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영제국의 폐급장교 104화
무료소설 대영제국의 폐급장교: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155회 작성일소설 읽기 : 대영제국의 폐급장교 104화
104화 고난을 넘어서 (5)
"쏴!"
뒤늦게 쏜 포탄은 적의 포탑을 허공으로 날려보냈다.
그러나 이미 적탄이 아군 진지에 명중하여 다수의 사상자가 난 뒤였다. 빌어먹을.
"씨발, 내 팔!"
"위생병!"
독일군은 영악하게도 노획한 마틸다 전차를 앞세워 공격해오는 방법을 썼다.
포탑 측면에 그려진 철십자를 제때 발견하지 못했다면, 멋모르고 적이 진지 안으로 들어오는 걸 멍청하게 지켜보고 있을 뻔했다.
참으로 아찔한 순간이 아닐 수 없었다.
"호랑이로부터 범고래에게, 방금 적 전차를 격파─."
무어 소령에게 이 사실을 알리려고 할 때 본격적인 공격이 시작되었다.
사방에서 폭발이 일어나고, 예광탄 줄기가 어둠을 가로지르며 날아갔다.
이때 누군가가 하늘로 섬광탄을 쏘아 올리자 주변이 대낮처럼 환해졌다.
"이런 씹......!"
문제는 아무 준비도 없이 빛을 보자 눈이 쓰라리듯 아팠다.
시력이 다시 회복할 때까지 기다리는 사이, 적들은 굉음을 내며 달려왔다.
겨우 시력이 원 상태로 돌아왔을 땐 이미 적들이 사방에 널려 있었다. 척 보기에도 어마어마한 숫자였다.
독일군한테 저렇게 많은 전차가 있었나?
문득 그런 의문이 들었지만, 적탄이 내는 소리를 듣자 그럴 고민을 할 틈이 없어졌다.
일단 살고 보는 게 급선무였다.
"정면에 적 전차, 거리 400!"
포탑이 우우웅 소리를 내며 돌아가는 사이 토마스가 철갑탄을 장전했다.
목표는 3호 전차, 그것도 주포가 길쭉한 J형이다.
녀석은 다른 표적을 향해 사격하는 중이라 정지한 상태였다. 게다가 포탑은 사선으로 반쯤 돌아가 있고.
그야말로 딱 죽기 좋은 자세다.
"조준 끝!"
"쏴!"
57mm 철갑탄이 포탑 측면을 파고들자, 대폭발이 일면서 포탑의 장갑이 종잇장처럼 찢어졌다.
순식간에 통구이가 된 3호 전차를 보면서 나는 기쁨을 느낄 틈도 없이 곧바로 다음 목표물을 지정했다.
"적 전차 2시 방향! 거리 450!"
뭉툭한 75mm 주포를 탑재한 4호 전차가 아군 기관총 진지를 짓뭉개고 있었다.
녀석은 달아나는 보병들을 향해 기관총을 난사하더니, 포탄을 발사했다.
폭발에 휩쓸린 병사들이 조각난 팔다리를 부여잡고 비명을 질렀다.
"조준했습니다!"
"쏴버려!"
녀석은 우릴 향해 측면을 그대로 내놓고 있었다.
적의 측면에 철갑탄을 꽂아 넣는 일쯤은 문제도 아니었다.
그런데.
"씨발, 뭐야?"
"튕겼습니다!"
예상과 다르게, 포탄은 적의 측면을 맞고 튕겨 나갔다!
하필이면 차체 측면에 부착된 차체 휀다를 맞고 도탄된 것이다.
눈으로 직접 보고도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어처구니없는 상황에 멍 때리고 있는데, 이쪽을 향해 돌아가는 적 전차의 포탑을 보자 정신이 돌아왔다.
다행히 토마스가 알아서 철갑탄을 장전한 덕분에 바로 쏘기만 하면 됐다.
"잭슨, 위로 살짝 들어서 쏴라."
"알겠습니다!"
적 전차가 불을 뿜기 전에 6파운더가 재차 불을 토했다.
이번에는 제대로 명중.
측면에 구멍이 뚫린 4호 전차는 해치에서 검은 연기를 맹렬하게 토해내더니, 곧 완전히 화염에 휩싸였다.
"좋아, 다음!"
사방에서 몰려드는 적들을 하나씩 해치워나가고 있는데, 우측에서 큰 폭발이 일어났다.
동시에 오른팔에서 강한 통증이 느껴졌다.
"......!"
팔뚝에 500원 동전 크기의 파편이 박혀 있었다. 빼내자 피가 주르륵 흘러내렸다.
"소대장님! 괜찮으십니까?!"
어느새 군복 하의까지 흘러내린 피를 보고 놀란 토마스가 물었다.
잭슨도 돌아보더니 눈동자가 동그래졌다.
"됐어, 크게 다친 건 아니니까."
그보다는 우측에서 일어난 폭발의 정체가 먼저였다.
통증을 참으며 다시 고개를 내미는데, 포탑 해치에서 연기를 뿜어대고 있는 아군 전차가 눈에 들어왔다.
-호랑이 3, 피격당했다! 탈출하겠다!
그리고 이어지는 3호차의 피격 소식.
우측에 나타난 적 전차가 이쪽으로 맹렬하게 달려오고 있었다.
장포신 75mm 전차포를 탑재한 4호 전차였다.
전차에 달린 기다란 주포를 보자 반사적으로 고함이 터져 나왔다.
"애덤, 뒤로 후진! 당장!"
전차를 후진시키기 무섭게 포탄 한 발이 허공을 가르며 지나갔다.
아군 전차를 2대나 격파한 적 전차는 참호를 타 넘으며 계속해서 다가왔다.
그러다가 녀석은 구덩이에 빠졌다.
놈이 구덩이에서 빠져나오는 동안, 잭슨은 놈의 정면을 조준했다.
"발사해!"
6파운더가 불을 내뿜자 차체 전면부 중앙에 구멍이 뚫렸다.
적 전차는 얼어붙은 것처럼 그 자리에서 멈춰 섰다.
그러나 포탑은 여전히 움직이며 우리를 조준하려고 했다.
"한 발 더!"
포탑을 조준해 2탄을 발사하자, 그제야 포탑의 회전이 멈췄다.
해치를 열고 밖으로 나온 전차장은 피투성이인 채로 비틀거리며 걷다가 바닥에 쓰러졌다.
그러나 장포신 4호 전차는 아직 2대나 더 있었다.
그중 한 대가 나를 발견하곤 방향을 돌려 다가오기 시작했다.
"전진!"
녀석의 주포가 우릴 겨냥하기 전에 나는 전차를 움직였다.
놈이 쏜 포탄은 간발의 차이로 비켜나갔다.
"쏴!"
그러나 잭슨이 쏜 포탄도 놈을 아슬아슬하게 피해 나갔다.
이걸로 패는 다시 적에게 넘어가고 말았다.
"애덤, 내가 멈추라고 말할 때까지 계속 돌아! 저놈이 조준할 수 없게!"
애덤이 내 지시대로 전차를 좌우로 도는 동안, 토마스가 철갑탄을 장전했다.
이제 남은 철갑탄의 숫자는 겨우 10발.
앞으로 신중하게 써야 한다.
4호 전차가 발사한 포탄은 포탑 후면을 스쳐 지나갔다.
그 탓에 포탑 후면에 달아뒀던 천막과 보급품이 깡그리 날아가 버렸지만, 패는 다시 우리 쪽으로 넘어왔다.
"애덤, 정지!"
말이 끝나기 무섭에 애덤은 전차를 정지시켰다.
뒤늦게 적이 움직이기 시작했지만, 이미 잭슨이 조준까지 끝낸 상태였다.
4호 전차의 엔진룸을 타격한 철갑탄은 전차를 멈춰 세웠고, 두 번째 포탄은 화재를 일으켰다.
전차에 불이 붙자 전차병들은 곧바로 전차를 버리고 탈출했다.
하지만 가필드의 기관총이 적들의 도주를 용납하지 않았다.
불타는 전차에서 탈출을 시도하던 적 전차병들은 모두 벌집이 되어 전차 주변을 나뒹굴었다.
"끝인가......."
이로써 기습을 가해온 전차들은 모두 격파되었다.
격파된 전차들에서 흘러나온 연기 때문에 숨쉬기가 힘들었다.
더 이상 남아있는 적이 한 대도 없다는 것을 확인한 후에야 나는 포탑 안으로 들어가 팔에 난 상처를 치료했다.
-여기는 범고래, 호랑이 응답 바람.
"여기는 호랑이, 수신."
-피해 상황 보고하기 바란다. 몇 대가 당했나?
"호랑이 2와 3이 당했다. 나와 호랑이 4는 멀쩡하다. 생존자 수는 아직 파악 중."
-알겠다. 추후 명령이 있을 때까지 현 위치에서 대기하라.
첫 포성이 울린 지 이제 막 30분이 지났다.
공격을 가해온 적군은 모두 괴멸되었지만, 그 대가로 아군도 큰 피해를 입었다.
당장 내 휘하의 전차 2대가 격파당했고, 보병들의 피해는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였다.
지금 이 순간에도 사방에서 부상병들의 절규와 군의관을 찾는 고함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
최전선에서 실시간으로 들려오는 보고에 롬멜의 사령부는 그 어느 때보다 바삐 움직이고 있었다.
롬멜은 참모들과 함께 튀니지 지도를 내려다보며 추가적인 작전 계획 수립에 매달리고 있었다.
"각하, 급보입니다. 영국군 구역 공격이 실패했다고 합니다."
끄응. 참모의 보고에 롬멜 이마의 주름이 더욱 깊어졌다.
"피해는? 어느 정도인가?"
"현재 파악 중입니다."
2년 전부터 독일과 싸워온 영국은 결코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성공 확률을 올리기 위해 야음에 기습을 시도했건만, 실패하다니.......
하지만 신은 아직 그를 완전히 저버리진 않은 모양이었다.
"각하! 제8기갑연대로부터 보고입니다! 전선 돌파에 성공했다고 합니다!"
"오오오!!!"
간만에 들린 승전보에 어둡던 사령부의 분위기에 다시 화색이 돌았다.
롬멜은 자신도 모르게 주먹을 불끈 쥐었다.
역시 영국군 전선 대신 미군 전선을 집중적으로 타격하길 잘했군.
롬멜은 전투력이 영국군보다 상대적으로 전투력이 떨어지는 미군 전선을 집중적으로 공격하기로 결정했고, 그 결정은 결과적으로 옳았다.
이제 다음 과제는 서둘러 미군을 포위해 섬멸하는 거였다.
"좋아, 듣던 중 반가운 소식이군. 계속 전진하라고 전해. 토미들이 우리 작전을 눈치채기 전에 서둘러야 한다."
"알겠습니다."
***
"맙소사, 크라우츠다!"
"모, 모두 전투 준비!"
2년 전부터 독일군과 싸워온 영국군과 달리, 실전 경험이 사실상 전무한 미군은 독일군의 맹공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
병사들은 물론이고, 병사들을 지휘할 장교들조차 전투가 시작되자마자 얼어붙었다.
비록 장비의 질과 보급품의 수량은 미군이 절대적인 우위를 점하고 있었만, 장비와 보급이 전투력으로 직결되는 것은 결코 아니었다.
"정면에 적 전차! 철갑탄 장전!"
"발사!"
미군에게도 전차가 있었지만, 전차병들의 숙련도 측면에선 독일군이 미군보다 한참 우위였다.
게다가 독일군은 이번 공세를 위해 몇 안 되는 귀중한 존재인 장포신 4호 전차들을 선두에 배치했다.
1km 거리에서 M3 리의 전면장갑을 관통할 수 있는 4호 전차들은 강력한 화력과 긴 사거리를 이용해 미군 기갑부대를 박살 냈다.
미군이 보유한 M3 리도 화력에선 4호 전차에 크게 뒤처지진 않았지만, 차체에 주포가 고정된 탓에 효과적인 전투가 불가능했다.
포탑에 달린 37mm 주포로는 4호 전차와 3호 전차의 전면부를 뚫는 것이 힘들었다. 경전차인 M3 스튜어트는 말할 필요도 없었다.
게다가 프레덴달에 의해 드넓은 벌판에 각 부대가 띄엄띄엄 배치된 것이 가장 큰 패착이었다.
부대 간 거리가 너무 넓었던 탓에 타 부대가 다른 부대를 제대로 지원할 수 없는 데다 이동에도 긴 시간이 소요되었다.
1분 1초가 중요한 전장에서 이동에 시간이 걸린다는 것은 상당한 위험 요소였다.
독일군은 미군의 약점을 제대로 파고들었다.
뒤늦게 상황의 심각함을 깨달은 미군 지휘부가 예비대를 투입하기로 결정을 내렸을 땐 이미 전선 곳곳에 구멍이 뚫린 후였다.
이 소식은 영국군에게도 전달되었다.
***
"양키 녀석들! 미치겠군, 정말!"
미군 전선이 독일군의 맹공에 돌파당했다는 소식을 들은 몽고메리는 열불이 날 지경이었다.
"내가 그렇게 만만한 상대가 아니라고 경고했건만! 기어이 일을 이 지경으로 만들어놓다니, 도대체 정신이 있는 건가? 아니, 어떻게 그런 머저리가 별을 단 거지? 미군은 바보들만 승진시키는 법이라도 있나?"
"각하, 죄송합니다만 이러고 있을 시간이 없습니다. 빨리 지원군을 보내지 않으면 돌이킬 수 없는 결과가──."
"나도 알아, 젠장!"
참모의 진언에 겨우 화를 누그러뜨린 몽고메리는 현재 가용 가능한 부대들을 살폈다.
전투가 끝나 뒷수습 중인 부대들도 있지만, 여전히 과반수 부대가 독일군과 전투 중이었다.
따라서 지금 당장 지원 가능한 부대들은 얼마 되지 않았다.
그것도 전투력 자체는 유지 중이면서 명령을 받자마자 당장 이동할 수 있는 부대는 더더욱 적었다.
"지금 당장 투입할 수 있는 부대들은? 얼마나 되지?"
"아직 파악 중입니다만, 현재까지 파악된 부대는 제4, 7전차연대와 15보병연대뿐입니다."
부관의 보고에 몽고메리는 지도를 살폈다.
15연대는 미군 전선과 정반대의 위치에 주둔한데다 보병들뿐이라 전투력도 그렇게 높다곤 할 수 없다.
4전차연대의 경우, 전차들이 모두 기동성이 낮은 발렌타인 전차들뿐이라 이동에 시간이 걸릴 터였다.
"그럼 제7전차연대뿐이군. 그 친구들을 투입하게. 피해 집계 끝나는대로 내게 보고하고."
"알겠습니다, 각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