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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영제국의 폐급장교 26화

무료소설 대영제국의 폐급장교: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1,072회 작성일

소설 읽기 : 대영제국의 폐급장교 26화

26화 몰타 공방전 (4)

 

 

"간악한 독일 놈들, 설마 몰타를 노릴 줄이야......."

 

처칠은 진심으로 충격을 받은 듯 입술을 물어뜯었다.

회의 참석자들도 예상치 못했다는 반응들이었다.

 

프랑스가 무너진 직후, 처칠을 비롯한 영국 수뇌부는 독일이 곧 영국 본토를 넘볼 것이라 예상했다. 시민들도 같은 생각이었다(됭케르크 학살 이후 반전파로 돌아선 사람들의 생각은 달랐지만).

 

처칠은 독일군의 영국 본토 침공에 대비하여 영국 해변가 일대에 참호를 파고, 지뢰를 묻으며, 전차가 통과할 수 없도록 크고 난잡하게 생긴 철골 구조물과 쇠말뚝을 일정한 간격으로 배치했다. 철조망은 기본 옵션으로 깔아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부족한 병력 충원을 위해 거국적인 징병을 하는 것은 물론, 징병 대상에서 제외된 중장년층들을 모집해 홈가드(Home Guard)도 창설했다.

 

까놓고 말해서 전투력은 그리 기대할 게 못 되지만, 그래도 숫자는 많은 데다가 순찰이나 검문, 포로수용소 경비 같은 업무는 충분히 할 수 있으니 말이다.

 

만반의 준비를 하고, 독일군이 쳐들어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는데.

 

히틀러는 그들의 뒤통수를 후려치고 뜻밖의 선택을 했다.

 

바로 몰타를 공격하는 것이었다.

 

"이로써 독일의 목표가 영국 본토가 아니라 이집트라는 것은 확실해졌습니다."

 

외무장관 앤서니 이든의 말이었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지금 상황에선 하나 마나 한 소리였다. 그래서 뭐 어쩌라고?

 

"그건 알파벳을 쓸 줄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 수 있소이다.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몰타는 구하는 것이오."

 

신경이 날카로워진 처칠이 매섭게 말했다.

하지만 아무도 동조하는 이가 없었다.

 

"각하, 죄송하지만 그건 좀 힘들 것 같습니다."

 

램지의 말에 처칠은 자기도 모르게 목소리를 높였다.

 

"그건 또 무슨 말이오? 힘들다니?!"

"독일이 공수부대까지 동원했다는 것은, 이제까지처럼 공습만 하면서 수비대를 약화하는 게 목적이 아니라 섬을 완전히 장악하겠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지금 당장 몰타를 구원하기로 결정을 내리고 알렉산드리아에 명령을 전할 즈음에는 몰타는 이미 함락되었을 겁니다. 어쩌면 지금 이 순간에도......."

"그만! 그래서, 어차피 글렀으니 깔끔하게 포기하자? 그런 말이오?"

"예, 각하."

 

램지는 자신에게 떨어질 불호령을 각오하며 말을 마쳤다.

 

예상대로 처칠은 불같이 화를 냈다.

 

"말도 안 되는 소리! 몰타가 얼마나 중요한지 몰라서 하는 소리요! 몰타를 잃으면, 그다음은 이집트가 될 거고, 이집트가 무너지면 팔레스타인, 이라크...... 나아가 인도까지 위험해질 거요! 인도를 잃으면, 대영제국에 미래는 없소, 아시겠소!"

 

그걸 누가 모르겠는가?

하지만 현실이 이런데.

 

"각하, 상황을 보나 냉정하게 바라보셔야 합니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이미 몰타는 글렀습니다. 차라리 이집트 방면의 수비를 더욱 굳히는 편이 훨씬 낫습니다."

 

알렉산더의 의견도 램지와 같았다.

이어 해군과 공군 장성 몇 명이 동의를 표했다.

 

하지만 처칠은 그들의 의견을 깡그리 무시했다.

 

"듣기 싫소이다! 당장 알렉산드리아에 연락해서 몰타로 달려가라고 하시오! 가용할 수 있는 전력은 모두 동원해서! 알겠소이까?"

"각하, 그건 저들에게 죽으러 가라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램지 제독의 말이 맞습니다! 다시 한번 재고해주십시오!"

 

램지와 알렉산더의 목소리도 덩달아 커졌다.

 

회의에 참석한 관료들은 이들을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쳐다만 볼 뿐, 감히 대화에 낄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소시지 놈들은 기껏해야 공군뿐이고, 파스타 놈들은 해군과 공군 둘 다 우리 지중해 함대보다 훨씬 약체요! 무엇이 두렵다는 건가! 알렉산드리아에 있는 전력만으로도, 몰타를 충분히 구할 수 있소! 몰타를 지켜야만 이집트를 지킬 수 있다는 사실을 그대들은 어째서 모르는가?!"

"지중해 함대가 적들보다 질적으로 우위에 있긴 하지만, 몰타는 알렉산드리아에서 멀고, 시칠리아와는 가깝습니다! 가는 도중에 몰타가 함락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 그땐 어떻게 하실 겁니까?!"

"당연히 구해야지! 우리 함대가 나타나기만 해도, 몰타에 있는 독일 놈들은 죄다 꽁무니를 내뺄 거란 말이오!"

"독일군도 무턱대고 공격만 하지 않을 겁니다! 우리 해군이 몰타를 구원하러 오는 것까지 염두에 두고, 함정을 깔아놓았으면 그때는 어떻게 합니까? 까딱 잘못하다간 지중해 함대가 전멸할지도 모릅니다!"

"급보입니다!"

 

과열된 분위기는 급보 소식을 알리러 온 젊은 소령에 의해 멈추어졌다.

 

처칠이 신경질적으로 물었다.

 

"또 뭔가?"

"몰타 총독 윌리엄 도비 중장께서 전보를 보냈습니다."

 

소령의 손에는 반으로 접은 종이가 들려 있었다.

 

알렉산더가 잽싸게 말했다.

 

"읽어보게."

 

소령은 주저하면서 쪽지를 펼쳤다. 그리고 종이에 적힌 글들을 천천히 읽어나갔다.

 

"모든 상황이 절망적임. 탄약과 식량, 의약품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황이며, 발레타는 함락되었고 임디나는 포위되었음. 몰타의 군인들은 모두가 최후의 의무를 다했음."

 

회의실에는 오래도록 침묵이 이어졌다.

 

이것으로 분명해졌다. 몰타는 끝났다는 것이.

 

대영제국은 또 한 번 치욕적인 패배를 당하고 말았다.

 

***

 

런던에 마지막 메시지를 보낸 후, 도비 중장은 아직 싸울 수 있는 병사들에게 남은 탄약을 모두 분배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자신도 평소 가지고 다니던 웨블리 리볼버 권총을 들고 사령부 밖으로 나갔다.

 

구차하게 항복해서 항복 문서에 서명하는 것보다 직접 싸우다가 장렬하게 전사하는 게 훨 나았다.

 

"제군들, 대영제국의 아들들답게 용감하게 싸우다 죽자!"

 

총사령관이 직접 권총을 들고 독려하자 영국군의 사기는 일시적으로 올라갔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미 승패가 정해진 싸움의 판을 뒤집을 수는 없었다.

 

전투는 거의 막바지로 치닫고 있었다.

 

발레타항을 점령한 독일-이탈리아군은 곧바로 임디나로 몰려들었다.

 

임디나 외곽에서 독일 공수부대원들과 힘겨운 싸움을 벌이던 영국군에겐 사형선고나 다름없었다.

 

숫자에서 밀린 영국군은 임디나 외각을 포기하고 내부로 퇴각했고, 시가전이 벌어졌다.

 

공습으로 무너진 건물들의 잔해 사이로, 총알이 오가고 수류탄이 폭발했다.

 

"항복한다! 쏘지 마!"

"살려줘!"

 

전의를 잃은 병사들은 무기를 버리고 투항했지만, 전투의 소음에 가려져 그것이 들리지 않는 경우가 허다했다.

 

두 손을 들고 건물 밖으로 나오던 한 무리의 영국군 병사들은 MP40의 총구에서 튀는 불꽃에 볼링장의 핀들처럼 주르륵 쓰러졌다.

 

"얘들아, 달려라!"

 

라머스는 부하들을 이끌고 임디나 중심부로 향했다.

 

영국군의 총알이 사방에서 날아왔지만, 그는 신경 쓰지 않았다.

 

지금 그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적의 심장부에 조국의 깃발을 꽂는 거였다.

 

잠시 후 그들의 앞에 몰타의 명물, 임디나 대성당이 모습을 드러냈다.

정확히는 '대성당이었던 것'이.

 

대성당은 폭탄에 맞아 3분의 2가 날아간 상태였다.

벽은 쫙쫙 갈라진 금 때문에 발로 걷어차기만 해도 부서져 내릴 것만 같았고, 성당 뒤편에는 돌무더기에 깔려 죽은 사람들의 시체가 널려 있었다.

 

브렌 기관총을 쏘아대는 적병의 관자놀이를 조준하고 방아쇠를 당긴 라머스는 이어 수류탄을 꺼내 힘껏 던졌다.

 

폭음. 그리고 이어지는 비명 소리까지.

 

완벽했다.

 

"1소대는 좌측으로, 2소대는 우측으로, 3소대는 나를 따라서 중앙으로 간다!"

"예!"

 

그들을 막아서는 영국군은 곧 구멍투성이가 되어 땅에 널브러졌다.

 

장애물이 나오면 우회하거나 뛰어넘었다.

 

무너진 지붕 뒤에 숨어있던 영국군 병사가 쏜 총알에 맞아 하마터면 죽을 뻔했지만, 총알은 간발의 차이로 철모 위로 지나갔다.

 

라머스는 자신을 향해 총을 쏜 병사의 얼굴을 기관단총으로 곤죽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그의 시체를 지나가면서 속으로 경의를 표했다.

적이지만 도망치지 않고 용감하게 맞선, 훌륭한 군인이었다.

 

거침없이 돌진하던 라머스의 앞에 한 무리의 영국군이 막아섰다.

 

허접하게 만든 바리케이드 뒤에서 영국군 20여 명이 소총과 권총을 쏘아대며 저항 중이었다.

기관총이나 기관단총은 없는 듯했다.

 

라머스는 자세를 낮춘 뒤 바리케이드로 다가갔다. 그리고 수류탄을 꺼내 핀을 뽑고 속으로 3초를 세었다.

 

1, 2, 3!

 

수류탄을 바리케이드 너머로 던진 뒤 귀를 틀어막았다.

 

예상대로 폭음이 울리면서 누군가의 괴성이 귀에 닿았다.

 

바리케이드가 무너지자, 라머스의 부하들은 돌격을 감행해 아직 살아있던 영국군을 벌집으로 만들었다.

 

"하하하, 성공이구만!"

"대단하십니다, 중대장님!"

 

라머스는 웃으면서 철모에 쌓인 먼지를 털어냈다.

 

죽은 영국군 사이를 걷는데, 시체 한 구가 특히 눈에 띄었다.

 

수류탄에 두 다리가 날아간 시체였는데, 나이가 제법 많아 보이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처음엔 상사 이상급의 고참 하사관이나 영관급 장교인 줄 알았는데, 계급장을 보니 장군, 그것도 중장이었다.

 

"어이! 얘들아! 이것 좀 봐라!"

"무슨 일이십니까?"

 

라머스의 다급한 외침에 병사들은 의아해하며 모여들었다.

 

"이것 좀 봐라. 이 녀석, 장군 아니냐?"

"어, 맞습니다?!"

"그것도 중장이잖아?!"

"맙소사, 우리가 토미 녀석들 대가리를 잡았습니다!"

 

그 시체는 바로 몰타 총독 윌리엄 도비 중장이었다.

 

라머스는 자신이 영국군 사령관을 잡았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아 어안이 벙벙했다.

 

하지만 이내 앞으로 있을 일들을 생각하자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이 정도 전과면 진급은 기본이고, 훈장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전에 받았던 1급 철십자 훈장보다 더 격이 높은 것으로.

그래, 어쩌면 기사십자장도 가능하지 않을까?

 

***

 

2시간 뒤, 몰타의 영국군은 공식적으로 항복을 선언했다.

 

독일군 공수대위 헤르베르트 라머스 대위가 발견한 윌리엄 도비 중장의 유해는 현장에서 수습되어 배에 실린 뒤 시칠리아로 보내졌다.

 

아직도 됭케르크와 프랑스의 굴욕적인 항복이란 악재에서 벗어나지 못한 영국 시민들은 이번에는 몰타 함락이라는 충격적인 소식까지 접해야 했다.

 

반전파의 목소리는 더욱 커졌고, 자식을 전장에서 잃은 부모들의 눈물과 원망은 더욱 거세졌다.

 

시위대에 합류하는 사람들은 늘어만 갔고, 전쟁이 터지자 저자세를 유지하며 정부와 군의 정책에 협조하겠다는 뜻을 밝혔던 영국 파시스트 연합(British Union of Fascists, BUF)은 덩달아 활동을 재개했다.

 

몇 달 전에 체포되었던 BUF의 수장 오스왈드 모슬리도 옥중에서 편지를 보내 영국 정부가 잘못된 길을 가고 있으며, 그 길의 끝은 파멸뿐이라고 비판했다.

 

이전까지 BUF를 한심한 눈으로 쳐다보던 사람들조차도 이제는 모슬리와 BUF가 하는 말에 귀를 기울였다.

 

영국은 역사상 가장 큰 위기에 봉착하고 있었다.

 

동시에 몰타의 함락 소식은 우리를 전혀 뜻밖의 전쟁터로 향하게 만들었다.

 

이때까지만 하더라도 나는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

 

지금 이 소식이 내게 어떤 부메랑이 되어 날아오게 될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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