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영제국의 폐급장교 25화
무료소설 대영제국의 폐급장교: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112회 작성일소설 읽기 : 대영제국의 폐급장교 25화
25화 몰타 공방전 (3)
베를린 총통관저에서 히틀러는 최측근인 괴벨스와 레몬차를 마시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요즘 아이들은 어떤가? 한창 클 나이인데."
히틀러의 질문에 괴벨스는 빙긋 웃었다.
"키가 쑥쑥 커가는 게 눈에 보일 정도입니다. 하루가 다르게 크고 있어요."
"그렇군. 말은 잘 듣나?"
"예, 총통 각하. 제가 하는 말이라면 뭐든지 사실이라고 생각해서 때론 곤란할 때가 있습죠."
"그 나이 때는 부모가 하는 말이 곧 세상의 진실이지. 언제 한 번 놀러 가겠네. 애들이 '히틀러 삼촌'을 못 본 지 꽤 되었으니 말일세."
아이들을 보러 가겠다는 히틀러의 말에 괴벨스는 손사래를 쳤다.
"아닙니다, 총통 각하. 각종 업무로 바쁘신데 굳이 그런 수고를 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아닐세. 시간이야 만들면 되는 일이고. 애들한테 얼굴을 자주 비춰야 나중에 커서 기억이라도 할 것이 아닌가."
"하하하!"
대화가 무르익었을 무렵, 히틀러의 충실한 부하이자 최측근인 하인츠 링게 SS 중위가 문을 두드렸다.
"총통 각하?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아, 링게. 들어오게나."
문을 열고 들어온 링게의 손에는 작은 쪽지가 들려 있었다.
"시칠리아섬에서 온 전보입니다."
시칠리아란 말에 히틀러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시칠리아섬에는 그가 가장 신뢰하는 두 장군, 알베르크 케셀링 원수와 쿠르트 슈투덴트 중장이 있었다.
"이리 줘보게."
전보를 받아든 히틀러는 잠시 뒤 웃음을 터뜨렸다.
그가 원하던 소식이 짤막하게 적혀 있었다.
"좋아, 좋아. 잘 진행되고 있구만."
[하인츠 작전 1단계 성공. 현재 2단계 진행 중.]
***
몰타 점령을 주장한 구데리안의 이름을 딴 '하인츠 작전'은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었다.
공수부대의 강하가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자, 케셀링 원수는 즉시 상륙전단에게 출전 명령을 내렸다.
독일과 이탈리아군 병사들을 태운 수송함들이 지중해를 건너 몰타로 향했다.
알렉산드리아에 있는 영국 해군이 몰타에 도착하기 전에 먼저 몰타에 도착해야만 했다.
수송함이 부족해 급히 징발한 화물선과 여객선, 심지어 어선들까지 이번 작전에 동원되었다.
배에 탑승한 병사들은 가슴을 졸이며 빨리 몰타에 닿기를 바랐다.
언제 알렉산드리아에서 출항한 영국 해군 함정들이 그들을 향해 포탄을 날려댈지 아무도 모르기 때문이었다.
그들에겐 천만다행히도, 알렉산드리아의 영국군은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몰타가 공격당했다는 소식이 전해지긴 했지만, 영국군 지휘관들은 망설이고 있었다.
이미 몰타 주변에는 독일과 이탈리아 공군이 쫙 깔려있을 텐데, 무턱대고 몰타로 향하다간 이들의 밥이 되기 딱 좋았다.
게다가 몰타로 가는 도중에 몰타가 점령당했다면 그땐 또 어찌할 건가?
몰타를 수복하기 위해선 섬을 점령한 적 병력과 전투를 벌일 육군 병력이 필수적인데, 그들은 아직 출발할 준비조차 되지 않은 상태다.
무엇보다도, 아직 런던에서는 그들에게 아무런 명령도 내리지 않았다.
따라서 공식 명령이 떨어질 때까지 대기하자는 것이 영국군이 내린 결론이었다.
덕분에 독일과 이탈리아는 몰타 공략에 전력을 집중할 수 있게 되었다.
시칠리아를 떠난 함선들이 몰타에 도착하자, 병사들은 배에서 내려 육지를 향해 달려갔다.
허벅지까지 오는 파도를 헤치며 전진하는 그들이 본 광경은 공습으로 불바다가 된 몰타의 모습이었다.
철저한 공습으로 인해 해안가의 방어시설들은 대부분 파괴되었다.
많은 병사가 방공호에 있다가 그대로 매장당했다.
살아남은 극소수의 병사들은 자신들보다 몇십 배는 많은 적을 상대로 절망적인 저항을 펼쳤다.
"제리들이다! 사격해!"
폭격에서 살아남은 장교는 반쯤 정신이 나간 채 병사들에게 사격하라고 악을 썼다.
먼지를 뒤집어쓰고 찢어진 이마에서 피를 질질 흘리며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대는 장교의 모습은 가히 광인이 따로 없었다.
사실 그의 눈앞에 있는 적들은 독일군이 아니라 이탈리아군이었지만, 굳이 딴지를 거는 병사는 없었다.
아무튼 그들이 죽여야 할 적들이란 점에선 같았으니까.
루이스 경기관총과 브렌 경기관총이 불을 뿜자 전진하던 이탈리아군 몇 명이 쓰러졌다. 이탈리아군은 총알을 피해 좌우로 흩어졌다.
모래톱에 발을 디딘 병사들은 영국군 참호를 향해 사격했다.
참호에서 총을 쏘던 영국군 몇 명이 퍽 소리와 함께 고개를 숙였다.
목덜미를 타고 아래로 흘러내린 피가 땀에 찌든 셔츠를 붉게 물들였다.
해변에 상륙하는 이탈리아군의 수는 해변의 영국군이 상대하기엔 역부족일 정도로 많았다.
누가 봐도 불리한 싸움이었지만, 병사들은 물러서지 않았다.
어차피 그들에겐 도망칠 수 있는 곳이 없었다. 시가지는 공습으로 불타는 중이고, 그 외 지역들은 독일군 공수부대원들이 돌아다녔다.
퇴로가 없어 병사들은 도망치지 않았다.
적들은 계속해서 다가왔다.
"탄약! 탄약!"
"여기도 없어!"
"탄약이 다 떨어졌습니다!"
"그럼 수류탄이라도 던져! 죽은 애들 총이라도 주워서 싸우란 말이야!"
탄약이 바닥을 드러내자 영국군은 죽은 병사들의 총으로 싸웠다.
하지만 그것조차 금방 바닥을 드러냈다.
"저, 전차다!"
설상가상으로 전차까지 나타났다.
훗날 독일군에 의해 '정어리 통조림'이라고 불리는 M13/39 전차가 모래톱에 긴 궤도 자국을 남기며 굴러오자 영국군 병사들은 패닉에 빠졌다.
일부 병사들은 총알이 다 떨어진 총을 버리고 참호 밖으로 도망쳤다.
M13/39의 포탑이 회전하며 총알을 뿌리자 도망치던 병사들이 피를 토하며 쓰러졌다.
공습으로부터 기적적으로 생존한 2파운더가 해변가의 전차를 향해 불을 뿜었다.
포탄은 M13/39의 양쪽 측면을 관통해 밖으로 나갔다.
전차 바로 옆에 있던 불운한 이탈리아군은 전차의 장갑을 관통하고 날아온 포탄에 맞아 몸이 반으로 분리되었다.
그러자 이탈리아군의 공격이 대전차포 진지에 집중되었다.
포탄을 나르던 탄약수가 총탄에 맞고 쓰러지자 포반장이 탄약을 받아 장전했다.
"쏘아!"
2파운더는 재차 불을 뿜어 이제 막 해변으로 올라오던 M13/39의 전면을 맞추었다.
세 번째 포탄을 장전하던 찰나, 수류탄 다섯 개가 진지 안으로 떨어졌다.
수류탄이 터지자 이탈리아군 전차를 막을 유일한 수단은 이제 완전히 사라졌다.
해변을 지키던 영국군 병사들도 저항을 포기하고 손을 들고 참호 밖으로 나왔다.
"쏘지 마! 항복한다!"
하지만 그들을 기다리고 있던 것은 총알 세례였다.
영국군의 총격에 고생이란 고생은 있는 대로 한 이탈리아군은 분노에 차서 그들의 항복을 받아주지 않았다.
참호 바닥에 피가 점점이 뿌려졌다.
***
상황은 최악으로 치닫고 있었다.
몰타의 수도이자 섬에서 가장 큰 항구인 발레타가 1시간 전에 독일-이탈리아군의 수중에 떨어졌다는 보고가 날아오자, 몰타 총독이자 몰타 주둔 영국군 사령관 윌리엄 도비 중장은 이를 악물었다.
"113대대는 어떻게 되었나?"
"연락이 두절되었습니다, 각하."
"무전이 안 되면 전령을 보내게."
"알겠습니다."
"급보입니다! 섬 북부를 지키던 22연대가 괴멸당했습니다!"
"27연대가 퇴각을 요청 중입니다!"
"버티라고 해! 거기까지 뚫리면 끝장이야!"
"하지만 탄약이 부족하다고 합니다!"
"여기도 부족하단 말일세! 탄약이 없으면 총검으로 싸우라고!"
참다 참다 폭발한 도비 중장의 사자후에 전령은 아무 말 없이 뒤돌아서 나갔다.
의자에 털썩 주저앉은 도비 중장은 일이 어쩌다 이렇게 되었는지 생각하며 손가락으로 관자놀이를 눌렀다. 두통 때문에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팠다.
영국군 사령부가 위치한 임디나조차 안전지대가 아니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사령부 밖에선 총성이 이어지고 있었다.
독일군이 벌써 여기까지 온 것이다.
하지만 참모들 중 그 누구도 도비에게 피신해야 한다고 말하지 않았다. 어차피 갈 곳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런던에선? 아직 답이 없나?"
도비는 초조함을 느끼며 부관에게 물었다.
"'최선을 다해 싸우라'는 명령 외엔 새로운 지시 사항이 없습니다, 각하."
"......알렉산드리아는?"
"아직 아무런 답이 없습니다."
"이런 빌어먹을......!"
도비는 지금 런던이 할 수 있는 일이 극히 제한되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성의 없는 답변에 괜히 화가 났다.
설마 런던은 이미 몰타를 버리기로 작정한 것이 아닐까?
불안한 의문들이 자꾸만 샘솟았다.
자존심 센 처칠이 몰타를 그리 쉽게 포기할 것 같진 않았지만, 문제는 나머지였다.
이미 군은 병력을 보내 몰타를 구원하는 편과 이대로 과감하게 포기하는 편 둘 중에서 어떤 선택이 그나마 손해를 덜 보는 편일지 저울질하고 있을 것이다.
몰타를 가지고 있어야만 지중해의 제해권을 유지할 수 있고, 이집트의 아군에게 물자를 계속 전달해줄 수 있다.
몰타가 없으면, 아군은 이집트의 병력에 물자를 보급하기 위해선 희망봉을 돌아가야만 간다.
그 과정에서 소요되는 연료와 물자의 양과 비용은 어마어마할 테고.
허나 몰타가 이미 적들에게 넘어간 상태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몰타를 탈환하기 위해선 독일과 이탈리아가 쏟아부은 것보다 더 많은 병력과 물자가 필요할 것이다.
그런데 그것들을 쏟아붓고도 승리하지 못한다면?
그렇잖아도 됭케르크에서 정예병력이 전멸한 육군은 그야말로 대타격을 입을 것이고, 해군과 공군 또한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리되면 이집트의 안전까지 위험해진다.
이집트까지 무너지면 수에즈 운하가 독일의 손에 넘어간다.
그럼 중동뿐만 아니라 인도까지 위험해진다.
위험을 무릅쓰고 몰타를 구원해 지중해의 패권을 유지하느냐, 몰타를 포기하고 당장 남아있는 전력이라도 유지할 것인가.
둘 중 그 어느 쪽도 쉽지 않은 선택이었다.
알렉산드리아의 영국군도 괜한 모험을 하기 싫으니 런던의 명령을 기다린다는 핑계로 가만히 앉아있을 게 분명했다.
그들의 입장을 아주 이해 못 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당장 자신과 부하들이 죽거나 포로가 될 상황이었기에 도비는 울화가 치밀었다.
나만 아니면 된다, 이거지?
이러고도 독일에 맞서 끝까지 싸우자고?
허 참. 대~단한 단결력이군?
총성이 점점 더 커지는 가운데 당번병이 식사를 내왔다.
쟁반에 담긴 접시에는 구운 토스트와 완숙 계란, 베이컨 두 장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하지만 도비는 식욕이 없었다.
"나는 됐네. 다른 사람한테 주게."
"하지만......."
사령관이 식사를 안 하는데 누가 식사를 할 수 있단 말인가? 심지어 사령관 몫의 음식을?
주변 사람들 모두 배가 고파 죽을 지경이었지만, 서로 눈치만 보고 있었다.
그제야 눈치를 챈 도비는 못 이기는 척 계란과 베이컨을 집어 들었다. 그러곤 당번병에게 남은 음식은 필요한 사람들에게 나눠주라고 명령했다.
"각종 기밀문서는 전부 소각하게. 지금 당장. 고장 난 차량들과 중화기들도 모두 처리해버려. 제리들과 파스타 녀석들에게 넘겨줄 수 없으니까."
"알겠습니다, 각하. 그런데......."
"그런데?"
"태울 기름이 부족합니다."
문자 그대로 기름이 부족하다는 것인지, 아니면 기름이 부족할 정도로 서류가 많다는 것인지 애매한 말이었다.
도비는 이에 대한 해결책을 내놓았다.
"기름이 부족하면 일일이 찢어서라도 없애. 알겠나?"
"예, 각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