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룡전설 125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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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5,361회 작성일소설 읽기 : 신룡전설 125화
신룡전설 5권 - 25화
염천악과 함께 심령각으로 향한 왕무적.
심령각 안으로 들어선 왕무적은 드디어 자신이 그토록 찾던 물건을 찾을 수 있다는 사실에 기쁨과 흥분이 버무려진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심령각은 단층으로 이뤄진 아주 작은 전각이었다. 정문으로 들어서면 그저 창고와도 같이 텅 빈 공간에 이런저런 불필요할 것 같은 물건들만이 늘어져 있었지만, 실질적으로 혈천신교의 신물이라고 할 수 있는 무쌍마황갑과 백령구는 염천악과 전대 교주만이 알고 있는 비밀 통로를 통해 볼 수 있었다.
“심령각의 실체는 비밀 통로를 거쳐야만 보실 수 있습니다.”
염천악은 그렇게 말을 하고는 앞장서서 어지럽게 늘어져 있는 물건들 사이를 걸었다. 그리고는 우측 벽면 한 부위를 가리키며 말했다.
“바로 이곳을 통해서만 비밀 통로를 여실 수 있습니다.”
“아…….”
왕무적은 이런 은밀한 장치는 처음 보기에 그저 놀랍다는 표정만을 지어 보였다. 그리고는 그곳을 확실하게 머릿속에 기억해두었다.
딸깍!
염천악이 가만히 새끼손가락 하나 들어갈 만한 벽면의 공간을 누르자 둔탁한 기음과 함께 밑바닥 한곳이 양옆으로 갈라지며 사람 한 명 지나갈 정도의 어두운 계단이 나타났다.
“이곳이 바로 비밀 통로입니다.”
말을 하고 앞장서서 계단을 내려가는 염천악의 뒤를 따라서 왕무적은 계단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불빛 하나 없어 어두웠지만 이미 그런 어둠쯤은 왕무적뿐만이 아니라 염천악에게도 아무런 불편이 될 수 없었다.
얼마간 계단을 내려가자 웬만한 힘으로는 강제로 열 수 없을 정도로 육중한 철문이 나타났다. 한눈에 보기에도 그 철문의 두께가 상당했기에 아무리 왕무적이라고 하더라도 쉽게 뚫을 수는 없었다.
“바로 이것이 철문을 열 수 있는 장치입니다.”
염천악은 철문 좌측의 가장 밑의 벽돌을 지그시 눌렀다.
끄그그그그……!!
커다란 소리와 함께 철문이 좌우로 열렸다.
“아……!”
철문이 열리자 그리 크지는 않지만 깨끗하고, 뭔가 신비로운 분위기를 풍기는 방이 드러났다. 무엇보다도 천장과 벽면에 박힌 야광주가 방 안을 환하게 비추고 있었다.
그 방 안 가운데 성인 허리 높이까지 이르는 2개의 돌기둥이 있었고, 그 위에 각각 하나의 거대한 갑옷과 둥그런 구가 올려져 있었다.
“저것이 바로 혈천신교의 신물인 무쌍마황갑과 백령구입니다.”
무쌍마황갑은 검푸른 색이었고, 그 모양새가 굉장히 단조로웠다.
그런데…
‘어디서 본 것만 같아. 마치… 용의 비늘 같아!’
왕무적의 눈에는 무쌍마황갑이 마치 자신이 잡고자 했던 용의 비늘처럼 보였다. 색은 약간 달랐지만 느낌이 그러했다. 마치 용의 비늘을 뜯어다가 갑옷으로 만들어놓은 것 같았기에 왕무적은 고개를 갸웃거릴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생각하는 왕무적을 향해 염천악이 말을 이었다.
“무쌍마황갑은 아마도 용의 비늘로 만들어진 갑옷이 아닐까 하는 추측이 전해져 내려오고 있습니다. 물론 용이라는 존재 자체가 신비로운 존재이며 그 존재 유무를 확신할 순 없지만, 만약 실제로 용이 존재한다면 무쌍마황갑은 그 비늘로 만들어졌을 것이라 합니다.”
“…….”
염천악의 말에 왕무적은 무언가 허탈한 심정이 되었다.
혈천신교까지 와서 찾은 가장 단단한 물건이 용의 비늘이라니……. 마치 지금까지의 고생이 모두 물거품이 되어버리는 것만 같았다.
만약 무쌍마황갑이 용의 비늘로 만들어진 물건이었다면 애초부터 찾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자 절로 한숨이 흘러나왔다.
그런 왕무적의 심정을 알지도 못한 채, 염천악의 말은 계속해서 이어졌다.
“무쌍마황갑이 용의 비늘로 만들어졌을 것이라고 예상하는 이유 중의 하나가 그 단단함 때문입니다. 검기는 물론이고, 심지어 검강이라고 할지라도 무쌍마황갑은 흠집조차 나지 않는다 합니다. 아마 세상에서 가장 단단한 물건을 꼽으라면 그것은 분명 무쌍마황갑일 것입니다.”
염천악의 말에 왕무적은 이미 그것에게서 시선을 돌렸다. 용의 비늘로 만들어진 갑옷을 세상에서 가장 단단한 물건이라고 용에게 가져갈 순 없었다.
말 그대로 용이 한심하다며 코웃음을 칠 일이었다.
왕무적은 마지막 희망이라는 듯 백령구를 바라봤다.
대략 지름 3척 정도 되는 둥그렇고 하얀 구는 왕무적의 눈으로 보기에도 굉장히 단단해 보였다. 안이 꽉! 차 보이는 백령구는 도대체 무엇으로 만들어졌는지 궁금했다.
왕무적은 백령구에 모든 정신을 빼앗겼다.
‘용이 찾는 것이 백령구일지도.’
그랬다. 백령구야말로 용이 찾는 물건일지도 모른다는 확신이 들었다. 우선 둥그렇다는 것만 보아도 여의주를 넣기에 안성맞춤이었다. 물론 안이 꽉 차 있고, 어떤 식으로 여의주를 넣어야 하는지는 모르지만, 그것은 왕무적이 알 바 아니었다. 용이니 어떻게든 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백령구는 무쌍마황갑과 마찬가지로 세상에서 가장 단단한 물건일 것입니다. 무쌍마황갑처럼 검기는 물론이고, 검강에도 손상을 입지 않습니다. 그 단단함에 한때는 백령구를 녹여 병기로 만들려 했지만, 제아무리 대단한 대장장이라고 하더라도 백령구를 녹일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결국은 백령구처럼 깨지지도, 녹지도 않는 단단함을 본받아 본교가 번창하길 기원하는 뜻에서 신물로 삼았다고 합니다.”
염천악의 말에 왕무적은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고는 주먹을 내질렀다. 순간, 그의 손에서 푸른 기류가 뿜어져나가 백령구를 가격했다.
쾅!
“교주님!”
초풍건룡권을 이용해 강기를 쏘아 보낸 것이다. 갑작스런 왕무적의 돌발 행동에 염천악이 깜짝 놀라 그를 불렀지만, 이미 왕무적은 강기에 맞아 아래로 굴러 떨어진 백령구를 살피고 있었다.
‘정말로 멀쩡하다!’
왕무적은 흠집조차 없는 백령구의 모습에 얼굴 가득 환한 미소를 그렸다. 제아무리 천하이십육병이라고 하더라도 백령구처럼 단단할 순 없었다.
‘백령구는 분명히 용이 찾던, 세상에서 가장 단단한 물건이 틀림없어!’
왕무적은 너무 기뻤다.
용과의 약속을 지킬 수 있게 되어서 너무나도 기뻤다. 이제는 백령구를 용에게 가져다주고, 자신은 용이 알려주는 힘없는(?) 용을 찾아가 잡는 일만 남은 셈이다. 용을 잡아야 하는 가문의 숙원을 드디어 풀게 되는 것이다.
왕무적은 백령구를 들었다. 크기와 단단함에 비해 그리 무겁지는 않았다. 의문스러울 정도로 가벼운 백령구의 무게에 왕무적은 잠시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이내 별 상관이 있냐는 듯 그런 의문은 가볍게 털어내 버렸다.
백령구를 집어든 왕무적의 모습에 염천악은 왕무적이 확실히 그것을 가져가려고 한다는 걸 알았다. 이미 예상한 일이지만 그나마 무쌍마황갑이 아니라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무언가 상징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여겨지는 무쌍마황갑과 다르게 백령구는 그다지 큰 의미가 없었기 때문이다.
“돌아가도록 하죠.”
왕무적의 말에 염천악은 고개를 끄덕였다.
친절하게 안내를 하고서는 이제 와서 ‘정말로 백령구를 사사로운 곳에 쓰실 생각이십니까?’, ‘백령구는 혈천신교의 신물입니다. 다시 한 번 생각해주십시오!’ 등의 이야기를 할 순 없었다.
하늘!
혈천신교의 하늘인 교주가 하는 일이다. 불만을 갖는다는 것 자체가 불경스런 일이다. 염천악은 조용히 방을 나서며 들어올 때와 마찬가지로 앞장서서 길을 걸었다.
왕무적은 백령구를 들고 염천악의 뒤를 따르며 언제 용에게로 돌아가야 할지 생각했다. 마음 같아서는 이대로 당장 돌아가고 싶었지만, 그러기엔 자신이 벌여놓은 일들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했다.
가장 먼저 교주위를 풍도백에게 넘겨줘야 하기도 했고, 혈천신교와는 아무런 관계도 없는 백서린과 진평남을 안전하게 돌려보낼 의무도 자신에게 있었다.
그러고 보니 자신을 믿고 기다리고 있을 진중악과 신왕대 무인들도 머릿속에 떠올랐다.
‘잘 있겠지?’
백서린, 진평남과 마찬가지로 소중한 이들이다. 아니, 어떤 의미에서 보면 자신에게 있어서 가장 소중한 사람들이라고 할 수도 있다. 그리고… 처음 세상에 나온 자신을 지금에까지 있을 수 있도록 도와준 육소빈과 허풍도, 학여민, 만박귀자 허자명도 빼놓을 수 없었다.
‘용을 잡고 나면 꼭 찾아가야겠다.’
언제고 반드시 다시 만나야 할 사람들이다.
그들을 생각하자 입가에 미소가 어리며, 즐거웠던 시간이 그림처럼 머릿속에 그려졌다. 그러는 사이, 왕무적은 어느새 비밀 통로 계단을 다 올라와 있었다.
심령각을 나오니 천룡단 무인 한 명이 기다렸다는 듯 왕무적에게 다가와 말했다.
“천룡각에서 교주님을 기다리는 분들이 계십니다.”
왕무적을 찾아오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다. 고작 진평남이나 백서린, 북궁연이 전부였다. 혈천좌사와 혈천우사는 항상 곁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존재들이고, 그 밖의 장로들도 웬만해서는 잘 찾아오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그들이었다면 천룡단 무인이 정체를 밝히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즉, 천룡단으로서도 모르는 사람이라는 소리였다.
“누구인지 말하지 않던가?”
염천악의 물음에 천룡단 무인이 곧바로 대답했다.
“정확하게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의 대답에 염천악이 얼굴을 찌푸렸다.
“신분을 정확하게 알지도 못하는 자들을 함부로 천룡각에 들였단 말인가?”
천룡단이 비록 교주인 왕무적의 직속 무력 단체라고는 하지만, 염천악은 혈천신교의 총령이라는 신분을 지니고 있었기에 이 정도의 훈계는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다.
“혈천좌사님께서 안으로 모시라고 하셨습니다.”
“혈천좌사께서?”
혈천좌사라는 말에 염천악도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천룡단 무인의 말대로 혈천좌사가 허락을 했다면 굳이 그를 탓할 수 없었다.
“우선은 가보도록 합시다.”
왕무적은 그렇게 말을 하고는 천룡각을 향해 걸었다.
“교주님, 그것은 제가 들도록 하겠습니다.”
천룡단 무인이 백령구를 들겠다고 하자 왕무적은 아니라는 듯 고개를 저었다.
그렇게 제법 빠른 걸음을 내딛어 천룡각으로 향하던 왕무적은 익숙한 혈천좌사와 혈천우사가 아닌 또 다른 거대한 두 기운에 내심 놀라고 있었다.
‘홍안, 청안 노인들과 비교해서 결코 뒤떨어지지 않는다.’
그렇게 생각을 하며 왕무적은 천룡각으로 들어서기가 무섭게 그들이 있는 곳으로 곧바로 향했다.
[혈천좌사.]
왕무적의 전음에 혈천좌사가 곧바로 대답했다.
[예, 교주님.]
[나를 찾아온 이들이 누구요?]
왕무적의 물음에 혈천좌사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답했다.
[천혈원 고수들입니다.]
천혈원이라는 소리에 왕무적은 그들이 홍안, 청안 노인들과 같은 곳에 소속한 이들임을 깨달았다. 그리고 어쩌면 그들이 결코 좋은 목적으로 오지 않았을 것이라는 예감도 들었다.
그렇게 생각하며 왕무적은 천룡각의 2층 회의실로 향했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2명의 남자가 자리에서 일어나 왕무적을 똑바로 바라봤다. 중년 문사와 거대한 머리통의 대머리 남자였다.
“신임 교주시오?”
“왕무적이라고 합니다.”
중년 문사의 물음에 왕무적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리고 곁에 백령구를 놓자 대머리 남자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혹 그것은 본교의 신물인 백령구가 아니오?”
“맞습니다.”
왕무적의 대답에 대머리 남자가 다시 물어왔다.
“본교의 신물을 어째서 들고 다니는 것이오?”
“개인적으로 사용할 곳이 있어 가져왔습니다.”
“……!”
“……!”
아무렇지도 않게 혈천신교의 신물을 개인적으로 사용한다는 대답에, 물음을 건넨 대머리 남자는 물론이고 중년 남자 역시 놀란 눈으로 왕무적을 바라봤다.
“방금… 개인적인 일로 본교의 신물을 사용한다고 하였소?”
중년 문사의 물음에 왕무적은 맞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허!”
대머리 남자는 기가 막힌다는 듯 탄성을 터트렸다. 아무리 교주라고 하더라도 혈천신교의 신물을 개인적인 일에 사용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런데 그런 말을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하고 있었으니, 그들 입장에서는 어처구니없을 수밖에 없었다.
중년 문사와 대머리 남자가 무슨 생각을 하든지 말든지 자신이 상관할 일이 아니라는 듯 왕무적이 물었다.
“절 찾아온 용건이 무엇입니까?”
용건이 있거든 빨리 말하고 돌아갔으면 좋겠다는 왕무적의 말투에 대머리 남자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아무리 교주라고 하더라도 지금까지 천혈원 인물들을 이렇게 대접한 경우는 한 번도 없었다.
따지고 보면 교주조차도 쉽게 건드릴 수 없는 이들이 바로 천혈원의 고수들이 아니었던가?
“신임 교주라서 바쁜 모양이오?”
중년 문사의 물음에 왕무적은 왠지 호감가지 않는 두 사람의 모습을 훑어보고는 그렇다는 듯 건성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어서 빨리 용건이나 말하라는 듯이 그들을 바라봤다.
대머리 남자가 뭐라고 하려는 걸 중년 문사가 재빨리 끼어들며 먼저 말했다. 어차피 자신들의 방문 목적은 왕무적이 어떤 사람인지 파악하기 위함이 아니었던가?
“신임 교주께서는 천혈원에 대해 얼마나 알고 계시오?”
“그리 자세히는 알지 못하지만, 혈천신교에 위기가 닥치면 그것을 막기 위해 움직이는 비밀 세력이라는 것만 알고 있습니다.”
틀린 말은 아니었기에 중년 문사는 맞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하면, 우리의 이런 언사가 결코 무례가 아님도 알고 있겠소이다?”
“뭐, 굳이 따지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다.”
“신임 교주는 의외로 화통한 면이 있었구려. 하하하!”
중년 문사는 웃음을 그치고 다시 말을 이었다.
“홍노와 청노의 죽음에 대해 약간의 설명이 필요할 것 같소.”
홍노와 청노라는 말에 왕무적은 그들이 말하는 이들이 홍안, 청안 노인임을 단번에 알 수 있었다. 그들 스스로 천혈원 소속이라고 했으니 바보가 아니면 누구나 알 수 있는 것이다.
“죽지 않기 위해서 죽였을 뿐인데, 더 이상 설명이 필요하겠습니까?”
왕무적의 말에 중년 문사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그렇다면 천마혈풍장에 대해서 말을 해보도록 하시오.”
대머리 남자의 말에 왕무적은 고개를 저었다.
“천마혈풍장에 대해서는 할 말이 없으니, 그것이 날 보기 위한 용무라면 돌아가실 바랍니다.”
엄연한 축객령이었다.
이런 대접을 받고서 참을 만큼 대머리 남자는 인내심이 깊지 않았다.
쾅!
“아무리 교주라고 하지만 너무하는군!”
탁자를 후려치며 눈을 부라리는 대머리 남자의 모습에 어느새 회의실 안으로 든든한 왕무적의 호위인 혈천좌사와 혈천우사가 유령처럼 나타났다.
“다시 한 번 교주님께 무례를 저지른다면 가만있지 않겠소.”
혈천좌사의 말에 대머리 남자가 눈썹을 꿈틀거리며 그를 노려봤다.
천혈원이 제아무리 독립적인 단체라고 하더라도 엄연히 혈천신교 내의 단체다. 그들의 특성상 교주라 할지라도 명령을 내릴 수는 없다지만, 그들 역시 교주라는 존재를 함부로 여길 수는 없었다.
“잠시 흥분해서 그런 것이니 이해를 해주시오.”
중년 문사는 상황이 악화될수록 어려워지는 쪽은 자신들이라는 것을 잘 알기에 그렇게 말을 하며 대머리 남자에게 눈치를 줬다. 다행이라면 대머리 남자도 그 정도의 생각은 있는지 잠자코 자리에 앉았다.
“해줄 말이 없다니 더 이상은 묻지 않겠소. 언제 한번 천혈원에 방문해주시오. 그래도 교주니 천혈원이 어떤 곳인지는 두 눈으로 확인을 해봐야 하는 것 아니오?”
중년 문사의 의도가 무엇인지 알지만 왕무적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기다리고 있겠소.”
중년 문사는 그렇게 말을 하고는 대머리 사내를 이끌고 회의실을 빠져나갔다.
그들이 떠나고 나자 혈천우사가 왕무적에게 말했다.
“교주님은 누가 뭐라고 하더라도 혈천신교의 최고 위치에 있는 분이십니다. 그들이 천혈원 소속이라고 하더라도 교주님께서 그들을 존대하실 필요는 없으십니다.”
왕무적은 알고 있다는 듯 대답했다.
“첫 대면이니 그런 것뿐이오. 이제 나도 저들이 어떤지 잘 알았으니 더 이상은 그럴 생각이 없소.”
“천혈원에 가실 생각이십니까?”
혈천좌사의 물음에 왕무적은 빙긋 웃었다.
“초대를 했으니 당연히 가야 하지 않겠소?”
“조심하셔야 합니다.”
4대 교주인 오자량때부터 혈천좌․우사와 천혈원은 사이가 좋지 않았다. 그리고 그런 사이는 조금도 나아지지 않은 채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었으니, 그들로서는 왕무적이 천혈원으로 가는 것이 결코 탐탁지 않았지만, 이미 왕무적이 가겠다고 마음을 먹었으니 그저 따를 뿐이었다.
‘천혈원이라…….’
왕무적은 마치 재미있는 놀이를 발견한 아이처럼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