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룡전설 1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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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2,953회 작성일소설 읽기 : 신룡전설 11화
신룡전설 1권 - 11화
쾅!
벽에 부딪힌 고군보의 몸이 힘없이 허물어졌다.
눈동자는 완전히 뒤집혀 있었고, 핏기라곤 찾아볼 수 없도록 새하얗게 질린 얼굴과 혼절을 했음에도 입에서는 울컥울컥! 쏟아져 나오는 붉은 핏물은 한눈에 보기에도 결코 가벼운 상처가 아니었다.
“……!”
“사, 사형!!”
“아버지가 지어주신 이름이다! 함부로 말하지 마! 아버지를 욕하지 마! 아버지를 우습게 생각하지도 마! 아버지를… 아버지를… 야아아아아-!!”
왕무적은 격한 감정을 고함으로 표출해냈다.
“컥!”
“윽!”
고막이 터져버릴 것만 같은 거대한 고함소리에 하문 검관의 무인들은 저마다 고통스런 얼굴로 주저앉았다.
털썩! 털썩!
“으으…….”
서 있는 사람이라고는 창백한 얼굴로 서 있는 섬전검 고여일과 왕무적의 뒤에 서 있는 여인뿐이었다.
“우리 아버지는… 세상 제일이란 말이야!!”
빨갛게 흥분한 얼굴로 왕무적은 씩씩거렸다.
그런 그를 바라보는 고여일과 여인은 놀란 감정을 다스릴 수가 없었다. 방금 전의 고함은 보통의 내공 고수가 아니라면 감히 시도조차 할 수 없는 일이다.
절정… 아니! 어쩌면 그 이상의 고수!
고여일과 여인은 왕무적이 얼마나 대단한 고수인지를 확실하게 느낄 수 있었다.
“네, 네놈은 누구냐?”
고여일은 떨리는 음성으로 물었다.
그러자 왕무적은 간단하게 대답했다.
“왕무적!”
더 이상 말하기 싫다는 듯 왕무적은 고개를 돌려 여인을 바라봤다. 그리고 물었다.
“정말로 저게 세상에서 가장 단단한 거 맞지?”
“그, 그게…….”
여인의 대답은 듣지 않았다. 아니, 들을 필요가 없었다. 애초부터 왕무적이 물었던 이유는 그저 다시 한 번 재확인을 하려고 했을 뿐이다.
왕무적은 고여일을 향해 걸어갔다.
“무, 무슨…….”
고여일이 뭐라고 하기도 전에 왕무적의 손이 훨씬 빨랐다.
스릉!
“……!”
자신의 눈앞에서, 아니 다가오는 것을 두 눈을 뜨고 뻔히 바라봤음에도 고여일은 허리춤에 매어두었던 검을 빼앗기고 말았다.
수치와 모멸감을 느끼기 이전에 고여일은 공포를 느꼈다.
“…….”
검을 빼든 왕무적은 가만히 그 검을 바라보다가 힘껏 땅으로 내려쳤다.
깡!
“……!”
단번에 반으로 부러지는 검!
얼굴을 가볍게 일그러트린 왕무적은 반 토막이 나버린 검을 내던지며 여인을 바라봤다.
탕.
“부러졌잖아!”
“……!”
여인은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런 여인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왕무적이 소리쳤다.
“거짓말쟁이!”
왕무적은 자신의 짐을 짊어지고,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듯 하문 검관을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고여일은 자신을 지나쳐가는 왕무적을 잡을 수 없었다.
부들부들.
섬전검이라는 무명(武名)도, 하문 지역에서 행세깨나 한다는 자신의 명예도 지금 이 순간은 공포라는 놈 앞에선 고개조차 들지 못하고 있었다.
털썩.
왕무적이 사라지고 나자 고여일은 풀려버린 하체로 인해 주저앉고 말았다. 자신의 앞에 외부인인 여인이 서 있었지만 더 이상 버틸 힘이 없었다.
자신과 마찬가지로 여인 역시도… 놀라긴 마찬가지였다.
얼마간의 시간이 흘렀다.
‘그를 따라가야 해!’
여인은 급히 왕무적의 뒤를 쫓아가기 시작했다.
여인이 떠나자 주저앉아 있던 고여일은 반으로 부러진 가보(家寶)를 멍하니 바라보다가 천천히 주먹을 쥐었다. 손톱이 없음에도 손에서 핏물이 흘렀다.
“감히… 감히……!”
고여일의 눈에선 핏빛 살기가 흘러나왔다.
왕무적이 하문 검관의 막내아들 고군보를 날려버린 시간.
“하문 검관이라…….”
굵직한 음성이 허공에 낮게 깔렸다.
웬만한 사람보다 머리 하나는 더 큰 키와 바윗돌이라도 얹어 놓은 것처럼 단단해 보이는 근육. 그리고 온몸에 잔뜩 새겨져 있는 크고 작은 흉터들은 끔찍하기 짝이 없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얼굴은 몸에 비해 흉터가 조금밖에 없다는 사실 정도였다.
하지만 얼굴의 전체적인 인상은 누가 봐도 ‘참 사내답구나!’라는 말이 절로 나올 정도로 시원시원했다. 다만, 얼굴의 흉터들로 인해 사내의 인상이 조금은 흉포하게 보일 수도 있다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하문의 관도를 천천히 걸어가는 사내의 발걸음에는 힘이 넘쳤고, 걸음을 옮길 적마다 아주 미세하게 흔들리는 어깨로 봐서는 사내의 무공이 보통은 아닌 것이 분명했다.
그리고 사내의 손!
어떤 수련을 어떻게 해야만 저토록 손이 변할 수 있는 걸까?
사내의 손은 차마 눈뜨고 보기 흉할 정도였다.
찢어진 살이 제대로 아물지도 않았는데 딱딱한 굳은살이 박여 있고, 뼈가 뒤틀려 있는 듯한 주먹은 더 이상 인간의 그것이 아니었다.
단단한 돌을 치고, 치고, 치고… 수없이 치면 저렇게 될까? 아마 비슷한 모양새는 만들어낼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왜, 왜 이러세요?”
“왜 이러긴! 같이 술이라도 한잔 하자고 그러는 거지!”
“누가 잡아먹기라도 한다나?”
“이, 이러지 마세요…….”
대낮에 처녀를 희롱하는 2명의 청년.
사내는 무표정한 얼굴로 그들을 향해 걸었다.
“그만 하고 가라.”
굵직한 음성엔 은근한 힘이 내포되어 있었다.
사내의 음성에 처녀를 희롱하던 두 청년이 얼굴을 잔뜩 일그러트리며 고개를 돌렸다. 그들은 다름 아닌 하문삼걸인 장식과 양구였다.
“뭐… 라고?”
양구는 사내의 단단한 육체와 그 육체에 빼곡히 새겨져 있는 흉터에 순간 기가 질렸지만, 사내의 겉모습만 보고 물러서기엔 자존심이 용납하지 않았다.
사내는 말없이 양구를 바라보다가 약간의 시간이 흐른 후에야 입을 열었다.
“다치고 싶지 않거든 그냥 가라.”
“싫… 싫다면?”
장식은 사내의 몸에서 풍겨져 나오는 분위기에 눌려 그냥 조용히 물러나려고 했지만, 양구가 발작적으로 소리를 지르는 바람에 그 기회를 잃고 말았다.
“멍청한 놈이군.”
“뭐! 이 자식이!!”
양구는 사내의 얼굴을 향해 냅다 주먹을 내질렀다.
휙!
하문 저잣거리를 단 3명이서 주름잡을 수 있었던 것은 그만큼 싸움에 있어서는 일가견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실력을 보여주겠다는 듯 양구의 주먹은 빠르고 강하게 뻗어나갔다.
턱!
하지만 양구의 주먹은 사내가 가볍게 들어올린 손바닥에 막혀버리고 말았다.
“이……!”
“너희와 같은 놈들을 상대하기 위해서 수련한 무공이 아니다. 마지막 기회다. 가라!”
“무, 무림인!”
장식은 그제야 왜 사내의 분위기가 위험하다 생각되었는지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이번에는 양구도 더 이상 함부로 행동하지 않았다.
상대가 무림인이라고 밝혀진 상황에서 상대에게 대들 정도로 양구는 강하지도 않았으며, 그럴 만한 배짱 또한 없었기 때문이다.
“죄, 죄송……!”
양구가 급히 몸을 돌리려는 순간!
턱!
사내가 갑자기 양구의 어깨를 잡았다.
“하문 검관이 어디지?”
사내의 물음에 양구는 손가락으로 하문검관의 위치를 알려주려고 했지만, 장식이 먼저 나서서 말했다.
“저희가 안내해드리겠습니다.”
장식의 말에 사내는 그를 바라보다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먼저 앞서서 걷기 시작하는 장식에게로 양구가 다가와 인상을 쓰며 물었다.
“왜 쓸데없는 짓을 하고 그래?”
“멍청아! 그건 우리보고 하문검관까지 안내하라는 뜻이었어!”
“그, 그런 건가?”
“그럼!”
“젠장! 무림인들이란 하여간!”
“쉿! 조용해, 멍청아!”
장식의 말에 양구는 더 이상 입을 열지 않았다. 그러나 악귀처럼 잔뜩 일그러진 그의 얼굴은 좀처럼 펴지지 않았다.
“고, 고맙습니다.”
장식과 양구의 뒤를 따르려던 사내는 자신에게 인사를 건네는 처녀의 인사에,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가볍게 고개만을 끄덕이곤 처녀를 지나쳤다.
“하아… 나는 같은 일당인 줄 알았네. 어쩜 저렇게 무섭게 생겼담?”
처녀는 고개를 흔들곤 서둘러 집으로 돌아기 시작했다.
“여기가 하문 검관입니다. 그럼 저희는 이만.”
장식과 양구는 사내가 혹시라도 또 다른 일을 시킬까? 싶어서 발바닥에 불나도록 고개도 한 번 돌리지 않고 왔던 길로 달려갔다.
누군가 그런 그들의 모습을 본다면 하문삼걸이라는 거창한 이름에 큰 흠집이 생기겠지만, 그런 것에 신경 쓸 정도로 지금은 상황이 좋지 못했다.
하문 검관에 도착하기가 무섭게 전신에서 발산하는 사내의 투기는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사내는 활짝 열려 있는 하문 검관의 문을 의아한 눈빛으로 바라봤다.
“정문 위사도 없다니…….”
중얼거린 사내는 이내 문 안으로 들어섰다.
“빨리! 빨리! 움직여!!”
이리저리 분주하게 움직이는 하문 검관의 무사들.
무사들을 다그치던 40대 중년의 남자가 낮선 사내의 모습에 얼굴을 찌푸렸다.
“이놈들을 그냥!”
중년의 남자는 경비 무사들을 떠올리곤 사내를 향해 걸었다.
“무슨 일이시오?”
남자의 물음에 사내가 그를 바라보며 답했다.
“섬전검 고여일 대협을 찾아왔소.”
“관주님께서는 지금 몸이 편찮으셔서 아무도 만날 수가 없소이다. 죄송하지만, 훗날 다시 찾아와 주시겠소이까.”
“으음…….”
사내는 난감하다는 듯 남자를 바라보다가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전해주시오. 앞으로 열흘 후, 다시 찾아오겠다고.”
“열흘이라… 알겠소. 그런데 누구라고 전해드리면 되겠소?”
사내가 묵직한 어조로 대답했다.
“진평남이오.”
“알겠소.”
사내는 고개를 끄덕이곤 몸을 돌려 하문 검관을 벗어났다.
사내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고개를 갸웃거리는 남자.
“진평남이라… 어디서 많이 들어본 것 같은데……. 도대체 어디서 들었지? 진평남… 진평남… 진… 평남! 광투자(狂鬪者) 진평남!!”
남자의 음성에 깜짝 놀란 한 무사가 다가왔다.
“왜 그러십니까, 총관님?”
“광투자 진평남이 관주님을 찾아왔다!”
“광투자 진평남이라면… 아! 그 뭐라더라? 맨손으로 사천 호…….”
무사가 제대로 기억나지도 않는 것을 기억하려 애쓰자 하문 검관의 총관이 대신 입을 열었다.
“맨손으로 사천 호랑이를 때려잡고, 박도를 육포처럼 씹어 뱉으며, 여섯 마리의 한혈보마가 끄는 마차에서 뛰어내린 그놈! 싸움에 미친놈! 철왕호신강기(鐵王護身罡氣) 하나만 믿고 맨몸으로 달려드는 미친놈! 광투자 진평남!!”
총관은 ‘이럴 때가 아니지!’란 말을 뱉어내며 급히 고여일이 머물고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