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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영제국의 폐급장교 31화

무료소설 대영제국의 폐급장교: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1,148회 작성일

소설 읽기 : 대영제국의 폐급장교 31화

31화 횃불 작전 (5)

 

 

"일단 시작은 순조로워서 다행이구만."

 

아군의 모로코 상륙이 성공했다는 보고를 받은 알렉산더는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이로써 며칠간은 처칠의 성화에서 안전할 수 있겠군.

 

그러나 이제 시작일 뿐이다.

 

상륙에 성공한 것은 어디까지나 첫 단추를 낀 것에 지나지 않는다.

옷을 입으려면, 나머지 단추들을 모두 끼어야 하는 것처럼 전황을 뒤집으려면 더 많은 성공이 필요하다.

그야말로 첫발을 디딘 거나 다름이 없다.

 

알렉산더는 턱을 괸 채 지도를 내려다보며, 독일이 어떻게 나올지 곰곰이 생각해봤다.

 

그 자신의 의도대로 나와준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그게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라는 걸 그는 알고 있었다.

 

독일과 이탈리아가 모로코를 무시한 채 이집트 공격을 계속할 가능성이 현재로선 더 컸다.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으려면, 아군은 한시라도 빨리 서쪽으로 진격해 프랑스령 북아프리카를 완전히 장악해야 했다.

 

리비아는 물론, 시칠리아와도 지리적으로 가까운 튀니지가 영국군의 손에 넘어가면 독일과 이탈리아도 더 이상 이집트에 전력을 집중할 수는 없을 것이다.

 

알렉산더는 오늘도 가슴이 무거워지는 것을 느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시계를 살펴보았다.

 

현 시각은 오후 4시 3분.

 

성실한 대영제국 국민이라면 차를 마시러 갈 시간이었다.

 

***

 

영국군이 자국의 식민지인 모로코에 상륙했다는 소식은 곧 비시 프랑스에도 전해졌다.

 

소식이 전해졌을 당시, 비시 프랑스의 수장 앙리 필리프 페탱은 총리 피에르 라발과 함께 회의 중이었다.

 

"간악한 영국 놈들이 기어코! 7월에는 우리 함대를 기습하다니, 이제는 모로코까지 빼앗으려고 들어!"

 

라발은 이를 갈면서 탁자를 주먹으로 내리쳤다.

 

영국에 인도가 있듯, 프랑스에 모로코와 알제리가 있었다.

 

그 외에도 프랑스에 여러 식민지가 있었지만, 모로코와 알제리에 비하면 그 중요성은 현저하게 떨어졌다.

 

근데 그런 중요한 곳에 영국군이 상륙했다니.

 

영국으로 치자면 인도에 프랑스군이 상륙한 것과 진배없는 일이었다.

 

페탱 역시 심각하게 반응했다.

 

하지만 오랫동안 군에 몸을 담아왔던 노원수의 생각은 달랐다.

 

그는 먼저 왜 영국군이 모로코에 상륙했는지부터 생각했다.

 

몰타를 잃고, 이집트까지 위험해진 상황인데 대체 왜 모로코를?

 

답을 구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몰타를 잃었으니, 이집트로 증원군을 보내려면 대서양을 빙 돌아서 희망봉을 지나야 한다.

 

그러려면 시간이 너무 많이 소요되니, 차라리 리비아의 뒷문이라 할 수 있는 프랑스령 북아프리카를 치기로 한 것이겠지. 마치 새로운 관문을 열 듯이.

 

영국군이 튀니지까지 손에 넣으면, 리비아는 물론 시칠리아도 위험해질 테니 독일군은 어쩔 수 없이 이집트 공략을 포기하고 리비아 방어에 집중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야말로 한창인 공세에 힘을 실어줄 전력을 덜어내야만 한다.

당연히 이전처럼 파상공세는 힘들어질 거다.

 

영국 놈들, 머리 좀 굴렸구만.

 

"현재 전황이 어떤가?"

"사피와 카사블랑카, 라바트가 넘어갔으며 영국군은 현재 내륙으로 전진 중입니다. 아군이 저항 중이지만, 숫자도 밀리고 장비도 열세라 전황이 그리 밝지 않습니다."

 

그야 그렇겠지.

쓸만한 무기들은 모두 독일군에게 넘어갔거나 본토에 있고, 식민지에 주둔 중인 부대는 모두 구식 장비로 무장한 2선급 부대니까.

 

그러나 페탱은 영국이 자국의 식민지를 집어삼키는 꼴을 마냥 두고 볼 생각은 전혀 없었다.

 

게다가 그는 며칠 전 히틀러와 만나 회담을 했다.

 

히틀러는 그에게 독일 내 포로수용소에 갇힌 프랑스군 포로들을 단계적으로 석방할 수 있음을 시사했다.

 

물론, 어디까지나 프랑스가 독일의 전쟁 수행에 적극적으로 협력할 경우에 한해서 말이다.

 

페탱은 히틀러에게 프랑스는 전적으로 '새로운 동반자'인 독일에게 적극적으로 협력할 걸 약속하며, 우선적으로 프랑스군 포로 수천 명을 석방하는 데 합의에 성공했다.

 

하지만 여전히 수십만 명의 포로들이 독일에 갇혀 있었다.

 

그들을 조국의 품으로 데려오기 위해선 최소한 겉으로라도 독일에 협력하는 모습을 보일 필요가 있었다.

 

"당장 알제리 주둔군에게 명령해 모로코로 진군하라고 명령해야 합니다, 각하."

 

라발이 말했다.

 

하지만 페탱의 생각이 달랐다.

 

"아니. 그럴 수 없네."

"예? 아, 아니, 각하. 어째서 그러십니까?"

 

예상 밖의 대답에 라발은 당황했다.

어찌나 당황했는지 말도 더듬을 정도였다.

 

"알제리 주둔군의 상황도 그리 좋진 않아. 장비도 구식에 병력도 그리 많은 편이 아니지. 모로코 주둔군에 비하면 낫겠지만, 제 코가 석 자인데 누굴 도울 수 있겠나? 분하지만 현실은 현실일세."

"그러면 어떻게 하실 계획이십니까?"

"알제리 주둔군에겐 현 위치를 사수하고 방어 태세를 더욱 굳히라고 명령해야지. 물론 본토에서 병력을 긁어모아 알제리로 보내고. 모로코는 몰라도 알제리만큼은 절대로, 절대로 잃어선 안 돼."

 

나이가 든 탓에 목이 금방 컬컬해졌다.

페탱은 물을 한 잔 마신 뒤 말을 이어나갔다.

 

"모로코 주둔군에게는 계속 저항하라고 명령하고. 영국군을 최대한 오래 모로코에서 붙들고 있어야 증원군이 지중해를 건널 시간을 벌 수 있으니 말일세. 중화기랑 전차도 긁어모아서 알제리로 보내. 본토에 남겨둬봤자 쓸 일이 없으면 무슨 소용이겠나."

"알겠습니다, 각하."

 

부관이 방을 나가려고 할 때, 페탱은 조용히 덧붙였다.

 

"그리고 독일의 리벤트로프 장관에게 연락하게. 만나서 할 얘기가 있다고."

"예? 리벤트로프 말입니까? 무슨 얘기를 하시려고 그러십니까?"

 

라발의 물음에 페탱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지금 본토 병력과 장비만으론 알제리조차 지키는 것도 힘드네. 독일에 요청해서 병력을 빼 와야지. 그들에게 무기를 쥐여주고, 알제리를 지키라고 해야 하지 않겠는가."

"하지만...... 독일이 그걸 순순히 허락하겠습니까?"

"그렇다고 가만히 있을 수 없지 않나? 오히려 우리가 '동맹국의 의무'를 다하겠다고 나서면 조금은 생각이 바뀌겠지."

 

노원수는 단순히 식민지에 상륙한 적을 격퇴하려는데 그치지 않고, 그 뒤까지 생각하고 있었다.

 

프랑스가 전력으로 영국과 싸우면 히틀러의 생각도 바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전쟁으로 잃었던 것들을 되찾아오는 것도 결코 무리는 아닐 것이다.

 

알자스와 로렌은 포기해야겠지.

 

대신, 독일군 점령지로 지정된 북서부 해안과 동부 지역은 되찾아올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인도차이나도.

 

9월 말, 동남아 진출을 노리던 일본군은 자기네 병력을 인도차이나 북부에 주둔할 수 있도록 인도차이나 총독부에 압력을 가했다.

 

인도차이나 주둔군만으론 일본군을 물리칠 수 없었기에 어쩔 수 없이 일본군을 인도차이나 북부에 진주시켰지만, 페탱은 '동양의 원숭이들'에게 인도차이나를 넘길 생각이 없었다.

 

영국과의 전쟁이 마무리되면, 독일의 협력을 얻어내 일본군을 인도차이나에서 몰아낼 계획이었다.

 

물론 그러기 위해선 프랑스군이 사력으로 영국과 싸워야 한다.

 

독일인들의 시선이 바뀔 수 있을 정도로, 아주 격렬하게.

 

전쟁터로 가는 청년들에겐 미안한 말이지만, 그들의 희생은 프랑스의 미래를 위해서라도 꼭 필요했다.

 

***

 

"10시 방향에 적 기관총 진지다! 포탑 돌려!"

"예!"

 

총알 세례를 받은 기관총 진지는 침묵하는가 싶더니, 다시 맹렬한 사격을 가해왔다.

아오 진짜!

 

결국, 아군 보병들이 직접 수류탄으로 진지를 날려버려야 했다.

이게 다 전차에 포탄이 철갑탄밖에 없어서 생긴 일이었다.

 

모로코에 발을 디딘 지도 벌써 사흘째.

 

아군은 내륙으로 진군 중이고, 나는 케미세트로 가는 길목을 가로막은 프랑스군과 싸우고 있다.

 

군 수뇌부는 단 1m라도 더 진격하기 위해 안달이 나 있었다.

 

하루라도 빨리 서쪽으로 진격해 튀니지에 닿아야만 이집트를 구할 수 있었다.

 

이집트를 구해야 수에즈 운하가 살고, 수에즈 운하가 살아야 인도가 산다.

 

최종적으로 인도가 살아야 영국이 산다.

 

참으로 대영제국다운 논리가 아닐 수 없다(근데 이게 또 사실이라는 게 우습다).

 

아무튼 이 불변의 논리 덕분에 죽어가는 것은 최전선의 장병들이었다.

 

높으신 분들이야 후방의 안락의자에 앉아서 편하게 지도나 들여다보면서 명령이나 내리면 끝이겠지만.

 

직접 총알이 빗발치는 전장에서 싸워야 하는 입장에선 전혀 그렇지 않다고!

적어도 쉴 시간은 줘야 할 거 아냐?!

 

전차 외부에 둔탁한 소음이 들렸다.

 

소총탄으론 이런 소리가 나지 않으니, 보나 마나 대전차포겠군.

 

아니나 다를까 왼쪽에서 번쩍거리는 섬광이 눈에 비췄다. 그리고 이어지는 금속음.

 

"애덤, 1시와 2시 방향 사이에 적 대전차포다!"

"알겠습니다!"

 

당장 적 보병들과 기관총 진지조차 제압이 어려운데, 대전차포는 답이 없다.

 

포탄은 철갑탄뿐이고, 총탄은 포방패에 막힌다면 방법은 하나뿐이다.

 

그냥 가서 그대로 밀어버려야지.

별 수 있나?

 

전차가 자신들을 향해 돌격해오자, 프랑스군 대전차포병들은 세 번째 포탄을 쏘았다. 이번에도 도탄.

 

거리가 빠르게 좁혀지자, 그제야 적들은 내 의도를 파악하고 대전차포를 버리고 달아나기 시작했다.

 

"잭슨! 갈겨버려!"

"옙!"

 

공축기관총이 한 번 긁고 지나가자 주변엔 제각기 뒤틀린 자세로 쓰러진 시체들이 널려 있었다.

대전차포도 곧 무한궤도에 밟혀 납작해졌다.

 

뒤따르는 전차들과 보병들도 열심히 적들과 총알을 주고받느라 여념이 없었다.

 

소총에 착검한 보병들이 전차들의 지원 아래 적의 참호로 일제히 돌격을 감행하고, 참호의 프랑스군은 돌격하는 아군을 향해 총을 쏘다가 공축기관총에 맞아 픽픽 쓰러졌다.

 

참호에 도달한 아군 병사들이 프랑스군을 총검으로 찌르고, 개머리판을 휘둘러 턱뼈를 박살 냈다.

 

하지만 프랑스군도 마냥 당하고 있진 않았다.

 

권총을 쏴대며 저항하던 프랑스군 장교는 항복하는 게 죽기보다 싫었는지 수류탄을 터뜨려 자폭했다.

덕분에 아군 3명이 녀석의 길동무가 되었다. 빌어먹을.

 

싸움이 거의 끝나갈 무렵, 적의 지원군이 뒤늦게 전장에 나타났다.

 

나는 관측창을 통해 녀석들이 달려오면서 일으키는 모래 먼지를 볼 수 있었다.

 

적들의 규모는 그리 크지 않았다.

 

사우러 CAT 장갑차가 4대, 보병들은 1개 소대 정도.

 

지원군이라 부르기에도 민망한 수준이다.

 

"1시 방향에 적 장갑차, 선두에 있는 놈부터 조준해!"

"조준 끝!"

"발사!"

 

간만에 주포가 불을 뿜었지만, 아쉽게도 초탄은 빗나갔다.

 

적도 기관총으로 공격해왔지만, 나는 웃어넘길 뿐이었다.

 

"장전 완료!"

 

이제까지 할 일이 없어 놀던 토마스가 철갑탄을 약실로 밀어 넣었다.

 

"침착하게 조준해. 어차피 저놈은 우릴 죽어도 못 잡아. 알겠냐?"

"예, 알겠습니다!"

"조준 끝났으면 쏴!"

"쏴!"

 

덜커덩 소리와 함께 탄피가 배출되고, 적 장갑차는 차체 전면 중앙부에 구멍이 뚫리며 정지했다.

 

"명중! 다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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