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륙지존기 173화
무료소설 대륙지존기: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3,289회 작성일소설 읽기 : 대륙지존기 173화
제5장 대륙전쟁 (1)
음습한 기운이 감도는 동굴.
사람의 원초적인 공포를 자극하는 기운이 넘실거렸다. 일렁이는 횃불조차 어둠 속에 묻혀버리고 있었다.
지저(地底)의 암흑을 대변하는 공간처럼 느껴진다.
동굴의 내부는 꽤 큰 공터로 되어 있었다. 내부로 들어오기 위해서는 수십 갈래의 동굴을 지나야 하는 구조였다.
동굴의 중심에 검은색 로브를 깊게 눌러쓴 자가 의자에 앉아 범상치 않은 기운을 흘렸다. 그를 주변으로 7명이 고개를 숙인 채 서 있었다.
“성과는?”
“4개를 부쉈습니다!”
“부족하군.”
검은 로브의 주인은 만족한 듯한 눈빛이 아니었다. 가려진 로브의 어둠 사이로 보이는 검붉은 눈동자가 서슬 퍼런 안광을 번뜩였다. 그러자 7명의 수하들은 두려운 듯 몸을 떨었다.
검은 로브의 주인은 그들에게 세상 어느 누구보다 두려운 존재였다. 그들의 주인이며 영혼의 지배자였다.
“상황은?”
“신성제국에서 세인트 소드가 직접 나섰습니다.”
대륙십강의 일인, 세인트 소드 바트란이 직접 나왔다면 쉽지 않은 상황이다.
그러나 로브의 주인은 신경 쓰지 않았다. 대륙에서 가장 강한 10명이라고 해도 어차피 인간이다. 인간의 능력은 한계가 있기 마련이었다.
“그분의 강림을 위한 희생은 선택된 축복이다. 그러니 빠른 시일 내에 족쇄를 부숴라.”
“예! 마이 로드!”
7명은 곧바로 동굴을 나섰다.
동굴 안에 남은 그는 인간들의 어리석음을 비웃었다.
“지금쯤 네놈들은 나를 이용했다고 여기겠지. 하지만 그것이 얼마나 잘못된 일인지 그분이 강림하시면 알게 될 것이다.”
범상치 않은 기운을 풍기는 그조차 두려움에 떨게 만드는 존재였다. 과연 무슨 일을 꾸미고 있는지 알 수가 없다.
혼란스런 대륙.
신성제국과 브릴란트 제국이 혼란의 소용돌이 속에 빠져들고, 그동안 잠잠하던 메카닉 왕국마저 왕위 계승에 대한 문제로 골머리를 썩고 있었다.
각 왕국과 공국은 극과 극의 상황에 처해 있어 혼란은 지속되었다.
대륙이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유일하게 소니아 왕국만이 내전을 수습하고 안정기에 들어서고 있었다.
강력한 카리스마를 바탕으로 한 에이프런 여왕의 지배력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절대적인 힘과 강한 신념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로 소니아 왕국의 백성은 에이프런 여왕을 아이언 블러드 퀸(철혈의 여왕)이라고 불렀다.
왕의 존재와 지도력이 얼마나 큰 영향력을 미치는지 알 수 있었다.
수도 타오란을 중심으로 에이프런 여왕의 뜻을 기리는 동상이 세워졌다.
에이프런 여왕이 기거하는 왕궁은 이제 소니아 왕국의 자존심이자 상징으로 불리게 되었다.
에이프런 여왕의 곁에는 페가수스 기사단이 철통경계를 펼쳤다. 그 누구도 여왕의 허가가 있기 전까지는 접근이 불가능했다.
-프런트 가든(왕궁정원).
에이프런 여왕의 개인적인 공간으로 외부인의 접근을 허용하지 않는 곳이다. 왕궁 내부에 새로 설계한 정원으로 주변을 차단하고, 페가수스 기사단이 왕궁기사단이 되어 지키고 있었다.
여왕의 개인공간이며, 페가수스 기사단이 지키는 프런트 가든에 한 사내가 여왕 전용의자에 앉아 차를 마시고 있었다.
그는 여왕조차 어찌할 수 없는 존재이며, 페가수스 기사단에게는 신과 같은 자다. 그렇기에 거리낌 없이 왕궁을 드나들 수 있었다.
무진이 차를 마시며 다크포트에서 조사한 정보를 읽고 있을 때, 에이프런이 정원에 들어왔다.
에이프런은 제법 심통이 난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왜 그러지?”
“지금 발뺌하겠다는 소린가요!”
“무슨 말인지 모르겠군.”
“그 여자 말이에요. 어제 방에 같이 있었잖아요.”
“차린 말인가.”
무진이 이름을 불렀다. 에이프런은 그것이 불만이었다.
“사실이었어!”
“그게 너와 무슨 상관이지?”
“왜 상관이 없어요! 본 부인이 시퍼렇게 눈을 뜨고 있는데, 어떻게 다른 여자를 방 안에 끌어들일 수 있죠!”
엄밀히 따지면 무진의 조강지처는 주하영이다. 에이프런은 부부관계를 맺은 것도 아닌데 너무 오버하고 있었다. 흥분한 나머지 부끄러운 말도 서슴없이 해버렸다.
말을 하고 나서 조금 찔리는 구석이 있지만 에이프런은 상관하지 않았다. 이미 엎질러진 물, 다시 주워 담는 것보다는 시원하게 엎어버리는 성격이었다.
“질투인가.”
정곡을 찌르는 무진으로 인해 에이프런은 말문이 막혔다. 이대로 질투가 나서 성질냈다고 하면 자신의 가치가 무지하게 싸진다. 값싼 여자라는 소리를 듣고 싶은 여자는 없다. 그건 여인으로서 가진 마지막 자존심과 같다.
‘젠장! 저 다 알면서 모르는 척하는 표정! 얄미워 죽겠다!’
무진은 표정 변화가 거의 없다. 무진을 잘 모르는 사람은 그 미묘한 표정의 변화를 알지 못한다.
반면에 에이프런은 표정의 작은 변화와 말투의 미세한 고저만으로도 무진의 생각을 읽어냈다.
대단한 발전이 아닐 수 없었다.
무진에 대한 에이프런의 관심이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있었다.
“아무튼 그 여자 누구예요?”
“용병.”
‘나보다 못하군.’
“나이는요?”
“생각보다 많다.”
‘늙다리 주제에 어딜!’
30년 전에 대륙십강에 든 차린이다. 시간을 따져보면 나이가 상당할 것이다. 에이프런의 엄마뻘이 될 수도 있다.
물론 대륙십강에게 100년의 시간 차는 없는 것이나 다름없기는 하다. 이미 나이의 제한에서 벗어난 존재들이니 말이다.
무진은 에이프런의 물음에 망설이지 않고 답해주었다. 굳이 숨길 필요도 없는 얘기였다.
“무슨 일로 만난 거예요?”
“결혼하자고 하더군.”
빠직!
“정말이에요!”
“그래.”
에이프런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하게 변했다.
‘이게 감히 내가 먹지도 않은 빵을 통째로 삼키려고 해!’
에이프런은 무진과 결혼하자는 말도 꺼내지 못했다. 그런데 생전 처음 본 계집이 결혼하자는 말을 해버렸다.
무진이 허락하지는 않았다고 해도 분하기 짝이 없다. 생각 같아서는 그 계집의 면상에 스크래치를 남기고 싶었다.
에이프런의 모습이 독이 잔뜩 오른 암코양이와 같았다.
겉으로는 내색하지 않았지만 무진은 에이프런의 분노를 은근히 즐기는 듯했다.
사람 마음을 가지고 노는 방법은 굳이 거짓이 필요 없다. 단순히 언어의 시간적인 조합만으로도 충분히 가능했다.
“곧 올 테니 따지고 싶으면 따져도 좋다.”
‘흥!’
에이프런은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콧방귀를 뀌었다.
여기가 개나 소나 다 들어올 수 있는 곳인가!
명색이 여왕 전용 정원이다. 정원 주변을 지키고 있는 기사들과 병사들, 마법함정까지 뚫고 들어온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에이프런은 용병 따위는 왕궁에 들어올 수 없다고 확신했다.
그런데 그녀의 확신은 차린의 등장으로 깨지게 되었다. 왕궁의 방어진이 너무 쉽게 뚫린 것이다.
슈슉!
모습을 드러낸 차린이 무진에게 다가왔다. 오늘따라 얼굴과 머리, 의복에 신경 쓴 흔적이 보였다.
그녀는 원래 잘 꾸미지 않았다. 무진에게 잘 보이고 싶었던 그녀는 전문가를 고용해서 화장도 하고, 옷도 제법 세련되게 입었다.
미용도 해보지 않은 아마추어가 직접 하면 어색하거나 촌스럽다. 그렇기에 전문가가 존재하는 것이다.
아름답게 꾸민 차린은 순백의 피부가 더욱 화사하게 빛을 내었다.
차린은 용병답게 한번 내뱉은 말을 적극적으로 실천했다. 말로 표현하는 것보다는 사내의 마음을 잡는 것이 먼저라는 판단을 내린 것이다.
차린이 무진에게 접근하자 에이프런이 적의에 가득 찬 기운을 발산했다. 가까이 오면 면상에 심한 스크래치 생긴다는 무언의 협박을 보냈다.
하지만 상대는 에이프런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강자다. 에이프런의 기운을 가볍게 무시해 버린 차린은 무진의 앞에 당도했다.
‘뭐야!’
에이프런은 당혹스러웠다. 눈빛을 쳐다보는 순간 발끝에서 시작된 전율이 뇌리에 심한 경종을 울렸다. 건드리면 안 될 것 같은 기운이다. 입을 열기도 쉽지 않았다. 두려움과 공포로 인해 맞서지 못하는 상황이다.
무진은 차린과 에이프런 사이에 벌어진 일을 눈치를 채고 있었다. 귀찮은 일을 좋아하지 않는 무진의 성격상 그만두라고 하는 것이 정상이지만 지금은 방관했다. 오히려 둘 간의 다툼을 조장하며 즐기고 있었다.
‘이익!’
에이프런은 이를 악물었다. 무형의 기운에 옥죄여 하고 싶은 말을 하지 못하는 것은 무진만으로 족했다. 연적에게 꿀려서 입도 열지 못한다는 것은 그녀의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다.
지고 싶지 않은 승부욕이 에이프런의 내면에 숨죽이고 있던 잠재력을 일깨웠다.
무공은 꼭 수련만으로 상승하지는 않는다. 뜻하지 않은 시간과 장소에서 뜻밖의 성과를 얻기도 한다.
에이프런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가로막고 있던 작은 벽을 무너뜨렸다.
“너 뭐야? 감히 내게 이상한 기운을 흘려!”
‘호오!’
“제법인데.”
차린은 순수하게 감탄했다. 보통의 여인이 감당할 수 있는 기운이 아니다.
전력을 다한 것이 아니라고 해도 절대자가 뿌리는 무형의 압박을 보통 사람은 버티지 못한다. 최소한 그랜드 마스터의 심득을 얻어야 가능할 것이다.
“너 내가 누군 줄 알고 그런 싸가지 없는 면상을 들이대며 말을 하는 거야!”
“그럼 너는 내가 누군 줄 알아?”
차린이 용병이라는 것은 안다. 용병이 여왕에게 반말하다니 구족을 멸해도 시원치 않았다.
“용병 주제에 여왕을 농락하고 무사할 줄 알아!”
“내가 용병인 건 맞는데! 보통 용병은 아니지!”
차린에게서 무시무시한 기파가 발생했다.
그녀가 괜히 대륙십강의 일인이 된 것이 아니다.
진실한 힘을 약간이나마 보이자 에이프런은 상대가 되지 못했다.
이제 막 벽을 깨고 그랜드 마스터에 겨우 발을 들인 에이프런의 경지로는 어림도 없는 상대였다.
이쯤 되자 무진이 차린의 기운을 차단했다. 에이프런은 아직 차린과 상대하기에는 멀었다. 무진은 그녀가 세상에 강자가 많다는 것을 알기를 바랐을 뿐이다. 다치는 것은 원치 않았다.
“그만.”
차린이 기운을 갈무리했다. 그녀의 눈빛이 조금 전과 달라져 있었다. 에이프런을 애송이로 보았는데 재능이 상당했다. 지니고 있는 재능으로 따지면 어린 시절의 자신을 능가하고 있었다.
또한 무진과는 오래전부터 알고 있던 사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마음에 담아두고 있는 무진에게 다른 여자가 있다는 것 자체가 마음 한쪽을 시리게 했다.
“아악!”
이제까지 이를 악물며 버티던 에이프런이 갑자기 쓰러지면서 무진의 품에 기댔다.
쓰러지던 에이프런을 무진이 부축해 주었다.
무진과 에이프런의 모습이 오붓한 애인관계처럼 보였다.
기절한 듯 기대 있던 에이프런이 살짝 눈을 흘겨 뜨며 혀를 내밀었다.
‘흥이다!’
‘저게!’
차린은 약이 바짝 올랐다. 그렇다고 자신도 에이프런같이 쓰러지면 무진이 받아준다는 보장을 할 수 없다. 아직은 무진이 자신을 그렇게까지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대륙십강의 체면상 쓰러지는 것도 쉽지 않았다. 너무 강하기에 여인으로서의 매력이 없는 것이 아닌가 하는 부정적인 생각마저 들었다.
‘지지 않아!’
에이프런도 편치 않았다. 자신에 비견되는 외모에 이 정도로 강한 여자는 처음 보았다.
무진은 강자를 편애한다. 에이프런이 보기에 차린은 무진이 원하는 여인상에 근접했다.
‘경계 대상이다!’
두 여인의 불타는 경쟁심은 이제 시작이었다. 경쟁심이 뜨겁게 달아올라 정원을 후끈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무진의 한마디에 열기는 곧바로 식었다.
“쓸데없는 데 열 올리지 마라.”
지금부터 계획을 진행시켜야 하는 상황이다. 같잖은 일로 인해 대계를 흐트러뜨리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