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륙지존기 176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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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3,021회 작성일소설 읽기 : 대륙지존기 176화
제1장 카무하트 (1)
대륙전쟁이 벌어진 지 10일.
대륙을 양분하는 초강국. 브릴란트 제국과 메카닉 왕국의 전투는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전쟁의 개념을 바꾸어놓았다. 초기에 속수무책으로 밀리던 메카닉 왕국의 후퇴는 전략이었던 것이다. 모든 전력을 후방으로 밀집시켜 놓고 전략병기와 더불어 메카닉 왕국이 자랑하는 타이탄이 전장에 투입되자 전장은 팽팽한 균형을 유지했다.
브릴란트 제국의 파상공세를 맞아 메카닉 왕국은 그동안 선보이지 않았던 이동식 성벽을 활용했다. 적의 이동동선을 따라서 성벽을 자유자재로 이동시켜 새로운 성벽을 쌓고 전투를 벌이는 전술을 펼쳤다.
성벽의 이동이 가능한 이유는 메카닉 왕국 타이탄엔진 보유기술의 진보 때문이었다. 성벽과 성벽을 조각으로 나누어 이동할 수 있도록 만들어놓고, 적의 대군을 침입해 오면 성벽과 성벽을 이어 성을 만든다. 성벽 안에는 적의 공격을 맞아 방어할 수 있는 대포와 발리스타가 달려 있었다. 수적인 열세를 병기와 전략으로 맞서고 있는 메카닉 왕국이었다.
특히 메카닉 왕국의 두 기둥인 오헨 공작과 데브론 공작의 연합전술은 브릴란트 제국의 공세를 막는 데 가장 큰 공헌을 하고 있었다.
예상보다 소요되는 시간이 길어지자 브릴란트 제국의 카이엘 황제는 주요전력을 전장에 투입하기로 결정했다. 대륙십강은 물론 제국의 가장 강력한 기사단인 드레이크 기사단, 피닉스 기사단을 투입시켰다.
각 기사단은 퓨리어급 이상의 소드아머와 30기의 타이탄라이더까지 보유하고 있었다. 역대 최강의 무시무시한 전력이었다. 1천에 달하는 오러마스터가 전장에 투입되는 대전투였다.
반면 브릴란트 제국의 전력에 맞서는 메카닉 왕국은 과거에 선보인 타이탄과는 비교도 안 되는 뉴 타이탄을 선보였다. 이제까지 대륙에 나온 노멀급 타이탄보다 두 단계는 넘어서는 성능을 보유하고 있었다. 그중에서도 슈페리얼급에 해당하는 5대의 타이탄은 전장의 파괴자와 같았다.
메카닉 왕국은 대륙십강에 드는 초강자는 없지만 그를 막아낼 수 있는 자들이 있었다. 메카닉 왕국의 숨겨진 검. 시크릿나이트 50명이 그들이었다. 모두 그랜드마스터에 달하는 능력과 타이탄라이더로서의 뛰어난 역량을 지니고 있었다.
치열한 공방전이 이어졌다.
그사이 대륙의 왕국이 연합했다. 내부의 혼란이 종식되기가 무섭게 대륙전쟁에 참여하기 위한 준비를 마쳤다. 브릴란트 제국으로는 뜻하지 않은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각 왕국의 전력이 브릴란트 제국과 메카닉 왕국에 비해서는 부족하다고 해도 연합을 한다면 상황이 달라진다.
또한 숨겨진 강자들이 왕국에 가담하면서 전력은 극대화되고 있었다. 메카닉 왕국까지 도착하는 시간이 약간 지체되고 있기는 하지만 곧 연합전력이 합쳐질 것으로 예상이 되는 상황이다.
전장에 직접 나선 브릴란트 제국의 카이엘 황제는 뜻하지 않은 보고로 인해 인상을 찌푸렸다. 30년을 기다리면서 준비한 전략이 모래성처럼 허물어지고 있었다.
“사전에 준비한 것들이 소용없게 되었군.”
“모두 신들의 불찰이옵니다!”
윈바이크 공작, 아론 공작, 제임스 공작은 고개를 들지 못했다.
이번 일의 대부분을 3대 공작이 주도했었다. 전장 직전까지만 해도 각 왕국의 혼란은 극대화되어 있었기에 원하는 대로 흘러가고 있었다. 그러나 막상 전장이 벌어지자 그동안의 혼란이 거짓말처럼 사라져 버렸다.
더군다나 각 왕국에 파견된 자들의 종적이 감쪽같이 없어졌다. 왕국에서 눈치를 채고 역공을 준비하고 있었다는 뜻이 되었다.
“입이 있으면 말해 보라.”
“…….”
황제의 질책에 공작들은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었다. 어디서부터 일이 잘못되었는지 공작들도 알아내지 못했다. 정보원들을 파견하여 상황을 주시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순탄치가 않았다.
카이엘 황제는 대륙의 지배자답게 분노를 가라앉혔다. 실패한 일은 돌이킬 수 없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이제부터는 새롭게 시작되는 전쟁의 구도를 만들어야 할 때였다.
“지나간 일에 연연하지는 않겠다. 그러나 또다시 이런 일이 발생할 시에는 그대들이라고 해도 참지 않을 것이다.”
“황제 폐하의 성은에 반드시 보답하겠습니다!”
카이엘 황제로서도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지나간 일을 다시 상기시켜 전장에 꼭 필요한 3대 공작을 내칠 수도 없는 일이다. 상황이 어찌 되었건 공작들은 제국의 가장 주요한 전력이었다. 대륙십강은 그 자체로 하나의 완성된 최종병기였다. 그들 자체가 제국을 상징한다고 해도 부족하지 않았다.
“전황은 여전한가.”
“그렇습니다. 메카닉 왕국의 신병기는 경시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습니다!”
아론 공작은 직접 전장에 참여했다. 메카닉 왕국이 자랑하는 타이탄과 일전을 벌였었다. 하지만 결코 만만치가 않았다. 메카닉 왕국에 알려지지 않은 강자가 있었던 것이다. 단순히 타이탄의 성능만으로는 아론 공작을 막아낼 수 없다. 필시 대륙십강에 비견되는 자가 있을 것이다.
카이엘 황제와 3대 공작은 전략을 수정해야 할 필요성이 있음을 인식했다. 정면대결은 손해가 너무 컸다. 메카닉 왕국의 숨겨진 능력을 경시한 대가였다.
애초부터 카이엘 황제는 주변왕국과 신성제국의 도움이 없다면 메카닉 왕국 정도는 단숨에 정리해 버릴 수 있다고 여겼었다. 오만의 대가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제국은 이 정도로 물러서지 않는다.
그때였다.
황제의 막사로 무어 후작이 들어왔다. 무어 후작은 제국의 정보를 담당하고 있는 정보부 수장이었다. 막사 안으로 들어온 무어 후작이 카이엘 황제에게 예를 표한 후 긴급하게 올라온 정보를 말했다. 시급을 다투는 일이라 사전에 미리 연통을 넣을 시간적인 여유가 없었던 사안이었다.
“대륙의 용병들이 연합하여 제국의 후방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정보가 들어왔습니다! 아무래도 제국의 뒤를 노리고 있는 것으로 예측이 됩니다.”
“감히!”
카이엘 황제의 눈에 기광(氣光)이 번뜩였다. 살기에 번들거리는 눈빛은 사람의 원초적인 공포를 자극했다. 짓누르는 듯한 살기에 무어 후작은 몸이 부서져 버릴 것 같은 충격을 받았다. 카이엘 황제는 황제로서의 위엄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를 뒷받침하는 강력한 무력을 겸비하고 있었다.
“용병 따위가 짐의 제국을 노린단 말인가!”
이제까지 참고 있던 분노가 터져 나왔다. 브릴란트 제국이 전쟁을 벌이고 있는 상황에서 용병들이 메카닉 왕국의 편에서 서서 맞설 줄은 몰랐다. 후환이 두렵지 않다면 용병들은 해서는 안 되는 짓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참을 수가 없구나! 제임스 공작! 그대가 가서 제국을 침범한 대가를 치르게 해주어라!”
“예! 황제 폐하!”
카이엘 황제는 대군을 회군하는 것보다는 제임스 공작과 기사단을 출정하는 것이 낫다고 판단했다.
윈바이크 공작과 아론 공작의 얼굴이 굳었다.
‘일이 심상치 않다.’
전쟁이 원치 않는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왕국연합에 이어 용병연합까지 합세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이상했다. 그나마 신성제국이 어둠의 세력을 쫓기 위해서 전력을 보태지 않는 것이 다행이었다.
그러나 그것조차 석연치 않은 부분이 있었다. 무엇보다 불안감을 부추기는 것은 그 원인에 대해서 알지 못한다는 것에 있었다.
‘음모인가!’
‘그럴 리는 없다!’
포트란 산맥.
대륙전쟁의 전장과는 반대편에 위치한 산맥이다. 다크포레스트와 비견되는 산맥으로 평가받는 어둠의 지대다. 대형몬스터에서 거대몬스터까지 종류를 헤아릴 수 없는 몬스터들의 천국으로 사람의 접근을 허용하지 않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포트란 산맥을 넘어가는 대신에 멀더라도 우회를 했다. 안전을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저벅! 저벅!
낮에도 이동하기 어려운 포트란 산맥에 사람의 발소리가 들렸다. 발걸음에 여유가 느껴졌다. 암흑의 산맥이라고 불리는 포트란 산맥에서 산책하는 사람처럼 한가했다. 그는 천천히 공간과 공간을 수축해 들어가면서 움직였다.
“여기가 의심스럽다고 했었나.”
무진은 어둠을 가르며 산맥의 중앙으로 접근해 들어갔다. 브릴란트 제국과 메카닉 왕국의 대륙전쟁을 조율하고 난 후 무진은 또 다른 일을 조사하기 위해서 움직였다.
무진은 다크포트를 통해서 신성제국의 움직임을 주시하고 있었다. 대륙의 왕국들과 다르게 신성제국은 대주교와 성녀의 주도하에 신정일치의 체제로 이루어져 있어 분쟁이 없는 상태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성제국은 전장에 참여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것이 의심스러웠던 무진은 신성제국을 은밀하게 감시했다.
그 결과 뜻하지 않은 정보를 얻게 되었다. 대륙 곳곳에서 어둠을 따르는 자들이 은밀하게 움직이고 있다는 정보였다. 신성제국의 특급정보라 다크포트의 주력이 움직여야 했다.
“어둠의 조직이라.”
무진이 짐작하기에 흑마법사들일 가능성이 있어 보였다. 신성제국이 이처럼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것으로 보아서는 보통 일이 아닐 것이다. 최소한 최상급 마족, 아니면 마왕의 강림을 염두에 두고 있다는 생각마저 했다.
물론 지나친 기우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무진은 허투루 넘어가지 않았다. 무진은 섣불리 평가하고, 자만하는 성격이 아니다. 일을 보다 확실하게 살피기 위해서는 정확하게 알아낼 필요성이 있었다.
현재 무진의 전력은 모두 전장에 투입되어 있는 상황이다. 무진이 짐작하는 어둠의 무리가 확실하다면 일반적인 전력으로는 놈들을 상대하기 어렵다. 그래서 직접 나섰다. 물론 반드시 막기 위해서 나선 것은 아니다. 그들이 어떤 존재이며,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를 알아내기 위해서다.
크르르렁!
무진의 냄새를 맡은 몬스터들이 소름 끼치는 울음소리를 내었다. 사람의 마음속 깊은 곳에 웅크리고 있는 불안감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숲에 가려 빛조차 스며들지 못하는 지대에 울리는 몬스터의 괴성이다. 보통이라면 두려움에 떠는 것이 정상이다.
반면에 무진은 몬스터에 신경 쓰지 않았다. 어차피 몬스터는 지능이 떨어지는 괴물에 불과했다. 태어나면서 가진 야성과 강인한 육체는 인간보다 강하지만 거기까지다. 발전할 수 있는 원동력이 없기에 몬스터일 수밖에 없다.
무진은 어둠을 주목했다. 산맥 전체에 마기가 흐르고 있었다. 몬스터들의 천국이기에 마기가 흐를 수도 있으나 무진이 보기에는 약간 달랐다. 몬스터들이 호흡하면서 내뱉는 마기와는 차이가 있었다. 미세한 차이지만 그로 인해 몬스터들의 성향이 바뀌고 있는 것 같았다.
조사된 자료에 의하면 몬스터들이 이상하게 더 강해졌으며, 거칠어졌다고 했다. 마기를 품고 태어난 몬스터답게 끈적끈적하면서도 밀집도가 높은 마기에 반응하여 변한 것으로 판단이 되었다.
마기의 질적인 농도의 차이를 파악한 무진은 산맥의 중심으로 발을 들였다. 마기는 조용한 냇물에 돌을 던져 생기는 파장처럼 원모양으로 퍼져 나가고 있었다. 파장의 중심으로 다가갈수록 농도는 짙어졌다.
후우우!
어둠의 마기는 평범한 사람조차 괴물로 만들어 버릴 수 있었다. 마기의 근원은 불안, 공포, 욕망 등 세상의 마이너스적이 요소들이 결합되어 생겨난 것이다. 그로 인해 마기를 장기간 흡입하게 되면 인성이 마비되어 사람으로서 해서는 안 되는 패악을 스스럼없이 저지르게 된다.
무진은 호흡과 호흡 사이에 흐르는 마기의 기운을 아무렇지 않게 흡입하고 있었다. 어둠의 농도로 따지면 무진의 내부에 숨쉬고 있는 어둠 역시 만만치 않다. 다만 어둠의 성향이 다를 뿐이다.
무진의 성향을 이어받은 둠은 패도에 물들어가고 있었다. 절대로 지지 않는 원천적인 순수한 어둠이었다. 무진은 마기를 흡입하는 것이 둠의 성장에 도움이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둠은 어둠의 마기를 흡수하여 성장하고 있었다.
산맥의 중심으로 들어서자 대형몬스터가 나타났다. 무진은 되도록 조용히 처리하기 위해서 지배력을 뿜어내지 않았다. 누군가 무진의 기운을 느낄 수도 있었다. 아직은 정체를 드러낼 때가 아니라 판단했다.
무진의 손가락에서 콩알만 한 강기탄이 발출되었다.
슈웅!
푸욱!
철퍼덕! 하는 소리와 함께 육중한 몸을 자랑하는 블랙오우거가 쓰러졌다. 머리통에 구멍이 난 이상 다시 움직이는 것을 불가능했다. 쓰러진 동료의 옆에 있던 블랙오우거가 놀라서 괴성을 지르려고 할 때 무진의 탄지공이 머리통을 뚫고 지나갔다.
블랙오우거는 전신이 먹물에 담가놓은 것처럼 검은 것이 특징인데, 보통의 오우거보다 머리 하나는 더 크고, 민첩성과 힘이 몇 배는 더 강하다. 그런데도 반응은커녕 무엇에 맞은 줄도 모른 채 죽었다.
무진의 탄지공은 무형(無形), 무음(無音)의 무형강기(無形剛氣)였다. 의지가 대기를 통제하여 대기 자체를 강기보다 강력하게 만들 수 있었다.
무진이 지나간 자리에 대형몬스터들이 휙휙 쓰러졌다. 이제는 다가오는 것이 지옥이라는 것을 몬스터들도 눈치를 채었다. 바보도 지옥은 알기 마련이다.
음!
공간의 굴곡이 있다.
무진은 허공에 손을 대어 보았다. 그러자 공간과 공간 사이의 틈이 보이는 것과 다르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 차이는 극히 미세했다. 눈으로 본다 해도 알 수 없는 공간의 굴곡이었다. 무진의 안광이 허공을 투영했다. 공간의 굴곡을 꿰뚫고 내부를 보기 위해서였다.
“공간을 비틀어놓았군.”
원하는 길로 갈 수 없도록 공간을 굴곡시켜 다른 길로 가도록 만들어놓았다. 수목과 수풀이 우거져서 빛이 잘 들어오지 않는 지형에 공간을 굴곡시키는 마법장까지 설치가 되어 있으니 무진이 아니었다면 발견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무진은 공간을 부수지 않고 공간에 흡수가 되었다. 외부와 내부를 관조하여 하나가 되는 자연조화경(自然調和境) 정도는 무진에게 일도 아니었다.
일단 마법진을 부수게 되면 적들이 눈치를 챌 수 있었다. 무진은 당장의 충돌을 원하지 않았다. 놈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밝혀내는 것이 먼저라고 생각했다.
공간과 공간의 사이를 잇고, 공간에 포함되어 유령처럼 안으로 파고 들어갔다. 굴곡마법장을 건너가자 외부에서 보는 것과 달리 숲으로 가려진 동굴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