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드 카일러 6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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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434회 작성일소설 읽기 : 위드 카일러 64화
위드 카일러
위드 카일러 3권 - 14화
제국력 1384년 10월 15일.
“정말로 이대로 그냥 떠날 생각이야?”
레인의 물음에 위드는 미안하다는 듯 그를 바라봤다. 영지가 어떤 위기에 처했는지 뻔히 알면서도 느긋하게 시간을 보낼 여유가 없었다.
“라인하르트 공작님을 뵙고 가면 좋을 텐데.”
“도움을 받았으니 마땅히 그래야겠지만 지금은 시간이 없어서. 나중에 반드시 찾아뵙고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고 대신 전해줘.”
라이너가 아무리 후작의 아들이라고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공작가 그것도 실세 중의 실세인 클라우드 공작가에서 그렇게 대범하게 나갈 수 있었던 것은 다 믿는 구석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맥케이 라인하르트 공작.
라이너는 자신이 아버지인 콜 에드만 후작에게 위드의 이야기를 했고, 끈질긴 설득을 한 결과 콜 에드만 후작이 맥케이 라인하르트 공작의 도움까지 얻어내서 일로니아 영지에 발을 들여 놓았던 것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쉽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다행이도 몬스터 혈풍이 일어나면서 클라우드 공작이 영지를 비워 일이 수월하게 해결될 수 있었다.
레인도 위드가 얼마나 급한지 알기에 더 이상 붙잡지는 않았다.
“그래, 잘 말씀드리도록 할게.”
“고맙다. 레인.”
레인은 웃으며 위드를 바라보다 라이너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그는 일로니아 성을 나올 때부터 말수가 급격하게 줄어들어 있었다.
물론, 그가 왜 그러는지 잘 알고 있었다.
“라이너.”
위드의 부름에 라이너가 그를 바라봤다.
“응?”
무슨 말이 필요할까?
위드는 그냥 웃으며 인사했다.
“가볼게. 네 도움은 절대로 잊지 않을게.”
“당연히 그래야지! 위드 너 임마, 나한테 아주 큰 빚을 진거야! 그거 절대로 잊어버리면 안 돼! 알고 있지?”
“물론이지.”
알고 있으면 됐다는 듯 라이너는 위드의 어깨를 가볍게 툭툭! 쳐주었다.
“몸조심해라.”
“그래.”
이어서 라이너와 레인은 피에나와도 인사를 하고 연금술청까지 바래다줬다. 그리고 둘이 드래번을 타고 떠나는 모습까지 본 후에야 발걸음을 돌렸다.
“레인.”
라이너의 음성은 여느 때와는 다르게 착 가라앉아 있었다. 레인은 대답 대신 그를 가만히 바라봤다.
“나는 말이야, 형들과는 어머니가 달라. 그래서 아버지의 인정을 받기 위해서 정말로 노력했어. 네드벨 아카데미에 입학이 결정되었을 때, 아버지가 내게 한 말이 뭔지 알아?”
레인은 여전히 말없이 이야기를 들어주기만 했다.
라이너는 웃으며 대답했다.
“아버지가 날 꽉 끌어안으면서 ‘라이너! 네가 내 아들이라서 자랑스럽다! 앞으로도 내 자랑스런 아들이 되어다오!’라고 말씀하셨지. 그때 내 기분이 어땠냐면 정말로 모든 것을 다 가진 것 같았어. 그 동안 내게 그런 모습을 한 번도 보여주지 않으셨던 아버지였거든. 또, 겉으로는 날 친절하게 대해주지만 속으로는 날 경멸하는 형들보다 인정받았다는 사실, 형들과 나는 전혀 다르다는 사실. 이 모든 것들이 날 행복하게 만들었어. 그리고 내 자신에 대해서 스스로 자랑스러웠지.”
자신의 모든 것을 꺼내 놓기라도 하듯 라이너는 그렇게 계속해서 쉬지 않고 이야기를 풀어 놓았다.
“네드벨 아카데미에 입학을 하고 또래의 친구들을 보면서도 마찬가지였어. 지금은 나보다 검술이나 체술이 뛰어날지 몰라도 한순간일 뿐이라고 생각했지. 난 아버지의 인정을 받았고, 형들보다 뛰어난 아들이니, 노력하면 얼마든지 그들을 뛰어넘을 자신이 있었으니까. 그런데…….”
라이너는 깊게 한 숨을 내쉬었다.
“내가 얼마나 자만했는지 깨달았다. 카인이나 위드는 내가 생각하지도 못하는 곳에 있었어. 나보다 조금 뛰어날 뿐이라고 생각했는데…… 모든 게 내 착각일 뿐이었지.”
이야기는 길었다.
레인은 라이너가 느낀 감정을 완전히 이해할 수 없었지만 그가 현재 어떤 기분인지는 알 수 있었다.
“처음에는 카인과 위드의 실력이 나보다 훨씬 뛰어나서 샘도 났는데. 지금은 그런 게 아니야. 화가 나. 내 자신에게 화가 나! 정말로 내 친구라 여기는 위드가 어떻게 될지도 모르는 위험한 곳으로 가는데 난 아무것도 도움을 줄 수 없다는 사실이 너무 화가 나!!”
라이너의 눈을 붉게 변해 있었다.
레인은 라이너의 어깨를 잡아주었다.
“위드는 강하잖아. 우리보다 훨씬 강하고 똑똑하니까 괜찮을 거야. 지금은 우리가 큰 도움이 되지 못하지만 나중이 있잖아?”
레인의 말에 라이너는 빙긋 웃었다.
“그렇지? 나중이 있겠지? 나중에…… 나중엔 우리가 정말로 위드를 도울 수 있을 거야.”
“물론이지!”
한결 기분이 좋아진 라이너의 모습에 레인도 빙긋 웃었다. 그러다 문득, 레인이 물었다.
“그런데 왜 우리가 위드를 도와야만 한다고 생각하는 거야?”
라이너는 킥킥거리며 웃었다.
“녀석은 페르만 왕국에서 귀족 대접도 제대로 받지 못하는 준남작에 황폐한 영지를 지닌 가난한 영주잖아! 킥킥!”
듣기에 따라선 위드를 모욕할 수도 있었지만 레인은 라이너의 말뜻이 무엇인지 알고 있기에 마주 웃을 수 있었다.
***
제국력 1384년 10월 20일.
페르만 왕국 프레타 성.
“비켜 이 새꺄!!”
쿠당탕!
거친 욕설과 함께 병사의 몸이 옆으로 나뒹굴었다.
그리고 그 빈자리를 눈이 부리부리하고, 콧잔등에 검상이 있는 사내가 채웠다. 그리고는 두 손으로 쥔 배틀 액스(Battle axe)를 무식할 정도로 강력하게 휘둘렀다.
퍼어억!
배틀 액스의 번들거리는 날이 성벽을 타고 올라오던 트롤의 머리를 좌우로 갈라버렸다. 그걸로 부족한지 사내는 다시 배틀 액스를 뽑아내기가 무섭게 바닥에 떨어진 두 생거(Do sanga : 포크와 비슷한 모양으로 날이 물결 모양인 장창의 일종)를 집어 들고 그대로 성벽에 매달려 있는 트롤의 몸을 사정없이 찔렀다.
콰가가각! 콰가가각! 콰가가각!
소름끼칠 정도의 뼈와 근육, 살이 발리는 소리에도 사내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계속해서 두 생거를 트롤의 몸에 쑤셔 넣어 완전히 너덜너덜해지도록 온몸을 찢어 놓았다.
트롤이 완전히 재생 불가능이 되어 성벽 바닥으로 떨어지자 그제야 사내는 두 생거를 자신이 밀친 병사에게 내던졌다.
“멍청아! 뒈지고 싶지 않으면 정신부터 똑바로 차려! 퉤!!”
걸쭉하게 침을 뱉어낸 사내는 어깨에 배틀 액스를 걸치고 어슬렁어슬렁 성벽을 거닐었다. 그러다 위험에 처한 병사가 보이면 잽싸게 달려가 대신 몬스터를 처리하곤 했다.
몬스터들의 공격을 막아내는 프레타 성벽엔 사내와 같이 병사가 아닌 듯한 남자들이 상당수 눈에 띄였다.
그들은 적극적으로 몬스터들을 죽이기보다는 어려움에 처한 병사가 있으면 간간히 도와주는 식으로 싸움을 벌이고 있었다.
“모든 힘의 근원이여, 지옥의 불길마저도 잠재울 수 있는 차가움이여, 지금 그대의 힘을 빌려 내 앞의 적을 상대하려 하니 그대의 힘을 보여라! 워터 스트라이크(Water Strike)!”
츄아아아아-!!
꾸이이익!!
쉬이익! 쉬이익!!
크우우우우!!
프레타 성의 정면에 모여 있는 몬스터들 사이로 족히 지름이 6미르(m)는 될 법한 거대한 물기둥이 치솟아 올랐다. 그 물기둥에 몰려 있던 오크, 리저드맨, 고르곤 등의 몬스터들이 한꺼번에 온몸이 산산 조각나며 사방으로 튕겨져 나갔다.
“히덴 가르시아 님의 마법이다!!”
“히덴 가르시아 님께서 나타나셨다!!”
“우와아아-!!”
한 병사의 외침대로 성의 첨탑에는 백발을 너풀거리며 히덴 가르시아가 한 손에 마법서를 들고 엄청난 마나의 격류를 제어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주변으로 둘러싸듯 포진하고 있던 5명의 마법사들이 동시에 마법주문을 외쳤다.
“모든 힘의 근원이여, 하늘과 땅을 스쳐가는 자유로운 바람이여, 지금 그대의 힘을 빌려 내 앞의 적을 상대하려 하니 그대의 힘을 보여라! 윈드 토네이도(Wind Tornado)!”
휘이이이이잉-!!
5클래스의 중급마법사 다섯 사람의 마나가 함께 모아진 윈드 토네이도다. 그 위력은 제아무리 6클래스 상급마법사 히덴 가르시아라 하더라도 흉내 낼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엄청난 크기로 생성된 회오리바람은 그대로 몬스터들을 휩쓸고 지나가기 시작했다.
꾸이익! 꾸이이익!!
작은 오크부터.
므우우우우!!
초대형의 크기를 자랑하는 미노타우로스까지, 회오리바람에 휩쓸린 몬스터들은 살과 뼈가 갈기갈기 찢어져 사방으로 날았고, 그들의 피가 다른 몬스터들을 흠뻑 적셨다.
동시에 곳곳에서 캐스팅을 끝낸 마법사들이 각각 자신이 펼칠 수 있는 최고의 마법들을 펼치기 시작했다.
화염의 창, 물의 창, 압축된 공기의 폭발, 칼과도 같은 바람, 날아가던 돌의 폭발, 마른하늘에서 떨어져 내리는 날벼락 등 프레타 성을 중심으로 인정사정없이 시작된 마법 공격은 순식간에 수백 마리의 몬스터들을 죽음으로 몰아갔다.
그럼에도 프레타 성을 향해서 달려드는 몬스터들의 숫자는 수천이 넘었다. 마법사들의 공격이 용기를 북돋아 줬는지 병사들은 더욱더 힘차게 병기를 휘두르며 몬스터들과 싸움을 벌였다.
“기병대 준비이이!!”
기병대 대장의 외침에 성벽 한 쪽에 일렬로 서 있던 기병대가 각각 양손에 프랑시스카를 들고 성벽 아래를 내려다보기 시작했다.
“투처어어억-!!”
휘익, 휘익, 휙휙휙휙-!!
빙글빙글 회전을 하며 날아간 프랑시스카는 몬스터들의 몸, 머리, 어깨 할 것 없이 사정없이 박혀 들어갔다. 그리고 또 다시 두 번째 투척이 이어졌다.
하지만 몸에 프랑시스카를 꽂은 몬스터들은 잠시 움찔 거리거나, 쓰러지기만 할 뿐, 여전히 몸을 움직여 성벽을 향해서 빠르게 달려들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두 번의 투척을 마친 기병대는 할 일이 있다는 듯 빠르게 성벽을 내려가 성안으로 사라져버렸다.
크와아아아악!!
크와아아아아-!!
커다란 괴성과 함께 몬스터들의 무리 속에서 수십 마리의 오우거들이 한꺼번에 프레타 성을 향해서 달려들기 시작했다. 그들은 자신들의 앞을 막는 오크, 고블린, 리저드맨, 심지어 트롤까지도 발로 걷어차고, 밟아 뭉개며 달려들었다.
“오, 오우거들이 움직인다!!”
“오…… 오우거다!!”
병사들은 한 마리도 아닌 수십 마리의 오우거들이 한꺼번에 프레타 성으로 달려들자 두 눈을 동그랗게 뜨며 비명을 내질렀다.
“눈뜨고 죽을 셈이야!!”
쿠당!
한 병사가 오우거들의 움직임에 얼어 멍하니 서 있자 곁에 있던 중년 남성이 거칠게 그를 밀어내며 투 핸드 소드를 휘둘렀다.
퍼어어억-!!
투 핸드 소드는 리저드맨이 휘두르던 손을 박살냄과 동시에 머리통을 수박 깨트리듯 터트려 버렸다. 그리고 남성은 병사의 두 생거를 집어 들어 사정없이 리저드맨의 몸통을 쑤셔 찢어버렸다.
남성이 아니었으면 리저드맨의 손에 병사는 죽었을 것이다.
“가, 감사합니다.”
“오우거는 저들이 상대하니까 괜한 걱정 따윈 하지 마! 여긴 네가 지켜야 하는 자리다! 네가 지키지 못하면…… 네 가족은 죽는다고 생각해!”
남성은 그렇게 말을 하곤 두 생거를 돌려주었다. 두 생거를 받아든 병사는 한층 밝아진 눈으로 고개를 끄덕이고는 남성의 시선이 머문 곳으로 눈을 돌렸다.
그곳엔 여덟 명의 남자가 질서정연하게 서 있었다.
자신이 상대하던 몬스터를 죽이거나, 잠시 쉬고 있던 병사들이 모두 그들만을 바라봤다.
“역시 이 맛이라니까! 킥킥!”
커닝은 자신을 주시하는 병사들의 모습에 더욱더 어깨에 힘을 줬다. 그런 그의 모습에 곁에 있던 루카가 핀잔을 줬다.
“언제는 때려 죽여도 기사짓 못한다며?”
“루카 경! 왜 자꾸 옛일을 들추고 그러나? 이제 기사도 됐으니 좀 더 근엄하게, 존경받는 기사답게 행동을 하라고! 쯧쯧쯧, 이래서 기사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니라니까!”
“이, 이 자식이 진짜!!”
커닝의 말에 루카가 두 눈을 부라리며 몸을 들썩 거리자 가스파가 대머리에 핏대를 세우며 호통을 쳤다.
“이 미친 새끼들! 니들은 지금 상황이 웃고 떠들 상황 같냐? 네놈들은 도대체 나이를 어디로 처먹은 거냐? 다 똥구멍으로 처먹었냐!”
“이거 왜 이러시나? 가스파 경, 당신도 우리랑 크게 다르지 않잖아! 이제 와서 우리랑 다른 것처럼 그러면 섭섭하지!”
“이 미친 새끼가!!”
“모두 조용!!”
모리슨의 낮은 호통에 티격태격 거리던 세 사람은 움찔 거리곤 입을 꾹! 다물었다.
“모두 트랜트 아머를 착용한다!”
마로크의 명령에 기다렸다는 듯 여덟 사람 모두 트랜트 아머를 착용하기 시작했다.
빛이 번쩍이며 아공간을 통해서 트랜트 아머를 착용하는 그들의 모습은 그야 말로 장관이 아니라 할 수 없었다.
“드디어 나왔다!!”
“트랜트 아머다!!”
“최고다!! 최고야!!”
“우와아아아-!!”
목이 터져라 환호하는 병사들의 모습에 트랜트 아머를 착용한 커닝은 더욱더 킥킥 거리며 좋아했다.
“2인 1조로 나누어 철저하게 오우거만 상대한다! 다른 몬스터는 그 이후다! 알겠나?”
“알겠습니다!!”
우렁찬 외침에 마로크는 검을 뽑아들며 가장 선두에서 달려 나갔다.
“프레타 기사단 출겨어어억-!!”
“와아아아아-!!”
크게 기합을 내지르며 달려가는 프레타 기사단.
고작 8명뿐인 초라한 인원이었지만 그들은 용감하게 성벽을 타고 내려가 수십 마리의 오우거들을 향해서 달렸다.
그 모습을 보고 병사들은 더욱더 큰 목소리로 프레타 기사단을 응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