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룡전설 126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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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5,499회 작성일소설 읽기 : 신룡전설 126화
신룡전설 6권 - 1화
第一章. 천혈원에서 (1)
“그럴 수 없습니다!”
풍도백의 단호한 어조가 교주실을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그럼에도 왕무적은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처음과 다를 바 없는 태연한 표정으로 가만히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약간의 시간이 흐른 후에야 왕무적이 작은 목소리로 천천히 물었다.
“교주의 뜻을 거스르겠다는 것이오?”
“…….”
잠시 침묵하고 있던 풍도백이 당당히 대답했다.
“교주님께서 그리 말씀하신다면 할 말은 없습니다. 하지만! 교주님의 말씀은 받들기 어렵습니다.”
“…….”
처음부터 쉬울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지만 이렇게까지 완강하게 나올 줄은 몰랐다. 그래서 생각한 최후의 방법이 ‘교주의 말을 거역하겠는가?’였다. 하지만 풍도백이 조금도 물러날 모습을 보이지 않자 왕무적으로서는 여간 난감한 것이 아니었다.
잠시 풍도백과 시선을 마주하던 왕무적은 이내 마음을 굳게 먹고 입을 열었다.
“이미 나는 그리 정했으니 부교주는 그리 알고…….”
“교주님!!”
풍도백은 하극상이라 하기에 부족함 없이 왕무적의 말을 도중에 끊어버렸다. 그리고 몸을 벌떡 일으키며 왕무적을 노려보기까지 했다.
이쯤에서 혈천좌사와 혈천우사가 나타나 풍도백의 행동을 저지해야 했지만, 어쩐 일인지 그들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었다. 그렇다고 그들이 지금 이 방 안에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들이 풍도백을 저지하지 않는다는 말은 그와 뜻이 같다는 말이기 때문이다.
풍도백이 씩씩거리며 말했다.
“고작 반년입니다! 어찌 반년 만에 교주위를 물러나신다는 말씀이십니까?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만이라도 속 시원하게 말씀해주시길 바랍니다!”
풍도백의 말에 왕무적은 미안하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차마 용과의 약속 때문에 백령구를 얻기 위해 혈천신교로 잠입하고, 일신의 안위를 위해 교주가 되었다고 사실대로 말할 수 없었다.
그리고 반년이면 왕무적에게는 오래 버틴 셈이었다.
“나는 교주로서 부족한 사람이오. 나보다도 부교주가 교주로서 혈천신교를 더욱 잘 다스릴 것이라고 생각하니, 내 자리를 대신해주길 바라오.”
풍도백은 고개를 강하게 저으며 부정했다.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교주님은 그 어느 교주님들보다도 훌륭하신 분입니다.”
“그건 부교주가 나를 과대평가하는 것이오. 나는 결코 그렇게 뛰어난 사람이 아니오. 오히려 부교주야말로 교주가 된다면 나보다도 훨씬 훌륭하게 교를 이끌어 나갈 것이오.”
“저는 교주님보다 잘해나갈 자신이 없습니다! 혈천좌사와 혈천우사도 말씀을 해보시길 바랍니다! 교주님의 능력이 부족하다 생각하는 것입니까?”
풍도백의 외침에 잠시 침묵을 지키던 혈천좌사와 우사는 동시에 ‘아니오’라는 말을 어렵게 꺼냈다. 단 한마디였지만 그들 역시도 왕무적을 이대로 물러나게 할 순 없다는 강한 마음이 명백히 드러난 것이다.
하지만 굳게 결심한 왕무적의 마음을 되돌릴 수는 없는 일.
“부교주와 혈천좌․우사가 어떤 말을 하더라도 나는 이미 마음을 정했으니 그리 알고들 있으시오. 한 달 후, 교의 모든 권한을 부교주에게 양도할 것이오.”
“교주님!”
풍도백의 외침에 왕무적은 더 이상 할 말이 없다는 듯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혈천좌사는 부교주를 배웅하도록 하시오.”
“…존명.”
혈천좌사가 모습을 드러내며 풍도백을 바라봤다. 풍도백은 이대로 물러날 수 없다는 듯 강한 눈빛으로 버티려 했지만, 혈천좌사와 눈빛을 교환하고는 방에서 나가기 시작했다.
“혈천우사.”
“예.”
왕무적의 음성에 혈천우사가 그의 뒤에 나타났다.
“교내에 이 사실을 확실하게 알리도록 하고, 사흘 후에 천혈원을 한번 가보도록 합시다.”
왕무적의 말에 혈천우사는 힘없이 대답했다.
“존명…….”
혈천우사에 의해 알려진 사실들은 혈천신교를 다시 한 번 크게 뒤흔들었다. 혈천대전부터 시작된 왕무적의 행보는 매번 놀라움의 연속이었지만, 불과 반년 만에 교주위를 부교주에게 넘기겠다는 말은 경악이라는 말로도 한참 부족했다.
왜?
왕무적이 반년 만에 교주위에서 물러나겠다고 한 이유에 대한 의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었고, 수많은 낭설들을 만들어냈지만 정작 당사자는 조금도 신경 쓰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그런 헛소문에 신경 쓸 겨를이 없다고 보는 편이 옳았다.
대머리가 반들거리는 추대광은 자신의 앞에서 오연한 자세로 선 왕무적을 바라보며 얼굴 근육을 꿈틀거리며 연신 인상을 찌푸렸다.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교주위를 부교주에게 넘겨주겠다고 하던데… 그게 사실이오?”
눈을 가느다랗게 뜨며 묻는 추대광을 보며 왕무적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소.”
“허!”
추대광은 물론이고, 그의 곁에 있던 나머지 3명의 천혈원 고수들도 한꺼번에 숨을 내뱉었다.
교주가 된 지 얼마나 되었다고 벌써 교주의 자리를 다른 사람에게 넘겨준단 말인가? 당장 교주위를 다른 사람에게 넘겨줘야 할 만큼 그에게 커다란 문제라도 있던가?
천혈원 고수들의 눈엔 전혀 그렇게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면 이유는?
“혈천신교가 우습게보이는 모양이군!”
추대광은 노골적으로 왕무적을 향해 빈정거렸다.
“저번에 경고했을 텐데?”
추대광의 행동에 혈천좌사가 눈을 사납게 번뜩이며 살기를 뿌렸다.
혈천좌사의 살기에 추대광은 가슴이 서늘해짐을 느꼈지만, 그렇다고 상대 앞에서 위축되고 싶은 마음이 없기도 했거니와 나이도 어린 자에게 이런 대접을 받는다 생각하니 속에서 화가 치밀어 올랐다.
“경고? 언놈이 옆집 개새끼가 짖어대는 걸 일일이 기억하고 있더냐?”
추대광의 말에 혈천좌사의 몸에서 가공할 기세가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만약 곁에 있는 왕무적만 아니었다면 벌써 손을 써도 골백번은 더 썼을 것이다.
“싸움을 걸려면 제대로 걸어야지.”
“……!”
왕무적이 추대광의 앞으로 걸으며 조용히 말했다. 하지만 그의 전신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세는 모든 이들을 압도하고도 남았다. 더욱이 그 기세를 정면으로 받아야 하는 추대광은 당장이라도 굽혀지려는 무릎을 억지로 버티느라 이마에 땀까지 송골송골 맺혀가고 있었다.
탁!
왕무적이 가볍게 추대광의 어깨를 치자 그의 무릎이 끝내 굽혀지고 말았다. ‘쿵!’ 소리와 함께 추대광의 무릎이 바닥으로 깊이 파고들었다.
“컥!”
탁한 신음과 함께 입가에서 흘러내리는 핏물.
놀란 표정의 천혈원 고수들의 모습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왕무적은 추대광의 반들반들한 대머리를 지그시 눌렀다.
“끄으……!”
고통스런 표정으로 신음을 흘리는 추대광의 모습에 중년 문사 이진군이 노한 얼굴로 외쳤다.
“교주라 하더라도 천혈원을 이리 대할 수는 없소!”
왕무적은 여전히 추대광의 머리에 올린 손을 떼지 않고 대꾸했다.
“물론 그렇소. 그런데… 천혈원 소속이면 교주를 이리 대할 수 있소?”
“……!”
천혈원.
혈천신교가 존망의 위기에 빠지지 않는 이상은 함부로 실력을 드러내지 않는 최후의 단체. 비록 그 수가 채 열도 되지 않는다고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들을 무시할 순 없다.
간단히 절정고수 1백 명과 초절정고수 10명을 비교할 순 없는 것 아닌가?
그렇기 때문인지 천혈원 고수들은 오래전부터 자신들을 대단하다 여겼고, 실질적으로 몇몇의 고수들은 그런 자신들의 실력과 천혈원의 힘을 믿고 혈천신교를 좌지우지하려고도 했던 선례가 있었다.
그럼에도 섣부르게 도려낼 수 없는 곳이 천혈원이다.
그런데 지금 왕무적이 그런 천혈원을 도려내려 하고 있었다.
“교주께선 우리에게 뭔가 서운한 일이라도 있었던 모양이오?”
장위표가 나서서 묻자 왕무적이 그제야 추대광의 머리에 올려놓았던 손을 뗐다. 그러자 반들반들한 그의 머리에 왕무적의 손자국이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명색이 교주인데 오라가라 한 것도 모자라 이리 허술히 대접하는데, 어찌 서운하지 않을 수 있겠소? 비록 앞으로 교주라는 자리를 지키고 있을 날도 얼마 남진 않았지만, 그래도 이건 너무하는 것 아니오?”
왕무적의 물음에 방대상이 빠진 앞니가 훤히 보일 정도로 웃으며 대답했다.
“천혈원에서 후한 대접을 바란다는 것은 교주의 욕심이오. 본래부터 먹고 마실 것이라고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볼 수 없는 곳이 천혈원이니, 그쯤은 교주께서 이해를 해줘야 할 것 같소.”
간단히 혈천신교에서 나오는 지원이 그리 후하지 않으니 기댈랑 조금도 하지 말라는 뜻이었다. 하지만 왕무적이 들은 바로는 전혀 달랐다.
“이거 큰일이군.”
들으라는 듯 중얼거리는 왕무적의 목소리에 방대상이 의문스런 표정으로 물었다.
“큰일이라니, 무슨 말이오?”
왕무적이 짐짓 심각한 얼굴로 대답했다.
“아무래도 천혈원에 우리가 모르는 추한 돼지들이 사는 모양이오.”
“……!”
“……!”
머리의 통증으로 인해서 정신이 없는 추대광을 제외한 나머지 세 사람의 얼굴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그게 무슨 말이오?”
방대상의 물음에 왕무적이 희미하게 웃었다.
“내가 알기론 매달 천혈원에 은자 1만냥이라는 엄청난 거금이 지원되고 있는데, 어찌 천혈원 생활이 이리도 궁핍할 수 있단 말이오? 필시 천혈원 내부에 자신의 잇속만 챙기는 추한 돼지들이 있을 것이오. 천룡각으로 돌아가는 즉시 그 추한 돼지들을 색출해낼 것이니 너무 걱정하지 마시오. 그 돼지들만 찾아내면 천혈원은 찾아오는 손님들을 다시는 이리 박하게 대접하지 않아도 될 것이오.”
왕무적의 말이 누굴 지칭하는지 모를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혈천좌사와 혈천우사는 숨김없이 웃음을 흘리고 있었고, 추대광을 제외한 세 사람은 더욱더 경직된 얼굴로 서 있어야만 했다.
[곧 시작되겠군.]
혈천우사의 전음에 혈천좌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왕무적이 이렇게까지 나옴에도 혈천좌․우사가 놀라지 않는 것은 이미 그들과 이야기를 끝냈기 때문이다. 천혈원을 교주의 세력 안으로 철저하게 가둬놓기 위한 것!
천혈원은 너무 제멋대로다. 거기에 자신들의 힘을 믿고 때론 혈천신교의 하늘인 교주까지도 아래로 보기도 한다. 이는 명백히 있을 수 없는 일!
그럼에도 천혈원이 지금까지 이대로 존재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들이 지금까지 그 힘을 믿고 본격적으로 혈천신교에서 큰 영향력을 행사하지 않았기 때문이지, 만약 한두 사람이 아닌 천혈원 전체가 그런 움직임을 보였다면 진즉에 혈천신교의 내부엔 커다란 피바람이 불었을 것이다.
가만히 놔두어도 되는 천혈원을 굳이 왕무적이 나서서 뜯어 고치려는 이유는 마음의 짐을 떨쳐내기 위함이다. 혈천신교의 신물인 백령구를 개인적인 일에 사용해야 한다는 것과 계획적이진 않았지만 혈천신교를 이용했다는 마음의 짐을 어떤 식으로든 조금이라도 갚아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즉, 작정하고 한바탕 하기 위해서 천혈원을 찾은 것이다.
“교주의 눈엔 천혈원이 꽤 우습게보이는 모양이오?”
추대광의 빈정거림과는 확연히 다른 이진군의 경고성 짙은 언사였다.
일전도 불사하겠다는 듯한 자세로 나오는 것은 비단 이진군뿐만이 아니었다. 어느새 추대광 역시도 그의 곁에 나란히 서선 눈을 부라리고 있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