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영제국의 폐급장교 111화
무료소설 대영제국의 폐급장교: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158회 작성일소설 읽기 : 대영제국의 폐급장교 111화
111화 반격 (4)
충격적인 광경을 목격하고 난 뒤.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분노에 가득 차 있었다.
눈이 뒤집힌 채로 엘 파스로 달리는 와중에 적들이 공격을 가해왔다.
다름 아닌 비시 프랑스군이었다.
우리의 앞길을 가로막은 비시 프랑스군은 튀니지에 남은 비시군 중에서도 마지막으로 남은 정예부대였다.
프랑스군은 먼저 포격을 가해 아군을 정지시킨 후, 정면과 좌우 세 방향에서 공격을 가해왔다.
-정면에 적 전차 출현!
-즉시 좌우로 산개!
"발사!"
교전이 시작되자 정면에서 돌격을 감행하던 소뮤아 S35 전차가 전면에 구멍이 뚫리면서 불타올랐다.
마틸다의 2파운더 주포로는 상대하기 영 까다로운 녀석이었지만, 6파운더 앞에선 놈의 장갑판 따윈 두부나 다름없었다.
과거에 저놈 때문에 고생했던 기억과 프랑스군에게 사로잡혀 처참하게 살해된 아군 조종사까지 겹치자 속이 다 시원했다.
가필드가 전차에서 탈출하는 프랑스 전차병들을 사살하는 사이, 나는 시선을 돌려 다음 목표를 찾았다.
"저기, 1시 방향에 적 전차! 거리 400!"
토마스도 그 어느 때보다 힘차게 포탄을 장전했다.
장전 완료와 조준 완료가 동시에 귀에 닿았다.
마침 녀석도 기동을 멈추고 이쪽으로 포탑을 돌리고 있었다.
"쏴!"
철갑탄이 차체 전면부를 때리자, 이번에도 어김없이 폭발이 일었다.
전차가 완전히 통구이가 된 후에도 탈출자가 없는 걸로 보아 일격에 전원이 즉사한 듯했다.
프랑스군은 맹렬하게 공격해왔지만, 코뿔소와 하이에나의 경우처럼 상대가 되질 않는 싸움이었다.
프랑스군 전차들의 주포로는 크롬웰의 전면장갑을 뚫을 수 없는 반면, 크롬웰의 6파운더는 모든 프랑스군 전차들을 일격에 관통할 수 있었다.
게다가 기동력에서조차 크롬웰이 한 수 위였다.
프랑스군은 우회하여 아군 전차들의 측면을 노리려고 했지만, 크롬웰 전차들의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고 역으로 따라잡혀 하나씩 격파당했다.
그나마 가장 강력한 성능을 자랑하던 소뮤아 S35가 모두 격파당하자, 남은 전차는 R35, H35 같은 허접한 전차들뿐이었다.
놈들도 모두 같은 신세가 되는데 5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한편, 전차들을 따라 돌격을 감행한 프랑스군 보병들도 아군 전차들의 포탄과 기관총 사격에 줄줄이 쓰러졌다.
전투가 끝나고, 대대 규모의 프랑스군 중에서 살아남은 생존자들의 수는 10명도 되지 않았다.
이에 반해, 아군의 피해는 보병 9명 전사에 3명 부상, 전차는 한 대도 격파되지 않았다.
완벽한 대승 그 자체였다.
프랑스 생존병들은 처음엔 도주를 시도했지만, 아군 전차들이 추격하자 금방 포기하고 항복했다.
우리는 포로들을 곧장 한곳에 모았다.
"빨리빨리 걸어, 이 새꺄!"
"빌어 처먹을 새끼들!"
아군 조종사 사건 때문에 병사들은 포로들을 거칠게 다루었다.
한 프랑스군 포로는 아무 이유 없이 개머리판으로 배를 강타당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포로들은 항의나 저항은커녕 도축장으로 끌려가는 소들마냥 벌벌 떨면서 찍소리도 하지 못했다.
"이놈들은 어떻게 하실 계획입니까?"
보병 중대의 젊은 중위가 아군 최선임자인 브랜슨 대령에게 말했다.
중위 역시 포로들을 향해 경멸과 분노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었다.
브랜슨 대령은 잠시 생각하더니, 본인만으론 정확한 판단이 서지 않는 듯 사령부에 무전을 넣었다.
"이쪽으로 곧장 오겠다는군. 그때까지 모두 대기. 경계는 늦추지 말도록."
"알겠습니다."
"저놈들, 조금 전까지 죽자 살자 달려들더니, 이젠 똥개마냥 바들바들 떨고 있구만. 찌질한 겁보 새끼들 같으니라고."
포탑 밖으로 나와 포로들을 구경하던 토마스가 거친 말을 내뱉었다.
이따금 욕은 한 적 있어도 누군가를 가리켜 가시 돋친 말을 내뱉는 모습을 본 적은 이번이 처음이라 묘한 감정이 들었다.
"당장이라도 저놈들을 죄다 쏴죽이고 싶은데, 안 그렇습니까? 소대장님?"
"진정해. 화내봤자 좋은 거 하나 없어. 일단 우리에게 주어진 임무는 총살이 아니라 감시니까."
나는 혹시 모르니 녀석이 지금 들고 있는 MP40을 내려놓으라고 말할까 고민했다.
코앞에서 포로들을 감시하는 병사들도 방아쇠에 손가락을 건 채 포로들을 노려보는 중이었고, 포로들은 그런 병사들의 시선을 피해 땅바닥만 응시했다.
어색하고 무거운 공기가 계속해서 흘렀다.
5분 뒤, 사령부에서 보낸 인원들이 도착했다.
그들 중 최선임자인 소령은 브랜슨 대령과 간단한 말을 주고받더니, 포로들에게 다가갔다.
소령 뒤에는 키 크고 말쑥한 병사가 그림자처럼 따라다녔다.
"이름과 군번, 계급, 소속 부대를 대라."
소령이 한 질문을 병사가 불어로 묻고, 포로가 대답하면 병사가 영어로 소령에게 들려주는 방식으로 심문이 진행되었다.
포로들의 기본적인 인적 사항을 노트에 기록한 소령은 얼마 전에 있었던 사건에 대해 물었다.
"추락한 우리 조종사가 비참하게 살해당하는 일이 있었다. 추락한 전투기의 잔해에는 프랑스 만세라고 적혀 있었지. 이 사건에 대해 아는 자가 있나?"
결과는 전부 다 모름.
애초에 그런 사건이 있었는지조차 몰랐다는 반응이었다.
포로들의 반응이 전해지자 병사들은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
"뭐어? 몰랐다고? 구라치고 있네!"
"그게 말이 되냐?"
"저 씹새끼들을 그냥!"
"조용, 조용! 아직 심문 중이잖나."
브랜슨 대령이 나서서 제지하자 병사들은 수그러들었다.
이후에도 여러 질문이 오갔지만, 돌아오는 답변은 거기서 거기였다. 모른다,
아는 게 없다, 나는 처음 알았다, 등등.
더 자세한 심문을 위해 사령부로 포로들을 데려오라는 지시였기에 포로들은 트럭에 실려 이송되었다.
포로들을 태운 트럭의 뒷모습을 보며 나는 저들의 말이 과연 사실일지 거짓일지 생각했다.
저들이 범인을 알거나 혹은 자신들이 범죄를 저질러놓곤 거짓말을 하는 것일 수도 있지만, 정말로 결백할 수도 있었다.
날마다 무수히 많은 일이 일어나는 전쟁터에서 특정 사건의 진실을 가려내기란 참으로 쉽지 않다.
자세한 내막은 본인들만이 알고 있으리라.
***
그렇게 포로들을 보낸 후.
우리는 다시 전진을 재개했지만, 얼마 못 가 새로운 방벽에 부딪히고 말았다.
"토미들의 전차다!"
"사격 개시!"
여기에도 길게 늘어선 독일군의 방어선은 성대한 파티를 열어 우릴 열렬하게 환영했다.
우박처럼 쏟아지는 포화에 아군은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88을 비롯한 대전차포의 일제 사격 다음으로 무서운 것은 바로 슈투카의 공격이었는데, 전차의 주포가 닿지 않는 사각에서 내리꽂히는 무차별적인 공격에 전차들은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급강하한 슈투카가 폭탄을 투하할 때마다 전차나 보병들 다수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적의 공격이 너무나도 격렬했던 탓에 전진은커녕 후퇴조차 버거웠다.
그나마 바람이 불어 연기가 앞을 가려주었기에 망정이지 바람이 불지 않았다면 더 많은 병사가 목숨을 잃었을 것이다.
어쩌면 나 자신도 말이다.
"지금이다, 애덤! 후진해!"
연기로 인해 시야가 차단되어 독일군의 사격이 멎자, 나는 즉시 후진을 명령했다.
이미 무어 소령도 퇴각을 명령하고 있었다.
같은 자리에 계속 있다간 틀림없이 적들의 표적이 된다. 그 전에 이곳에서 도망치는 수밖에.
쿵!
급히 후진하느라 뒤를 보지 못한 탓에 그만 다른 전차와 부딪혔다.
88의 공격을 받고 포탑이 날아간 전차였는데, 나는 잭슨에게 명령해 포탑을 뒤로 돌리게 했다.
어차피 88에 맞으면 앞이나 뒤나 뚫리는 것은 매한가지였기에 위험을 감수해서라도 시야를 확보하는 게 중요했다.
"야, 애덤. 내가 불러주는 방향대로 움직여라. 알겠지?"
"알겠습니다!"
"일단 우측으로!"
해치 밖으로 상체를 허리 벨트까지 내민 채 방향을 가르쳐 주면, 애덤은 내 지시대로 전차를 움직였다.
도중에 내가 방향을 잘못 알려주는 바람에 보병 두 명을 치일 뻔하거나 구덩이에 빠지기도 했지만, 끝내 무사히 적의 사정권에서 벗어나는 데 성공했다.
전투가 끝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해가 저물었다.
다음날 아군은 아침 일찍 공격을 재개했지만, 결과는 어제와 같았다.
여기가 뚫리면 사실상 끝이었기에 독일군은 격렬하게 저항했다.
우리도 포병과 공군을 호출해 적에게 대항하고자 했지만, 독일군은 포격과 공습에도 악착같이 버텼다.
포격이 끝난 직후 이뤄진 공격에서 아군은 2대의 전차를 추가로 잃고 공격을 중단해야 했다.
"하, 제리 새끼들...... 역시 만만찮네. 얌전히 알아서 항복하면 좋으려만."
"녀석들도 우리 못지않게 절박한가 봅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저렇게 열심히 싸울 리가 없죠."
상부에서는 우회하여 적 방어선을 타격하는 방법도 고려했지만, 이놈의 아틀라스산맥 때문에 포기해야 했다.
우회 공격을 하고 싶어도, 전차가 통행이 가능한 길이 이곳밖에 없었다.
전차 지원 없이 보병들만 따로 빼서 공격을 시도해봤지만, 수백 장의 전사통지서가 새로 생긴 것 외엔 어떤 소득도 없었다.
그뿐만 아니라 계속해서 이어지는 전투로 연료와 탄약의 소모도 심각한데다 병사들의 사기는 주식 그래프처럼 바닥으로 곤두박질쳤다.
아무리 훌륭한 무기가 있어도, 그걸 사용하는 병사들이 지쳐 있으면 소용이 없는 법.
현실은 절대로 <하츠 오브 아이언>이 아니다.
병사들은 기계와 달리 휴식과 안정이 필요하다.
불행 중 다행으로 독일군도 방어선을 지키기 급급할 뿐 따로 공격을 시도하진 않았다.
아니, 차라리 그랬으면 더 나았으려나?
우리야 주변에 자리 잡고 독일군이 오는 족족 쏴서 쓰러뜨리기만 하면 되니까.
모두가 지쳐 쓰러지기 일보 직전인 가운데, 가뭄 끝의 폭우처럼 기적이 일어났다.
상부에서 전투 중지 명령이 내려진 것이다.
"현 시간부로 전투를 중지하고 대기 상태를 유지하라는 군단장님의 명령입니다."
"만세! 이제 살았다!"
대기 명령이 떨어지자 너 나 할 거 없이 모두가 안도하며 바닥에 주저앉았다.
망설이지 말고 계속 공격하라는 명령이 내려지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천만다행히도 내려진 명령은 대기 명령이었다.
이로써 우리는 숨을 고를 틈을 얻을 수 있었다.
"며칠 전 진격하라고 노발대발하던 양반이 갑자기 정지 명령이라니. 무슨 바람이 분 건지 모르겠군."
얼굴에 여유를 되찾은 브랜슨 대령은 의아하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우리의 상태가 한계에 봉착했다는 것을 파악해서가 아니겠습니까?"
"음, 그런가? 하긴 연료도, 탄약도, 식량도 하루 분량밖에 남지 않았으니 그런 것일지도."
브랜슨 대령과 무어 소령은 저마다 합리적인 추론을 내놨지만, 내 생각은 달랐다.
나는 혹시나 싶어 현재 미군이 어디까지 진격했는지 알아봤다.
"미군 말입니까? 그치들은 현재 하푸즈(Haffuz) 인근에 있습니다."
그럼 그렇지.
캐루안을 향해 달리던 미군도 독일군의 완강한 저항에 부딪혀 하푸즈 인근에서 멈추고 말았다.
미군이 하푸즈에서 멈춘 것은 이틀 전, 그리고 오늘 우리는 대기 명령을 받았다.
라이벌인 미군이 진격을 멈췄으니, 몽고메리 본인도 더는 무리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한 모양이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우리에게 순순히 대기 명령을 내릴 리가 없었다.
아니나 다를까, 저녁에 전선에 온 몽고메리는 현장을 둘러보면서 아쉽다는 듯이 투덜거렸다.
"우리에게 조금 더 많은 병력과 전차들이 있었다면, 지금쯤 엘 파스에서 저녁을 먹고 있을 텐데....... 자네들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나?"
"물론입니다, 각하."
물론은 개뿔.
우리가 왜 댁의 전공을 위해 이 고생을 해야 하냐고. 지금도 충분히 죽을 맛인데.
"뭐, 양키들도 상황이 비슷하다니 넘어갈 수밖에. 만약 양키들이 캐루안에 도달했다는 소리를 들었다면 나는 화가 나서 견딜 수 없었을 거야. 그놈들한테 지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지."
즉, 미군이 캐루안을 점령했다면 우린 아직도 싸우고 있었겠군. 미군이 하푸즈에서 멈춘 게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고마워, 양키 친구들.
탄약과 연료가 보충되고, 죽기 직전이었던 병사들도 원 상태를 되찾은 후에도 대기 명령은 계속되었다.
연합군 최고사령부에선 곧장 튀니지로 돌격한다는 계획을 잠시 중단하고, 스팍스를 먼저 공략하기로 전략을 바꿨다.
"스팍스? 스팍스가 어디에 있는 곳입니까?"
"바로 여기일세."
지도에 표시된 스팍스의 위치를 보자 왜 연합군 사령부가 전략을 바꿨는지 이해가 갔다.
위에서 아래로 쭉 받은 튀니지 해안 동부에 위치한 스팍스를 점령하면, 연합군은 추축군을 효과적으로 양분할 수 있었다.
스팍스를 점령해 적의 허리를 끊은 뒤, 적들이 약화할 무렵에 다시 공격을 재개. 튀니스에 입성하겠다는 계획이다.
장군님들이 스팍스 공략에 집중하는 동안, 이곳에서 대기 상태는 쭉 이어졌다.
이따금씩 독일군 전투기가 아군 진영으로 날아와 기총소사를 퍼붓는 것만 빼면, 비교적 무난하게 지낼 수 있었다.
대기 상태가 지속된 지 나흘째.
이번에는 VIP들이 최전선에 있는 우리 대대를 방문한다는 소식이 들렸다.
또 귀찮은 일이 생긴 지라 간부들은 일제히 질색했다.
"대대장님, 이번에는 또 누가 온답니까? 얼마 전에 이미 군단장님께서도 왔다 가셨는데, 이번에는 총리께서 오시는 겁니까?"
"그건 걱정하지 말게. 다행히 그 정도 급은 아니니까. 그래도 VIP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지만."
브랜슨 대령도 귀찮다는 듯이 머리칼을 쓸어넘겼다.
처음 대령 계급장을 달았을 때 싱글벙글하던 표정은 온데간데없고, 전보다 더 늘어난 주름과 하얗게 변한 머리카락만 남아있었다.
"이번에 올 손님들은 우리나라 사람이 아니야."
"그럼? 미군입니까?"
"아니. 이번 손님들은 자유 프랑스 정부 인사들이네. 자네들은 처음 듣겠지만, 드골이라는 키가 멀대같이 큰 양반과 그 부하들이라더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