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륙지존기 155화
무료소설 대륙지존기: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3,120회 작성일소설 읽기 : 대륙지존기 155화
제1장 내전정벌 (5)
파앗!
발돋움을 해 무진의 반대편으로 도망쳤다. 살아야만 후일을 도모할 수 있다는 이성적인 판단을 내린 것이 아니다. 무진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로 이성은 마비된 지 오래였다. 도망만이 그가 할 수 있는 전부였을 뿐이다.
“최선이나 무리다.”
무진은 적이 등을 보이며 도망친다고 해서 비겁자라고 욕하지 않았다. 이길 수 없다면 도망치는 것도 나쁘지 않은 전술이었다.
세상은 살아 있어야만 증명을 할 수 있으며, 이겨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 죽어버린 자는 영웅이라고 해도 죽은 자에 불과하다.
인간은 살기 위해서, 이기기 위해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해야 한다. 치사하고, 극악한 수법을 사용해도 상관없다. 그것이 무진이 생각하는 세상의 정의였다.
데븐은 최선의 선택을 했다. 그렇다 해도 무진은 고이 보내주지 않는다. 상대가 최선을 다한다고 해서 기회를 주는 성향이 아니다. 최선은 최선일 뿐이었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될 수 없다. 벗어날 수 있는 능력이 없다면 죽을 수밖에 없다.
무진의 손바닥이 부챗살처럼 쫘악 펴졌다.
윽!
지면을 박차며 필사적으로 도망치던 데븐의 몸이 일순간 정지됐다. 무진의 영역에서 벗어나지 못한 이상 그 어떤 반항도 무용지물이다.
바둥! 바둥!
데븐은 벗어나기 위해서 죽을힘을 다했다. 그러나 몸을 옥죄는 기운은 데븐의 역량으로는 어찌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었다.
무진의 손짓에 의해서 데븐의 신형이 허공으로 떠올랐다. 죽는다는 것을 직감한 데븐은 새하얗게 질렸다. 쉐도우 기사단의 기사들이 노예 출신인 것에 반해 데븐은 귀족이었다. 사피로의 수족이 되어 쉐도우 기사단의 단장이 된 것은 후일의 출세를 위해서였다. 이대로 허망하게 죽고 싶지 않았다. 미래에 펼쳐질 부귀영화를 손도 못 대보고 죽어야 하다니 억울했다.
“살…려!”
으아아아악!
퍼어어어엉!
데븐의 바람과는 달리 무진의 손속은 냉정했다.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데븐의 몸을 터뜨려 버렸다. 박살이 난 육편조각들이 먼지처럼 분해되어 바람에 흩날렸다. 보잘것없는 능력으로 무진에게 덤빈 대가는 가혹했다.
최강의 무력부대에 속했던 쉐도우 기사단의 허망한 최후였다. 무진과 만난 것이 쉐도우 기사단의 불운이라고 할 수 있었다.
깔끔하게 처리해 버린 무진이 돌아섰다.
움찔!
페가수스 기사단과 마법병단은 입을 다물지 못한 채 무진을 바라보고 있었다.
눈앞에서 벌어진 전투가 꿈처럼 느껴졌다. 직접 보지 않았다면 믿기지 않을 거짓말 같은 상황이었다.
무진이 에이프런을 보았다.
“아까 뭐라고 했지.”
“제가 뭐요?”
“연약하다고 했었나.”
“제…가 언제요!”
“아니었나.”
“그…럼요! 연약한 놈들을 죽어도 싸죠!”
“알고 있다니 다행이군.”
두 번 말했다가 어떻게 될지 에이프런도 알고 있었다. 그녀는 저렇게 비참하게 터져 죽고 싶지 않았다. 쓸데없는 말은 하지 않는 게 생명연장의 최선책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되었다.
‘강한 줄은 알았지만 이렇게 터무니없을 줄이야!’
아무래도 무진은 에이프런이 이전까지 보지 못한 괴물임이 틀림없었다. 이 정도로 대단한 실력이라면 앞으로 어떤 일을 벌일지 감당이 되지 않는다. 아무래도 고생길이 훤히 열린 것 같았다.
무진은 에이프런을 뒤로하고 페가수스 기사단과 마법병단을 주시했다.
“이따위 하찮은 놈들에게 쩔쩔맨다는 것은 내 수하로서의 자격이 부족하다는 뜻이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앞으로 두고 보지.”
“주군의 명예에 누가 되지 않도록 강해지겠습니다!”
페가수스 기사단과 마법병단은 절대복종과 충성을 맹세했다. 하지만 무진은 만족하지 않았다. 충성과 복종은 주종관계에서 당연한 것이다. 인간과 인간의 관계는 가치와 자격의 관계다. 스스로의 가치와 자격을 갖추지 못하면 쓰레기에 불과하다. 기사의 가치와 자격은 충성과 무력으로 나타난다. 그것을 증명해야만 무진은 만족할 것이다.
“강해져라.”
“강해지겠습니다!”
“강자지존이다.”
“예!”
사위를 압도하는 무진의 카리스마였다. 무진은 어느 누구도 자신의 권위에 도전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다.
“가자.”
“예!”
무진은 가이만 영지로 향하면서 둠에게 주변에 널린 원혼을 흡수하도록 명령했다. 암흑정령력을 높일 수 있는 기회이기에 둠은 마다하지 않고 먹어치웠다.
둠이 지나간 자리는 그 어떤 정령도 흔적을 읽어낼 수 없다. 마법력을 사용해도 흔적을 찾을 수 없을 것이다. 둠은 완벽한 청소기라고 불려도 손색이 없었다.
테오도르 국왕과 마르치니 후작의 전쟁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발더스성을 중심으로 치열한 대결양상을 벌이며, 피해가 누적되고 있었다. 밀고 밀리는 전장은 어느 한쪽이 완벽한 우위를 점하지 못했다.
현재의 전투는 과거와는 많은 차이를 보이고 있었다. 메카닉 왕국의 문류가 대륙의 전투력을 급증시킨 것이다. 검, 방패, 궁 같은 기본적인 병기에도 메커니즘적인 역학이 들어가 있어 기능이 향상되었고, 투석기의 위력도 몇 배나 상승했다.
그 중에서도 사거리에 비해 위력이 강한 포의 개발은 전쟁의 살상력을 높이는 데 큰 기여를 했다. 반면 그로 인한 사상자가 늘어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인과관계였다. 위력이 강한 만큼 목숨의 가치가 현저하게 줄어들었다.
테오도르 국왕의 입장에서도 발더스성은 내줄 수 없는 요충지다. 이곳이 무너지면 왕궁이 점령당하게 된다. 이제까지 숨기고 있던 국왕파의 전력을 전부 끌어 모아 마르치니 후작군에 대항했다.
발더스성에서 작전회의를 하고 있는 테오도르 국왕은 전황이 쉽지 않음에 답답한 마음을 내비쳤다.
“카이겔 백작가의 본대가 아직도 오지 않은 것인가!”
“그렇습니다.”
“설마 에이프런 백작이 짐을 배신한 것인가!”
테오도르 국왕은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어차피 왕족과 귀족은 성향이 다르다. 이번 전쟁을 노려 카이겔 백작가 예전의 힘과 명성을 되찾으려고 하는지도 몰랐다.
“그렇지는 않습니다.”
“이유를 말해라.”
“발더스성으로 파견된 전력은 카이겔 백작가의 전체 전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발더스성으로 오고 있는 길목 요소요소에 마르치니 후작이 은밀하게 설치한 함정이 있어 진군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 같습니다.”
“대군이 고작 함정 때문에 시간이 걸린단 말인가!”
“전쟁 전 마르치니 후작은 카이겔 백작가의 발목을 잡기 위해 오랜 기간 전략을 세워왔습니다.”
테오도르 국왕은 골치가 아파왔다. 이번 전쟁에서 테오도르 국왕은 에이프런 백작과 마르치니 후작의 힘을 상쇄시키려고 했었다. 그런데 일이 시작부터 꼬이고 있었다.
카이겔 백작가가 제때에 오지 않으면 내전이 길어질 것이다. 내전이 지속될수록 국력의 소모는 불을 보듯 자명했다. 소니아 왕국의 보전을 위해서라도 국력의 손실은 최대한 막아야만 한다.
“마르치니 후작의 기사단. 병력, 병기의 위력이 예상보다 훨씬 강합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전력을 모두 꺼내지 않으면 쉽지 않은 전투가 될 것 같습니다.”
“여유를 두어서는 승산이 없습니다!”
테오도르 국왕의 수족이라고 할 수 있는 재상 안토니 백작의 의견이 타당했다. 숨겨두고 있다가는 사용하기도 전에 전세가 위험해질 수도 있었다. 전세가 기운 상황에서 전략무기가 통한다는 보장은 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까지 감추고 있었던 것은 만일을 위해서였다.
‘어쩔 수 없단 말인가.’
숨기고 있는 것을 꺼내도 쉽지 않은 전투였다. 만약 비밀병기가 손실을 입게 되면 테오도르 국왕의 입지가 흔들릴 수 있었다.
긴 시간 고심을 한 테오도르 국왕은 무겁게 입을 열었다.
“비밀병기의 사용을 허가한다.”
“결단에 감사합니다!”
마르치니 후작은 발더스성의 맞은편에 군막을 치고 전략회의를 하고 있었다. 예상치 못한 국왕의 거센 저항에 고전하고 있는 것을 타개하기 위한 모의였다.
발더스성의 견고함은 대륙에서도 알아주었다. 대 마력포를 몇 방이나 쐈는데도 불구하고 성의 일부분을 부수는 것에 만족해야 했다. 마력탄이 거의 다 떨어져가는 시점이라 확신이 없는 상황에서 사용하기도 어려웠다.
“설마 전력을 이 정도나 숨기고 있을 줄이야!”
“장기전을 각오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당분간 대 마력포 사용은 자제한다. 국왕은 능구렁이 같은 자다. 전력을 더 숨기고 있을 가능성이 있어!”
“그럼 성문을 열기가 쉽지 않을 겁니다!”
“다른 방법을 찾아.”
장기전을 각오하더라도 카이겔 백작가의 원군이 오기 전이어야 한다. 시간 싸움에서 마르치니 후작이 유리한 상황이 아니다. 잘못하면 역공을 다해 패배할 수도 있었다.
“발더스성의 주변은 깎아지른 듯한 산세가 가로막고 있습니다.”
“그래서.”
“국왕도 그 부분을 공격하리라고는 예상하지 않을 것입니다. 기사단을 은밀하게 투입시켜 서쪽 성문을 연다면 충분히 승산이 있을 겁니다.”
발더스성의 서쪽 산세가 가장 험하다. 올라가기도 쉽지 않을뿐더러 대군의 투입은 불가능에 가깝다. 그렇기에 가장 방심할 수 있는 공간이기도 하다.
비우타민 백작의 전략은 국왕의 방심을 역으로 노리자는 뜻이다. 충분히 설득력이 있는 전략이다. 문제는 테오도르 국왕이 몰라야 한다는 가정이 필요하다. 이제까지 날카로운 비수를 감추고 있었던 테오도르 국왕이다. 호락호락하게 당하지는 않을 것이다. 신중에 신중을 기할 필요가 있었다.
“발더스성에서 가장 약한 곳이 어디지?”
“동쪽 3번째 성문입니다.”
“병력을 하루 쉬게 하고 다음 날부터 동쪽 성문에 파상공세를 한다.”
“예.”
전세가 팽팽한 상황이다. 백중세에 가장 중요한 것은 전략이며, 그에 못지않은 것이 심리전이다. 어느 누가 심리전에서 우위에 서 있는가에 따라서 전쟁의 향방이 결정될 수도 있다.
대륙의 전쟁 역사를 따져보면 웃기지도 않는 전술에 휘말려 전쟁에 패하는 경우를 볼 수 있다. 과거의 전쟁을 읽어본 대부분의 사람은 자신도 막아낼 수 있다고 생각하겠지만 그 시대의 장군이 아무리 바보라도 기본적인 상식은 있을 것이다. 적의 교묘한 심리전까지 감안을 해야 한다는 뜻이다.
심리에 심리를 더해 전술이 되고, 여러 전술이 모여 전략이 된다. 전쟁은 하나의 전략만으로 끝을 낼 수도 있으나 보통은 그렇지 않다. 치밀한 심리전과 전략이 가미되어야만 종지부를 찍을 수 있는 것이다.
“가이만 영지에서는 연락이 왔나?”
“아직 없습니다.”
“그런가.”
소식이 없다는 것을 들은 마르치니 후작의 입가에 호선이 그려졌다. 후방을 교란해야 할 기사단이 아직까지도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은 변고가 있다는 뜻이 된다. 테오도르 국왕의 저항이 심기를 자극했지만 에이프런 백작을 처리한 것에 위안이 되었다.
‘그들이라면 충분하겠지.’
가이만 영지로 들어가는 외곽 작은 마을.
마을에 들어선 무진과 에이프런은 식당을 찾아서 들어갔다. 인적이 드문 마을이라 식당이 많지 않았다. 적당한 곳에 들어선 무진과 에이프런은 음식과 술을 시켜 점심식사를 즐겼다. 전쟁을 하러 온 사람처럼 보이지 않았다. 무진과 에이프런의 복장도 전투복이 아니라 평상복이었다. 마치 신혼부부가 대륙 나들이를 하러 나온 것처럼 보이기까지 했다.
“이래도 되는 거예요.”
“뭐가?”
“너무 한가해서요.”
“서두를 필요가 있나.”
“그렇기는 하지만 조금 양심에 찔리기는 하네요.”
지금쯤 테오도르 국왕과 마르치니 후작이 치열한 공방전을 펼치고 있을 것이다. 수많은 병사들이 목숨을 잃을 것이 분명하다. 카이겔 백작가는 전쟁의 중심이나 마찬가지다. 그런데 백작가의 가주인 에이프런은 한가하게 점심식사를 즐기고 있었다. 양심이 있다면 불편한 것이 당연했다.
“너는 그런 성격이 아닌 것으로 아는데.”
“제가 얼마나 마음이 착한데요!”
“그랬던가.”
“잘 몰라서 그러나 본데요! 저 맑은 유리알처럼 투명한 성격이에요.”
“생각이 없다는 뜻처럼 들리는군.”
“뭐예요!”
“시끄럽고 식사나 해라.”
‘허구한 날 시끄럽대.’
입술을 삐죽거리는 에이프런의 모습이 귀엽기는 했다. 무진이 아니었다면 그 모습에 깨물어주고 싶어할 사내들이 득실했을 것이다. 식당 안에 있던 사람들 중 대부분이 에이프런의 외모에 꽂혀 다른 데 쳐다보지도 못하고 있으니 말 다 한 상황이다.
“당분간 이곳에서 쉬지.”
“기사단과 마법병단은요?”
“실력을 쌓아야지.”
“그래도 상태가 좀 심한 것 같던데요.”
“그 정도도 버티지 못하면 쓸모없다는 뜻이지.”
무진과 에이프런이 여관에서 쉬는 동안에 페가수스 기사단과 마법병단은 제약이 걸린 채 산 속 깊은 곳에 들어가 수련을 하고 있었다.
기사의 경우 체력과 오러의 증진을 위해서 무진이 수라탄강기를 부여했다. 파괴성이 짙은 수라탄강기를 주입받은 기사들은 기겁을 하기 일쑤였다. 몸 안에서 날뛰는 수라탄강기를 다스리는 것만으로도 죽을 것 같은 심정이었다.
솔직히 오러의 양에서는 페가수스 기사단이 훨씬 앞서 있었다. 이상한 것은 아주 적은 수라탄강기의 질이 기사들이 평생 수련한 오러보다 훨씬 강하다는 것이었다. 어떻게 그럴 수 있는지 의문이었다.
질의 차이가 이 정도로 심하리라고는 생각도 해보지 않은 기사들에게는 충격적인 일이었다.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었다. 그래서 최선을 다해서 수련했다. 정해진 시간 안에 강해지지 않으면 죽을 수도 있다는 공포가 수련에 몰두하도록 도와주었다.
마법병단도 힘들기는 마찬가지였다. 첫 실전을 치르면서 미숙함이 드러났다. 마나의 세밀한 컨트롤과 마법의 시기적절한 대응이 부족한 것을 체감했다.
그에 대한 수련을 위해서 마법장애마법진을 설치하고 그 안에서 마나 컨트롤을 집중적으로 수련했다. 외부의 불리한 변수에서도 부동심을 잃지 않고 마법을 사용하기 위한 수련이었다.
마법사들은 마나컨트롤 수련이 끝난 후에 체력훈련을 따로 해야 했다. 체력이 약하면 전투마법사로서의 능력을 제대로 발휘할 수 없다. 마법의 세밀한 조절이 어려운 이유도 마나의 집중도와 더불어 체력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또한 상위의 마법사가 될수록 마나를 버틸 수 있는 신체가 필요하다. 그로 인해 마법사들은 입 안에서 단내가 나도록 체력훈련을 해야만 했다.
무진은 이들을 따로 감시하지 않았다. 쉐도우 기사단을 상대할 때 보여준 무진의 전율스런 무력을 알기에 알아서 열심히 했다.
무진은 마법병단과 페가수스 기사단의 마력과 무력을 끌어올리는 것을 기본 목적으로 두고 일을 진행시키고 있었다.
가이만 영지에서 페가수스 기사단과 마법병단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은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마르치니 후작은 지금쯤 에이프런을 비롯한 카이겔 백작가의 기사단을 처리했다고 여기고 있을 것이다. 장기전으로 갈수록 무진에게는 이득이었다. 수련과 더불어 국왕과 마르치니 후작의 전력을 소모시킬 수 있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