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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룡전설 11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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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읽기 : 신룡전설 117화

신룡전설 5권 - 17화

 

 

 

 

 

그 무렵, 혈천우사는 혈천좌사와 마찬가지로 홀로 장대성을 찾아간 후였다. 아니, 이미 그는 혈천좌사보다도 먼저 장대성의 혈천추혼대(血天追魂隊)를 상대하고 있었다.

 

촤라라라라락-!

 

혈천우사가 양손을 떨자 혈천추혼대 무인들이 기겁을 하며 도를 들어올리고는 급급히 물러났다.

 

따다다다다당!

 

도를 들어올린 혈천추혼대 무인들의 도신에서 요란하게 불꽃이 튀었다. 눈에 자세히 보이지도 않을 정도로 얇은 은사(銀絲)가 그들의 도와 충돌한 것이다.

 

혈천우사의 병기는 그 길이가 얼마나 되는지 알지 못하는 은사였다. 날이 밝아도 자세히 보이지 않을 정도인데, 지금은 달빛마저 구름에 가려져 있으니 그 모습이 눈에 띄지도 않았다.

 

그저 혈천우사가 손을 흔들면 지금처럼 허겁지겁 도를 들어올리며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혈천우사의 은사로 인해 영문도 모른 채 죽은 혈천추혼대 무인들만 하더라도 30명이 넘었다. 뒤늦게 장대성이 고함을 쳐 그의 병기가 눈으로 발견하기 힘든 은사임을 알리고 나서야 죽는 이들의 수가 눈에 띄게 줄어들 수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상황이 좋아진 것은 아니었다.

 

서걱! 서걱!

 

보이지 않는 병기! 더욱이 그 병기가 무겁고 둔탁하며, 길이가 짧은 것도 아닌, 그와는 정 반대인 은사라면 아무리 단단히 방어를 해도 역부족이다.

 

어떤 방향으로 어떻게 움직이는지 알지도 못하는 은사로 인해 혈천추혼대 무인들은 처음으로 두려운 감정을 지녀야만 했다.

 

“거리를 벌이면 벌일수록 불리하다! 근접하면 제아무리 보이지 않는 병기라고 하더라도 상대할 방법이 생기며, 무엇보다도 그 움직임의 한계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장대성의 외침에 혈천추혼대 무인들은 알겠다는 듯 혈천우사를 향해 접근하기 시작했다.

 

장대성의 말은 분명 틀리지 않은 말이었다. 가까운 거리라면 은사의 움직임을 확실히 일부 제약할 수 있으며, 무엇보다도 반격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상대는 혈천우사다.

 

혈천좌사와 마찬가지로 혈천신교 내에서 최강의 무인이란 칭호를 얻고 있는 절대고수다!

 

혈천우사는 혈천추혼대 무인들이 점점 접근하길 기다렸다가 일정 거리 안에 들어오자 몸을 팽이처럼 회전시켰다.

 

반짝!

 

무언가 반짝였다. 아니, 혈천우사의 전신이 반짝였다.

 

따다다다다당!

 

서걱! 서걱! 서걱! 서걱!

 

“크아악!”

 

“으아아악!”

 

“커헉!!”

 

은사와 도신이 충돌하며 엄청난 불꽃을 터져 나왔다. 동시에 팔, 다리, 허리 할 것 없이 신체가 종이쪼가리처럼 찢겨지며 혈천추혼대 무인들의 비명이 밤하늘을 뒤흔들었다.

 

“……!”

 

장대성은 분명히 보았다.

 

혈천우사의 전신에서 쏟아져 나오는 엄청난 수의 은사를! 일부는 도신과 충돌했지만, 말 그대로 일부에 불과할 뿐이었다. 대다수의 은사들은 일정 거리 안에 들어온 혈천추혼대 무인들의 신체를 잔인하게 잘라버렸다.

 

잘려나간 신체는 너무나도 매끈했다. 그렇기 때문에 당장 피가 튀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약간의 시간이 흐르자 바닥을 흥건하게 적실 정도의 핏물이 베인 곳에서부터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한 순간에 20명에 달하는 혈천추혼대 무인들이 처참하게 조각나며 죽었다. 그런 엄청난 짓을 해놓고도 혈천우사는 여전했다. 피부를 찢어놓을 듯한 살기를 뿜어내며 조용히 서 있을 뿐이었다.

 

“지금이라도 물러나는 자는 살려주겠다.”

 

혈천우사의 무감정한 음성에 몇몇 혈천추혼대 무인들은 흔들리는 눈빛으로 서로를 바라봤다. 전원이 다 덤벼도 상대가 되지 않았는데 고작 그 절반도 남지 않은 인원으로 싸우자니 도저히 용기가 생기지 않았다. 그러나 그것도 아주 찰나의 순간에 생긴 망설임일 뿐.

 

“수라추혼진(修羅追魂陳)을 펼쳐라!”

 

장대성의 외침에 남은 혈천추혼대 무인들은 망설이던 모습을 거짓말처럼 감추며 일사불란하게 진을 형성하기 시작했다.

 

자신을 감싸고 수라추혼진을 펼친 혈천추혼대 무인들을 바라보며 혈천우사가 나지막이 내뱉었다.

 

“반역자에게는 죽음뿐.”

 

혈천우사의 눈이 더욱더 차가워졌다.

 

 

 

 

 

콰강!

 

“크음!”

 

“…흐음!”

 

신음을 흘리며 동시에 뒤로 밀려나는 홍안, 청안의 노인들. 두 노인은 현재의 상황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싸움이 시작되기 전과 시작된 직후만 하더라도 별 어려움 없이 이길 수 있으리라 여겼던 왕무적이었지만, 싸움이 지속되면 지속될수록 그런 자신감이 사라지고 있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속도와 위력 면에서 조금씩 감소하는 자신들과 다르게, 왕무적은 속도와 위력이 점점 증가하고 있었던 것이다.

 

콰가강!

 

“…킁!”

 

또다시 엄청난 충격이 홍안 노인의 전신을 강타했다. 당장의 충격은 큰 문제가 되지 않았지만, 조금씩 그 충격이 커지고 있다는 것이 문제였다.

 

[이대로는 조금 힘들 듯하네.]

 

홍안 노인의 얼굴에도 어느새 웃음기가 완전히 사라져 있었다.

 

[흥!]

 

청안 노인은 인정할 수 없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신체가 힘들다는 말을 전해오고 있었지만 애써 외면하고 있었다. 이대로는 자신들이 원하는 승리를 얻어낼 수 없다는 사실이… 아니! 어쩌면 최악의 경우, 이대로 왕무적에게 패배할지도 모른다는 생각마저도 들 정도였다.

 

[아무래도 확실하게 승리를 얻으려면 현인정과 합공을 해야 할 것 같네.]

 

[…….]

 

홍안 노인의 전음에 청안 노인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것은 긍정도 부정도 아니었다. 자신들 두 사람으로도 모자라 현인정까지 합공을 한다는 것이 영 못마땅했지만, 지금으로서는 애써 위험을 떠안을 필요가 없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청안 노인에게서 아무런 말도 들려오지 않자 홍안 노인은 즉시 한쪽 구석에 서 있는 현인정에게 전음을 보냈다.

 

[심심할 터이니 자네도 한번 움직여보게.]

 

홍안 노인은 마치 가볍게 몸이라도 움직여보라는 듯 말을 했지만, 그것이 합공을 하자는 뜻임을 모를 리 없는 현인정은 내심 고소를 금치 못했다.

 

[알겠습니다.]

 

현인정도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잘 알고 있었다. 몇 번이나 왕무적에게 상처를 줄 수 있는 기회가 있었지만 번번이 홍안, 청안 두 노인과 손발이 맞지 않아 섣부르게 나설 수가 없었다.

 

내심 안타까워하고 있던 터인지라 홍안 노인의 제안은 현인정으로서도 나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기다리고 있었다는 쪽이 더 걸맞았다.

 

스릉.

 

검을 빼든 현인정은 천천히 걸음을 내딛었다. 마침 두 노인을 밀어붙이고 있었던 왕무적이기에 그는 어느새 자연스레 세 사람에게 삼각형 형태로 둘러싸이고야 말았다.

 

‘조금 쉬워진다 했더니…….’

 

현인정까지 가세를 하게 되면 애써 잡은 승기가 다시 원점으로, 아니 어쩌면 더 안 좋은 상황으로까지 갈 수 있다는 걸 직감적으로 느낀 왕무적은 살짝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다고 여기서 도망을 갈 수도 없는 법. 도망가려고만 한다면 못할 것도 없지만, 교주 연공실에 남아 있는 백서린과 진평남은 어쩌란 말인가? 또 자신과 뜻을 함께 하고 풍소동을 공격하러 간 혈천좌․우사는 어쩌란 말인가?

 

무엇보다도…

 

‘도망은 갈 수 없지!’

 

어떠한 상황에서도 상대에게 등을 보일 순 없었다. 아직 싸움은 끝난 것이 아니고, 이길 가능성이 아주 없는 것도 아니다. 단지 조금 힘들어졌을 뿐이다.

 

현인정은 홍안, 청안 노인을 슬쩍 바라보고는 고개를 끄덕임과 동시에 검을 내질렀다.

 

번쩍!

 

쇄애애액!

 

새하얀 검광이 번뜩임과 동시에 왕무적의 허리를 노리고 검기가 날았다. 속도와 위력 면에서 완벽에 가깝다 해도 아깝지 않을 훌륭한 한 수였다.

 

왕무적은 허리를 살짝 비틀며 주먹을 내질렀다.

 

펑!

 

동시에 후끈한 열기와 함께 홍안 노인의 장력이 전신을 덮쳐왔다. 그리고 아주 찰나의 시간을 두고 몸을 꽁꽁 얼어붙게 만들 청안 노인의 장력도 하체를 노리고 날아들었다.

 

꽝!

 

왕무적은 재빨리 양 주먹을 교차해 내지르고는 머리가 천장에 닿지 않을 정도로만 신형을 살짝 띄웠다. 사실, 다수의 인원에게 포위를 당한 상태에서 몸을 위로 띄우는 것은 극히 위험한 일이지만, 당장 청안 노인의 장력을 피하려면 방법이 없었다.

 

“위!”

 

현인정은 짧게 외치며 곧바로 거미줄과 같은 검기를 줄기줄기 뿜어냈다. 왕무적을 비롯해 그 주변을 갈기갈기 찢어버릴 듯한 위력이었다.

 

“클클!”

 

홍안 노인 역시 왕무적의 신형이 떠오른 것을 보곤 웃음을 흘리며 쌍장을 날렸다.

 

감탄이 나올 만큼 훌륭한 연합 공격!

 

현인정의 검기와 홍안 노인의 장력에 왕무적은 가볍게 인상을 찌푸리며 급히 내공을 잔뜩 끌어올려 양손에 응축시켰다.

 

 

 

 

 

천마혈풍장(天魔血風掌)! 제일초(第一招)!

 

혈풍비(血風飛)!

 

 

 

 

 

콰아아앙!

 

“큭!”

 

“욱!”

 

“크음!”

 

세 사람의 신음이 동시에 터졌다.

 

검으로 가슴을 보호하고 뒤로 세 발자국이나 밀려난 현인정과 양손을 축 늘어트리고 반보 밀려난 홍안 노인은 놀란 얼굴로 왕무적을 바라봤다.

 

허리 부근에 작은 검상을 입은 왕무적은 처음으로 생긴 상처에 얼굴을 미묘하게 일그러트리고 있었다.

 

“천마혈풍장… 혈천대전 마지막 날에 네놈이 펼친 무공이 천마혈풍장이었더냐?”

 

청안 노인의 물음에 왕무적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음… 사 대 교주와는 무슨 관계더냐?”

 

홍안 노인의 물음에 왕무적은 간단하게 답했다.

 

“아무런 관계도 없습니다.”

 

“관계가 없다니? 그렇다면 어떻게 네가 사 대 교주의 신공절학인 천마혈풍장을 익힌 것이냐? 본교에서도 찾지 못한 무공이다. 도대체 네놈은 누구더냐!”

 

홍안 노인의 진중한 물음에 왕무적은 붉어진 자신의 손을 들어 올리며 대꾸했다.

 

“어쩌다 보니 익히게 되었습니다. 자세한 이야기는 해드릴 수 없어서 죄송합니다. 그리고… 지금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닌 것 같습니다만?”

 

그만 이야기하고 하던 싸움이나 마저 하자는 왕무적의 행동에 홍안 노인은 못마땅한 듯 얼굴을 잔뜩 찌푸렸다. 그리고는 들었던 손을 늘어트리며 고개를 저었다.

 

“네게는 중요하지 않을지 몰라도 우리에게는 더없이 중요한, 아니 그것보다 중요한 일은 없다.”

 

혈수를 들어올렸던 왕무적은 자신이 답을 하기 전까지는 싸움을 하지 않을 것 같이 행동하는 홍안 노인의 모습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미 말했듯이 자세한 이야기는 해드릴 수 없습니다. 제가 천마혈풍장을 익히게 된 것에는… 아주 복잡한 사정이 있습니다. 어쨌든 중요한 것은 전 사 대 교주인 오자량이라는 사람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 것입니다.”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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