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룡전설 11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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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5,318회 작성일소설 읽기 : 신룡전설 114화
신룡전설 5권 - 14화
“나는… 아니, 우리는! 본교를 바로 세워야 하오!”
말이야 어쨌든 결과적으로는 반역을 하겠다는 현인정의 말에 방 안엔 무거운 분위기가 흘렀다.
“하면… 삼 장로님께서 생각하시는 새로운 교주님은 누구입니까?”
예도준의 물음에 현인정이 당연하다는 듯 대답했다.
“혈천신교의 삼 가문인 풍가의 후계이자, 역사상 본교 최강의 교주가 될지도 모르는 풍도백이오. 모두들 그의 무공이 얼마나 대단했는지는 똑똑히 보았을 것이오. 그는 우리가 모셔야 할 교주로서 손색이 없다는 것이 내 생각이오.”
풍도백을 교주로 세우겠다는 현인정의 말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풍도백이라면 굳이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애초부터 자신들이 원하던 교주가 바로 그였기 때문이다.
“온건파에서 가만히 있으려고 하겠습니까?”
모연화의 물음에 현인정이 답했다.
“그들이 아니었다면 나나 여러 장로들이 그놈에게 고개를 숙이는 일도 없었을 것이오. 현재로서는 대장로 용당운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알 수 없으니 내가 만나보겠소. 그 후 모든 것을 결정하도록 할 것이오.”
확실히 온건파가 나서지만 않는다면 왕무적을 교주의 자리에서 끌어내리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아무리 그의 무공이 대단하다고 하더라도 강경파 전체가 움직이면 어쩔 수 없는 법이다.
“혈천좌사와 혈천우사는 혈천신교 최강의 무인들입니다. 그들이 왕무적에게 달라붙어 있는 이상, 그리 쉽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들은 혈천신교보다도 교주의 안위를 최우선으로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민소희의 말에 현인정도 인정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그녀의 말대로 혈천좌․우사는 커다란 문제였다. 왕무적을 교주의 자리에서 끌어내리려면 반드시 그들을 죽여야 한다. 즉, 자신들의 뜻대로 일이 이뤄지면 혈천신교는 대대로 교주를 지켜주던 가장 막강한 방패를 잃게 되는 것이다.
“혈천좌․우사가 없어지더라도… 어쩔 수 없는 일이오.”
현인정은 깊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잠시 침묵이 흐르자 예도준이 입을 열었다.
“어제 북궁휘가 본교를 빠져나갔다는 소릴 들었습니다. 어찌 된 일인지 알고 계십니까?”
예도준의 물음에 현인정이 두 눈에 살기를 뿌리며 답했다.
“그렇지 않아도 놈이 북궁가의 정예만을 거느리고 도망갔다는 소릴 들었소. 그 버러지 같은 놈이 무슨 목적으로 그 같은 일을 저질렀는지는 모르겠지만, 당장 중요한 것은 교주위를 다시 되찾는 것이니 그 문제는 잠시 접어두도록 합시다.”
현인정의 말에 예도준을 비롯한 장로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북궁휘의 일도 문제가 되지만, 지금 당장 중요한 것은 교주위를 되찾아오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하면, 언제 대장로를 만나보실 생각이십니까?”
독기 어린 장대성의 물음에 현인정이 가볍게 웃었다.
“빠르면 빠를수록 좋으니 가까운 시일 내로 만나보겠소.”
“알겠습니다.”
혁련신은 빠른 걸음으로 혈외원을 향해서 걸음을 내딛었다.
“북궁 소저…….”
중얼거리는 혁련신의 얼굴엔 안타까움이 가득했다.
북궁휘가 북궁가의 정예를 이끌고 혈천신교를 떠났다는… 좋은 말로는 떠난 것이고, 나쁜 말로는 배신하고 도망을 갔다는 충격적인 소식에 혁련신은 가장 먼저 마음에 커다란 상처를 입었을 북궁연의 모습이 눈앞에 어른거려 도무지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혁련신은 어떻게든 북궁연을 달래줄 생각이었다.
“읍!”
혈외원으로 들어서자 살갗이 찢어질 듯한 엄청난 압력이 혁련신의 전신을 짓눌러왔다.
‘혈천좌․우사!’
혁련신은 현재 자신을 짓누르는 엄청난 압력의 주인들이 혈천좌사와 혈천우사임을 알 수 있었다. 이미 한차례 경험을 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그들이 왜 혈외원을?’
혁련신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다시 발걸음을 내딛었다. 아니, 그러려고 했다.
[돌아가라!]
“큭!”
머릿속을 뒤흔드는 전음에 혁련신은 한 발자국도 앞으로 내딛을 수 없었다. 마치 벼락이라도 맞은 듯 제자리에서 몸을 부르르 떨어야만 했다.
“혁련가의 혁련신입니다. 저는 북궁 소저를 만나 뵈러 왔습니다!”
혁련신은 혈천좌사나 혈천우사가 어디에 있는지 몰랐지만, 이대로 돌아갈 순 없었기에 허공에 대고 소리쳤다. 그리고 다시 발을 내딛으려고 하자 예의 머릿속을 뒤흔드는 전음이 또다시 송곳처럼 파고들었다.
[돌아가라!]
너무나도 단호한 전음에 혁련신은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서 있었다. 웬만해선 강제적으로라도 북궁연을 만나고 싶었지만, 그러기엔 상대가 너무나도 무서운 존재였다.
“혁련가의 혁련신입니다. 북궁 소저께 반드시 해야 할 말이 있으니 사정을 봐주시길 바랍니다.”
정중하게 예의를 차린 혁련신의 모습이 마음에 들었던 것일까?
혁련신은 자신을 압박하던 기세가 다소 누그러졌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들려오는 전음 또한 한결 부드러워져 있었다.
[지금은 교주님께서 만나고 있으니 물러났다 후에 다시 오도록 하라.]
혁련신의 눈에 일말의 의혹이 생겼다.
‘교주가 북궁 소저를?’
잠시 생각에 빠진 혁련신은 곧이어 그 이유를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었다. 교주 왕무적은 분명히 오월상으로 활동하며 혈외원의 경비, 아니 내원의 잡일을 했었다. 거기에 장추진과의 일 로 북궁연에게 도움까지 받은 일이 있었다.
‘당시의 일로 인해서 북궁 소저에게 고마움을 느끼고 있던가?’
혁련신이 그렇게 생각하는 사이, 눈앞에 왕무적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사내라는 것이 안타까울 정도로 왕무적의 모습은 혁련신의 눈에도 아름답게만 보였다.
‘저들은 누구지?’
왕무적의 곁에 바짝 달라붙어 있는, 제법 아름다운 여인과 흉터가 빼곡한 거한의 사내는 혁련신으로서는 처음 보는 낯선 사람들이었다.
“왕 소협! 사실대로 말을 해줘요!”
여인의 추궁 비슷한 말에 왕무적이 난색을 표하며 답했다.
“아니라고 했습니다만…….”
“거짓말! 그렇다면 어째서 왕 소협은 저 북궁 소저를 그토록 신경 쓰는 거예요? 솔직히 말을 해봐요. 북궁 소저와는 무슨 사이에요?”
‘사이라니?’
여인의 음성이 제법 크기도 했지만, 혁련신의 무공도 높았기에 꽤 거리가 떨어져 있다고 하더라도 듣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백 소저, 정말로 저와 북궁 소저는 아무런 사이도 아닙니다. 그저 아주 오래전에 만났던 적이 있는 사이일 뿐입니다. 그것이 전부입니다.”
왕무적의 말에 혁련신이 깜짝 놀랐다.
‘아주 오래전에 만났던 적이 있던 사이라고? 도대체 언제…….’
그러나 더 놀라운 말이 백서린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그렇다면 왕 소협에게 있어서 북궁 소저가 첫 번째 여인이었다는 소린 무슨 뜻이지요? 그런 말은 함부로 하는 게 아니라고요.”
“그건 제가 가장 처음 만난 여인이기에…….”
더 이상 왕무적의 말은 혁련신의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왕무적에게 있어서 북궁연이 첫 번째 여인이었다는 소리는 너무나도 충격적이었다.
‘첫 번째 여인이라니… 도대체 그게 무슨 소리지?’
“그런데 어째서 북궁 소저가 왕 소협 앞에서 그렇게 부끄러워하는 거죠?”
“부끄러워하긴 누가 부끄러워한다는 것입니까?”
“왕 소협만 모르고 다른 사람은 다 알아요. 북궁 소저가 왕 소협을 대할 때면 양 볼이 빨갛게 달아오르는 걸 정말로 모르나요?”
“그거야…….”
이어진 여인과 왕무적의 대화는 혁련신을 더욱더 충격적으로 만들었다.
북궁연이 누구던가?
웬만해서는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기로 유명하다. 그렇다고 무표정을 유지하거나 퉁명스럽게 사람을 대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저 이상할 정도로 사내에게 있어서만큼은 조금의 관심도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 북궁연이 사내 앞에서 부끄러워하며 얼굴을 붉혔다니!
혁련신의 머릿속은 그의 의도와는 다르게 이상한 상상으로 이어지기 시작했다. 왕무적과 북궁연의 다정한 모습, 그리고 행복에 겨워 수줍게 웃는 그녀의 모습… 그리고…….
“혁련 공자님.”
왕무적은 자신의 앞에 넋을 잃고 서 있는 혁련신을 불렀다.
상상 속에서 빠져 있던 혁련신은 왕무적의 음성에 정신을 차렸다. 하지만 어느새 그를 바라보는 혁련신의 눈동자는 분노와 질투를 잔뜩 담고 있었다.
‘북궁 소저가 날 그토록 거부한 이유도 이것이었나?’
자신은 항상 북궁연에게 최선을 다했다. 누가 보더라도 최고의 사내라는 말이 부족하지 않을 정도의 노력을 기울였다. 하지만 돌아오는 것은 북궁연의 냉담한 반응들뿐. 그 모든 이유가 눈앞에 있는 왕무적을 잊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자 절로 화가 치솟은 것이다.
그런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왕무적은 빙긋 웃으며 인사했다.
“몸은 좀 나아졌습니까?”
“나는 아무렇지도 않네. 그보다도 무슨 이유로 북궁 소저를…….”
“감히!”
벼락과도 같은 일갈과 함께 하나의 그림자가 하늘에서 뚝! 떨어져 내렸다.
“크윽!”
털썩!
어깨에 전해진 엄청난 충격에 혁련신은 신음을 터트리며 무릎을 꿇어야만 했다.
“혈천좌사!”
혁련신의 어깨를 잡고 짓누른 사람은 다름 아닌 혈천좌사였다. 그는 왕무적을 대하는 혁련신의 행동과 말투에 참지 못하고 신형을 움직인 것이다.
“어서 물러나십시오!”
왕무적의 이어진 외침에 혈천좌사는 군말 없이 뒤로 물러났다.
“괜찮습니까?”
혁련신은 고개를 숙인 그 자세로 가만히 있었다.
“죽고 싶은 거냐?”
머리카락이 곤두설 만큼의 강력한 살기가 혈천좌사의 신형에서 뿜어져 나왔다.
왕무적이 뭐라고 하기도 이전에 혁련신이 입을 열었다.
“괜, 괜찮… 습니다, 교… 주님.”
미미하게 떨리는 혁련신의 음성에 혈천좌사는 여전히 못마땅하다는 얼굴로 그를 노려봤다.
“일어나십시오. 그런데 이곳엔 무슨 일로 오신 것입니까?”
“아닙니다. 잠시… 잠시 이대로 있겠습니다.”
몸을 일으키려던 왕무적은 됐다는 듯 급히 말하는 혁련신의 대답에 이상하다는 듯 그를 바라봤다.
‘크게 다치진 않았는데.’
혈천좌사의 손속이 너무나도 빠르고 갑작스럽긴 했지만, 그것이 결코 치명적이진 않았다. 아무런 말도 없이 여전히 고개를 숙이고 있는 혁련신의 모습에 왕무적은 물끄러미 그를 바라보다가 뭐라고 입을 열려는 순간,
“교주님, 급히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어느새 우측으로 귀신처럼 나타난 혈천우사의 말에 왕무적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혁련 공자님, 그럼 전 이만 가보도록 하겠습니다.”
“예. 그리고… 다시는 저를 그리 부르지 마십시오. 교주님께서 부르실 만한 호칭이 아닙니다.”
“하지만…….”
“그의 말이 맞습니다. 지금은 어느 때보다도 교주님의 권위를 세워야 하는 시기입니다.”
혈천좌사의 말에 왕무적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말을 마치고 혈외원을 빠져나가는 왕무적 일행.
그들이 모두 떠나고 한참이 지나서야 혁련신은 몸을 일으켰다.
“후우…….”
하늘을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는 혁련신. 그는 곧이어 북궁연을 만나기 위해서 내원으로 천천히 향했다.
똑. 똑. 똑.
핏방울. 작은 핏방울이 점점이 찍혔다.
혁련신이 지나간 자리엔 작은 핏방울이 낙인처럼 바닥에 찍혔고, 그의 두 주먹은 여전히 굳게 쥐어져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