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륙지존기 165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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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3,124회 작성일소설 읽기 : 대륙지존기 165화
제3장 듀론 공작 (2)
무진은 4일이 지나는 동안 한 번도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기본적인 생리현상조차 무진에게는 영향을 주지 못했다.
무진은 작은 물줄기에서 시작했던 혼돈력을 폭포수로 넓혀놓았다. 혼돈력은 기본적으로 내공과 다르다. 수련에 의해서 쌓이는 기운과 달리 강렬한 의지와 바람 등을 바탕으로 생성된 신력과 같았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신성력과는 기질 자체가 완전히 달랐다. 신성력이 포용의 기운이라면 혼돈력은 파괴의 기운이었다.
무진은 일단 차이를 구분하지 않았다. 우선은 혼돈력의 회전, 출수, 회수를 시험하는 데 주력했다. 공력의 기본적인 활용이 되지 않으면 합일을 이루기 힘들다. 무진은 그 점을 착안하여 기본에서 시작하여 기본으로 돌아갔다.
무공의 극은 어차피 기본일 뿐이다. 응용을 통해 극에 이르면 종착점은 결국 기본으로 돌아가는 것이 무공의 이치였다.
무진은 카오스의 신기가 가지고 있던 혼돈력과 허무의 공간에서 수련한 혼돈력의 구분을 지우고, 혼돈력 그 자체의 속성을 하나로 일치시켰다. 그러고 난 후 공력과의 조화를 이루었다.
검과 신체, 몸을 합일시키는 검신합일과 마찬가지로 혼돈력과 공력에 대한 경계의 구분을 지워나갔다. 힘을 발휘하는 데 그 자체로 하나의 힘이 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가지고 있는 힘을 분산시켜 힘의 소비를 낭비하는 것은 바보 같은 짓이다. 무진은 복잡하게 구현하지 않았다. 단순한 것이 가장 강하다고 믿었다.
시간은 바람과 같이 지나갔다. 10일이 지났을 때 무진은 눈을 떴다. 강렬한 안광을 발산하던 무진의 눈빛이 혼탁한 기운으로 뒤덮여 있었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전혀 알 수 없는 기이한 기운을 발산했다.
하지만 전과는 확실히 다른 기세였다. 합일한 파괴력이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없을 지경이다.
“가지고 있는 힘은 전부 쓸 수 있는 건가.”
명상을 통해 경지를 개척한 것은 아니다. 무진의 내부에 잠자고 있던 힘을 전부 사용할 수 있도록 만들었을 뿐이다.
“둠.”
-예!
“나와 합일이 될 수 있었던 거냐.”
-주인님의 능력이 강해 아직 미흡합니다.
“그렇군.”
혼돈력을 흡수하는 과정에서 어둠의 정령 둠의 기운까지도 합일이 되었다. 혼돈의 기운을 상징하는 회색빛에 순수한 어둠의 빛이 끼어든 것이다.
혼돈력 자체의 속성은 어둠을 밀어내고 있었다. 하지만 무진의 공력은 어둠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반발과 흡수가 지속적으로 충돌했다. 그 결과 무진은 예상보다 긴 시간을 가상공간에 사로잡혀야 했다. 혼돈력, 공력, 암흑력을 무력이라는 하나의 단일화된 힘으로 합일해야 하는 과정을 거쳤다.
반발하는 힘과 흡수되는 힘을 하나로 엮은 무진은 무력을 발산해 보았다.
가벼운 손짓이 거대한 나무를 향했다. 50미터에 달하는 나무는 세월을 측정할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한 크기를 자랑하고 있었다.
팟!
그냥 가볍게 손을 흔들었을 뿐이다. 그런데 결과는 놀라웠다. 나무가 있어야 할 공간이 한순간에 사라져 버렸다.
놀라운 것은 파괴력이 나무에 한정되어 있다는 것이다. 나무를 사라지게 만드는 것은 이전의 무진도 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위력이 고스란히 파장이 되어 주변으로 퍼진다. 그것은 작용과 반작용에 의해 일어나는 당연한 현상이다.
그런데 지금은 전혀 그런 것이 발생하지 않았다. 의지가 구현되어 정확하게 목적한 것만을 대지에서 지워버린 것이다. 나무의 생명력조차 완전히 사라져 버려 그 자리에 나무가 있었는지조차 의심이 되었다.
“괜찮군.”
혼돈력이 지닌 파괴력과 공력의 조화, 그와 동시에 둠의 능력까지도 흡수했다. 만약 완성된 둠의 힘을 정령합일을 통해 얻어낸다면 어떤 능력을 발휘할 수 있을지 짐작이 되지 않는다.
무진은 둠이 마음에 들었다. 순수한 어둠이 조금씩 잊어갔던 예전의 성향을 되찾게 해주고 있는 것 같았다.
수련은 여기까지였다.
조금 전부터 카이겔 백작가를 향해 다가오는 기세가 느껴졌다. 그가 오기를 기다리며 무진은 수련하고 있었던 것이다. 원하던 존재가 도착했으니 이제는 나서야 할 때였다.
“시험을 해주지.”
우우웅!
무진의 몸에서 순수한 패도가 발산되었다. 절대적인 기세였다. 같은 경지에 올라야만 알 수 있는 기운이다. 파장은 가로막는 장애물을 투영하며 거침없이 쏘아져 나갔다. 무진의 패기에 대지가 파르르 떠는 것 같았다.
위이이이이잉!
멈칫!
소리 없이 무서운 속도로 질주하던 존재가 있었다. 그는 거칠 것 없이 당당했으며 오만했다. 기세를 갈무리하고, 기척마저 안으로 숨겼다. 어느 누구도 자신을 느낄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누군가가 그를 느끼고 신호를 보내왔다. 카이겔 백작가를 향해 일직선으로 달려오던 그는 멈추어 섰다.
“건방지군.”
그는 도발하는 패도적인 기운에 가소로움을 느꼈다. 절대경지에 올라선 후부터 감히 그 어느 누구도 도발하지 못했다. 30년이 지난 후 처음으로 느끼는 도전적인 기운이다.
듀론 공작은 조용히 분기를 다스렸다. 적의 도발은 범상치 않았다. 근래에 보지 못한 도전적인 기운 못지않게 엄청난 패기를 담고 있었다.
패기를 실은 기운은 파장이 크다. 그런데도 극에 이르지 않은 자는 느낄 수 없는 기운이다. 패도의 기운을 세밀하게 조절했다는 뜻이 되었다. 상대 역시 무의 극에 이른 자일 가능성이 컸다.
또한 그는 듀론 공작의 정체를 알고 있을 것이다. 자신이 오고 있음을 알고 기다리고 있었을 것이 분명하다.
기다린다는 것은 함정을 파고 있다는 것과 일맥상통한다.
보통이라면 돌아서 가는 것이 현명하다.
그러나.
듀론 공작은 대륙십강이다. 절대적인 존재라는 자부심은 물러서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다.
“네놈이 누군지는 모르나 감히 나를 도발한 죄, 죽음으로 보답해 주마!”
파앙!
듀론 공작의 신형이 사라지면서 대기가 깨지는 듯한 소리가 울렸다. 공간과 공간을 잇는 최단의 거리로 가고 있었다. 앞을 가로막는 장애물은 모조리 다 부서져 내렸다.
인적이 드문 거대한 평야.
싸우기에는 최적의 장소다. 거치적거릴 것도 없으며, 방해할 자도 없다. 무진은 듀론 공작을 도발한 후 곧바로 프로테스 영지를 벗어났다. 삽시간에 공간과 공간을 뛰어넘었다. 듀론 공작에게 실력을 조금 보였다. 거리가 줄어들지 않는 것을 확인했다면 만만치 않음을 깨달았을 것이다.
무진이 낮은 평야의 중심에서 기다리고 있을 때 바람을 가르며 돌진해 오는 듀론 공작이 보였다. 듀론 공작의 주변으로 회오리가 치며 주변의 바위나 나무들이 허공으로 비상했다. 날아오는 속도에 의해서 발생한 바람이 주변 지형을 어지럽혀 놓은 것이다.
듀론 공작의 뒤로 바닥이 마른 강바닥처럼 움푹 들어간 길이 형성됐다. 속도를 올린 무진을 뒤를 쫓아오기 위해서 가속을 한 것이다.
그에 대한 답례로 무진은 인사치레를 해주었다.
손이 대지를 훑으면서 하늘을 가리켰다. 아래서 위로 허공을 수직으로 그은 것이다. 그러자 대기를 좌우로 쪼개는 날카로운 기운이 하늘을 반으로 나누었다. 푸름이 면면이 이어지던 공간에 어둠의 선이 그어진 것 같았다.
슈아아아악!
듀론 공작은 무진이 펼친 수직양단의 강렬하고 날카로운 기운을 감지했다. 예리함이 신검을 능가하는 위력이었다. 그랜드 마스터라도 받아내기 힘든 가공할 패력을 지니고 있었다.
“어림없는 수작.”
듀론 공작은 물러서지 않고 일권을 내질렀다. 일체의 부조화도 없는 완벽한 권격이다. 흔들림이 존재하는 허공에서도 한 점의 흐트러짐이 없다. 공격일변도의 권격임에도 불구하고 파고들 수 있는 허점이 존재하지 않았다. 권격의 가장 기본적이면서 이상적인 형태였다.
이번 한 수로 듀론 공작이 무(武)의 극에 이르렀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파아아아아아앙!
쩌저저저저저적!
대기가 갈라지고, 지면이 허물어졌다. 평온하던 대지가 고통에 비명성을 내질렀다. 반경을 짐작하기 힘든 웅덩이가 깊게 파였다.
착!
충격파가 대지를 뒤흔드는 사이에 듀론 공작이 무진의 앞에 착지했다. 강력한 힘을 수반한 권격을 뿌린 직후임에도 불구하고 무진과 듀론 공작은 힘의 소진이 느껴지지 않았다.
무진은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듀론 공작을 보았다. 그에 듀론 공작의 표정이 차갑게 식었다. 시대의 강자들과 무수히 많은 전투를 치렀던 듀론 공작이다. 그런 강자들도 처음에는 당연히 이길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결국에는 비참하게 패배한 초라한 모습이 되었다.
그들은 결코 자신을 이기지 못했다. 압도적인 실력을 체감한 그들은 이를 악물며 발악하는 것이 최선이었다. 듀론 공작이 보기에 무진은 그들과 별반 다르지 않다고 판단했다. 우쭐하며 실력을 과신한 것이 얼마나 무모한 짓인지 깨달을 필요가 있었다.
“내가 누군지 알고 있겠지.”
“듀론 공작 아닌가.”
“버릇이 없군.”
“나 이외에는 모두 아래다.”
“훗!”
듀론 공작은 무진의 자신감을 비웃었다. 아직 진정한 강자를 만나보지 못한 애송이나 할 수 있는 말이었다. 세상이 얼마나 험하고 무서운지를 알아야 했다.
대륙십강의 일인인 그조차도 세상 모두가 아래라고 장담하지는 못한다. 그에 비견되는 존재들이 있기 때문이다. 하물며 이제 막 세상에 나온 놈이 대륙최강이라 말하고 있었다. 오만 방자함이 하늘까지 치솟아 있었다.
자신감이 모래성처럼 허물어졌을 때 인간은 돌이킬 수 없는 좌절감을 느낀다. 듀론 공작은 무진이 뼈아픈 패배의 고통을 겪어보지 않은 애송이로 보였다.
씨익!
듀론 공작의 비웃음에 대한 답례로 무진은 미소를 지었다.
무진은 보이는 것으로 속단하는 실례를 범하지 않았다. 이 시대의 강자들은 다른 강자들의 출현을 인정하지 않는 것 같다. 오만함은 무진이 아니라 그들이 가지고 있는 성향이었다.
“보이는 것이 전부일 것 같나?”
“그 이상이 있다고 자신하는 것인가?”
“방심은 버리는 게 좋을 거야.”
“크하하하하! 감히 나를 상대로 그따위 말을 하다니 네놈의 배포가 나를 웃기는구나!”
“지금이 지나고도 웃을 수 있을까?”
“네가 내 상대가 될 수 있다는 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느냐?”
“물론.”
“역시 말로는 안 되는군.”
무진은 듀론 공작의 비웃음에 표정 하나 변하지 않았다. 상대의 심리전 따위는 무진의 안중에도 없다. 그것이 작전이든 아니든 결과로 나타날 뿐이다. 흔들리지 않는 굳건함이 무진에게서 흘러나왔다.
듀론 공작의 표정이 차갑게 변했다. 말을 하는 동시에 무형의 기운을 발산해서 무진의 주변을 압박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무진은 전혀 변하지 않았다. 흔들림조차 없는 절대의 부동심이 느껴졌다. 이만한 심력을 지니고 있다면 절대로 무시할 수 없는 존재다. 겉으로 보여준 무력시위만큼이나 그 이상이 있다는 것을 짐작하게 만들었다.
“확실히 보통이 아니군.”
무진이 보여준 실력과 심력이라면 사피로라고 해도 장담하기 힘들다. 듀론 공작은 무진이 사피로와 연관되어 있다고 확신했다.
미하엘의 보고에 의하면 에이프런 여왕의 실력은 마스터급 최상급에 이제 막 도달한 경지라고 했다. 그 정도 실력으로는 사피로를 어찌할 수 없다. 물론 시간이 지나면 어찌될지 모르겠지만 현재로서는 불가능하다. 무진이야말로 가장 유력한 용의자였다.
“네놈이구나.”
“정답.”
“사피로를 어떻게 한 거냐?”
듀론 공작의 말에 감정이 섞였다. 절대의 부동심을 가진 그조차 아들에 대해서는 흔들리지 않을 수 없었다. 복받치는 감정을 억누르는 것조차 쉽지만은 않은 일이었다. 그러나 겉으로는 여전히 차가웠다. 불같은 마음을 억누르고 있는 것이다.
“죽였다.”
“뭐……! 네놈…이 감히!”
“뭘 바랐지? 설마 살아 있기라도 바란 것인가.”
“이놈!”
듀론 공작은 거짓이라도 사피로가 살아 있다고 말하길 기대했다. 그렇게 대답해야만 한다. 그는 대륙십강이며 브릴란트 제국의 공작이다. 고통스럽게 죽고 싶지 않다면 거짓이라도 고해야만 했다.
하지만 무진은 듀론 공작의 기대를 무참히 박살냈다. 무진은 적의 기대를 위해서 움직이는 성향이 절대 아니다.
“살아 있다는 꿈은 깨는 게 좋을 거야. 나는 여지를 남겨두는 사람이 아니니까.”
“산산이 부숴 가루로 만들어주겠다!”
듀론 공작의 용암처럼 끓어오르는 분노에 무진은 기름을 부었다. 마치 전력을 다하라고 무언의 강요를 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듀론 공작이 분노를 터뜨렸다.
슈아아앙!
더 이상의 대화가 무의미해졌다. 듀론 공작은 무진을 절대로 살려두지 않을 생각이다.
벼락같은 권격이 무진의 얼굴을 향해 뻗어왔다. 권로(拳路)가 보이지 않는 권격이었다. 그저 뻗는다는 의지가 이어졌을 때 권은 무진을 향해 있었다.
그 어떤 물체도 단숨에 부숴버리는 듀론 공작의 앱술루트 피스트(무적권-無敵拳)였다.
사람의 얼굴이라면 형체도 남기지 않고 박살내 버릴 수 있었다.
너무나 빨라 바람마저 저항하지 못하고 뒤로 밀려나갔다. 바람을 찢는 소리가 뒤이어서 전달되었다.
터어어어엉!
무게를 짐작하기 힘든 육중한 강철과 강철이 부딪치는 파공성이다.
무진은 쏘아져 오는 무각도(無角度)의 권격을 보고 있다가 우권(右券)으로 올려쳤다. 찌르는 권격을 쳐 올린 것이다.
무진은 공격을 막은 후에 왼쪽 팔꿈치를 뻗었다. 듀론 공작의 왼팔이 하늘로 올라간 그 틈을 비집고 들어가는 공격이었다. 잔영조차 생기지 않는 전광석화와 같은 속도였다.
타앗!
듀론 공작의 반격도 만만치 않았다. 순식간에 무너진 균형을 회복한 후 무진의 팔꿈치 공격을 팔꿈치로 막아냈다. 그와 동시에 왼손을 뻗어 무진의 머리를 잡아채려고 했다.
갈고리처럼 잡아채 오는 듀론 공작의 손길을 무진은 고개를 뒤로 젖히며 기회를 주지 않았다.
듀론 공작은 물러서는 무진의 얼굴을 향해 솟구치듯이 날아올랐다. 창처럼 찌르고 들어오는 무릎이 무진의 턱을 노렸다. 직선의 동작임에도 불구하고 변화가 있었다. 무진의 미세한 흔들림을 따라온 것이다.
휘이익!
공간의 차이는 거의 없다. 맞붙어 있는 것이나 다름없는 간격이다. 3센티미터를 두고 수십 번의 공수가 교차되었던 것이다. 눈으로 보는 것은 한 번에 불과했을 뿐이다.
무진은 물러서는 것을 선회해서 안으로 파고들다가 오른쪽으로 돌아서 듀론 공작의 축이 되는 발을 잡았다.
착!
잡음과 동시에 힘을 주어 던지고, 찰나지간에 꺾었다.
퍼억!
꺾는 순간 듀론 공작의 오른발이 무진의 어깨를 강타했다. 힘을 주기 전의 타격으로 인해 듀론 공작은 빠져나올 수 있는 시간을 벌었다. 조금이라도 타이밍이 늦었다면 다리가 부러졌을 것이다.
극히 짧은 시간에 벌어진 공방전이 끝나고 난 후 듀론 공작은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무진을 보았다.
방금 전에 보인 무진의 움직임은 보통을 넘어섰다. 강력한 오러를 발산하지 않더라도 손속을 겨룬 것만으로도 충분히 무진의 능력을 인정하게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