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륙지존기 17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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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3,084회 작성일소설 읽기 : 대륙지존기 179화
제1장 카무하트 (4)
넓은 평원.
인적이 없는 평원이다. 그곳에 무진은 진법과 마법진을 혼용한 마진법을 설치했다. 무진은 혼자만의 장소가 필요하기에 반경 100미터 이내에 어느 누구도 접근하지 못하도록 사전에 차단했다.
무진은 선과 선 안에 들어선 후 마진법을 작동시켰다. 복잡한 수식으로 이루어진 진법과 마법이 섞여 전혀 새로운 위력을 발휘했다. 마진법이 발동하자 무진의 신형이 사라졌다. 무진은 평원에서 사라진 것이 아니다. 마진법 안에서 한 발도 벗어나지 않았다.
공간과 공간을 반사하여 허허벌판의 지형으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
무진은 마진법 안을 살폈다.
“괜찮군.”
마진법이 발동된 공간은 넓었다. 무진이 설치한 공간은 반경 100미터에 불과하지만 마진법 내에서는 그 100배에 달하는 넓이였다. 공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전혀 다른 공간으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 차원이동과는 다르지만 비슷한 형태의 구조였다. 이곳에서는 시간의 개념도 약간 달랐다. 무진은 그것을 느낄 수 있었다.
“밖에서의 1시간이 여기서는 10일 정도인가.”
무진의 마진법은 공간과 시간의 관념을 뒤집어놓은 놀라운 능력을 발휘했다.
준비를 마친 무진은 조심스럽게 아공간을 열어 동굴에서 얻은 반지를 꺼냈다.
“나를 시험하는 것인가.”
반지의 혼돈력이 무진의 혼돈력을 자극하고 있었다. 마치 지남철의 반대쪽과 반대쪽이 서로를 끌어당기는 것과 같았다.
무진은 빨려 들어오는 반지의 혼돈력과 의념을 의지로 끊어내었다. 그러자 무진의 내부에 스며 들어가 있는 카오스의 검, 카오스의 타이탄, 카오스의 창, 카오스의 방패가 격렬하게 반응하며 무진의 의지를 거역하기 시작했다. 하나가 되려는 것을 방해받은 것을 분노하며, 무진의 의지를 무시하고 반지와 결합하려는 것이 아닌가!
무진은 의지를 배반한 카오스의 신기를 가만히 내버려두었다.
“나를 무시하고 합일하고 싶은 것이냐! 무엇을 원하는지는 모르겠으나 도전이라면 받아주겠다!”
마진법을 설치한 것은 이미 받아들이겠다고 마음을 먹은 것이다. 이제 와서 물러서는 것도 무진의 성미에 맞지 않았다. 이렇게 된 이상 정면으로 돌파하는 것이 최선이었다.
무진은 반지를 잡고 손가락에 끼웠다. 손가락에 반지가 끼어지자 알 수 없는 위압감이 무진의 등골을 시리게 만들었다.
우우우우웅!
반지에서 형언할 수 없는 회색의 영롱한 빛이 뿜어져 나왔다. 빛은 무진의 전신을 감싸며 주변을 맴돌았다. 무진은 이 빛이 혼돈력의 발산이라는 것을 느꼈다. 손에 끼워진 반지가 서서히 무진의 내부로 스며들어 갔다.
무진은 내부를 관조했다.
혼돈력 안에 스며든 5개의 신기가 또렷하게 원형을 찾아가면서 카오스링의 주변으로 모여들었다. 카오스링은 신기를 하나로 모으고, 혼돈력을 집결시키는 매개체였다.
무진이 합일시켰던 암흑혼돈력에서 신기의 혼돈력이 따로 분리되어 카오스링과 하나로 뭉쳐졌다. 신기의 합일이 이루어지는 시점에서 강력한 파장이 퍼져나갔다. 수많은 우주를 내포하고 있는 무진의 뇌리를 뒤흔들어 버릴 수 있을 정도의 권능이었다.
빠직!
무진의 얼굴에 힘줄이 쏟았다. 예상을 넘어서는 의지력이었다. 무진은 위험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방심하다가는 측정할 수 없는 혼돈의 권능에 먹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진은 그 순간 가지고 있는 모든 잠력을 폭발시켰다. 내부에 숨쉬고 있는 능력을 끌어 올려 하나로 뭉쳐야 했다.
무진은 공력과 암흑력을 집결시켰고, 내부에 숨쉬고 있는 혼돈력까지 끌어왔다. 무공간에서 만들어낸 무진의 혼돈력은 신기의 혼돈력과 섞이지 않았다.
서로의 완전한 합일점을 찾아가는 데 시간이 조금 걸렸다. 무진도 완성된 하나가 되기 위해서 최선을 다했다.
쿠꽈꽈꽝!
쩌저저적!
무진의 몸은 그 자리에 못이 박힌 것처럼 우뚝 서 있었다. 그러나 무진의 정신에선 하늘이 부서지고, 대지가 갈라지는 것 같은 굉음이 울렸다. 이것은 정신과 정신의 대결이 되고 있었다.
무진은 내부에 또 다른 무진을 만들었다. 이것은 영혼과 의지력, 암흑력이 결합한 무진이었다. 무진의 정신세계에서 싸우기 위해서 만들어낸 결합체였다.
목석이 된 몸과는 달리 정신은 그 어느 때보다 강력한 능력을 발휘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곳은 무진이 만들어낸 세상이다. 무진이 세상이고, 세상이 무진이었다.
그 안에 또 다른 존재가 완성이 되었다. 신기의 결합체는 완연한 형태의 사람으로 나타났다. 신비로운 기운으로 뭉쳐진 존재는 상서로운 눈빛으로 무진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이제야 만났구나.
“무슨 뜻이지?”
-너야말로 내가 안배해 놓은 존재다. 이제 내 뜻을 이어받아 나와 함께 세상으로 나가는 것이다.
신성을 내포한 자는 무진을 유혹했다. 마음을 울리는 유혹은 강렬한 이끌림을 내포했다. 그 말을 거절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러나 무진은 무너지지 않는 철혈의 정신력을 가지고 있었다.
“너는 나에게 도구일 뿐이다.”
-아직 모르는군. 네가 차원을 넘어온 것도, 신기를 얻은 것도 모두 나의 안배다.
“듣자하니 기분이 나쁘군.”
-나는 혼돈과 파괴의 지배자다. 그리고 너는 나와 같다. 그러니 나와 하나가 되라.
“싫다면.”
무진은 누군가의 사념과 결합되는 것을 싫어한다. 그 말을 곧이곧대로 들어줄 무진이 아니다. 더군다나 알게 모르게 상대는 무진에게 강요하고 있었다. 그 어떤 존재도 무진을 강압할 수 없다. 그것은 무진의 자존심과 같다. 설사 상대가 신이라고 해도 무진은 맞설 것이다.
-나는 혼돈과 파괴의 신 카무하트다. 한낱 인간이 나의 뜻을 막을 수 있다고 보는 것이냐!
“역시 신이었나.”
무진은 신의 강림을 보고서도 놀라지 않았다. 어렴풋이 짐작은 하고 있었다.
무공간에서 혼돈력을 얻은 것과 차원을 넘어온 일. 신기와의 만남. 모든 것이 카무하트의 안배였던 것이다. 무진은 신기를 얻을 때마다 우연이 겹친다고 생각했었다. 알고 보니 카무하트가 오래전부터 안배해 온 것을 따르고 있었던 것이다.
무진은 기분이 무척이나 좋지 않았다. 누군가 자신을 가지고 놀았다는 것 자체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놈이 어떤 힘을 가졌건 간에 처참하게 부숴버리고 싶은 파괴본능을 느꼈다.
-하찮은 인간이 감히 나에게 도전을 하겠다는 것인가!
“그렇다면 어쩔 거지.”
-소용없는 짓이다! 나는 세상의 탄생 이전부터 존재한 고대의 신이다! 나를 이길 수 있다고 보는 것이냐!
“그건 해봐야 알겠지.”
-역시 인간은 어리석은 존재로다! 그 어리석음으로 인해 네 존재는 내 안에서 완전히 사라질 것이다!
카무하트는 무진의 소멸을 언급했다. 무진은 그것이야말로 카무하트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함께 하자는 것 자체가 개소리임이 증명되었다. 놈은 발현할 수 있는 무진의 육체를 원할 뿐이었다.
카무하트는 잃어버린 고대의 신이다. 고대의 대륙은 주신, 마신, 혼돈의 신이 공존한 세상이었다. 하지만 주신에 의해 마신은 마계로 사라져 버렸고, 혼돈의 신은 지배력을 잃은 채 대륙의 기억 속에서 사라져야 했다.
권능을 봉인 당한 채 수많은 세월을 버텨야 했던 카무하트는 힘을 발휘할 수 있는 매개체가 필요했다. 그래서 후일을 도모하기 위해서 자신의 힘을 분리하여 카오스의 신기에 봉인해 두었다. 언젠가 모든 능력을 합일할 수 있는 존재가 나타나 원래의 능력을 되찾을 수 있도록 말이다. 그리고 안배에 의해서 무진이 선택이 되었다.
무진은 카무하트가 원하는 성향을 그대로 이어받은 존재다. 끝없는 투쟁본능과 잔인한 파괴본능은 카무하트의 전신이라고 해도 부족하지 않았다. 그야말로 자신의 모든 것을 이어받을 수 있는 존재였다.
카무하트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자신을 봉인한 주신을 꺾고, 영원히 세상을 지배하는 것이다.
“나는 나다. 어느 누구도 나를 지배할 수 없다.”
-하찮은 인간은 신을 이길 수는 없다. 신의 위대한 능력을 보여주마.
“웃기는 소리는 그만 하지. 네놈은 나의 몸이 필요할 뿐이야. 정신만 남아 있는 쓰레기 주제에 어디서 큰소리지.”
남의 몸을 차지하려고 오랜 시간 안배를 해왔다. 대단한 일일 수도 있으나, 결국에는 무진의 몸이 필요해서 수작을 부린 것밖에는 되지 않았다. 그것을 무진이 꼬집어서 말하자 카무하트가 분노했다. 인간이 신을 농락하는 것을 두고 보지 않겠다는 듯했다.
-신을 능멸한 죄는 죽음보다 더 고통스럽다는 깨닫게 해주마!
“신이라고 해서 나를 단죄할 수는 없다. 나를 단죄하고 싶다면 이겨라.”
-감히!
우우우웅!
휘이이잉!
카무하트의 분노가 터져 나왔다. 분노가 대기의 물결이 되어 거대한 해일로 변해 무진에게 들이닥쳤다. 세상을 휩쓸어 버리는 무지막지한 물결이었다.
촤아아악!
해일이 무진을 덮치는 위급한 상황이었다. 그 순간 해일이 무진을 중심으로 반으로 쪼개지면서 양 갈래로 벗어났다. 물결에 부딪친 산이 그대로 허물어져 버렸다.
-제법이구나! 그러나 이제부터다!
“얼마든지.”
카무하트는 본신을 무진의 앞에 드러냈다. 잔잔한 수면처럼 조용한 이면에 도사리고 있는 카무하트의 광폭한 파괴본능을 무진은 느낄 수 있었다. 파괴의 신이라는 별호가 무색하지 않았다. 천지사방을 압도하는 카무하트의 무소불위(無所不爲)한 능력 앞에 무진은 한없이 작아 보였다.
그러나 무진은 물러서지 않고 정면으로 맞부딪쳤다. 패도의 극에 달한 무진의 패력이 뿜어져 나와 거대한 형상을 취했다. 마지막 악마불의 현신을 보는 것 같았다.
쿠꽈꽈꽝!
벼락이 내리치고, 천지가 미친 듯이 소용돌이치며 휘몰아쳤다.
두두두두둑!
시야를 가리는 폭포수 같은 비가 쏟아졌다. 쏟아지는 빗줄기 속에서도 무진과 카무하트는 서로를 바라보고 있을 뿐이다. 가공할 패력과 혼돈력이 부딪치고 있는 둘의 중심은 오히려 평온해 보였다.
일촉즉발의 상황.
무진이 먼저 움직였다. 의지가 앞으로 나아가자 신형은 이미 카무하트의 정면에 달해 있었다. 공간을 없애버린 무진이 카무하트의 얼굴을 향해 권을 뻗었다. 카무하트는 인간의 권을 피할 생각이 없었는지 혼돈력을 발산했다.
-소용없다!
푸아아아아아앙!
쩌저저적!
강권의 위력은 상상을 초월했다. 권격이 혼돈력에 부딪치며 퍼져 나간 파괴력으로 인해 사방이 해일에 휩쓸린 것처럼 무너져 내렸다. 부딪치는 것은 모조리 다 소멸되었다.
휘청!
카무하트의 몸이 작게 흔들렸다. 권격을 막아내긴 했어도 충격을 받은 모양이었다. 믿을 수 없는 현실에 카무하트는 당혹감을 느꼈다.
-아니!
“잊었나 본데 여기는 네 세상이 아니야.”
-닥쳐랏!
인간의 주먹에 맞아 뒤로 밀렸다는 것을 카무하트는 인정하지 못했다. 신과 인간은 주종의 관계이며, 신의 입장에서 인간은 기르는 가축에 불과하다. 언제든지 죽일 수 있는 가축에게 신이 위축되다니 그게 말이 되는 일인가! 카무하트에게서 세상을 압도하는 거대한 분노가 퍼져 나왔다.
-신의 포효!
쿠아아아앙!
분노한 포효가 힘이 되어 무진을 강타했다. 카무하트의 분노는 강력한 파괴력을 지니고 있었다. 대기 자체가 진동하더니 공간이 깨져버리는 것 같은 파괴력을 선보였다. 충격을 받은 무진의 신형이 뒤로 밀려 나가버리고 말았다.
-신의 벼락!
촤자자자작!
물러서는 무진에게 피할 수도 없는 벼락이 떨어져 내렸다. 무진은 즉시 수라탄강기로 구현해 낸 강기막을 쳤다.
파아아아앙!
벼락과 강기막이 부딪치며 번천지복(飜天地覆)한 굉음이 터져 나왔다. 카무하트의 벼락은 기가라이트닝을 수백 배는 초월했다. 세상 전체를 벼락으로 태워버릴 수 있는 위력을 가지고 있었다. 무진은 수라탄강기를 통해 뇌력(雷力)이 번져 들어오는 것을 느꼈다.
찌릿! 찌릿!
극강의 수라탄강기가 중첩되어 여러 겹으로 강기막을 쳤음에도 불구하고 뇌력이 스며들어 오고 있었다. 무진은 몸을 옥죄는 뇌력으로 인해 상당한 충격을 받았다. 보통의 뇌력과는 차원이 달랐다. 신의 근원적인 원념(原念)이 담겨 있어 무진이 받는 충격은 상상을 불허했다. 직격을 당했다면 몸이 재로 변해버렸을 것이다.
“굉장하군!”
무진의 입에서 순수한 감탄이 터져 나왔다. 이제까지 상대해 왔던 자들 중에서 가장 강했다.
-아직까지 살아 있다니 역시 나의 선택이 옳았구나!
카무하트는 무진이 살아 있다는 것에 오히려 반기고 있었다. 자신이 선택한 존재가 이 정도로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다면 완벽한 능력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신은 대리인을 통해서 강한 힘을 사용할 수 있었다. 대리인의 능력이 뛰어나야 그 능력을 바탕으로 힘을 발산할 수 있는 것이다.
“벌써부터 이겼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과연 그럴까.
카무하트는 아직 전력은커녕 본신의 힘을 다 쓰지도 않았다. 신의 위대한 능력을 일부나마 보여주는 것에 불과했다.
그에 반해 무진은 전력을 사용하고 있었다. 수라탄강기는 무진의 무력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었다. 극강의 강기막을 쳤음에도 불구하고 낭패를 당했다면 전력의 차이는 극명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진은 활화산처럼 타오르는 전의를 토해내었다. 극에 이른 투쟁본능이 무진의 전신을 감쌌다. 지옥에서 아수라의 화신처럼 투기가 치솟아서 형태를 갖추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