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영제국의 폐급장교 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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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136회 작성일소설 읽기 : 대영제국의 폐급장교 9화
9화 아라스 전차전 (2)
갑자기 쏟아진 포격은 다행히 엉뚱한 곳에 떨어져 아군에게 별 피해를 주지 못했다.
포로들의 처리는 보병들에게 맡기고, 전차대는 계속 전진하라는 지시가 내려졌다.
마을을 벗어나 전진하자, 곧 탁 트인 벌판이 드러났다.
-중대, 전진!
이윽고 전차들은 지면에 애벌레 모양의 긴 궤도 자국을 남기며 앞으로 나아갔다.
수십 대의 전차들이 대열에 맞춰 나아가는 모습은 그야말로 장관이 따로 없었다.
하지만 내 심장은 당장이라도 터질 듯이 뛰고 있었다.
나는 비상시에 몸을 피할 곳을 찾아 주변을 둘러보았다.
다행히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작은 숲이 보였다.
상황이 안 좋게 돌아가면, 당장 저곳으로 튀어야지.
만일에 대비해 애덤에게도 내 계획에 대해 알려주었다.
"야, 애덤! 내 말 듣고 있냐?"
"예, 소대장님! 듣고 있습니다."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 잘 들어. 왼쪽에 있는 저 숲 보이지?"
"예, 보입니다!"
"좋아. 나중에 내가 명령하면 곧장 저곳으로 가! 알겠냐?"
"예? 하지만 저긴 우리가 가는 방향과 다르지 않습니까?"
"새꺄, 일단 시키면 예, 알겠습니다고 대답해! 이게 다 살고자 하는......."
말이 끝나기도 전에 독일군의 공격이 시작되었다.
약 500m 정도 떨어진 거리에서 출현한 독일군 전차들이 아군을 발견하곤 포를 쏘며 달려오기 시작한 것이다.
출현한 독일군의 전차들은 2, 3호 전차와 체코제 35, 38(t) 전차들이었는데, 기관총만 달린 마틸다 1과 MK.6으론 상대가 불가능한 녀석들이었다.
곧 선두의 마틸다 2 전차들이 적들의 공격에 대응하며 반격에 나섰다.
먼저 발포하며 기세 좋게 공격해온 독일군이었지만, 그 어떤 공격에도 마틸다의 중장갑을 뚫을 수 없었다.
독일군의 포탄을 족족 도탄 시키며 전진하는 마틸다 전차들은 침착하게 포탑을 돌려 적들을 하나씩 상대해나갔다.
조금 전 자신을 향해 37mm 포탄을 발사한 마틸다는 곧장 반격에 나서, 3호 전차의 전면에 40mm 통짜 철갑탄을 박아넣었다.
쇠와 쇠가 부딪히면서 나는 굉음 사이로 폭음이 울려 퍼졌다.
전면을 관통당한 전차의 엔진에서 불꽃이 튀는가 싶더니, 이내 맹렬한 화염이 솟구쳤다.
"격파입니다!"
"나도 알아, 인마!"
애덤은 적 전차들이 한 대씩 불길에 휩싸일 때마다 본인이 격파한 것인 양 소리까지 지르며 기뻐했다.
나는 이따금 불타오르는 전차에서 탈출하는 적 전차병들을 향해 총을 쏘는 것 외에는 가만히 있었다.
딱히 우리가 낄 판도 아니었고, 적 보병들과의 사투에 대비해 총알도 아낄 필요가 있었다.
마틸다 2 전차들의 활약으로, 10여 분 만에 독일군의 전차 절반 가까이가 격파되었다.
자신들이 불리해지자, 독일군 전차들은 전투를 중단하고 일제히 물러나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본 아군 전차들은 승리를 직감하고 퇴각하는 적들을 추격하기 시작했다.
-놈들이 도망친다! 전진! 중대, 앞으로!
"젠장, 앞으로 전진!"
중대장의 명령에 나는 이를 악물며 전진 명령을 내렸다.
다만, 애덤한테는 너무 앞서가지 말고 적당히 천천히 움직이라고 일러두었다.
괜히 대열의 맨 앞에 서서 적들의 공격을 1순위로 맞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멈추지 마라, 적들이 코앞에 있다!
반면, 내 심정을 모르는-알고 있다 해도 달라질 것은 없지만-해리슨 대위는 연신 전진을 외쳐댔다.
그 자신의 전차도 중대의 선두에 있었다.
어느 용감한 35(t) 전차 1대가 격파된 전차 뒤에 숨어서 가까이 다가온 마틸다 2의 측면에 포탄을 꽂아 넣었다.
하지만, 측면을 정확히 맞췄음에도 불구하고 마틸다는 멀쩡했다.
이윽고 녀석은 경악에 빠져 후진하는 35(t)의 포탑에 철갑탄을 박아넣었다.
포탑이 요동치더니, 해치 밖으로 검은 연기가 솟구쳤다.
이어 또 한 대의 독일군 전차가 측면에 포탄을 맞고 불타올랐다.
불이 붙은 전차에서 뛰어내리던 독일군 전차병들은 아군 전차들의 기관총 세례를 피해 도망치기 바빴다.
독일군은 수십 대의 잔해를 남겨둔 채 도망치기 바빴고, 이를 놓칠세라 바짝 추격하던 아군은 어느새 독일군의 방어선과 맞닥뜨리게 되었다.
처음 아군 전차들을 맞이한 것은 형편없는 관통력을 가진 PaK 36이었다.
100m 거리에서 기껏해야 64mm를 관통하는 PaK 36으론 선두에서 돌진하는 마틸다 2 전차들을 막아내기란 불가능에 가까웠다.
십여 발의 포탄이 거의 동시에 날아왔지만, 단 한 발도 아군 전차들의 장갑을 관통하지 못하고 모조리 튕겨 나갔다.
튕겨 나간 포탄은 그대로 땅에 처박히거나 허공을 가르며 어디론가 날아가 버렸다.
무전망에는 독일군의 허접한 대전차포를 비웃는 목소리들로 가득했다.
-저런 멍청이들, 겨우 저런 무기로 맞서려고 하다니.
-병신 새끼들. 노크하냐?
그러나 비웃음과 조롱이 공포와 비명으로 바뀌기까지 겨우 10여 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
날아오는 포탄을 무시하며 돌격하던 아군은 독일군의 대전차포 진지에 도달했다.
아군 전차들이 다가오자, 독일군은 대전차포를 버리고 도주했다.
도주하는 적들을 본 아군들은 환성을 지르며 신나게 공축 기관총을 쏴 재꼈다.
모두가 승리를 확신하고 있을 때, 제자리에서 회전하며 PaK 36을 으스러뜨리던 마틸다 1대가 별안간 굉음과 함께 정지했다.
이윽고 토치로 불을 켤 때 나는 것과 비슷한 소리가 나면서 해치 밖으로 불기둥이 솟구쳤다.
뒤이어 또 한 대의 마틸다가 적탄에 맞아 불덩이로 화했다. 몸에 불이 붙은 전차병들이 비명을 지르며 전차에서 뛰어내렸다.
그들은 땅바닥에 굴러 몸에 붙은 불을 끄고자 했지만, 불은 쉽게 꺼지질 않았다.
"애덤! 뒤로 후진해! 지금 당장! 서둘러!"
"아, 알겠습니다!"
드디어 나타났군, 이런 제기랄.
두 대의 마틸다를 해치운 것이 무엇인지 나는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저 멀리 나무들 사이로 가려진 길쭉한 포신과 네모난 포방패가 어렴풋이 보였다.
알 사람은 다 아는 그 유명한 만능포, 독일의 88mm 대공포였다.
이제까지 적탄을 잘만 튕겨내던 마틸다가 한 방에 격파당하자, 아군은 당황했다.
그러는 사이에도 88mm는 인정사정없이 불을 토했다.
88mm가 불을 뿜을 때마다 아군 전차들은 처참하게 박살 났다.
아군의 무전망은 순식간에 대혼란에 빠졌다.
-저 괴물은 또 뭐야?
-후퇴, 후퇴!
-이 병신들아, 적이 앞에 있는데 어딜 후퇴하겠다는 거야? 전진해!
패닉에 빠져 후퇴를 외치는 목소리와 반대로 전진을 외치는 명령이 뒤엉켰다.
그사이 또 한 대의 마틸다가 포탑이 반으로 갈라지며 정지했다.
조종수가 해치를 열고 밖으로 나오다 화염에 삼켜져 비명을 질러댔다.
"애덤! 왼쪽으로! 당장 움직여!"
아군의 비명과 혼란을 뒤로하고 나는 미리 점찍어뒀던 숲으로 곧장 전차를 몰았다.
일단 적의 포망에서 벗어나는 게 먼저다.
이어 휘하 전차들에게도 무전을 넣어 대피할 것을 지시했다.
하지만.......
"황새 2, 황새 4는 즉시 응답하라!"
무전기에선 아무런 답이 없었다.
"황새 2, 황새 4! 응답하라!"
당황한 나는 무전기에 이상이 있나 싶어 확인해봤다.
무전기엔 이상이 없었다.
그렇다는 것은.......
"설마, 벌써 다 죽은 거야?"
소대원들로부터 아무 무전이 없자 나는 무전망을 돌렸다.
곧 해리슨 대위의 다급한 외침이 들렸다.
-중대, 퇴각해라! 퇴각!
뒤늦게 퇴각 명령이 떨어졌다.
하지만 굼벵이 같은 속도로 숲까지 가려니 시간이 제법 걸렸다.
전투는 이미 88mm에 의한 일방적인 학살극으로 변모했고, 무전망은 비명으로 가득했다.
다급하게 후진을 외치는 전차장의 목소리부터, 누군가의 처절한 절규까지.
차마 계속 듣고 있을 수가 없어 무전기를 꺼버렸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88mm의 맹공으로 덫에 걸린 토끼마냥 일방적인 학살을 당하고 있던 아군의 머리 위로 '진짜 저승사자'가 나타났다.
"슈투카다!"
바로 독일군이 자랑하는 급강하폭격기 Ju87 슈투카였다.
특유의 기괴한 사이렌 소리 때문에 곧장 녀석의 출현을 알 수 있었다.
곧이어 우측에 있던 마틸다 1 2대가 허공으로 튀어 오르며 산산조각이 나는 광경이 시야에 잡혔다.
슈투카가 투하한 폭탄에 명중한 것이었다.
한 번의 공격으로 전차 2대를 날려버린 슈투카는 다시 공중으로 날아오르며 다음 목표물을 찾아 두리번거렸다.
"애덤! 아군 전차 뒤로 숨어!"
즉시 애덤에게 격파된 전차 뒤에 숨을 것을 지시했다.
일단, 저 괴물의 눈을 속이는 것부터가 중요했다.
잔해에서 뿜어져 나오는 불과 연기 때문에 자세히 보지 않으면 우리 전차도 똑같은 잔해라고 착각할 수 있을 터였다.
덤으로 정면에서 날아오는 88mm의 공격으로부터도 안전할 수 있었다.
다행히 독일군 조종사는 내 얄팍한 수를 눈치채지 못한 듯했다.
슈투카가 다른 사냥감을 찾아 날아가는 걸 확인하고 나는 다시 전진을 명했다.
이제 목표로 한 숲까지는 약 100m 정도밖에 남지 않았다.
"야, 더 빨리 달릴 수 없냐?"
"무립니다! 이게 최고 속도라고요!"
전속력으로 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놈의 전차는 끔찍할 정도로 느렸다.
차라리 전차를 버리고 뛰어서 도망치는 게 더 낫지 않을까 생각이 들 정도였다.
"X발, 이렇게 느려터져서야...... 우앗!"
쿵!
속도가 느린 것만으로도 속이 터질 노릇인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급히 후진하던 다른 전차와 그만 충돌하고 말았다.
아주 환장할 노릇이었다.
"욱!"
쇳덩어리끼리 서로 부딪치면서 나는 소리도 끔찍했지만, 그 충격으로 그만 해치 모서리에 관자놀이를 부딪치고 말았다.
불행 중 다행으로 피는 나지 않았지만, 머리가 미친 듯이 아팠다. 두개골에 금이라도 간 것 같았다.
"젠장...... 좀 주위를 확인하고 움직이라고......!"
충돌한 상대편 전차도 뒤늦게 뒤에 아군이 있다는 것을 깨닫고 잠시 앞으로 물나려고 했다.
"으악!"
그때, 포탄이 날아와 포탑을 직격했다.
88mm 철갑탄에 포탑을 직격당한 전차는 그대로 굉음과 함께 산산조각이 나면서 자잘한 파편들을 사방에 뿌렸다.
그중 일부는 해치 안으로 쏟아졌는데, 베레모를 쓰고 있었기에 망정이지 맨머리였다면 큰일이 날 뻔했다.
다행히 약간의 찰과상과 군복 안으로 자잘한 먼지가 들어간 것만 빼면 아무 이상 없었다.
"소대장님, 괜찮으십니까?"
"난 괜찮으니까 전차나 제대로 몰아!"
불타오르는 전차를 지나쳐 마침내 숲으로 접어들었다.
"X발, 빌어먹을 놈들 같으니라고. 그냥 좀 보내주면 어디 덧나냐?"
사실 저놈들은 제 할 일을 하고 있는 것일 뿐이지만, 당하는 입장에선 그런 것까지 하나하나 다 신경 쓸 여유가 없다.
그 순간 포탄 한 발이 전차의 옆을 스치고 지나갔다.
본능적으로 조금 전의 포탄이 내가 탄 전차를 노렸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온몸의 털들이 쭈뼛 서는 기분이었다.
"계속 가, 계속!"
나는 애덤을 재촉해 숲 안쪽으로 들어갔다.
다행히 포탄은 더는 날아오지 않았다.
숲의 나무들에 가려 잘 보이지도 않는 전차보단 들판에 널린 전차들을 사냥하는 것이 더 낫겠다고 판단한 모양이었다.
숲으로 들어가고 시간이 꽤 지난 후에도 포성은 끊이지 않고 이어졌다.
고개를 돌리자 들판에서 피어오르는 수십 개의 검은 기둥들이 눈에 들어왔다.
내 눈에는 마치 공동묘지에 즐비한 십자가들처럼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