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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룡전설 11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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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읽기 : 신룡전설 113화

신룡전설 5권 - 13화

 

 

 

 

 

第八章. 이남 이녀(二男二女)

 

 

 

 

 

“어떻게…….”

 

북궁연은 자신의 앞에 서 있는 왕무적의 모습에 넋을 잃고 말았다. 3년 전, 분명히 자신의 눈앞에서 검에 가슴을 꿰뚫리고 그대로 물속으로 빠졌던 그가 아니었던가!

 

“사정이 있어서 지금까지 소저를 속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죄송합니다.”

 

정중하게 사과하는 왕무적의 행동에 북궁연은 평소의 그녀답지 못하게 대꾸조차 제대로 하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죽었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가슴 한쪽에 그의 그림자를 새겨 넣고 얼마나 울었던가?

 

그의 가슴을 꿰뚫은 사람이 북궁휘였다. 누가 뭐라고 해도 자신의 오라비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기에 북궁연은 대신 왕무적에게 마음 속 깊이 죄를 느끼고 있었다.

 

“많이 변하셨군요.”

 

북궁연은 그 말을 먼저 꺼냈다.

 

왕무적은 그녀의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잘 알기에 그저 빙긋 웃기만 했다.

 

3년. 짧다면 짧겠지만 왕무적에게 있어서 만큼은 엄청나게 긴 시간이었다. 어쩌면 그가 살아온 모든 세월 속에서 가장 그의 삶에 커다란 영향을 준 시간을 말하라면 주저 없이 그 3년이라고 말해야 할 것이다.

 

‘모습은 하나도 변하지 않으셨군요.’

 

하고 싶은 말이 가슴속에서만 웅얼거렸다. 왠지 모르게 그 말을 하고 나면 스스로 너무나도 부끄러워질 것 같았기에 북궁연은 애써 참았다.

 

북궁연의 눈에 비친 왕무적은 여전히 아름다웠다. 처음부터 왕무적은 여인인 자신이 보기에도 아름답다는 말이 무색하지 않을 정도의 미남자였다.

 

사람 자체가 풍기는 분위기와 말투, 눈빛, 모든 것이 변했지만 그의 미소와 얼굴, 머리카락… 외적인 것들은 3년 전과 똑같았다.

 

“언젠가 반드시 꼭 만나야 할 사람이 바로 소저였습니다.”

 

“예?”

 

왕무적의 말에 북궁연의 얼굴이 괜스레 붉어졌다. 지금까지 느껴보지 못한 달콤함이 전신을 물들이는 것만 같았고, 얼굴이 화끈거렸다.

 

‘내가 왜 이러지?’

 

북궁연은 스스로도 자신이 왜 이런지 이해할 수 없었다.

 

“소저는 제게 있어서 첫 번째 여인이었습니다.”

 

첫 번째 여인!

 

북궁연은 그 소리에 정신이 아늑해지는 것을 느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왠지 왕무적에게 있어서 자신이 첫 번째 여인이라는 소릴 직접 듣게 되자 가슴에 불이라도 난 듯 화끈거리며 심장 소리가 외부에까지 들릴 것만 같이 커다랗게 두근거렸다.

 

두근! 두근! 두근! 두근!

 

‘어머! 왜 이러지?’

 

북궁연의 심장이 얼마나 세차게 뛰고 있는지 아는지, 모르는지 왕무적은 여전히 그녀를 더욱 당황스럽게 만들었다.

 

“그때는 몰랐습니다, 소저가 이토록 아름다운지를.”

 

“…….”

 

귀까지 빨갛게 달아오른 북궁연은 더 이상 왕무적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보지 못하고 고개를 푹! 숙이고 말았다. 그런 그녀의 모습에 누구보다 놀란 사람은 광한파파였다.

 

‘아가씨가 사내 앞에서 이런 모습을 보일 줄이야…….’

 

사내에게 있어서는 그 누구에게도 평정심을 잃지 않고, 어떠한 달콤한 말에도 넘어가지 않았던 북궁연이었다. 솔직히 혁련신 정도의 사내가 구애를 해오면 어떤 여인이건 간에 열에 아홉은 넘어가기 마련이다. 그럼에도 북궁연은 굳게 자신의 마음을 닫고 그를 다른 사내들과 똑같이 대했었다.

 

그것으로 광한파파는 북궁연의 마음을 여는 사내는 결코 없으리라고까지 생각할 정도였다.

 

사실, 혁련신이 어디가 부족하던가? 집안, 외모, 무공, 재능, 성격… 어느 것 하나 부족함이 없는, 흔한 말로 모든 것을 완벽하게 갖춘 사내였다. 그런 그마저도 마다할 정도였으니 광한파파가 그리 생각하는 것도 결코 무리가 아니었다.

 

광한파파는 현재 북궁연이 새로운 모습을 보이게 한 사내, 왕무적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이미 그가 천외당의 오월상이라는 인물로 그간 교내의 모든 사람들을 속여 왔다는 걸 알기에 더욱더 호감이 가지 않았지만, 확실히 외모 하나만큼은 혁련신조차도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였다.

 

따지고 보면 혈천대전의 최후 승자로서 교주에까지 올랐으니 무공이나, 재능 면에서도 혁련신을 웃돌았다. 그리고… 인정하긴 싫지만 지금 자신의 앞에서 하는 행동으로만 봐서는 성격도 그리 나빠 보이지는 않았다.

 

‘흥!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고 했으니 두고 봐야 알 일이지!’

 

어찌 되었든 왕무적은 진실 된 신분을 숨기고 혈천신교 전체를 우롱했다. 그것만으로도 광한파파는 그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왕무적을 매섭게 바라보던 광한파파는 문득, 언젠가 달을 보며 홀로 상심(傷心)한 모습으로 중얼거렸던 북궁연의 모습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너무나도 슬펐던 모습.

 

달을 바라보며 금방이라도 눈물을 떨굴 듯한 얼굴로 미안하다는 말만을 되뇌고 되뇌던 북궁연의 모습은, 당시 차디찬 마음으로 뭉친 광한파파가 보듬어주고 싶을 정도였다.

 

‘그리움이었던가?’

 

생각해보면 그 슬픔 속에 한 줄기 그리움이 뒤섞여 있다는 것도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다.

 

“모, 몸은… 괜찮으신 거죠?”

 

떨리는 음성으로 여전히 고개를 숙이고 물어오는 북궁연.

 

“몸의 상처는 모두 나았습니다.”

 

묘한 감정이 뒤섞인 왕무적의 말투에 북궁연은 순간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봤다. 그리고는 그의 표정에 그늘처럼 드리워진 그 감정을 알아차리곤 이젠 부끄러움이 아닌 죄스러움에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이 말부터 했어야 했는데…….”

 

“소저께서 제게 사과하실 일이 아닙니다.”

 

단호한 음성에 북궁연은 가슴이 쓰라렸다.

 

‘오라버니…….’

 

왕무적이 무사한 모습으로 자신 앞에 살아 있다는 것은 너무나도 기뻐서 눈물이 흘러내릴 것만 같았지만, 그가 북궁휘에 대한 원한을 잊지 않고 있다는 사실에 이젠 슬픈 감정이 물 밀 듯이 밀려들었다.

 

 

 

 

 

약간 떨어진 거리에서 왕무적과 북궁연의 모습을 바라보던 백서린은 무엇이 그리 못마땅한지 연신 양 볼을 부풀리며 인상을 찌푸리고 있었다.

 

이미 그녀와 진평남은 그간 답답하게 모습을 감추어주었던 인피면구를 뜯어내고 역용술도 풀어버린 본래의 모습으로 당당히 서 있었다.

 

조금은 당황스럽긴 해도 왕무적이 혈천신교의 교주가 됨으로써 더 이상은 자신들의 모습을 숨기지 않아도 되었기 때문이다. 물론 아직까지 안전하다고는 할 수 없었지만.

 

“……?”

 

진평남은 연신 고개를 갸웃거리며 못마땅한 얼굴로 서 있는 백서린의 모습에 궁금증이 일었지만 굳이 묻지는 않았다.

 

“진 소협.”

 

“예.”

 

“진 소협이 보시기에도 왕 소협과 저 북궁 소저와의 사이가 심상치 않아 보이시죠?”

 

백서린의 물음에 진평남은 유심히 왕무적과 북궁연의 모습을 바라봤다. 미소를 짓고 이야기를 건네는 왕무적의 모습과 누가봐도 수줍어하며 얼굴이 예쁘게 붉어진 북궁연의 모습은 수상하다 하지 않을 수 없었다.

 

“확실히 그런 것 같군요.”

 

진평남의 말에 백서린의 고운 아미가 살짝 찌푸려졌다.

 

아무리 성격이 좋은 그녀라고 하더라도 한 남자를 사랑하는 여인임에는 틀림없는 사실! 더욱이 그 남자를 위해 목숨까지 걸고 혈천신교로까지 잠입을 했다면 그 정이 얼마나 깊겠는가? 그런데 그런 남자에게 생판 모르는, 더욱이 얼굴에 마음까지 예쁜 여인이 누가 봐도 이상할 정도로 가깝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으니, 아무리 백서린이라고 하더라도 얼굴이 찌푸려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도대체 무슨 사이기에 저렇게 다정하게 말을 하는 거지?’

 

이미 마음속으로 왕무적을 자신의 남자로 정해놓았고, 이제 때만 기다리면 된다고 생각하고 있던 백서린. 그런 그녀에게 북궁연은 갑작스럽게 나타난 예상외의 복병이었다. 그것도… 너무나도 막강한!

 

‘아무리 생각해도 그간 왕 소협과 너무 떨어져 있었어! 이제는 한시도 곁에서 떨어지지 말아야지!’

 

굳은 다짐과 함께 백서린은 왕무적의 곁으로 움직였다.

 

“백 소저?”

 

진평남은 갑자기 왕무적에게로 다가가는 백서린의 모습에 급히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걱정 마세요.”

 

무엇을 걱정하는지 다 안다는 듯 그렇게 말을 하곤 고개를 돌리던 백서린이 다시금 고개를 돌렸다.

 

“진 소협.”

 

진평남이 백서린을 바라보자 그녀가 물어왔다.

 

“저 예쁘죠?”

 

“……?”

 

“저 예쁜 편 아닌가요?”

 

백서린의 물음에 진평남이 잠시 멍하니 있다 급히 대답했다.

 

“백 소저는 충분히 아름답습니다.”

 

진평남의 대답에 백서린은 다행이라는 듯 살짝 웃고는 고맙다는 말과 함께 고개를 돌렸다. 그런데 다시금 그녀의 힘 빠지는 듯한 음성이 들려왔다.

 

“치… 북궁 소저가 나보다 더 예쁜 거 같은데…….”

 

진평남은 도대체 백서린이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다는 얼굴로 서 있을 뿐이었다.

 

“삼 장로님.”

 

풍소동의 음성에 현인정이 물끄러미 그를 바라봤다. 분하기로 따지면 솔직히 자신보다도 더욱 분한 사람이 바로 풍소동일 것이다.

 

왕무적만 아니었다면 풍도백이 교주가 되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아무리 온건파에서 견제를 하더라도 이미 풍도백의 무공은 그런 모든 것들을 홀로 물리칠 수 있을 만큼 높은 경지에 올라 있었기 때문이다.

 

“삼 장로님의 생각을 듣고 싶습니다.”

 

말만 풍소동이 꺼냈을 뿐, 모여 있는 강경파 장로들은 모두가 같은 마음이었다. 그런 것을 알면서도 현인정은 섣부르게 말을 꺼내지 않았다.

 

“지금부터 나올 말들은 경우에 따라서는 목숨까지도 버려야 할 정도로 위험한 말들일 수도 있으니 자리를 떠나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떠나도록 하시오.”

 

현인정의 말에 장로들이 저마다 서로의 얼굴을 바라봤다. 그들도 알고 있었다. 지금부터는 정말로 어렵고, 위험한 말들이 나올 것임을.

 

일각의 시간이 지났지만 아무도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현인정은 강경파 장로들을 일일이 바라봤다. 특히 분한 얼굴로 앉아 있는 풍소동과 굳은 얼굴로 자신의 시선을 마주하는 장대성의 모습은 지금부터 하고자 하는 자신의 말들에 더욱더 큰 힘을 보태주고 있었다.

 

“앞으로 우리가 하려는 일들은… 혈천신교 역사를 새롭게 쓰게 될 것이오.”

 

“…….”

 

“…….”

 

이미 충분히 예상한 일. 어느 누구도 흔들리지 않았다. 오히려 묘한 기대감과 흥분감 그리고 약간의 불안감만을 내비칠 뿐이었다.

 

현인정은 다시금 잠시 침묵했다가 입을 떼었다.

 

“나는 결코 근본도 모르는 자에게 혈천신교를 내어줄 수도 없으며, 무엇보다도… 그런 놈을 교주로 모실 마음이라고는 조금도 없소!”

 

반역!

 

현인정은 반역자란 소리를 들어도 부족하지 않을 만큼의 말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뱉어냈다.

 

분위기에 눌려서인지 강경파의 장로 중 어느 누구도 입을 열지 못했다. 오직 현인정의 이야기가 계속되기만을 기다리고 있을 뿐이었다.

 

“실질적으로 우리 강경파의 세력은 다들 잘 알고 있겠지만, 본교의 사 할에 가깝다고 할 수 있소. 뇌적심 장로가 있었다면 능히 사 할을 넘어선다 할 수 있었겠지만…….”

 

혈천신교 9장로 뇌적심의 죽음과 그가 이끌던 혈천창명대의 전멸은 혈천신교뿐만이 아니라 강경파에 있어서도 커다란 손실이었다. 더욱이 뇌적심의 무공은 12장로들 중 다섯 손가락 안에 들어갈 정도로 고강했으니, 현인정으로서는 더욱더 안타까울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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