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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영제국의 폐급장교 46화

무료소설 대영제국의 폐급장교: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1,120회 작성일

소설 읽기 : 대영제국의 폐급장교 46화

46화 사막의 여우들 (5)

 

 

아무래도 액운이 강하게 낀 것이 아닌가 싶다.

 

겨우 살아서 돌아왔더니, 이번에는 식중독이라니.

참으로 다이나믹하다.

 

덕분에 나는 한동안 야전병원의 간이침대에 누워서 천장만 바라보고 있어야 하는 신세가 되었다.

 

이놈의 배는 먹은 것도 없는데 시도 때도 없이 꾸르륵거렸고, 배에서 신호가 올 때마다 나는 비틀거리며 간이 화장실로 기어가야만 했다.

 

하루에도 6~7번이나 화장실을 들락날락한 탓에 온몸에선 구린내가 났고, 급기야 내가 다가서면 사람들이 알아서 자릴 피할 정도가 되었다.

 

항문은 또 어떻고.

몸에 붙어있는 살들도 쭉 빠진 탓에 뼈가 튀어나올 지경이었다.

 

정작, 나보다 먼저 식중독에 걸렸던 애덤은 먼저 회복되어 씽씽 날아다니고 있다.

 

하루에 한 번씩 내 얼굴을 보러 오는데, 식중독에 걸린 기간 동안 제대로 먹지 못한 것에 대한 울분 때문인지 손에는 늘 먹을 게 들려 있었다.

비스킷, 초콜릿, 도넛부터 군용 빵까지, 종류는 늘 다양했다.

 

"소대장님? 오늘은 좀 어떠신 것 같습니까?"

"말도 마라...... 죽겠다, 진짜. 관에 한발 먼저 들어놓은 기분이야."

"그거 참 큰일입니다. 빨리 쾌차하셔야 하는데......."

"말이라도 고맙다. 그런데 넌 어째 전보다 살이 더 찐 거 같다?"

"못 먹어서 부은 겁니다. 어제 체중을 쟀는데 자그마치 2kg나 줄어들었다니까요?"

 

......믿을 수 없는데.

 

뭐, 일단 본인이 그렇다는데 일단 믿기로 했다.

 

근데 녀석의 말이 사실이라고 해도, 본래의 몸무게로 돌아가는데 이틀이면 충분할 것 같다.

 

"고생이 많구만. 못 보던 사이에 거의 해골이 되었어."

"송구스럽습니다, 중대장님."

"다행히 사령부로부터 한동안은 별일 없을 거라는군. 그 사이 몸조리나 잘하고."

"고생이 많으십니다, 중위님."

"걱정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상사."

 

애덤뿐만 아니라 무어 대위와 게이츠 상사도 가끔씩 나를 만나러 야전병원으로 왔다.

 

장교가 칠칠치 못하게 식중독에 걸려 골골대기만 한다고 욕먹지는 않을까 걱정했는데, 다행히 그런 일은 없었다.

그들은 순전히 나를 걱정해서 보러온 것이었다.

 

주변 사람들의 걱정과 응원에도 불구하고, 내 몸 상태는 갈수록 심각해졌다.

 

잠을 자다가도 변의가 느껴져서 화장실로 전력 질주한 적도 여러 번이었고, 탈수증상이 너무 심해 현기증까지 생겼다.

 

심지어 전에 파편을 맞은 자리도 다시 덧나기 시작했다.

 

상처에선 누런 진물이 질질 흘러나와 시트를 적셨고, 미칠듯한 간지럼증과 구토감이 휘몰아쳤다.

 

나를 진료하던 군의관도 딱히 마땅한 방법이 없는지 심각한 얼굴이었다.

 

결국,

 

"......지금, 후송, 이라고 말씀하셨습니까?"

"그래. 아무래도 주변 환경 때문인지 도통 차도가 보이질 않는군. 게다가 다른 환자들도 넘쳐나고 말이야. 제대로 된 설비가 갖춰진 병원에서 치료를 받으면 지금보다는 상태가 나아질 걸세."

 

전 대한민국 육군 예비역 병장 이규태.

현 대영제국 육군 중위 아서 그레이,

 

식중독으로 후송 결정.

 

***

 

"하하하! 대승이야, 대승!"

 

총통관저는 아침부터 활기가 넘쳤다.

 

알렉산드리아 함락에 성공했다는 롬멜의 전보를 받아든 히틀러는 생일날 가장 갖고 싶어 하던 선물을 받은 어린아이처럼 기뻐서 어쩔 줄 몰랐다.

 

"롬멜, 내 그 친구가 해낼 줄 알았지! 역시 아프리카로 보내길 잘했어!"

"이게 다 총통 각하의 뛰어난 전략안 덕분이 아니겠습니까!"

 

괴벨스는 열심히 히틀러의 말에 맞장구를 치기 바빴고, 괴링은 그런 괴벨스를 아니꼬운 눈으로 쳐다보면서도 웃음을 유지했다.

 

"이걸로 크리스마스 전에는 수에즈 운하에 닿을 수 있겠군. 독일 국민에게도 최고의 크리스마스 선물이 될 거야."

"그렇습니다, 총통 각하."

"영국인들에게도 뜻깊은 교훈이 되겠지요."

 

이때다 싶은 괴링이 거들자, 히틀러는 만족한 듯 호탕한 웃음을 터뜨렸다.

 

"그래, 영국인들이 있었지, 참! 처칠, 그 늙은 불독도 얼마 못 가 알게 될 거야. 위대한 독일에 맞서려다간 큰코다치게 된다는 것을."

 

한동안 웃으며 담소를 나누던 히틀러는 다시 지도로 고개를 돌렸다.

 

북아프리카 전장이 그려진 지도 위에 다닥다닥 놓인 검은색 말판이 붉은색 말판을 압박하고 있었는데, 히틀러는 붉은색 말판 2개를 치우고 그 자리에 검은색 말판 2개를 추가로 배치했다.

 

"카이로 점령이 마무리되면, 롬멜을 다시 베를린으로 불러야겠군. 그동안 고생했으니, 훈장을 줘야 하지 않겠나. 이번에는 백엽기사십자장이 되겠군. 아, 그러고 보니 롬멜의 계급이 아직 소장이지? 지금 당장 롬멜에게 전하게. 소장에서 중장으로 진급했다고 말이야."

"알겠습니다, 총통 각하."

 

히틀러의 얼굴에는 웃음기가 싹 사라지고 평소의 엄숙함과 진지함이 남았다.

 

그는 한동안 지도를 노려보다가 막대기가 달린 돋보기로 지도의 한 곳을 지목했다.

 

"수에즈 운하를 손에 넣으면 우린 아시아로 갈 수 있게 되지. 그런데 다만...... 여기가 문제로구만."

 

히틀러가 지목한 곳은 수에즈 운하에서 한참 서쪽에 있는 튀니지였다.

 

"할더 장군, 영국군은 어디까지 진격했지?"

"현재 튀니지 국경까지 진격했습니다. 본격적인 전투는 아직 없다고 합니다."

 

육군참모총장 프란츠 할더 상급대장은 히틀러의 물음에 즉각 대답하며 손으로 알제리와 튀니지 사이를 가리켰다.

 

"예상했지만, 역시나 프랑스군은 영국군의 상대가 되질 않았습니다. 기껏 포로도 풀어주고 장비도 돌려줬는데도 말입니다."

 

할더는 프랑스군의 붕괴가 마땅찮은 듯 미간을 찌푸렸다.

 

하지만 히틀러는 덤덤한 태도를 유지했다.

 

"그런가? 나는 그치들이 내 예상보다 더 오랫동안 버텼다고 생각하는데. 뭐,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다만."

 

히틀러는 이미 이 모든 일을 예상했다는 말투였다.

 

만약, 프랑스군이 전투 없이 영국군에게 항복했다면 히틀러는 즉시 비시 프랑스의 자치권을 박탈하고 군대를 동원해 남프랑스까지 집어삼킬 계획이었다.

 

하지만 프랑스군은 나름 필사적으로 싸워 영국군에게 많다고는 할 수 없지만, 그래도 적지 않은 손실을 안겼다.

 

페탱은 프랑스군의 분투를 히틀러에게 알렸고, 히틀러 역시 미리 보고받아서 알고 있었다.

 

"결국에는 졌지만, 페탱은 할 만큼 했다고 생각하는 것 같더군. 여러분의 생각은 어떤가?"

"어쭙잖은 변명거리입니다, 총통 각하. 분명 자신들의 책임을 피하기 위해 거짓말을 하는 겁니다."

 

괴링이 콧방귀를 뀌며 말했고, 다른 장성들도 이에 동의하는 분위기였다.

 

히틀러도 괴링의 말에 어느 정도 동의했지만, 그래도 그가 보기엔 '프랑스군'치고는 제법 싸운 것처럼 보였다.

 

그는 프랑스가 독일을 배신할 의도는 없다고 판단했다.

 

"아무튼 '아틸라 작전'은 취소해도 좋을 것 같군. 당장은 저들이 우릴 배신하지는 않을 것 같으니 말이야. 이의 있는 사람은 말하게."

 

히틀러의 물음에 참석자들은 침묵으로 답했다.

 

전원 만장일치로 이의 없음.

 

이로써 비시 프랑스의 목숨은 연장될 수 있었다.

 

***

 

한편,

 

알제리를 장악한 영국군은 튀니지 공격을 감행했다.

 

사실, 이는 예정에도 없던 일이었다.

공격할 계획 자체는 있었지만, 이렇게나 빨리 공격할 생각은 결코 아니었다.

 

이제 막 알제리를 장악했는데, 그동안 소요된 연료와 탄약의 보충, 그리고 병사들에겐 휴식이 절대적으로 필요했다.

 

이제 막 중간고사가 끝난 학생에게 기말고사를 치르게 하면 어떻게 될까?

 

그 미친 짓을 처칠은 강요하고 있었다.

 

런던으로부터 즉각 튀니지를 공격하라는 명령을 받은 현장 지휘관들은 지금 당장은 무리이며, 못해도 3주간의 휴식과 준비기간이 필요하다고 보고했다.

 

이 3주라는 기간도 어디까지나 최소한으로, 원래대로라면 넉넉하게 5, 6주는 잡아야 했다.

 

하지만 처칠은 단호했다.

그는 현 상태에서 공세는 불가하다는 보고에 거의 발작을 일으켰다.

 

"시끄럽고, 지금 당장 공격하도록! 빨리 튀니지를 장악해야 적들로부터 카이로를 지킬 수 있단 말일세! 시간이 없다고!"

 

처칠의 히스테리에 영국군은 하는 수 없이 공세에 나설 수밖에 없었다.

 

장거리 여정으로 지칠 대로 지친 병사들과 엥꼬 나기 일보 직전인 전차와 트럭을 몰고서.

 

당연하지만, 그 결과는 처참하기 짝이 없었다.

 

"포탑 돌려! 2시 방향에 적 전차다!"

"아니, X발! 저건 88이잖아? 어째서 저놈이 여기에─."

"중대장이 당했다!"

 

튀니지 방어선을 향해 무지성 돌격을 감행한 영국군을 기다리던 상대는 다름 아닌 독일군이었다.

 

튀니지는 프랑스의 식민지였지만, 이곳까지 영국에게 빼앗기면 리비아는 물론 이탈리아 본토와 남프랑스가 위험해진다는 것쯤은 군에서의 최종 계급이 일개 하사에 불과한 히틀러도 아는 상식이었다.

 

영국군이 튀니지를 공격할 기미를 보이자 히틀러는 만일의 경우를 대비하여 튀니지에 배치한 독일군 병력을 동원했다.

 

프랑스 전장에서 악명을 떨쳤던 88이 등장하자 영국군은 충격과 공포에 빠졌다.

 

악마의 무기 88이 쏘아대는 포탄에 맞은 전차는 그대로 불타는 강철 관짝으로 전락했고, 전차들이 터져나갈 때마다 병사들의 멘탈도 함께 터졌다.

 

"도망쳐!"

"이건 미친 짓이야. 나는 여기서 나가겠어!"

 

당연하지만 독일군은 영국군을 곱게 보내줄 생각이 없었다.

 

진격을 멈추고 후진하는 영국군 전차들을 향해 88은 사정없이 불을 뿜었다.

또 한 대의 마틸다 전차가 철갑탄을 직격으로 맞고 포탑과 차체가 분리되었다.

 

"좋아, 계속 명중이군. 다들 잘하고 있어."

 

빌헬름 마이어 대위는 영국 전차들이 폭발하는 광경을 보며 악마같이 웃었다.

 

그의 부하들 중에선 왜 우리가 프랑스 놈들을 위해 싸워야 하냐고 불평하던 이들도 있었지만, 막상 전투에 돌입하자 언제 그랬냐는 듯 임무에 최선을 다했다.

 

어찌 되었든 간에 임무는 임무였으니까.

 

마이어의 아버지는 1차대전에 기병대 장교로 참전했다가 영국군의 포격으로 다리를 잃었다.

그 대가로 훈장을 받았지만, 전쟁에서 진 마당에 훈장은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었다.

 

마이어가 사관학교에 진학하고 얼마 되지 않아 아버지는 숨을 거두었다. 그리고 지금, 마이어는 아버지와 같은 계급의 장교가 되어 아버지가 싸웠던 적들과 싸우고 있었다.

 

아버지가 지금 이 자리에 계셨다면, 틀림없이 미소를 지으셨겠지.

 

마이어는 자부심을 느끼며 자신의 목에 걸린 1급 철십자훈장을 만지작거렸다.

 

전쟁이 끝나면 아버지의 무덤으로 가서 평소에 좋아하셨던 슈납스 한 잔과 함께 훈장을 바칠 생각이었다.

 

정면에서 88이 포격을 가하는 동안, 프랑스군의 전차대가 퇴각하는 영국군의 측면을 공격했다.

 

소뮤아 S35 전차들이 일제사격을 가하자 몇 대의 마틸다 전차들이 연기를 내뿜으며 주저앉았다.

 

"명중! 재장전!"

"영국 놈들이 도망치게 냅두지 마라!"

 

3면에서 쏟아지는 공격도 버거운데 하늘에서조차 공격이 가해졌다.

 

슈투카들이 급강하하며 폭탄을 투하하자 수십 톤짜리 전차들이 축구공처럼 공중으로 붕 떠올랐다가 거꾸로 처박혔다.

 

영국군의 공세는 완벽하게 실패했다.

 

수십 대의 전차들과 그 수십 배나 되는 전사자들을 튀니지 허허벌판에 남겨둔 채로.

 

전황은 악화일로로 치닫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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