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륙지존기 154화
무료소설 대륙지존기: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3,110회 작성일소설 읽기 : 대륙지존기 154화
제1장 내전정벌 (4)
단 한 방으로 데븐을 가볍게 날려버린 존재가 에이프런의 앞을 막아섰다. 에이프런은 위기의 순간 나타난 무진을 보자 안도와 반가움을 느꼈다. 조금만 늦었으면 큰일 날 뻔했는데 제때에 와주었다.
에이프런은 무진의 옷이 엉망이라는 것을 발견했다. 무언가 쉽지 않은 일을 겪었다는 것을 감지할 수 있었다.
원망스러웠던 마음이 조금이지만 풀리는 것 같았다. 여인들은 언제나 백마 탄 왕자가 나타나기를 기대하지 않는가! 그것이 여인들이 추구하는 로망이었다.
그 점에 있어서는 에이프런도 다르지 않았다. 때를 맞추어서 나타나준 무진이 페가수스를 타고 온 왕자처럼 멋있게 느껴졌다. 무진의 몸에서 후광이 비추는 것 같았다.
“늦었지만 다행이네요.”
“무슨 소리지?”
“적이 만만치 않아서 늦은 것 아닌가요!”
“그렇기는 했지만 아까 전에 왔었다.”
“뭐… 뭐예요? 그럼 지금까지 뭐 한 거예요!”
“지켜봤다.”
“그게 할 소리예요! 나처럼 예쁜 여인이 죽으면 대륙의 손실이라는 것을 몰라요!”
“모른다.”
에이프런은 무진에게 들었던 고마움을 곧바로 후회했다.
남 싸우는 것을 구경하고 있었다니 그게 할 짓인가!
사람 목숨이 파리 목숨도 아니고 이럴 수는 없는 것이다. 대륙예의지국에서 태어난 사내라면 아름다운 여인을 구하는 것이 당연한 도리 아니겠는가!
에이프런은 무진의 비뚤어진 성격을 고치기 위해서라도 설교를 해야만 한다는 사명감을 불태웠다. 치열한 전투 따위는 에이프런의 뇌리에서 지워진 지 오래다.
“대륙 전체를 따져보아도 나처럼 아름다운 여인은 없다고요! 자, 봐요. 이 풍만한 볼륨감과 완벽한 얼굴, 선이 살아 있는 미적 센스까지 어디 하나 빠질 것 없는 아름다운 여인이 위기에 처하면 무슨 일이 있더라도 구해야 하는 것이 사내 된 도리예요!”
“스스로를 지키지 못하면 나약한 존재다.”
“여인은 원래 연약하잖아요!”
“나는 나약한 존재를 벌레보다 싫어한다.”
“아……!”
에이프런은 입을 닫았다. 더 말했다가는 진짜 벌레 취급당하는 수가 있었다. 역시나 무진에게는 설교가 통하지 않았다.
무진을 본 순간 데븐은 심장이 덜컥 멎는 충격을 받았다. 일부러 끌어올리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형성되는 압도적인 위압감. 사위를 지배하는 패력이 느껴졌다. 대륙의 모든 종족을 따져보아도 극소수만이 가질 수 있는 기질이었다. 마치 그의 주군을 보는 것 같았다.
‘어디서 이런 자가! 잠깐!’
데븐은 불안감이 들었다. 사피로가 움직인 이유가 눈앞에 나타난 정체 모를 존재 때문이라는 생각을 지우지 못했다. 만약 그렇다면 돌이킬 수 없는 엄청난 일이 벌어진 것이다. 불길한 예상을 지우지 못한 채 데븐은 무진을 향해 외쳤다.
“사피로 님을 어떻게 했느냐?”
“알고 싶은가.”
데븐의 예상대로 놈은 사피로를 알고 있다. 자신의 예측이 들어맞은 것이다.
“말하지 않으면 전부 죽이겠다!”
“어차피 죽이려고 온 것 아닌가. 지금까지도 죽이지 못했다는 것은 앞으로도 죽일 수 없다는 뜻이 되지.”
“무슨 수작을 부렸는지는 모르지만 사피로 님에게 위해를 가했다면 네놈들은 물론, 소니아 왕국 전체가 사라질 것이다!”
데븐의 위협은 결코 허세가 아니었다. 진정으로 하는 말이다.
보통 사람이라면 한 번쯤이라도 신경을 쓸지 모른다. 그러나 무진에게 그따위 협박이 통할 리 없다. 무진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응대했다.
“죽었다면 어쩔 거지.”
“그…럴 리 없다!”
데븐은 부정하면서도 불안감을 지우지 못했다. 마치 사실인 것처럼 느껴졌다. 만약 무진의 말이 진실이라면 데븐은 살아남기 힘들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사피로만은 살려야 하는 것이 데븐의 사명이었다.
의심을 지우지 못하는 데븐을 위해 무진은 기꺼이 나서주었다.
“증명해 주지.”
저벅!
움찔!
무진이 한 발자국 걷자 데븐을 비롯한 쉐도우 기사단이 저도 모르게 뒤로 물러서고 말았다. 알 수 없는 불안감이 사위를 무겁게 짓눌렀다. 대기가 거대한 그물망이 되어 쉐도우 기사단을 가두었다.
페가수스 기사단과 마법병단도 뒤로 물러섰다. 앞으로 나가면 안 될 것 같은 느낌을 받은 것이다. 한순간에 전투는 소강상태에 빠져버렸다.
무진의 손가락이 쉐도우 기사단을 가리켰다. 지목된 기사를 향해 손가락을 위에서 아래로 내리그었다. 보기에 따라서 뜻 모를 행동이다. 하지만 그 다음에 이어지는 광경에 모두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
사아악!
쩌저적!
손가락이 수직으로 내리그어지자 기사의 몸이 머리에서 다리까지 두 동강이 났다.
무진의 손가락은 쉬지 않고 다음 목표를 찾았다. 걸리는 족족 속수무책으로 몸이 잘려나갔다. 비명성조차 제대로 지르지 못하고 저세상으로 향하고 말았다. 무진의 손가락이 생과 사를 주관하는 사신의 낫을 연상케 만들었다.
덜! 덜! 덜!
데븐은 믿기지 않는 상황에 몸이 떨려왔다. 적을 맞아 두려움을 느낀 적이 없었다. 그런 데븐조차 항거할 수 없는 절망감을 느꼈다.
“거…짓말이다! 모두 저놈을 죽여!”
데븐이 공포에 질린 채 명령을 내렸다. 쉐도우 기사단이 무진을 향해 달려들었다.
무진은 자신을 향해 달려오는 10명의 기사단에게 조용히 말했다.
음성이 퍼져나가자 진동이 발생하며 대기를 팽창시켰다.
“꺼져라.”
푸아아앙!
파아아앙!
말에 의지가 실려 무형의 기운으로 발산되었다. 정면으로 치고 들어오던 쉐도우 기사단 10명이 마력탄이 터지듯이 처참하게 터져나갔다. 소드 아머를 입고 있다고 해도 소용없는 짓이었다. 사람의 형체조차 남기지 않은 채 고깃덩어리가 되어버렸다. 일순간 고요함이 맴돌았다.
틱!
파아아앗! 우드드득!
무진이 손가락을 퉁기고, 회전시켰다. 그러자 돌진하던 기사의 머리통이 터져나가고, 목이 기이하게 꺾였다.
무진은 자신의 권역 내에 있는 모든 것들을 의지만으로 격살해 버릴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절대지경에 도달하지 않은 자는 벌레처럼 뭉개버릴 수 있는 능력이었다.
인간이 어디까지 강해질 수 있는지 무진을 통해 보여졌다. 이제까지 상식적으로 알고 있던 무력과는 차원이 달랐다.
에이프런과 사무엘 단장, 빈센니 단장을 비롯한 모두가 눈을 부릅떴다. 여태까지 알고 있었던 무진의 무력은 빙산의 일각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인간의 무력을 한참이나 초월한 존재에 대한 두려움을 경험해야 했다.
“나 떨고 있나요.”
에이프런이 자신도 모르게 사무엘 단장에게 물었다. 사무엘단장도 반사적으로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웬만하면 성질 안 건드리는 게 좋겠죠.”
“그렇습니다! 절대 건드리시면 안 됩니다!”
“그러는 게 좋겠네요.”
사무엘 단장과 페가수스 기사단은 가슴을 쓸어 내렸다. 무진이 봐주었다는 것을 절실하게 깨달았다. 적이 되었다는 것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소름이 돋았다. 아마 몸 성히 죽는 것도 쉽지 않을 것이다.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하는 게 낫겠지.’
‘당연하지.’
‘나는 저렇게 죽고 싶지는 않다.’
‘나도!’
끝을 알 수 없는 잔인성과 압도적인 파괴력이었다. 순식간에 쉐도우 기사단의 절반이 죽어나갔다. 인간의 무력을 한참이나 벗어나 있었다.
데븐은 승산이 없음을 절실하게 느꼈다. 절대자를 상대할 수 있는 방법은 같은 반열에 든 절대자뿐이다. 수가 많다고 해서 이길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다.
데븐은 비장의 수를 쓰기로 했다. 쉐도우 기사단이 최후의 위기에 처했을 때 사용하는 절대의 파멸진. 다크니스 데스트럭션(암흑파멸진-暗黑破滅陣)을 펼쳐야 했다.
이 수법은 마지막이 아니면 사용할 수 없다. 이유는 동귀어진의 수법이기 때문이다. 대신에 죽음을 각오한 수법이기에 위력은 상상을 불허한다.
다크니스 데스트력션을 펼치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하다. 시간을 벌기 위해서 데븐은 10명의 기사를 무진의 먹이로 던져주었다. 기사들을 재물로 사용하는 데 데븐은 망설이지 않았다. 데븐에게 쉐도우 기사단은 도구에 불과했다.
쉐도우 기사단은 목숨을 도외시하고 덤벼들었다. 그들이 목숨까지 버릴 수 있는 것은 데븐의 암시로 인해서다. 어린 시절부터 꾸준히 정신마법을 걸어 일정한 수신호를 하게 되면 암시에 걸려 명령에만 따르도록 되어 있었다.
참혹한 일이었다. 그렇기에 쉐도우 기사단의 기사들은 대부분의 출생이 미천한 노예들이었다. 노예 중에서 재능이 뛰어난 아이들을 선별하여 암흑의 기사단으로 키운 것이다. 비천한 노예 생활에서 신분의 상승을 노릴 수 있다는 미끼를 제공하자 쉐도우 기사단은 최선을 다할 수밖에 없었다.
10명의 기사단이 데븐의 명령에 의해서 무진에게 돌진했다.
다다다다닥!
10명이 사생결단을 낼 듯이 무진에게 달려들었다. 무진은 지옥을 향해 무모하게 달려오는 기사들을 보면서 고개를 가로저었다.
“소용없는 짓이다.”
그 어떤 방법을 사용한다 해도 무력의 차이는 극복할 수 없다. 무진은 쉐도우 기사단을 살려두지 않을 생각이다. 필사적으로 덤비든, 필사적으로 도망치든 상관하지 않는다. 무진은 쉐도우 기사단을 소멸시킬 것이다.
돌진하는 기사단을 향해 무진의 손이 움직였다.
슈우웅!
푸아아앙!
손가락에서 뻗어나간 섬전 같은 지풍(指風)이 달려오던 기사 3명의 머리통을 박살냈다. 그리고 뒤이어서 돌진하던 기사들을 향해 손을 움켜쥐었다. 그러자 기사들은 온몸을 옥죄는 압박을 느낄 새도 없이 거대한 압력이 일순간 쥐어졌다 풀어졌다. 그것이 기사들의 마지막이었다.
우드드드득!
팟! 주르르륵!
몸통 전체가 완전히 우그러지더니 터져버렸다. 대지 위에 유혈이 낭자했다. 형체를 구분하기 힘든 살 조각이 볼품없이 나뒹굴었다.
무진은 기사 10명을 가볍게 죽인 후 주변을 돌아보았다. 데븐과 쉐도우 기사단이 어느새 진형을 갖추고 있었다.
쉐도우 기사단이 무진을 중심으로 원형의 소용돌이를 형성했다. 5명이 먼저 포진을 하며 무진을 감쌌다. 검법을 펼치는 것 같지는 않았다. 말아 들어가듯이 무진의 주위를 돌고 있었다.
무진은 처음부터 알고 있었지만 지켜봤다. 어떤 방법을 사용하든 소용없다는 것을 확인하려는 것 같았다.
오러와 오러의 기운이 이동하고 있었다. 중원 소림의 백팔나한진처럼 공력의 전이를 통해 진의 위력을 강화시키는 것 같았다. 무진은 오러가 정면을 맡고 있는 기사 5명에게 전달되는 느꼈다.
전이된 공력을 사용하는 자는 한계 이상의 역량을 발휘할 수 있다. 그러나 일정 수준 이상을 넘어서는 공력의 전이는 파격을 가져올 뿐이다. 가지고 있는 그릇이 넘치면 깨지게 되어 있었다.
사사사삭!
방위를 차단하며 주변을 맴돌던 기사 5명이 일제히 무진을 향해 감싸듯이 달려들었다.
무진은 좀 전과 같은 전술에 실망한 표정이었다. 그렇다면 더 이상 두고 볼 이유가 없어졌다. 무진을 중심으로 기파가 형성되어 회오리바람이 되었다. 조용하던 대기가 나선의 칼날로 변해 주변을 휩쓸었다.
푸아아아아앙!
기의 와류와 기사들이 부딪쳤다.
천지가 개벽하는 가공할 폭발력이 발생했다. 이제까지와는 다른 귀를 찢는 듯한 굉음이었다.
‘호오!’
무진은 쉐도우 기사단이 무슨 짓을 하려는지 깨달았다. 어차피 죽는다는 것을 안 쉐도우 기사단은 자신의 몸을 무기로 달려들고 있었다. 특수한 오러심법을 운용하여 몸 안에 마력탄을 품게 한 것이다.
인간마력탄.
몸을 구성하는 뼈와 소드 아머까지 박살이 나면서 무진을 덮쳐왔다.
폭발은 계속되었다. 무진이 죽을 때까지 쉐도우 기사단은 동귀어진 수법을 지속적으로 사용했다.
꽈과과꽝! 쿠아아앙!
드래곤의 포효와 맞먹는 굉음이 대지를 흔들었다. 솟구쳐 오른 흙먼지가 시야를 가렸다. 오러의 전이와 가속력을 무기로 데븐은 쉐도우 기사단을 마력탄처럼 사용했다.
그사이 데븐은 만약을 대비해 몸을 빼려는 움직임을 보였다. 다크니스 데스트럭션이 무서운 수법이라는 것은 인정하지만 무진을 죽일 수 있다 장담하지 못했다.
어찌되었든 복수를 위해서는 빠져나가서 사실을 알려야 한다. 또한 사피로의 행방불명, 쉐도우 기사단의 전멸, 무진의 정체는 반드시 전해야 하는 특급정보였다.
데븐은 품안에 가지고 있던 공간이동 스크롤을 꺼냈다. 거리의 제한 없이 일정 공간과 공간 사이를 이동할 수 있는 마법 스크롤이었다. 이것을 찢기만 하면 언제든지 돌아갈 수 있었다. 다크니스 데스트럭션은 무진을 죽이는 것과 동시에 상대편 마법사의 개입을 막으려는 데븐의 의도였다.
“오늘 일을 반드시 후회하게 만들어주겠다!”
치이익!
쉐도우 기사단을 희생양으로 삼은 데븐은 주저하지 않고 스크롤을 찢었다. 찢겨진 스크롤에서 번져나온 빛이 데븐의 몸을 감싸 안았다. 이제 빛과 함께 사라지면 지옥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런데 그때.
“아…니?”
마법을 실행시키기 위해서는 마나의 유동이 필수적이다. 고서클 마법스크롤일수록 마나의 파동이 적지만 마나의 유동은 어쩔 수 없는 현상이었다.
또한 일단 발현된 마법은 쉽게 풀리지 않는 것이 정석이다. 그런데 지금 마나의 유동이 멈추고, 마법이 정지됐다. 스크롤에서 퍼져나오는 빛이 볼품없이 사라져 버렸다.
“어떻게?”
뿌연 흙먼지 속에서 무진이 걸어나왔다. 쉐도우 기사단의 동귀어진 수법은 무진에게 통하지 않았다. 이전과 별 차이 없는 무진이 데븐의 바로 지척까지 걸어왔다.
데븐은 망연자실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실패할 것을 염두에 두기는 했지만 아무런 타격도 주지 못할 줄은 몰랐다. 다급하게 스크롤을 다시 작동해 보았다. 그러나 반응은커녕 아무런 변화도 일어나지 않았다.
“도대체 왜?”
“나의 영역이다.”
“설…마!”
데븐은 경악했다. 무진이 이 주변의 마나를 동결시켜 버렸다는 말을 한 것이다. 인간의 상식을 벗어나는 능력이 아닐 수 없었다.
무진은 데븐의 움직임을 파악하고 마력을 분출하여 대기의 마나를 동결시켰다.
이 수법에 데븐이 놀라는 이유는 8서클의 마법이기 때문이다. 대마법사라고 불리는 존재들만이 할 수 있는 능력이다.
무력뿐만 아니라 마법까지도 극에 달해 있다는 것에 놀라지 않을 인간은 드물었다. 데븐도 결국에는 인간의 범주에 속하는 자였다. 그는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 현실에 허탈함을 느꼈다.
항거할 수 없는 적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지 못한 데븐은 도주를 선택했다. 마법이 통하지 않는다면 도망가는 것이 최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