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드 카일러 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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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549회 작성일소설 읽기 : 위드 카일러 7화
위드 카일러
위드 카일러 1권 - 7화
위드가 네드벨 아카데미에 입학을 한지도 벌써 1달이 지나가고 있었다. 흐르는 시간만큼 변하는 것도 많았다.
우선 가장 큰 변화는 식당에서 2학년 여선배가 말했던 것처럼 4학년, 3학년 선배들의 지시를 받은 2학년 선배들의 본격적인 1학년들 끌어들기였다.
물론, 대부분의 귀족 자제들은 대상자에 포함이 되지 않았다. 네드벨 아카데미 내에는 이미 각 나라별로 세력이 형성되어 있었기에 1학년 귀족 자제들은 알아서 자신의 나라 세력으로 들어갔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와중에 가장 큰 곤혹을 치르는 이들은 평민들이었다. 더욱이 검술학부의 학생들 같은 경우는 다른 학부의 학생들보다도 훨씬 부산하게 이리저리 불려 다니기 일쑤였다. 겉으로는 아카데미 측에서 자제를 시키고 있었지만 그런다고 완벽하게 막을 도리는 없었다.
“싫습니다.”
저녁을 먹고 검술 수련장으로 향하던 위드는 1학년 건물의 후문 구석진 곳에서 들려오는 완강한 목소리에 무슨 일인가 싶어서 발걸음을 멈췄다.
“잘 생각해봐라. 이런 기회는 흔하지 않아. 어차피 네 녀석 나라로 가봐야 평민 출신이라고 해서 대우를 해주지도 않을 텐데 그럴 바에야 지금부터 우리와 사이를 돈독하게 해놓는 게 너한테도 이득이잖아?”
들려오는 음성은 어떠한 강요도, 협박도 없었다. 그저 설득이었다.
위드는 이미 몇 번이나 봐왔던 광경이기에 이내 상관하지 않고 발걸음을 내딛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저는 싫습니다. 저는 아직 실력도 없을뿐더러, 벌써부터 누군가의 후광을 등에 업고 출세를 하고 싶지도 않습니다.”
‘제법이네.’
누군지 모르지만 위드는 제법 생각이 괜찮다고 여겼다. 보통의 평민 출신 학생들은 전부는 아니더라도 대부분 선배들의 권유에 넘어가는 경우가 많았다.
가장 큰 이유로는 평민이었던 자신이 귀족들의 자제들과 확실하게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다는 신분 상승의 만족감과 아카데미 졸업 후에 출셋길을 보장받을 수 있다는 확실한 미래 때문이었다.
“다시 생각해라.”
다소 딱딱해진 음성에 위드는 문뜩 발걸음을 멈추고 말았다. 보통 권유를 했을 경우 싫다는 자신의 의견을 확실하게 밝히면 제아무리 2, 3학년이라고 하더라도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만약, 강제적으로 자신들의 세력으로 끌어들이려고 했다면 아카데미 측에서도 보다 확실하게 그들을 단속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일종의 암묵적인 약속인 셈이다.
“몇 번을 생각하더라도 지금은 싫습니다.”
“다시 생각해.”
“싫습니다.”
“빌어먹을! 내가 뭐라고 했어! 이딴 새끼들한테 좋게 나가봐야 우리 꼴만 우스워진다고 했잖아! 이 버러지 같은 새끼야! 운이 좋아서 아카데미에 입학했다고 네가 벌써부터 귀족이라도 된 것 같냐? 좋게 말을 하면 알아들어야 할 것 아냐!”
거친 음성과 욕설.
지금까지 몇 번이나 선배들이 후배들을 권유하는 모습을 봐왔지만 저런 거친 음성과 욕설은 들어본 적이 없었다.
“가볼까?”
고민을 하던 위드는 이어서 들려온 둔탁한 타격음과 신음소리에 곧장 소리가 들려오는 곳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로젠! 함부로 손을 댔다가 자칫하면 퇴학까지도 당할 수 있다고!”
“후배 교육이라고 해두면 되는 거지 뭐.”
퍽!
“크윽!”
“로젠!”
퍽!
“어차피 우리밖에 없고, 상처가 쉽게 드러나지 않는 곳만 골라서 때리면 되는 거잖아. 빌어먹을 평민새끼!”
퍼억!
“컥!”
“네드벨 아카데미 규칙 아홉 번째! 네드벨 아카데미 내에서 선후배간의 이유 없는 폭력과 인격적 모독은 결코 용서하지 않는다. 네드벨 아카데미 규칙 열다섯 번째! 강요와 협박, 폭력에 의한 하급생 포섭은 정학 내지는 퇴학에 이른다.”
“누구야?”
갑작스런 음성에 1학년 남학생을 발로 차려던 2학년생 로젠은 깜짝 놀란 얼굴로 고개를 들었다.
“선배께는 죄송합니다만 제가 장님이 아니라서 목격자가 될 것 같습니다.”
위드의 말에 로젠이 얼굴을 찌푸렸다.
“귀족이냐?”
로젠의 물음에 위드는 어깨를 으쓱거렸다.
“굳이 말을 해야 하는 것입니까? 아카데미 내에서 사소하게 자신의 신분을 밝히는 것은 결코 좋지 않은 행동이라고 알고 있습니다만?”
유들유들한 위드의 말에 로젠은 물론이고, 주변의 2학년생 3명도 가볍게 눈살을 찌푸렸다.
“이름이 뭐야?”
“위드입니다.”
“전부 말해.”
위드는 곤란하다는 듯 말했다.
“죄송하지만 전 아카데미의 규칙을 어기고 싶지는 않습니다.”
“결국은 귀족이란 소리군.”
위드의 대꾸에 로젠은 눈을 사납게 빛내며 이죽거렸다. 직접적으로 귀족임을 밝히진 않았지만 위드의 말엔 간접적으로 자신이 귀족이라는 것이 드러나고 있었다.
더욱이 1학년임에도 불구하고 다수인 자신들에게 하는 말투나 행동으로 봤을 때, 귀족이 아니라면 결코 불가능한 행동이었다. 물론, 완전히 미쳐버린 평민일 가능성도 있었지만.
“젠장!”
로젠은 위드를 어떻게 건드릴 수 없다는 사실에 욕설을 내뱉으며 신경질적으로 그를 쏘아봤다.
단순한 후배 교육이라는 훌륭한 구실이 있기는 했지만, 만에 하나라도 일의 전모를 아카데미 측에서 알게 되기라도 한다면 손해를 보는 쪽은 자신이었기에 화가 나더라도 참을 수밖에 없었다.
로젠의 뒤쪽에 있던 2학년 남학생이 위드를 향해서 말했다.
“이번 일은 우리의 잘못이니 아무 말도 하지 않겠다. 너도 이쯤에서 일이 끝나길 바라겠지?”
위드는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입니다, 선배님.”
로젠이 뭐라고 말을 하려고 했지만 그가 더 이상은 일을 벌이지 말라는 듯 눈짓을 하자 분한 얼굴로 입을 꾹! 다물었다.
로젠을 등 떠밀듯 데리고 자리를 벗어나던 2학년 남학생이 위드를 향해서 고개를 돌리며 던지듯 말했다.
“이건 개인적인 질문인데…… 어느 나라 출신이지?”
그의 물음에 위드는 그 정도는 알려줄 수 있다는 듯 대답했다.
“페르만 왕국 출신입니다.”
위드의 대답에 그가 빙긋 웃었다. 그리고는 가볍게 고개까지 숙이며 말했다.
“아! 대륙 최연소 준남작님이셨군요. 준남작님께 실례가 많았습니다.”
“……!”
“알린!”
알린이라 불린 남학생이 위드를 바라보며 빙긋 웃었다.
“프라디아 대륙 최연소 준남작! 내 말이 틀렸나? 위드 카일러 준남작?”
위드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래도 폐하께 받은 작위니 여기서 부정하면 죄인이 되겠지?”
“……!”
“……!”
갑자기 달라진 위드의 말투였다. 하지만, 그런 위드의 말투보다도 자신이 준남작임을 인정하는 그의 말에 알린을 제외한 모두가 놀란 얼굴로 그를 바라봤다.
“또 보게 될 거야.”
상대가 준남작임에도 알린은 여전히 말투를 조금도 바꾸지 않았다. 오히려 재밌다는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다 이내 놀란 표정의 친구들을 데리고 사라져갔다.
그의 뒷모습을 보며 위드는 뒷머리를 긁적거리며 중얼거렸다.
“이거 앞으로 좀 시끄러워지는 거 아냐?”
“저…….”
로젠에게 맞아서 바닥에 웅크리고 있던 1학년 남학생이 몸을 일으키곤 조심스럽게 위드를 바라봤다.
어찌되었던 귀족의 자제와 실질적으로 작위가 내려진 이와의 차이는 크기 때문에 2학년들 앞에서 당당했던 그였지만, 같은 학년임에도 불구하고 위드의 앞에서는 움츠러들 수밖에 없었다.
“할 말이라도 있는 거야?”
위드의 물음에 그가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도와주셔서 고맙습니다.”
그의 대답에 위드는 웃으며 말했다.
“같은 학년끼리 굳이 말을 높일 이유는 없잖아? 그건 학교 규칙에 어긋나는 거라고.”
“하지만…….”
위드는 괜찮다는 듯 그의 어깨에 손을 둘렀다.
“작위를 받았다고는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을뿐더러 그만한 힘도 없어. 알고 있잖아? 준남작 따위는 귀족이라는 허울만 뒤집어쓰고 있을 뿐 실제로는 잘나신 귀족들 사이에서 꽤 무시당하고 있다는 걸. 그리고 난 내가 준남작이라고 생각하지도 않거든, 내 아버지의 목숨과 바꾼 작위 따윈…….”
씁쓸한 웃음이 위드의 입가에 머물렀다.
***
“하앗!”
쉭!
“차하앗!”
슈악! 슈악!
검술학부 학생들의 목이 터져라 외치는 기합소리와 바람을 시원스럽게 가르며 휘둘러지는 검날 소리. 그렇기 때문인지 일부 학생들의 불만스런 목소리는 조용히 묻히고 있었다.
“언제까지 이런 기본기나 익혀야 하는 거야?”
기합을 내지르며 검을 위에서 아래로 내리긋는 한 남학생의 불만에 곁에서 좌에서 우로 검을 휘두르던 남학생도 역시나 동조하듯 입을 열었다.
“벌써 1달째 이런 기본기라니! 이거 정말로 네드벨 아카데미가 명문이 맞긴 맞는 거야?”
“누가 아니래!”
“누가 떠드나!”
선생님의 고함에 불만을 터트리던 학생들이 재빨리 입을 다물었다.
그렇게 약간의 시간이 흐른 후에야 휴식 시간이 이어졌고, 학생들은 저마다 검을 늘어트리며 제자리에 주저앉았다.
“아! 네드벨 아카데미에 와서까지 이런 기본기나 수련하게 될 줄이야!”
바닥에 주저앉은 라이너의 푸념에 트레제가 혀를 찼다.
“바보 같은 소리. 검술의 기본기는 끝이 없는 거라고. 설마 넌 그것도 모르고 있냐?”
“모르긴! 다만, 대륙 최고의 명문인 네드벨 아카데미에 입학을 했으니 뭔가 좀 더 새로운 걸 배울 줄 알았기에 그러는 거지.”
“새로운 거?”
라이너가 익살스럽게 웃으며 대답했다.
“필살기!”
라이너의 말에 트레제는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고는 아직도 검을 휘두르는 위드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비단, 위드 뿐만이 아니라 몇몇 학생들 역시도 휴식 시간임에도 쉬지 않고 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여! 위드! 지금은 휴식 시간이라고! 휴식 시간에는 휴식을 취해야 하는 거라고!”
라이너의 말에도 위드는 대꾸 없이 그저 묵묵히 목검을 휘둘렀다. 그런 그의 모습에 라이너는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위드가 검을 휘두르는 걸 보면 뭐라고 할까? 동작이 굉장히 무겁게 느껴진다고 할까?”
트레제의 말에 라이너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무겁게 느껴진다고?”
“응. 그러니까…… 초보자가 검을 휘두르는 것처럼 단순히 무겁게 느껴지기 보다는 뭐랄까? 동작 하나하나에 육중한 무게가 실려 있다는 뭐 그런 느낌이지.”
그제야 라이너도 무슨 말인지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위드가 검을 휘두르면 다른 이들이 휘두르는 것보다 무게가 느껴졌다.
그렇게 가만히 앉아서 위드의 모습을 지켜보던 라이너의 시선이 우측으로 돌아갔다.
“트레제, 쟤들 우리한테 오는 거 같지?”
“그런 것 같은데.”
트레제의 말대로 5명의 남학생이 점점 다가와 코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그 중의 한 명은 트레제와 라이너도 잘 알고 있는 이였다.
“조이! 옆에 있는 애들은 누구야?”
라이너의 물음에 조이라는 학생은 뭐라고 대답을 하려 했지만 그보다도 그의 오른편에 있던 제법 잘생긴 남학생의 음성이 먼저였다.
“너에게 볼일이 있다.”
입을 연 학생이 지칭한 사람은 라이너와 트레제가 아닌 위드였다. 위드 역시, 그들이 다가오는 시점에서 검 휘두르는 것을 멈추고 있었기에 남학생의 말을 바로 알아들었다.
“볼일이라니?”
위드의 반문에 그는 잠시 트레제와 라이너를 바라보다 이내 아무 상관없겠지 하는 표정으로 대답을 했다.
“우린 페르만 왕국 출신이다. 알린 선배가 네 녀석을 설득하라고 하더군. 듣자니 네가 그 유명한…….”
그의 말을 듣고 있던 위드가 재빨리 말을 도중에 차단했다. 그 다음은 듣지 않아도 무슨 말을 하고자 하는지 알 수 있었다. 아니, 무엇보다도 그로 인해서 자신이 준남작이라는 것이 알려지길 원치 않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