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룡전설 11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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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5,019회 작성일소설 읽기 : 신룡전설 112화
신룡전설 5권 - 12화
혈천신교의 교인이 되고 싶은 생각은 없었지만, 현재 자신을 비롯해 진평남과 백서린의 안전을 위해서라면 방법이 없었다. 특히, 혈천좌․우사의 능력은 한 사람이라면 모르되, 두 사람을 동시에 상대하기엔 왕무적으로서도 부담스러울 정도였다.
“부디 본교를 잘 이끌어주게.”
“교주님!”
“교주님!”
교주의 말이 끝나자 현인정을 비롯한 강경파 장로들은 저마다 경악한 얼굴로 교주를 불렀다. 하지만 교주는 냉정한 음성으로 대꾸했다.
“장로들은 누굴 부르는 것인가? 그대들의 교주는 내가 아니라 바로 혈천대 위에 있는 왕 교주일세.”
“교주님!”
장로들의 외침에도 교주는… 아니, 전임 교주는 시끄럽다는 표정으로 눈을 감아버렸다.
현인정은 도저히 인정할 수 없었다. 자세한 사정은 모르지만 확실한 것은 석당진조차도 크게 반발을 하고 있으니 이대로 교주위를 생판 모르는 남에겐 넘겨줄 수 없었다. 더군다나 그의 말에 따르면, 정식으로 혈천신교의 교인이 된 자도 아니지 않던가! 거짓으로 혈천대에 올라 교주가 되었다는 사실을 어찌 인정할 수 있단 말인가!
어떻게든 상황을 돌려보려고 현인정이 머리를 굴리는 사이, 대장로 용당운이 신형을 날려 현천대 위로 올라섰다. 그는 자신을 압박하는 혈천좌․우사의 기세에 곧바로 왕무적의 앞에 엎드리며 말했다.
“대장로 용당운, 새로운… 교, 교주님을 뵙습니다.”
“……!”
“……!”
용당운의 말에 가장 먼저 놀란 것은 석당진이었다. 그리고 그만큼이나 놀란 사람은 현인정이었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이미 석당진의 계획, 아니 온건파의 계획은 산산조각이 나버렸다. 그렇다고 무력으로 왕무적을 제압하기에는 그의 무력도 무력이지만 이미 충성을 맹세한 혈천좌․우사의 무력도 무시할 수 없었다. 이대로 혈천신교가 스스로 몰락해버리는 것만큼은 막아야 한다는 생각뿐.
용당운의 행동에 혈천좌사가 아직까지 특단석에 있는 여러 장로들을 노려보며 말했다.
“모든 장로들은 신임(新任) 교주님께 인사를 드리게!”
강압적이지만 결코 거역할 수 없는 혈천좌사의 외침에 가장 먼저 움직인 이들은 용당운을 믿고 따르던 온건파의 장로들이었다. 그들은 하나같이 왕무적의 앞에 엎드리며 인사했다.
어떻게 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우물쭈물하는 강경파 장로들의 모습에 혈천우사가 가공할 살기를 뿜어대며 외쳤다.
“당장 인사를 하지 않으면 반역자로 보겠다!”
반역자!
혈천우사의 말에 강경파 장로들은 흔들리는 눈빛으로 현인정을 바라봤다. 장로들의 시선에 현인정은 이를 물며 혈천대로 신형을 날렸다.
“삼… 삼 장로 현인정… 새로운 교… 교주님을 뵙습니다.”
현인정이 인사를 하자 강경파 장로들이 하나 둘 서둘러 왕무적에게 인사를 했다.
‘물러나지 않는다… 물러나지 않아!’
왕무적의 앞에 엎드려 있는 현인정은 이를 꽉! 깨물며 눈을 빛냈다.
“어, 어떻게…….”
북궁휘는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방 안을 서성거렸다.
분명히 검은 그의 가슴을 시원하다 싶을 정도로 꿰뚫었었다. 더군다나 그를 직접 물속으로 집어넣었고, 며칠 동안 그의 집에 기거하며 살지 않았던가?
“분명히 죽었었다… 분명히 죽었는데…….”
시체를 확인하지 못했을 뿐이지 분명히 죽었다. 아니, 살았다면 자신의 눈에 띄지 않을 리가 없었을 것이다. 적어도 괴물 문어의 방해로 인해 더 이상 백년거린어의 내단을 취할 수 없을 때까지 그의 머리카락 한 올 조차도 볼 수 없었다.
그런데!
마치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아니! 당시는 무공조차 변변히 하지 못했던 그가 자신으로서는 감히 상대도 해보지 못할 정도의 고수가 되어서 나타났다. 더군다나 이제는 혈천신교의 교주까지 되었으니 ,그의 눈에 발각되는 날에는 그대로 죽임을 당하고 말 것이라는 생각이 들자 북궁휘는 전신을 짓누르는 공포감에 불안한 마음을 다스릴 수가 없었다.
“그러고 보니… 죽어서 시체가 되었다면 마땅히 수면 위로 떠올랐어야… 아니야, 물고기 밥이 되었겠지. 그래, 괴물 문어를 비롯한 영물들이 뼈 조각까지도 다 씹어 먹었을 것이라고 생각했었지.”
비정상적인 곳이었으니 시체가 남아 있을 리가 없다고 여겼던 북궁휘였다.
“어떡해야 하지… 어떡해야…….”
북궁휘는 당장 자신이 어떻게 해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마음 같아서는 이대로 혈천신교를 떠나버리고 싶었지만 그러자니 걸리는 문제가 너무 많았다.
“분명히 날 잊지 않았을 거야.”
북궁휘의 얼굴이 더욱더 딱딱하게 굳어갔다.
세상에 어느 누가 왕무적과 같은 일을 당하고도 가만히 있을 수 있겠는가?
북궁휘 스스로 생각해도 그건 당연한 일이었다. 더욱이 장추진의 단전이 파괴되고, 사지근맥이 처참하게 잘려나가는 모습을 두 눈으로 똑똑히 본 그였기에 더욱더 두려운 마음이 들었다.
똑똑.
“누구냐!”
“형님, 접니다.”
북궁명운의 음성에 북궁휘는 안도의 한숨과 함께 답했다.
“들어와라.”
문이 열리며 북궁명운이 방 안으로 들어섰다.
“혹 따라온 자는 없었냐?”
평상시 그답지 않은 북궁휘의 말투에 북궁명운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없습니다. 무슨 일이라도 있으신 겁니까?”
북궁명운의 말에 북궁휘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고개를 저었다. 굳이 왕무적과의 일을 이야기해서 좋을 것 하나 없었기 때문이다. 아니, 그와의 악연을 말하다 보면 자연스레 섬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 것이고, 그러다 보면 자신의 욕심을 충족하기 위한 비겁한 행동이 알려질까 감히 말을 할 수 없었다.
“교내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가는 것 같습니다.”
북궁명운은 그렇게 말을 하곤 가볍게 호흡했다.
“현재 신임 교주에 대한 강경파의 불만이 굉장합니다. 표면적으로 드러내지는 못하고 있지만, 현인정 장로가 무슨 일을 낼 것 같습니다.”
당연한 일이라는 듯 북궁휘는 고개를 끄덕였다.
“현인정 장로가 가만히 있지 않겠지. 아니, 어쩌면 역사상 최초로 혈천교 내에 내분이 일어날지도 모르는 일이지.”
북궁휘는 현인정이 당장이라도 미쳐버려 반란을 일으켰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만 되면 왕무적이 자신을 생각할 겨를도 없이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갈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자신의 행동도 보다 자연스러워질 수 있을 것이고, 무엇보다도 여차하면 혼란스러운 틈을 타서 혈천신교를 떠나기도 쉽기 때문이다.
“대장로인 용당운 장로가 석당진 장로를 지옥동(地獄洞)에 가둔 것과 혈천살혼대를 총령 염천악의 밑으로 배속(配屬)시킨 것을 제외하면 온건파 쪽의 분위기는 조용합니다.”
“분명히 석당진 장로와 온건파가 뭔가를 꾸몄을 것이다. 그런데 그것이 실패한 것이지. 온건파 쪽에서는 어떻게든 조용히 지금의 상황을 넘기려고 하겠지.”
바보가 아닌 이상에야 현인정의 말대로 석당진이 뭔가를 꾸몄을 것이라는 걸 알 것이다. 어쩌면 온건파 전체가 한통속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이들도 꽤나 많았다. 하지만 요문락이 모든 것을 뒤집어쓰면서 석당진의 손에 죽었으니 그 진실 여부를 밝혀내기엔 너무 긴 시간이 걸릴 것이 분명한 일.
그 시간 동안 왕무적이 넋 놓고 있겠는가?
더욱이 그의 양옆에 혈천좌․우사가 버티고 있으니 그 진실을 알아냈다고 하더라도 이미 교내의 세력 일부는 왕무적을 따르고 있을 것이니, 진실 여부와는 상관없이 상황은 되돌릴 수 없을 것이다.
엄청난 무위를 자랑하는 왕무적과 혈천신교 최강의 고수인 혈천좌․우사다. 그들 세 사람을 막을 수 있는 무인은 세상천지 어디에 있단 말인가?
‘당장은 아니겠지만 현인정은 분명히 반란을 일으키겠지. 하지만 오래 걸리진 않을 거다. 시간이 지날수록 상황은 왕무적에게 유리하게 돌아갈 뿐이니!’
그렇게 생각하자 조금은 마음이 안정되었다. 쥐 죽은 듯이 얼마간만 버티면 된다 싶었기 때문이다.
“형님.”
북궁휘가 북궁명운을 바라보는 순간.
“형님!”
큰 소리와 함께 방문이 벌컥! 열리며 북궁중산이 뛰어 들어왔다. 무엇이 그렇게 급한지 그는 방문을 닫을 생각도 하지 않았고, 얼굴은 잔뜩 붉어져 있었다.
그렇지 않아도 조심해야 할 상황에 북궁중산이 이처럼 시끄럽게 날뛰자 북궁휘는 순간적으로 살의가 일었다. 그러나 그런 마음은 이어진 북궁중산의 말에 거짓말처럼 녹아 사라졌다.
“형님! 신임 교주가 연 누이를 찾는다고 합니다!”
“……!”
북궁휘는 심장이 멎어버리는 듯한 충격을 받았다. 가장 우려했던 일이 벌어진 것이다.
왕무적은 자신의 신분을 감추기 전까지 천외당의 오월상으로 혈천신교에서 활동을 해왔었다. 그 과정에서 북궁연을 만났다. 그것도 아주 지척에서!
북궁연의 외모는 북궁휘가 판단하기에도 결코 한 번 봐도 잊지 못할 정도의 눈에 띄는, 기억 깊이 각인되는 미인! 왕무적이 잊을 리 없다!
‘놈은 내게 가장 먼저 복수를 하려는 거다!’
북궁휘는 그렇게밖에 생각할 수 없었다.
“도대체 신임 교주가 연 누이를 왜 찾지?”
북궁명운은 이해를 할 수 없다는 듯 북궁중산에게 물었고, 자신도 그것까지는 잘 모른다는 듯 북궁중산은 고개를 저었다. 그저 신임 교주가 혈외원까지 직접 움직여 북궁연을 찾아 나섰다는 말에 놀라 허겁지겁 달려왔던 것이다.
“혹시 신임 교주가 연 누이에게 마음이 있는 것 아닐까?”
“그건 또 무슨 소리야?”
“생각해봐. 신임 교주가 신분을 숨기고 있었던 곳이 천외당이잖아. 그리고 그 천외당은 연 누이가 기거하는 혈외원의 경비가 주요 임무니까 어떻게든 몇 번은 연 누이를 봤겠지. 삼 가문의 후계자라는 것들도 연 누이의 환심을 사려고 온갖 아부를 해대는데, 신임 교주라고 그러지 말란 법은 없는 거잖아?”
북궁중산의 말에 북궁명운도 마땅히 반박할 말이 없었다. 북궁연은 외모부터 그 성격까지 이미 혈천신교 내에서는 최고라 칭해지는 여인이다. 북궁중산의 말대로 삼 가문의 후계자들도 그녀를 아내로 맞이하기 위해서 온갖 노력을 기울일 정도였으니 결코 가능성 없는 말은 아니었다.
북궁중산은 북궁명운이 아무런 반박도 하지 못하자 자신의 생각이 맞다는 듯 웃음을 흘렸다.
“흐흐흐! 이거 어쩌면 연 누이로 인해서 횡재할 수도 있겠는데?”
북궁명운은 가볍게 얼굴을 찌푸렸다.
“그건 또 무슨 말이야?”
“바보 같은 놈!”
북궁중산에게 ‘바보 같은 놈!’이라는 소리를 들으니 북궁명운의 가슴속에서 화가 치밀어 올랐다. 그러나 북궁중산은 그런 말 들을 만하다는 표정으로 거들먹거리며 말을 이어나갔다.
“만약에 연 누이가 신임 교주와 혼인이라도 하게 되면 우리 북궁가가 이대로 있겠어? 더 이상 강경파의 손에 놀아나지 않아도 될 것이고, 어쩌면 이번 기회를 통해 북궁가로 인해서 혈천신교에 삼 가문이 사 가문으로 변할지도 모르는 일이지! 그거야말로 우리에게 있어서 횡재가 아니고 뭐겠냐?”
“음…….”
듣고 보니 그리 불가능한 일도 아니었다. 물론 그렇게 되려면 정말로 어렵겠지만, 어쨌든 지금보다는 북궁가가 혈천신교 내에서 큰 힘을 발휘할 수 있게 되는 것만은 변함없는 사실이기 때문이다.
“이거 누이 잘 둬서 출세하게 생겼군!”
북궁휘가 어떤 심정인지도 모르고 연신 좋아라 웃는 북궁중산.
“연이는 어디에 있지?”
북궁휘의 물음에 북궁명운이 대답했다.
“풍가에 있습니다. 형식적으로는 풍가에서 초대를 해서 그곳에 머물고 있는 것으로 되어 있지만, 형님께서도 잘 아시다시피… 감금되어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아무리 현인정이라고 하더라도 섣부르게 덤벼들진 않겠지.”
“……?”
북궁휘의 알 수 없는 말에 북궁명운과 북궁중산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당장 왕무적의 비위를 건드릴 정도로 현인정은 생각 없는 자가 아니다. 그렇다면 연이가 그와 만나는 것은 하루, 이틀! 결국은… 어쩔 수 없는 건가?’
북궁휘는 가만히 눈을 감았다. 그리고는 한참 만에 눈을 뜨고는 북궁명운과 북궁중산에게 무거운 음성으로 말했다.
“당장 실력 있는 이들로만 차출해라.”
“예?”
북궁명운이 무슨 말이냐는 듯 반문하자 북궁휘가 시간이 없다는 듯 다급하게 말했다.
“날이 새기 전까지 혈천신교를 떠난다. 실력 있는 세가의 무인들만 차출해!”
“혀, 형님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북궁중산은 놀란 얼굴로 외쳤다.
이제 곧 혈천신교 내에서 그 세력을 확장하며 한자리를 차지하는 상상에 빠져 있던 그로서는 북궁휘의 말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그러나 그런 북궁중산의 투정을 받아줄 만큼 한가한 북궁휘가 아니었다.
“닥치고 당장 말대로 해! 이대로 있다가는 다 죽어!”
“……!”
“……!”
북궁명운과 북궁중산의 눈이 부릅떠졌다.
길게 설명할 시간이 없다는 듯 북궁휘는 다시 재촉했다.
“자세한 이야기는 우선 혈천신교를 빠져나간 이후에 해주도록 하겠으니, 당장 내 말대로 움직여라. 절대로 신임 교주나 온건파, 강경파가 눈치를 채서는 안 된다는 걸 명심하고.”
뭐가 뭔지 도저히 알 수 없었지만, 북궁명운은 우선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우선은 형님 말씀을 따르도록 하겠습니다.”
“고맙다.”
그렇게 대답하고 방을 나가려던 북궁명운이 돌연 고개를 돌리며 물었다.
“하면, 연 누이는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북궁휘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연이는… 연이는… 훗날 내가 반드시 구하도록 하겠다.”
“…….”
그것이 무슨 뜻인지를 알기에 북궁명운의 두 눈이 가늘게 흔들렸다. 지금까지 결코 생각해보지 못했던 북궁휘의 모습이었다.
‘도대체… 무엇 때문에 그렇게까지…….’
북궁명운은 이내 고개를 흔들고는 신형을 날렸다. 무엇이 북궁휘를 저렇게까지 만들었는지 당장은 알 수 없지만, 만약에 그가 북궁연을 포기한 이유가 자신으로서는 도저히 납득할 만한 것이 아니라면…….
‘전 더 이상 형님을 따르지 않을 것입니다.’
북궁명운은 확실하게 자신의 뜻을 세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