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룡전설 10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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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5,017회 작성일소설 읽기 : 신룡전설 107화
신룡전설 5권 - 7화
그런 북궁휘와 북궁명운의 곁으로 2명의 노인이 귀신처럼 다가왔다.
“클클! 꽤나 고민이 많은 얼굴들이군.”
“……!”
터질 듯한 홍안(紅顔)의 노인의 갑작스런 말에 북궁명운은 화들짝 놀라며 급히 노인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어, 언제!’
북궁가의 멸문 직전에 겨우 목숨을 부지한 북궁명운은 당시 힘없던 자신을 탓하며 극한까지 자신을 몰아붙여 수련에 수련을 거듭했다. 혈천신교 강경파의 도움으로 새로운 무공까지 익히며 나름대로 실력에 자부심을 갖고 있었다.
“클클! 젊다는 건 그만큼의 성장 가능성이 무한한 것이니, 그리 주눅들 것 없다, 아해(兒孩)야.”
북궁명운은 자신을 어린아이 대하듯 대하는 노인의 모습에 마른침이 절로 넘어갔다. 감히 그로서는 어찌 예상조차 해볼 수 없을 정도의 고수였기에 막연한 두려움이 생겼던 것이다.
북궁명운만큼은 아니지만 북궁휘 역시도 놀라긴 마찬가지. 웬만한 무인은 자신의 상대가 될 수 없을 것이라고 여기고 있었지만, 두 노인의 앞에서는 자꾸만 주눅이 드는 기분이었다.
“명망 높으신 두 노선배님들께서 후배들에게 조심스럽게 움직여야 한다는 걸 몸소 보여주셨으니 그 가르침을 어찌 감당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북궁휘의 말에 홍안의 노인은 재미있다는 듯 ‘클클’거리며 웃었고, 그의 곁에 아무런 말도 없이 싸늘하게 서 있던 청안(靑眼)의 노인은 두 눈에 북풍한설과 같은 살기를 머금었다.
“그럴듯한 재주를 하나 익혔다고 눈에 뵈는 게 없는 게냐?”
“……!”
북궁휘는 전신을 감싸는 차디찬 기운에 피부가 찢어질 듯 아파왔다.
한빙백골소혼마장으로 인해 그 누구 못지않게 차가운 기운을 뿜어내는 사람이 북궁휘였지만, 청안의 노인 앞에서는 새 발의 피였다.
‘어, 엄청나다…….’
북궁휘는 덜덜 떨리기 시작하는 몸을 어떻게든 진정시키기 위해 온갖 노력을 기울였다.
“클클! 그러다 애 잡겠군.”
홍안 노인의 말에 청안 노인이 냉랭하게 시선을 돌려버렸다. 그러자 북궁휘는 자신을 감싸고 있던 차가운 살기가 걷히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네 재주가 아까워서 하는 말이니 섣부르게 움직일 생각일랑 하지 말거라.”
홍안 노인은 그렇게 말을 하고는 청안 노인과 함께 순식간에 사라져버렸다.
“형님!”
“…….”
북궁휘는 두 노인이 강경파와 관계가 있다는 걸 짐작할 수 있었다. 그리고 두 노인을 자신의 앞에 내세우는 것으로 다시 한 번 경고를 하고 있음도 알 수 있었다.
‘현인정…….’
북궁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초라한 자신의 모습에 화가 치솟는 걸 느꼈다.
“암흑마화단(暗黑魔火團)의 표도군이오.”
“천외당의 오월상이오.”
왕무적은 오늘로는 2번째이자 총 5번째 도전자인 표도군을 바라보며 간단하게 인사했다.
“표도군이다!”
“암흑마화단의 제3단 단주 표도군!”
몇몇 사람들이 표도군을 알아보고 소리쳤다.
암흑마화단은 혈천신교 십이무력대를 제외하면 가장 강력한 무력 단체 중 하나로 손꼽히는 곳이다. 그런 곳의 3단 단주인 표도군은 나이에 비해 꽤나 높은 직책을 가지고 있었다. 그만큼 실력 면에 있어선 의심할 여지가 없다는 것.
하지만 누구도 그가 왕무적을 이길 수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표도군의 무공이 강한 것만은 사실이지만, 그는 장대성은 물론이고 장추진보다도 반 수 정도 아래인 것이 확실했기 때문이다.
“그럼 가겠소!”
왕무적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자 표도군의 신형이 빠르게 움직였다. 가장 짧은 거리를 치고 들어오는 표도군을 바라보며 왕무적은 가볍게 주먹을 내질렀다.
파- 앙!
초풍건룡권!
지금까지 왕무적은 초풍건룡권만으로 모든 도전자들을 물리쳤다. 장추진 이후로는 그 누구도 단전이 파괴되거나 사지근맥이 잘리거나 하는 참혹한 패배를 당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몸 성히 돌아간 사람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표도군은 엄청난 권풍이 얼굴로 밀려들자 황급히 양손을 내뻗었다.
퍼엉!
“큭!”
단 한 번 마주쳤을 뿐인데 표도군은 가슴이 답답하고 양손이 떨려왔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어느새 혈천대의 가장자리까지 밀려난 상태였다.
“헉!”
눈으로 보기에도 충분히 강하다는 판단이 들었지만, 직접 부딪혀보니 이건 자신의 상상을 훨씬 초월하고 있었다.
‘엄청난 고수다!’
표도군은 당장이라도 패배를 시인하고 혈천대를 내려가고 싶었지만, 그러기엔 자존심이라는 놈이 도저히 용납을 하지 않고 있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장추진을 제외한 다른 사람들은 그저 길어야 한 달 정도 요양하면 정상적으로 돌아올 수 있을 정도로밖에 당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더욱더 그의 발걸음을 붙잡고 있었다.
‘이 정도의 고수와의 대결은 기회다!’
표도군은 오히려 이번 대결을 기회라 생각하며 호흡을 가다듬었다.
“그럼 다시 가겠소!”
이번에도 왕무적은 그저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탓-!
가볍게 땅을 박찬 표도군의 신형이 화살처럼 빠르게 앞으로 쏘아져나갔다. 그가 앞으로 내밀고 있는 양손에서는 어느새 노을처럼 불그스름한 장력이 잔뜩 응축되어 있었다.
34살이라는 젊은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암흑마화단의 제3단의 단주가 될 수 있었던 이유는 7살 무렵부터 쉬지 않고 성수벽력장(猩手霹靂掌)을 수련해왔기 때문이다. 이름 높은 대단한 절기는 아니지만, 어느 정도만 익혀두면 어디 가서 빠지지는 않을 장법이었다.
왕무적은 자신의 가슴을 노리고 밀려 들어오는 표도군의 성수벽력장을 향해 여전히 주먹을 뻗어냈다.
파파팡!
파공음이 세 차례 터짐과 동시에 중첩에 중첩을 이룬 권력이 정확하게 가슴 앞에서 표도군의 장력과 충돌을 일으켰다.
쾅!
“크윽!”
제법 커다란 폭발음과 함께 표도군의 신형이 뒤로 나뒹굴었다. 충돌의 여파가 너무나도 강력했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표도군 정도의 실력자가 이처럼 처참하게 뒤로 나뒹구는 일은 절대로 없었을 것이다.
“쿨럭!”
두 번!
단 두 번의 충돌로 표도군은 누가 봐도 계란으로 바위를 치고 있다는 걸 실감케 만들어주었다.
“이거 표도군도 앞서 대결했던 자들과 크게 다르지 않는데?”
“그러게 말이야. 이제는 슬슬 혁력 공자나 풍 공자가 나와야 하는 것 아닌가?”
“혁련 공자도 마찬가지 아닐까?”
“그게 무슨 소린가?”
“내가 알기론 혁련 공자는 장 공자와 우위를 가릴 수 없을 정도로 대등하다고 하던데? 그렇다면 혁련 공자는 어차피 오월상을 이길 수 없는 것 아닌가?”
“확실히 그렇긴 하군. 그렇다면 역시 풍 공자뿐인가?”
“아무래도…….”
“대단한 실력이오.”
작지만 주변을 한순간에 휘어잡는 힘이 있는 음성이 장내에 울려 퍼졌다.
다시 한 번 공격을 준비하고 있던 표도군과 그의 공격을 기다리고 있던 왕무적은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음성의 주인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비단 그 두 사람뿐만이 아니었다.
“저, 저 사람은!”
“풍도백 공자다!”
“풍 공자다!”
“폐관 수련을 끝내고 돌아왔다!”
강직함과 고집스러움이 물씬 풍겨 나오는 각진 얼굴과 맹호(猛虎)의 눈이 특징적인 풍도백은 주변의 소란스러움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신형을 띄웠다.
툭. 툭.
풍도백은 도중에 두어 차례 발 아래의 이름 모를 무인들의 어깨를 밟고는 단숨에 혈천대 위로 올라섰다.
척!
혈천대로 오른 풍도백은 물끄러미 왕무적을 바라보다가 이내 표도군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이제는 나에게 양보를 하지 않겠소?”
언뜻 들으면 오만할지도 모르지만, 표도군은 결코 오만하다 느껴지지 않았다.
“강한 상대입니다.”
나이는 어릴지 모르나 삼 가문인 풍가의 후계자라는 신분과 이미 자신으로서는 감당할 수 없는 경지에 오른 풍도백의 기세에 표도군은 자신도 모르게 경어를 쓰고 있었다.
‘풍도백… 과연 장추진이나 혁련신과는 비교할 수 없는 자다!’
표도군은 커다란 소리로 자신이 졌음을 알린 후에 혈천대를 내려갔다. 혈천대전에 참가하고도 몸 성히 혈천대를 내려간 사람으로는 그가 전무후무할 것이다.
“풍도백이라고 하오.”
강하면서도 곧은 풍도백의 기세에 왕무적은 미소와 함께 마주 인사했다.
“천외당의 오월상입니다.”
“대화는 입보다는 몸으로 해봅시다.”
풍도백은 말이 끝남과 동시에 엄청난 기세를 뿜어내기 시작했다.
‘굉장하다!’
왕무적은 풍도백의 기세에 그가 나이에 비해 엄청난, 아니 비상식적인 강함을 지니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 반면, 풍도백은 자신이 뿜어내는 기세에도 불구하고 조금도 흔들림이 없는 왕무적의 모습에 희미하게 웃음을 지어 보였다.
‘강하다!’
이제 막 시작되려는 대결. 그러나 이미 풍도백의 손은 땀으로 번들거리고 있었다.
풍도백의 갑작스런 등장으로 인해 강경파는 강경파대로, 온건파는 온건파대로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희미한 미소와 함께 오히려 좋아하는 온건파와는 다르게 강경파는 그야말로 어지럽게 전음이 오가고 있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오!]
현인정의 전음에 풍소동은 전날 장대성이 했던 것처럼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그대로 전음을 보냈다.
[그것이…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어째서 풍도백이…….]
전음을 날리다 말고 현인정은 입을 다물었다. 풍소동을 다그쳐봐야 그 역시도 자신과 마찬가지로, 아니 오히려 더 놀란 얼굴을 하고 있었으니 아무런 소용이 없었기 때문이다.
‘도대체 되는 일이 하나도 없군!’
장추진이 그러더니, 이제는 풍도백까지 자신들의 의지와는 전혀 상관없이 마음대로 움직이고 있으니 현인정으로서는 여간 답답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대로 가다가는 패권(覇權)이 온건파 쪽으로 가는 것도 무리가 아니라고 생각들 정도였다. 혈천대전이 시작되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이런 일을 전혀 생각해보지 않았던 현인정으로서는 지금의 상황이 당황스러우면서도 분노가 치밀었다.
“사 장로.”
교주의 음성에 얼굴을 잔뜩 찌푸리고 있던 풍소동이 급히 표정을 풀며 대답했다.
“예, 교주님.”
“사 장로는 아주 든든하겠소.”
“예?”
“저리 훌륭한 후계자가 있으니 풍가와 풍 장로가 어찌 든든하지 않을 수 있겠소?”
그제야 교주가 하는 말이 무슨 의미인지를 깨달은 풍소동이 만면 가득 웃음을 지어 보였다. 사실, 풍도백이 갑작스럽게 혈천대에 올라 적지 않게 당황스럽기는 하지만, 분명히 그는 풍가의 자랑거리이자 복(福)이었다.
“나조차 저 나이 때는 저만한 경지에 오르지 못했거늘.”
교주는 무엇이 그리도 좋은지 연신 흐뭇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 그런 교주의 말과 행동이 풍소동이 보기에 나쁠 리 없었다. 교주가 인정을 하니 오히려 더욱 기분이 좋고, 당장 오월상을 이기고 교주에 오를 것만 같았다.
“과찬이십니다. 그저 남들보다 성취가 조금 빠를 뿐이지, 그리 자랑할 만한 것은 아닙니다.”
“아니오. 어딜 가더라도 저 나이에 저만한 경지를 이룬 무인을 보긴 힘들 것이오. 풍도백만 보더라도 본교의 앞날이 밝은 것 같소. 하하하!”
교주의 과분하다 싶을 정도의 칭찬에 풍소동을 비롯한 강경파 장로들은 저마다 얼굴에 웃음을 그렸지만, 그 소리를 듣고 있어야 하는 온건파 장로들은 속이 쓰릴 수밖에 없었다.
사실, 풍도백은 너무나 뛰어났다. 혁련신도 결코 모자란 인재는 아니지만 상대적으로 훨씬 뒤처지는 것만은 어쩔 수 없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누가 교주가 되느냐지, 누가 더 능력이 출중한가가 아니다. 그렇게 생각하자 온건파 장로들의 입가에 한 줄기 미소가 내려앉았다.
그러나 그 미소는 오래가지 못했다.
풍도백이 자신의 기세를 뿜어내기 시작하자 교주를 비롯한 모든 이들이 놀란 얼굴을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허!”
교주의 입에서 탄성이 터졌다. 풍도백의 기세가 예상을 훨씬 뛰어넘었기 때문이다.
현인정이나 풍소동 역시도 생각지 못한 풍도백의 강대한 기세에 넋 나간 얼굴로 서로를 바라봤다. 타고난 천재 중의 천재에 노력까지 겸비한 풍도백이 강하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저, 저렇게나…….’
혈천신교의 장로들 중 풍도백을 감당할 수 있는 자가 몇이나 될까? 고작해야 대장로인 용당운과 3장로인 현인정 정도밖에 안 될 것이다.
“어쩌면… 내 괜한 기우(杞憂)일 수도 있겠군.”
중얼거리며 희미하게 웃는 현인정의 모습을 우연찮게 볼 수 있었던 석당진.
‘현인정 장로, 당신이 보고 있는 자는 그저 그런 자가 아니오. 홀로… 뇌적심 장로와 그의 혈천창명대를 몰살시킨 자란 말이오. 풍도백이 둘은 되어야 상대라도 해볼 것이오. 후후후……!’
석당진의 얼굴에 여유로운 미소가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