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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룡전설 90화

무료소설 신룡전설: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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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읽기 : 신룡전설 90화

신룡전설 4권 - 15화

 

 

 

 

 

한꺼번에 너무 많은 이들을 일방적으로 죽였기에 순간적으로 기분이 좋지 않았던 것일 뿐이다. 원래부터 왕무적에게 있어서 죽음은 그렇게 멀리 있는 것이 아니었다.

 

모든 생명은 태어남이 있으면 죽음도 있다는 것을 아버지에게 누누이 들어왔기에, 왕무적은 지금까지 죽음이라는 것에 대해 큰 두려움이나 공포를 느낀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언제고 자신도 죽을 것이라는 걸 알고 있을 뿐만이 아니라 그게 언제가 되었든지 인정할 준비가 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 형, 고맙습니다.”

 

왕무적이 꾸벅 고개를 숙이자 이소요가 아니라는 듯 손사래를 쳤다.

 

“내가 뭘 했다고 나에게 고마워하나? 나는 당연한 말을 했을 뿐이네. 뭐, 솔직히 이 정도는 웬만큼 무림을 굴러먹은 무인이라면 다 알고 있는 기본 상식일세! 하하하!”

 

이소요의 말에 왕무적은 빙긋 웃으며 그를 바라봤다.

 

그러는 사이, 왕정이 왕무적의 곁으로 나타났다.

 

“……!”

 

갑작스럽게 나타난 것도 모자라서 검은 복면까지 착용하고 있었으니 이소요로서는 당연히 놀람과 동시에 경계할 수밖에 없었다.

 

“왕 소제!”

 

이소요의 외침에 왕무적은 괜찮다는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곤 왕정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갑시다.”

 

“아직 일은 끝나지 않았소. 그리고 아직 유가보는 공격을 당하고 있소. 나는 마지막까지 유가보의 일을 끝마친 후에 돌아갈 것이오.”

 

왕무적의 말에 왕정이 그럴 필요 없다는 듯 말했다.

 

“혈림의 일은 이 정도면 됐으니 이만 돌아가도록 합시다. 기다리고 있으면 조만간 연락이 올 것이오.”

 

“그런 것과는 상관없이 이번 일은 내 뜻대로 끝을 맺겠으니, 더 이상 날 강요하지 마시오.”

 

왕무적의 말에 왕정이 눈을 찌푸렸다.

 

“이미 혈림의 일은 끝이…….”

 

자신들의 이야기를 관심 있는 얼굴로 듣고 있는 이소요의 모습에 왕정을 말을 하다 말고 이내 전음으로 이야기를 마저 했다.

 

[오늘의 일로 인해 더 이상은 당신을 시험할 필요가 없으니, 더 이상은 혈림의 일을 할 필요가 없소! 당신이 오늘 뇌적심 장로와 혈천창명대를 몰살시켰다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당신의 능력을 평가절하(平價切下)하고 있었음을 인정하고 있으니, 더 이상은 혈림의 일이야 어찌 되었든 상관할 이유가 없다는 말이오.]

 

왕정의 말에 왕무적은 똑같이 전음으로 말했다.

 

[내 말은 그런 것과는 상관이 없다는 것이오! 당신들이 날 어떻게 평가를 했든지는 아무런 관계없이, 나는 오로지 유가보의 일을 완벽하게 끝내고 싶을 뿐이오.]

 

왕정은 잠시 이소요를 바라보다 말했다.

 

[당신의 뜻은 알겠소. 하지만 더 이상 당신이 드러나서 좋을 것이 무엇이오? 이대로 묘가장의 무인들을 모두 죽일 생각이오? 이번에는 어떤 무공을 사용할 생각이오? 이들 앞에서 당신이 천마혈풍장을 익혔다는 것까지도 드러낼 생각이오? 그렇다면 신분을 속일 필요가 무엇이오? 차라리 떳떳하게 신도황 왕무적이 당신이라고 밝히는 것은 어떻소?]

 

[…….]

 

왕무적은 잠시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런 왕무적과 왕정의 분위기를 살피던 이소요가 조심스럽게 끼어들었다.

 

“왕 소제, 이만 떠나도록 하게.”

 

“그게 무슨?”

 

왕무적의 반문에 이소요가 웃으며 대답했다.

 

“자네에게도 나름대로의 사정이 있는 모양인데. 유가보의 일은 이만큼만으로도 자네는 최선을 다했다고 할 수 있네. 외원으로 쳐들어온 적들이야 지금의 유가보의 힘만으로도 어렵지 않게 상대할 수 있을 테니 지금 떠나도록 하게.”

 

“하지만 저는 아직 약속한 기일까지 일을 끝내지 못했습니다.”

 

왕무적의 말에 이소요는 아니라는 듯 고개를 저었다.

 

“아직 싸움은 끝나지 않았지만 약속한 날짜는 지났네. 지금 자네가 떠난다고 하더라도 엄밀히 따져 크게 틀린 것은 아니니 그냥 떠나도록 하게. 자네는 이 많은 이들을 홀로 상대하지 않았나? 조금이라도 더 지체하게 되었다가는 유가보에서 정말로 자네를 놓아주지 않으려고 들지도 모르는 일이고. 자네에게도 존재를 숨겨야 할 이유가 있는 모양인데 굳이 세상에 드러나서 좋을 것이 무엇 있겠나? 그냥 이대로 떠나는 것이 내 생각에도 좋을 것 같네.”

 

“이 형…….”

 

이소요는 손을 내밀었다.

 

왕무적은 그 손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마주 손은 내밀어 그 손을 맞잡았다.

 

“언제고 다시 볼 날이 있을 것이라 믿고 있겠네.”

 

“물론입니다!”

 

“오늘의 일은 내 평생에 있어서 절대로 잊지 못할 것이네.”

 

“별말씀을…….”

 

이소요는 내원 안쪽에서 달려오는 유가보 무인들의 기척을 느끼고는 왕무적의 등을 떠밀었다.

 

“이만 가보도록 하게!”

 

“그럼 몸조심하십시오.”

 

“자네도!”

 

“혈림에서 뵙겠습니다.”

 

“그러지!”

 

왕무적은 등을 떠미는 이소요의 모습에 고맙다는 듯 고개를 숙여 보여 인사를 마치고는 기다렸다는 듯 신형을 날리는 왕정을 따라 신형을 날렸다.

 

순식간에 하나의 점이 되어 사라져가는 왕무적의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이소요의 곁으로 수십 명의 무인들을 이끌고 유초백이 다가왔다.

 

“이 대협! 아무래도 더 이상은 내원에 웅크리고 있을 수가 없어서 이렇게 달려나왔……! 이, 이게 다 무슨 일입니까?”

 

유초백은 혈천창명대 무인들의 시체를 바라보며 경악한 얼굴로 물었다.

 

“죽은 시체들이네.”

 

“이 대협! 그건 저도 알고 있습니다! 도대체 누가 이런… 왕 대협은 어디에 있습니까?”

 

그제야 왕무적을 찾아 고개를 두리번거리는 유초백.

 

이소요는 그런 그를 바라보며 대답했다.

 

“왕 소제는 이들과 싸우다 큰 부상을 입었기에 먼저 혈림으로 떠났네.”

 

“예?”

 

놀라는 유초백의 어깨를 툭! 치며 이소요가 검을 빼들었다.

 

“왕 소제의 몫까지 열심히 싸워보도록 하세! 자! 외원으로 가지!”

 

먼저 달려 나가는 이소요의 모습에 유초백은 황급히 따라붙으며 물었다.

 

“이 대협! 도대체 왕 대협은 얼마나 다치신 겁니까? 아니, 그렇다면 내원으로 가셔서 치료를 받으셔야지, 어찌 혈림으로 갔단 말입니까? 이 대협! 이 대협!!”

 

유초백의 물음은 끊임없이 이어졌지만 이소요는 어떠한 답도 해주질 않았다.

 

 

 

 

 

칠흑과도 같은 어두운 밤에 대낮처럼 밝게 불을 밝혀놓은 거대한 장원의 모습은 높은 곳에서 보기엔 장관이라고 하기에 충분하다 못해 넘쳐흘렀다.

 

거대한 장원의 크기로 보아 결코 평범한 곳은 아니리라.

 

장원의 모습이 한눈에 보이는 높은 전각의 지붕 위에 3명의 사람이 위태롭게 서 있었다. 하지만 정작 지붕 위에 서 있는 사람들은 조금도 무서워하거나 두려워하지 않았다.

 

“팽가(彭家)라…….”

 

가장 우측에 서 있던 사내가 무감정한 음성으로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멍청한! 제깟 놈들이 아무리 단단히 방비를 해봐야 무슨 소용이 있을까! 어차피 이놈이나 저놈이다 다 같이 죽을 뿐이지. 큭큭큭!”

 

가장 좌측에 선 사내가 조롱기 가득한 웃음을 흘렸다.

 

휘이이잉!

 

사나운 바람이 세 사람을 휩쓸고 지나갔다.

 

그 바람이 얼마나 세찼던지 주변의 나무가 휘청거릴 정도였다. 하지만 지붕 위에 두 발로 버티고 선 세 사람은 옷깃과 머리카락만 나부낄 뿐, 상체 한 번 흔들리지 않았다.

 

“상대는 명색이 천하제일가라 불려도 손색이 없는 하북팽가(河北彭家)다. 결코 가벼이 봐서는 안 될 것이다.”

 

가장 가운데 선 사내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우측에 선 사내가 곧바로 말했다.

 

“알고 있습니다. 하북팽가는 결코 만만한 곳이 아니죠. 이미 아이들에게도 방심은 금물이라고 철저히 일러두었습니다. 걱정하실 필요 없으십니다.”

 

그 말을 들은, 가운데 선 사내는 만족스럽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지만, 좌측에 선 사내는 입을 내밀며 불만스럽다는 듯 퉁명스럽게 내뱉었다.

 

“천하제일가는 무슨! 형님! 진정으로 천하제일을 논하자면 우리 북…….”

 

가운데 선 사내가 말을 가로막았다.

 

“되었다. 그건 어디까지나 차후의 일일 뿐. 더 이상은 경망스럽게 언급하지 말거라. 자고로, 장부라면 입이 무거워야 큰 뜻을 펼칠 수 있는 것이다.”

 

“차후의 일이라고 하더라도 이미 예견된 일이니 무슨 상관이 있겠…….”

 

가운데 사내의 질책에도 좌측의 사내는 여전히 못마땅하다는 듯 투덜거렸다. 하지만 이미 질책이 있었기 때문인지 그 음성은 보다 작아져 있었다.

 

“정상에 올라 말해도 늦지 않다.”

 

“…….”

 

더 이상 좌측의 사내는 어떠한 말도 하지 않았다.

 

물끄러미 하북팽가의 모습을 바라보기만 하던 우측의 사내가 여전히 무감정한 음성으로 말했다.

 

“그자는 형님께서 직접 처리하실 생각이십니까?”

 

가운데 사내가 당연하다는 대답했다.

 

“물론이다.”

 

“조심하셔야 합니다. 명색이 도에 있어서는 천하에서 세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북도왕(北刀王) 팽자강입니다. 결코 만만한 상대는 아닐 것입니다.”

 

우측 사내의 염려스런 음성에 가운데 사내는 단언하듯 강한 어조로 말했다.

 

“더 이상 북도왕은 없다.”

 

가운데 사내의 음성에 좌측 사내가 조심스럽게 다시금 입을 열었다.

 

“형님, 부탁이 있습니다.”

 

“무엇이냐?”

 

좌측의 사내가 쭈뼛거리며 말했다.

 

“북도왕 팽자강을 죽이시거든 그의 도를 제게 주십시오.”

 

좌측 사내의 말에 우측 사내가 가볍게 혀를 찼다.

 

“병기만 좋다고 무공이 강해지는 것이 아니니 괜한 망상에 빠져 꿈꾸지 마.”

 

“망상이라니! 그리고 이왕이면 좋은 게 좋은 거라고, 보다 강력한 병기가 있으면 그만큼 무공도 높아지는 거 아니냐? 너 괜히 부러우니까 그러는 거지?”

 

발끈해서 외치는 좌측 사내의 모습에 우측 사내는 정말로 그의 말대로 부러워서 그러는 것인지, 아니면 대꾸할 가치가 없다고 여겨서 그러는 것인지 어떠한 대꾸도 하지 않았다.

 

“야! 말해봐! 너 부러우니까 그러는 거지?”

 

집요하게 묻는 좌측 사내의 모습에 우측 사내는 아예 고개를 돌려버렸다.

 

“저 봐! 저 봐! 자식아! 부러우면 진즉에 말을 할 것이지! 내가 먼저 말했으니까 넌 국물도 없어! 차후에 네가 하는 걸 봐서 한 번쯤은 사용하도록 생각해보도록 하지! 큭큭큭!”

 

킥킥대며 좋아라 웃은 좌측 사내의 모습에 우측 사내는 한심하다는 듯 외쳤다.

 

“멍청한 놈!”

 

“뭐? 이 자식이! 너 뭐라고…….”

 

투덕거리는 두 사내를 가운데 사내가 말렸다.

 

“그만들 해라. 그리고 철혈신도(鐵血神刀)는 이미 그 주인이 정해져 있으니 괜한 욕심을 부리지 말도록 해라.”

 

“예? 주인이 정해져 있다고요?”

 

좌측 사내의 실망스런 음성에 우측 사내는 나지막이 소리를 내며 웃었다.

 

“급작스럽게 호북진가(湖北秦家)에서 하북팽가로 그 대상을 바꾼 이유도, 그들이 팽자강의 철혈신도를 원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직 우리의 힘만으로는 팽가를 칠 수 없다는 걸 너희도 알 것이다.”

 

“역시 그런 이유가 있었군요.”

 

우측의 사내는 그제야 지금껏 궁금했던 의문이 풀렸다는 듯 시원스런 음성으로 대꾸했다.

 

그 반면, 좌측의 사내는 철혈신도를 가질 수 없다는 사실 때문인지 잔뜩 실망한 음성으로 투덜거렸다.

 

“쳇! 천하이십육병 중 하나를 가져보나 했더니… 하여간 있는 놈들이 더한다니까!”

 

“산아!”

 

“……!”

 

가운데 사내의 호통에 좌측의 사내가 깜짝 놀란 듯 신형을 움찔거렸다.

 

“입 조심해라! 만에 하나라도 그들이 네 그런 말을 듣게 되면 네놈은 물론이고, 지금까지 쌓아온 우리의 모든 것들이 한순간에 무너지게 될 것이다!”

 

“죄, 죄송합니다, 형님…….”

 

고개를 푹! 떨구며 시무룩한 음성으로 대답하는 좌측 사내의 모습에, 가운데의 사내는 그만 됐다는 듯 몸을 돌렸다.

 

“슬슬 시작하도록 하자.”

 

“예.”

 

가운데 사내를 시작으로 좌우측의 사내들도 높은 전각의 지붕 위에서 훌쩍 뛰어내려 더욱더 짙은 어둠 속으로 스며들어갔다.

 

휘이이잉!

 

바람이 불어왔고, 그 바람을 타고 하얀 머리카락이 휘날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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