이들을 더욱 혼란에 빠뜨리기 위한 밑 작업을 진행 중이었다.
***
“어이, 저것 좀 봐. 저게 뭐지?”
“사람 아냐?”
“죽은 것 같은데?”
해변에 익사자의 주검이 파도에 떠밀려오는 일은 아주 드문 일이 아니었다.
특히, 요즘 같은 전쟁통에는 자주 시체들이 파도에 떠밀려 이곳 스페인 해안가까지 오기도 했다.
하지만 이번 시체는 뭔가 달랐다.
남자는 영국군 장교 제복을 입고 있었고, 더군다나 품속에는 방수 처리가 된 기밀문서까지 소유하고 있었다.
이 특이한 시체의 발견 여부는 곧방 스페인 정부에 보고되었고, 스페인은 이를 독일에 알렸다.
마침 스페인은 얼마 전에 있었던 아서 그레이의 탈주에 스페인 정부가 이를 알고서도 묵인한 것이 아니냐는 독일의 의심 때문에 난감해하던 참이었다.
스페인은 연합군에게 협조한다는 독일의 의심을 해소하고, 덩달아 히틀러에게 스페인이 전쟁 수행에 협력한다는 인상을 주기 위해 시체를 곧바로 독일에 넘겼다.
스페인으로부터 시체를 넘겨받은 독일은 곧바로 이 시체를 샅샅이 조사했다.
“방금 암호해독부서에서 문서 해독에 성공했다고 합니다!”
“뭐라고 적혀 있었나?”
“셰르부르 주둔 독일군 병력의 수와 방어 태세에 대한 분석이 필요하다고 적혀 있었답니다.”
“셰르부르라고? 그렇다는 것은……!”
시체에서 확보한 기밀문서의 내용이 셰르부르의 방비 태세와 관련된 내용임이 알려지자, 독일군은 곧바로 비상이 걸렸다.
“놈들의 다음 목표는 프랑스가 분명합니다!”
“역시. 놈들이 괜히 디에프를 건드린 게 아니었어.”
“프랑스를 거쳐 곧바로 독일로 진격하려는 계획으로 추정됩니다.”
“즉시 셰르부르에 병력과 장비를 급파해야 합니다!”
연합군의 목표가 셰르부르라고 확신한 독일군은 즉시 셰르부르로 병력과 장비를 증파해 대대적인 방어 준비에 들어갔다.
하지만 이 같은 사실은 모두 연합군의 철저한 기만이었다.
“녀석들이 미끼를 물었습니다!”
“멍청한 녀석들. 이걸 속다니, 이러니까 전쟁에서 지지.”
애초에 스페인에서 발견된 영국군 장교의 시체부터가 연합군이 꾸민 계략의 일부였다.
이른바 다진고기 작전(Operation Mincemeat).
연고자가 없는 노숙자의 시체에 영국군 장교 복장을 입히고 기밀문서를 끼워 넣은 다음 스페인 해변에 투기하는 것이었다.
연합군의 예상대로 스페인은 이 ‘가짜 장교’의 시체를 독일에 넘겼다.
독일은 시체에서 습득한 문서를 토대로 연합군이 셰르부르에 상륙하리라고 철석같이 믿었다.
마침 전에 있었던 디에프 상륙까지 더해지자 독일군의 머릿속에선 프랑스 상륙이 강하게 뿌리를 내렸다.
독일이 프랑스 방면에 집중한 덕분에 이탈리아 남부의 방어는 상대적으로 소홀해질 수밖에 없었다.
연합군은 독일군이 눈치채지 못하도록 프랑스 일대에 보란 듯이 정찰기를 보내 독일군의 신경을 건드렸다.
독일군은 연합군의 정찰기가 보일 때마다 적들이 프랑스로 오리라고 더더욱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
자신들이 덫에 걸린 줄은 꿈에도 모른 채.
***
11월 초, 나는 다시 아프리카에 도착했다.
이걸로 몇 번째인지 이제는 감조차 잡히지 않는다.
지브롤터를 통과해 곧장 튀니지에 내린 우리는 영국에서처럼 훈련에 돌입했다. 주야를 가리지 않고 훈련이 진행되었으며 새 부하들과의 호흡도 서서히 맞추었다.
“모두 그만. 10분간 쉬었다 하자.”
“알겠습니다.”
휴식이 허락되자마자 전차에서 내린 병사들은 서둘러 바지 앞섶을 풀고 소변을 눴다.
자식들, 오래 참았나 보구만.
얼굴에 환희가 번지는 걸 보니 참아도 무척 길게 참았던 모양이다.
“어이, 닉슨. 넌 오줌 안 마렵냐?”
“예, 전 괜찮습니다. 그리고 제 이름은 닉슨이 아니라 닉입니다, 소대장님.”
“어? 어, 그러냐? 이거 미안하게 됐구만.”
으음, 친하게 지내려고 말 좀 걸었는데 되려 실수를 하고 말았다.
신병들이 훈련 때문에 애를 먹는다면, 나는 신병들 이름을 외우는 일 때문에 애를 먹고 있었다.
자대 처음 도착했을 때도 고참들 이름 외우느라 죽을 맛이었는데, 그 반대의 경우도 쉽지 않다.
일단 조금 전 녀석이 탄약수인 닉 레커드, 계급은 상병이고 나이는 나와 동갑인 20살이다. 과묵하다는 점에선 예전의 가필드가 생각나는 친구다.
“하마터면 지릴 뻔했네. 진짜 좆 될 뻔했다니까.”
너스레를 떨며 바지를 올리는 저 녀석의 이름은 조종수 보리스 게이.
계급은 상병인데, 뚱뚱하고 얼빠져 보이는 인상 때문에 자연스레 애덤이 생각나게 하는 녀석인데, 의외로 눈치도 빠르고 말도 조리 있게 잘해서 사실상 에이스 취급을 받고 있다.
다만, 조종실력은 조금 미묘한 편.
그래도 훈련을 거듭하면 나아지리라고 생각한다.
“역시 훈련이 약이라고, 매일같이 굴리니까 조금은 사람 구실을 하게 된 것 같습니다.”
어느새 뒤에 다가온 게이츠 원사가 능글맞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뭐, 아직은 갈 길이 멀지만요. 실전투입 전까지는 달라져야 할 텐데.”
“원래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은 없는 법이죠. 차차 나아질 거라고 봅니다.”
참고로 게이츠 원사는 현재 내 전차에서 포수를 맡고 있다.
새로 충원된 인원 중에 신임 소위들이 하도 많아서, 그는 졸지에 실업자가 됐다며 자조적인 농담을 하곤 했다.
마침 실력 있는 포수가 필요하던 내 입장에선 나쁘지 않은 일이었지만.
“자, 휴식 끝. 모두 승차! 서둘러!”
***
“다진고기 작전은 대성공입니다."
“제리들이 완전히 속아 넘어간 것 같군. 이걸로 당분간은 발 뻗고 잘 수 있겠어.”
“문제는 시칠리아와 몰타, 이 두 곳을 어떻게 하느냐는 것입니다만.”
일단 독일군의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리는 데 성공한 연합군이었지만, 아직 문제는 많이 남아있었다.
대표적인 게 시칠리아와 몰타였다.
연합군 수뇌부는 이 두 곳을 동시에 공략하느냐, 아니면 다른 한 곳을 먼저 공격하고 그다음으로 넘어가느냐를 두고 의견 수립에 난항을 겪고 있었다.
“당연히 몰타를 탈환해야지. 그대로 놔두는 게 말이 되겠소?”
당연하게도 영국 측은 몰타 탈환을 적극적으로 지지했다.
“생각해보시오. 몰타를 그냥 놔뒀다간 시칠리아에 상륙하는 아군들 뒤통수가 근질근질해질 거요. 최악의 경우 시칠리아 상륙 자체가 실패할 수도 있소이다.”
영국의 주장도 일리가 있었다.
몰타의 추축군 세력을 그대로 놔뒀다간 역으로 연합군이 위협받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에 대한 반박도 만만치 않았다.
“하지만 몰타를 공격했다간 이제까지의 노력들이 모두 수포로 돌아가고 말 겁니다. 겨우 프랑스로 시선을 돌려놨는데, 몰타를 치면 적들이 다음 목표를 어디라고 생각하게 되겠습니까?”
“그러니 시칠리아와 몰타를 동시에 공격하자는 거 아닙니까?”
“그랬다간 병력이 둘로 나뉘어 적들만 이롭게 하는 꼴이 될 겁니다. 몰타는 폭격으로 발만 붙잡아두는 것으로 충분합니다.”
몰타를 그대로 두고 곧장 시칠리아를 공격하자는 미군과 무슨 수를 써서라도 몰타를 탈환해야 한다는 영국군의 대립은 시간이 흐를수록 완화되기는커녕 더욱 날카로워졌다.
“까놓고 말해서 몰타 탈환을 주장하는 이유가 댁들의 추락한 위신을 세우기가 아니오?”
“말 다 했습니까?”
“그만, 그만! 함께 머리를 맞대도 모자란 판에 무슨 짓이오. 일단 머리 좀 식힙시다.”
수많은 고성과 수많은 파행의 위기 끝에 내려진 결론은 결국 시칠리아와 몰타 양쪽을 모두 동시에 공격하는 것으로 결정지어졌다.
이제 남은 일은 실행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