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룡전설 115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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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5,459회 작성일소설 읽기 : 신룡전설 115화
신룡전설 5권 - 15화
第九章. 선공(先攻) (1)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왕무적이 놀란 얼굴로 묻자 혈천우사는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했다.
“먼저 움직여야 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렇다고 어떻게…….”
“그런 반역자들에게 베풀 인정은 없습니다. 그들은 감히 반역을 꾀하고 있습니다. 차후 이런 일이 다시는 벌어질 수 없도록 엄히 다스려야 합니다.”
혈천우사의 말에 혈천좌사도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만 그쪽에 비해 이쪽은 수가 너무 적습니다. 먼저 움직인다고 하더라도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되는데요.”
백서린의 말에 혈천우사가 담담히 말했다.
“수십 마리의 개와 한 마리 호랑이의 차이일 뿐이오.”
담담히 말하는 어조 속에 담긴 강한 자신감에 백서린은 더 이상 어떠한 말도 할 수 없었다. 하지만 여전히 그녀는 어려운 일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혈천우사는 현인정을 비롯한 강경파 장로들이 반란을 준비하고 있다는 소식을 전해왔다. 이미 그런 것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예측하고 있었기에 놀랄 것도 없었지만 현재 왕무적을 비롯한 백서린과 진평남이 놀라는 이유는 강경파가 움직이기 전에 자신들이 먼저 움직이겠다는 혈천우사와 혈천좌사의 말 때문이었다.
“대장로를 비롯한 온건파의 분위기는 어떻습니까?”
왕무적의 물음에 혈천우사가 곧바로 대답했다.
“그쪽은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될 것 같습니다.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도 않고 있으며, 무엇보다도… 대장로 용당운은 현인정과 다르게 반역을 할 정도로 어리석은 인물이 아닙니다.”
“그렇습니까? 그렇다면 계획을 한번 세워보도록 하죠.”
혈천좌사가 입을 열었다.
“반란을 꾀하는 우두머리들만 죽이면 끝나는 일입니다. 저와 우사가 오늘 밤 모두 정리하도록 하겠습니다.”
두 사람이서 모두 정리하겠다는 말에 왕무적이 고개를 저었다.
“위험한 일입니다. 저도 돕겠습니다.”
“교주님께서 나서시지 않으셔도 충분합니다.”
혈천좌사의 말에 왕무적은 아니라는 듯 말했다.
“모든 것이 저 하나로 벌어지는 일들인데, 어찌 제가 가만히 있을 수 있겠습니까? 저 역시 두 분을 돕도록 하겠습니다.”
혈천좌사는 다시 그러지 않아도 된다고 말을 하려고 했지만, 고집스런 왕무적의 표정에 결국 더 이상은 아무런 말도 꺼낼 수 없었다.
“반역이라고 하더라도 어차피 위에서 시키기에 어쩔 수 없이 하는 일이니, 좌사님의 말처럼 우두머리들만 죽일 계획이라면 차라리 가장 먼저 현인정 장로와 풍소동 장로를 죽여 그 수급을 들고 나머지 장로들을 찾아가는 편이 어떨까요?”
백서린의 말에 왕무적이 얼굴을 찌푸렸다.
“백 소저, 그런 방법은 좀 잔인하지 않습니까?”
“잔인하더라도 그것보다 좋은 방법은 없을 것 같은데요? 어차피 강경파의 우두머리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은 현인정 장로와 풍소동 장로인데, 그들이 허무하다 싶을 정도로 순식간에 죽어버리고 자신들마저도 죽을 위기에 처했다고 생각하면 일이 쉽게 풀릴 것 같은데요?”
혈천우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소저의 말이 맞습니다. 끝까지 반항을 한다면 모를까, 당장 그렇지 않다면 우선은 그들을 받아들이는 척해놓고 그들의 모든 것을 박탈하는 방법이 가장 좋을 것 같습니다.”
“저 역시 훌륭한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혈천좌사까지 동조를 하고 나서자 왕무적은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그럼 오늘 밤 바로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빨리 끝낼수록 좋은 법.
달빛마저도 구름 뒤로 숨어버린 아주 어두운 밤.
“날도 좋구나.”
왕무적은 마치 자신을 돕기라도 하듯 어두운 밤하늘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쉬운 일이 없구나.”
세상에서 가장 단단한 물건을 찾기 위해 세상에 나왔을 뿐인데, 그 일은 너무나도 복잡하고 어려웠다. 원하지도 않았는데 원한 관계가 만들어지고, 그저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일 뿐이지만 수도 없이 살인을 저질러야만 했다. 그렇다고 꼭 나쁜 일들만 가득한 것도 아니었다.
좋은 사람들과 인연을 만들었고, 순간순간 행복한 시간도 보냈다. 무엇보다도 세상에 대해서 알아간다는 것은 가장 커다란 기쁨이었다.
‘현인정 장로…….’
기억에 의하면 눈매가 결코 좋지 않았다. 마치 독을 잔뜩 품고 그것을 숨기고 있는 뱀의 눈처럼 소름마저 돋을 정도로 섬뜩한 사람이었다.
왕무적은 홀로 현인정이 기거하는 검혼원(劍魂院)을 찾았다. 혈천좌사와 혈천우사는 현재 풍소동이 기거하는 도수원(刀手院)을 찾아갔을 것이다. 왕무적은 현인정을 상대하기로 했으며, 혈천좌사와 혈천우사는 풍소동을 상대하기로 한 것이다.
처음에는 혈천좌사와 혈천우사가 현인정을 상대하겠다고 했지만 왕무적이 끝까지 고집을 피우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풍소동을 상대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왕무적은 검혼원 주변을 철저하게 경계하고 있는 무인들을 바라보며 작게 중얼거렸다.
“혈천검혼대…….”
혈천신교 십이무력대 중 가장 강력할지도 모르는 혈천신교 최정예 무력대! 현인정의 손과 발이다. 교주를 제외하면 그 누구도 명령을 내릴 수 없는, 아니 상황에 따라서는 교주의 명령조차도 거스를 수 있을 정도로 현인정만을 위해 존재하는 무인들.
누구나 그것이 잘못된 것임을 알지만 지금까지 단! 한 번도 교주의 명을 거역해본 적이 없었기에 그저 넘어가고 있던 문제였다.
그렇다고 왕무적이 이제 와서 그것을 뜯어고칠 생각은 없었다. 그런 문제를 안고 있음에도 혈천신교는 몇백 년간 모든 무림인들로부터 공포의 존재로 자리를 잡고 있었으며, 자신이 나타나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아무런 문제 하나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차피 왕무적은 혈천신교의 교주라는 자리를 오래 지키고 있을 이유가 없었으니, 굳이 하지 않아도 될 일들을 해야 할 필요는 없었다.
혈천검혼대 무인들의 위치를 자세하게 살핀 왕무적은 천천히 신형을 움직였다.
스르르륵.
현천무영신법을 펼치며 적절하게 어둠을 이용하니 제아무리 대단한 혈천검혼대라고 하더라도 왕무적의 움직임을 알아차릴 수는 없었다.
더욱이 이미 어디에 누가 있는지를 자세하게 파악하고 있는 왕무적이기에 그들의 이목을 피하며 움직이는 것 정도는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렇게 현인정이라 생각되는 사람이 있는 방까지 이동한 왕무적은 조용히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무림 제일의 살수라 하더라도 왕무적보다 은밀히 움직이기는 힘들 것이다.
잠들어 있는 현인정의 침상으로 가려던 왕무적은 갑자기 발걸음을 멈추고 한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
아무런 말도 없이 그저 가만히 서 있는 왕무적.
그렇게 약간의 시간이 지난 후,
“클클! 이거 들켜버렸군.”
“…….”
한 사람의 음성과 또 다른 사람의 낮은 호흡 소리가 고요하기만 한 방 안에 작게 울려 퍼졌다.
방에 들어서서 현인정의 침상으로 다가가던 와중에 미세하게 느낀 기척이었다. 하지만 주변을 세심하게 살피지 않았다면 결코 느끼지 못했을 정도로 은밀했기에 왕무적은 내심 놀라고 있었다.
“대단하군. 두 선배님들의 기척을 느끼다니.”
잠들어 있는 줄 알았던 현인정이 천천히 몸을 일으키며 입을 열었다. 아니, 그는 확실히 잠들어 있었다. 적어도 노인의 음성이 들리기 전까지는.
“클클! 좌사나 우사 정도일 거라고 생각했더니… 이거 대어(大魚)로군.”
기쁜 듯 웃으며 모습을 드러내는 홍안의 노인. 그리고 그의 곁에 죽은 시체처럼 아무런 표정도 없이 두 눈을 빛내고 있는 청안의 노인.
‘고수!’
자칫 잘못했으면 두 사람의 기척을 느끼지 못했을 정도였으니 왕무적으로서는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거기에 현인정까지 가세했으니 정말로 조심하지 않으면 안 될 상황이었다.
휘이익!
현인정의 입에서 고음의 휘파람소리가 퍼져 나갔다.
“오늘은 제법 기쁜 날이 될 것 같군.”
휘파람을 불고 난 현인정이 뱀과 같은 눈을 희번덕거리며 웃었다.
“…….”
휘파람소리가 들리고 난 후에 방을 중심으로 수십 명의 사람들이 모여드는 것을 느끼며 왕무적은 조금 전의 휘파람소리가 혈천검혼대에게만 전해지는 특별한 신호임을 알 수 있었다.
“조금 힘들 것 같습니다.”
왕무적은 멋쩍게 웃었다. 그리고는 다시 입을 열었다.
“반란을 준비 중이라고 들었습니다, 현인정 장로님.”
현인정이 가볍게 미소를 지었다.
“그렇게 되었네. 난 적어도… 근본도 모르는 자에게 혈천신교를 맡길 수 없으니.”
충분히 이해한다는 듯 왕무적은 고개까지 끄덕였다. 하지만 그의 입에서 나오는 말들은 전혀 다른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물론입니다. 한데… 그 말은 현인정 장로님과는 어울리지 않는 것 같습니다만? 장로는 장로일 뿐이지 않습니까? 이미 교주님이 인정을 하셨는데……. 교주님이 인정했는데 그 밑의 장로가 인정할 수 없다고 반란을 일으키려 하다니… 하하하! 이거 참 재밌습니다!”
왕무적의 말에 현인정의 눈에서 살기가 치솟았다.
“클클! 곱상하게 생긴 것과는 다르게 제법 입담이 세군.”
“약간의 재주 좀 지녔다고 세상 무서운 줄을 모를 뿐이지.”
두 노인의 말에 왕무적은 그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두 분 노선배님들께서는 누구십니까?”
“클클! 귀신은 아니니 걱정 말게.”
왕무적이 다시 뭐라고 말을 하려고 했지만 그보다 빠르게 피부를 얼려버릴 듯한 강렬한 한기에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죽기 전엔 알려주지.”
말과 함께 청안의 노인이 다짜고짜 손을 뻗었다. 그러자 방 안을 싸늘하게 얼려버릴 정도의 한기를 머금은 푸른 장력이 쏟아져 나왔다.
왕무적은 밀려드는 푸른 장력에 곧바로 초풍건룡권을 펼쳤다.
파파파팡!!
연속으로 4차례나 펼쳐진 초풍건룡권은 청안의 노인이 뿜어낸 장력은 산산이 부셔놓았다.
“클클! 내 것도 한번 받아내 봐라!”
이번에는 홍안의 노인이 손을 휘둘렀다.
화르르륵!
청안의 노인과는 정반대인 강력한 화기에 왕무적은 눈을 가볍게 찌푸렸다. 한쪽이 음(陰)이면 다른 한쪽은 양(陽)이다. 이런 상대들과 싸운다는 것은 꽤나 곤혼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파파파팡!
이번에도 역시나 초풍건룡권을 펼쳐 방어를 한 왕무적.
“클클! 어디서 이런 괴물 같은 놈이 나왔을까?”
“모르지.”
“클클! 오랜만에 재밌겠어! 아주 재밌겠어!”
사탕을 앞에 두고 기뻐하는 아이처럼 홍안의 노인은 진정으로 즐거워했다. 별다른 말은 없었지만 청안의 노인 역시도 크게 달라 보이지는 않았다.
‘결코 쉽지 않겠어.’
혈천좌사와 혈천우사만 하더라도 이미 혼자서는 감당하기 버거울 정도였다. 물론 혼신의 힘을 다해 머릿속에 들어 있는 모든 무공을 펼치면 승리할 수 있다고 자신할 수는 있지만, 솔직히 다른 때처럼 상처 없이 이기리라고는 장담할 수 없었다.
눈앞에 있는 두 노인도 마찬가지였다. 싸워서 이기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상처 없이 이길 수 있다고는 보장할 수 없었다. 거기에 한쪽에 서 있는 현인정까지 생각하면…….
‘병기가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검, 도, 창 아무것도 휴대하지 않은 것이 처음으로 아쉽게 느껴졌다.
“클클! 시작해야지?”
당장이라도 손을 쓰고 싶어 안달난 사람처럼 보채는 홍안의 노인. 그 모습을 보며 왕무적은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도록 하죠.”
왕무적은 두 주먹을 힘주어 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