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룡전설 1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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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3,305회 작성일소설 읽기 : 신룡전설 13화
신룡전설 1권 - 13화
이 정도까지 말을 했으면 알아서 무슨 말을 할 거라 생각했는데 왕무적은 여전히 아무런 말이 없었다. 오히려 그는 객잔 구경이 재미있다는 듯 연신 파란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릴 뿐이었다.
“저기… 난 뭐라고 부를까?”
결국은 육소빈이 먼저 묻고 말았다.
왕무적은 육소빈의 예쁜 얼굴을 빤히 바라보다 말했다.
“그럼 너도 ‘무적’이라고 불러.”
육소빈은 가볍게 아미를 찌푸렸다.
아무리 이름이 왕무적이라고는 하지만 ‘무적’이라고 부르기엔 뭔가 어울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거 말고 다른 말 없을까?”
“다른 말? 왜? 너도 이름 부르라고 했잖아?”
“그야…….”
‘당연히 네 이름이 이상하니까 그러잖아!!’
속으로 화를 터트린 육소빈.
하지만 그녀는 여전히 겉모습만큼은 세상에서 가장 얌전하고 수줍었다.
“싫으면 네 마음대로 불러.”
자신은 아무런 상관도 없다는 듯한 왕무적의 행동에 육소빈은 작게 한숨을 내쉬고는 뭐라고 부를지 한참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뭐라고 불러야 하지? 이름을 부르고 싶어도 그럴 수가 없으니…….’
그러는 사이에 왕무적은 커다랗게 하품을 했다.
“하~ 아암! 언제까지 여기 있어야 하는 거야?”
하품으로 인해 흘러내리는 눈물을 닦으며 묻는 왕무적의 모습에 육소빈은 또다시 아미를 살짝 일그러트렸다.
나름대로 외모에 있어서는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다고 자부하고 있던 자신이다. 그런데 그런 자신을 앞에 두고 아무렇지도 않은 듯, 오히려 신경조차 쓰지 않는 왕무적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은근히 화가 치밀어 오르기 시작한 것이다.
‘참자! 앞으로 나와 함께 할 낭군(郎君)이니… 내가 참자! 참어!’
“피곤해?”
“응.”
너무나도 쉽게 대답하는 왕무적의 모습에 육소빈은 어쩔 수 없다는 듯 몸을 일으켰다.
“머물 방을 알려줄게. 따라와.”
“응!”
몸을 일으켜 육소빈의 뒤를 쫄래쫄래 따르는 왕무적.
만평객잔의 최상층인 3층의 고급스런 방에서 생활하는 육소빈이었기에 그녀는 자신의 방 바로 옆에 왕무적이 지낼 수 있도록 이미 모든 준비를 끝내놓은 상태였다.
방문 앞까지 도착한 육소빈이 방문을 열며 말했다.
“여기야.”
그 말에 왕무적은 방 안으로 들어서서 고급스런 방 내부를 바라보며 두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물었다.
“여기서 자는 거야?”
“응.”
“와아~ 나 이런 데 처음인데…….”
왕무적은 감탄했다는 듯 방을 구석구석 살펴보기 시작했다. 육소빈은 그 모습을 가벼운 미소와 함께 바라보다 입을 열었다.
“그럼 난 이만 갈게. 난 바로 옆방에 있으니까 언제든지… 불러.”
별다른 의미는 없었지만 말을 하면서 육소빈은 스스로 너무나도 낯부끄럽다 여겼는지 얼굴을 붉게 물들였다. 그러거나 말거나 왕무적은 손까지 흔들며 인사했다.
“응! 잘 가~!”
“…….”
육소빈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방에서 나왔다.
“아!”
방문을 닫기 전, 육소빈이 왕무적을 향해 물었다.
“저…….”
“왜?”
“적랑… 이라고 불러도 돼?”
육소빈의 물음에 왕무적이 상관없다는 듯 웃으며 말했다.
“응.”
너무나도 쉽게 대답하는 왕무적의 모습에 육소빈은 잠시 멍하니 그를 바라보다가, 이내 귀까지 빨갛게 달아오른 후에야 황급히 문을 닫았다.
“자, 잘 자…….”
탁.
그 모습을 빤히 바라보고 있던 왕무적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소빈이는 얼굴이 엄청 잘 빨개지는구나.”
말을 마친 왕무적은 한쪽 구석에 커다란 짐과 검, 도, 창을 내려놓곤 침상에 쓰러져 잠을 자기 시작했다.
쌔액쌔액.
고요한 방 안엔 왕무적의 작은 숨소리만이 맴돌았다.
왕무적에게 있어서 오늘은 피곤하긴 했지만 너무나 행복한 하루이기도 했다. 물론… 어디까지나 왕무적에게만 해당되는 행복이었지만…….
아침 일찍 일어난 왕무적은 점소이의 도움으로 깨끗하게 씻고, 여전히 오른쪽엔 검, 왼쪽엔 도, 등엔 창, 어깨에 짊어졌던 커다란 짐은 바로 옆에 두고 객잔 2층에서 아침밥을 먹었다.
아침밥을 거의 다 먹기 직전 육소빈이 나타났다.
“적… 적랑, 아침을 혼자서 먹으면 어떡해?”
‘적랑’이라는 말이 부끄러운 듯 육소빈은 양 볼을 살짝 붉혔다.
“아… 매일 혼자 먹어서…….”
왕무적은 멋쩍게 웃으며 뒷머리를 긁적거렸다.
“매일 혼자? 왜 매일 혼자서 밥을 먹었어?”
“섬에 나 혼자 살았거든.”
“아버님은?”
어느새 왕무적의 아버지는 육소빈에게 ‘아버님’이 되어 있었다.
“아버지는 몇 해 전에 돌아가셨어.”
“아…….”
육소빈은 미안하다는 듯 왕무적을 바라봤다.
왕무적은 그런 것에 대해선 조금도 신경 쓰지 않는다는 듯 활짝 웃으며 말했다.
“소빈이도 빨리 아침 먹어!”
“…….”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왕무적의 말에 육소빈은 살며시 고개를 숙이며, 빨갛게 변한 얼굴로 미소만 지었다.
‘남들이 연인 사이로 보겠지?’
그런 생각을 하자 육소빈은 더욱더 행복해졌고, 입가엔 미소가 떠날 줄을 몰랐다. 그녀가 그런 생각을 하거나 말거나 전혀 관심도 없다는 듯 왕무적은 남은 밥을 모두 먹곤 몸을 일으켰다.
“왜 일어나?”
왕무적이 당연하다는 듯 답했다.
“난 밥 다 먹었어.”
곁에 두었던 짐을 짊어지는 왕무적의 모습에 육소빈은 아미를 잔뜩 찌푸렸다. 지금까지의 행복했던 상상이 한순간에 산산이 깨어지는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적랑! 나… 밥 먹을 동안 옆에서 기다려주면 안 돼?”
그렇게 묻는 육소빈의 얼굴은 잔뜩 붉어져 있었다.
왕무적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왜?”
“그, 그건… 난 혼자 먹기 싫거든.”
육소빈의 대답에 왕무적은 그녀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다가 다시금 자리에 앉았다. 그리곤 활짝 웃으며 입을 열었다.
“하긴 나도 가끔은 혼자 밥 먹는 게 너무 싫을 때가 있었어. 소빈이도 지금이 그런가 보구나!”
왕무적의 말에 육소빈은 고맙다는 듯 마주 웃으면서도 한편으로는 그의 남모를 아픔에 가슴 한쪽이 짜르르 해졌다.
‘앞으로는 내가 적랑의 곁에서 항상 함께 있어 줄게.’
다짐을 하듯 속으로 말을 마친 육소빈은 점소이가 내어온 밥을 천천히 먹기 시작했다.
밥을 먹던 육소빈은 자신을 빤히 바라보는 왕무적의 눈길에 시선을 이리저리 돌리다가 그의 커다란 짐을 보고는 궁금하다는 듯 물었다.
“적랑, 저건 뭐야?”
육소빈의 물음에 왕무적이 자신의 커다란 짐을 가리켰다.
“이거?”
“응.”
“이게 뭐냐면 내가 살던 곳에서 용……!”
-네가 지닌 것들에 대해선 그 누구에게도 말을 하지 마라. 내 존재에 대해서도 말을 하지 말 것이며, 네가 지닌 것들을 함부로 다른 인간들에게 보여주지도 마라.
“으윽……!”
말을 하려던 왕무적은 갑작스럽게 머릿속에서 울리는 용의 음성에 얼굴을 잔뜩 일그러트리며 양손으로 머리를 감싸 쥐었다.
“적랑?”
고통스럽다는 듯 얼굴을 일그러트리는 그의 모습에 육소빈은 깜짝 놀라서 그의 곁으로 다가갔다.
“아, 아파…….”
“어디가? 어디가 아픈 거야!”
육소빈의 물음에 왕무적은 ‘으음…….’ 하는 신음만 흘리다가 한참 후에야 고통이 사라졌는지 평상시의 얼굴로 돌아와 화난 음성으로 외쳤다.
“쳇! 그놈이 나한테 무슨 짓을 했나 봐!!”
“그놈? 그게 누구야?”
육소빈의 물음에 왕무적은 ‘용’이라는 말을 하려다가 이내 입을 다물었다. 또다시 ‘용’이라는 말을 했다가는 머리가 아플 것 같았기 때문이다.
“말할 수 없어.”
“왜? 어째서? 나한테만 말해봐. 비밀로 해줄게. 응?”
육소빈의 재촉에도 왕무적은 고개를 저었다.
“안 돼. 그놈이 말하지 말라고 했단 말이야. 말하면 또 머리가 아플지도 몰라. 말할 수 없어.”
왕무적의 말에 육소빈은 그럼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혹시 모르니까 의원에게 가보도록 하자.”
“의원?”
“응. 의원이 적랑을 고쳐줄지도 모르잖아.”
육소빈의 말에 왕무적은 잠시 생각하다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이내 육소빈은 다시 밥을 먹기 시작했고, 왕무적은 그런 그녀를 바라봤다.
하문의당(廈門醫堂).
“어떤가요?”
육소빈의 물음에 왕무적의 맥을 짚어본, 50대 후반의 의원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특별히 큰 문제는 없는 것 같군. 머리가 아프다고 했지?”
의원의 물음에 왕무적이 그답지 않게 예의바른 모습으로 답했다.
“예.”
“뭔가 특정된 말을 하려고 할 때 머리가 아프다고 했지?”
“예.”
왕무적의 대답에 의원은 잠시 그를 바라보다 고개를 저었다.
“으음… 그런 건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야. 자네가 말하는 ‘그놈’이 누구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마도 내 생각에 의하면… 어떠한 사술(邪術)이나 특정 대법(大法)을 자네에게 걸어놓지 않았나 싶네.”
“……?”
의원의 말에 왕무적은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다는 그를 멀뚱히 바라만 봤다. 오히려 의원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있던 육소빈이 놀란 얼굴로 물었다.
“사술이나 대법이라고요? 그, 그럼 적랑은 어떻게 되는 거죠? 고칠 방법은 없나요?”
의원은 육소빈을 바라보며 고개를 저었다.
“내 짐작대로 사술이나 대법이라면 그건 당사자밖에 풀지 못할 것이네. 다행히 어떤 특정한 말을 하려고 할 때만 머리가 아프다면 그 말을 하지 않으면 그만이지. 어쨌든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더 이상 없군.”
“그럴 수가…….”
의원의 말에 육소빈은 온몸에 힘이 쫙! 빠져나가기라도 하는 듯 힘없이 중얼거렸지만, 왕무적은 이내 무슨 말인지 잘 알겠다는 듯 몸을 일으켰다. 그리곤 의원을 향해서 고개를 꾸벅! 숙였다.
“감사합니다.”
의원은 아름다운 외모에 예의까지 바른 왕무적의 모습에 흐뭇한 얼굴로 웃음을 지었다. 그러면서도 그는 자신의 할 일을 잊지 않았다.
“은자 반 냥이네.”
“……?”
“진료비는 은자 반 냥이네.”
은자 반 냥이면 굉장히 비싼 가격이었지만 어딜 가나 의원들이 받는 금액은 비슷비슷했기에 의원을 찾는 사람들이라면 이 정도는 감수해야 하는 금액이다.
“…….”
왕무적은 그저 멀뚱히 의원을 바라만 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