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륙지존기 152화
무료소설 대륙지존기: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3,066회 작성일소설 읽기 : 대륙지존기 152화
제1장 내전정벌 (2)
무진은 물러서는 사피로를 따라붙었다. 막아서는 바람 따위는 무진의 안중에도 없다. 의지를 넘어서서 만물의 이치를 통달한 무진에게 바람 역시도 조절할 수 있는 영역 안에 있었다. 귀찮음이 묻어나는 음성이 흘러나왔다.
“비켜라.”
그러자 바람이 거짓말처럼 퉁겨나가는 것이 아닌가!
무진의 의지에 바람은 속수무책으로 갈라졌다.
바람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자 사피로는 이를 악물며 윈드 스매쉬(풍타-風打)를 사용했다. 전투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사피로는 최대한 침착함을 유지하며 전력을 쏟아 부었다.
파아아앙!
압축된 바람이 거대한 방패가 되어 무진의 전신을 후려쳤다. 순간적으로 위기감을 느낀 무진이 수라탄강기를 발산했다. 수라탄강기와 윈드 스매쉬가 충돌하며 강렬한 기파를 퍼뜨렸다. 기습적인 충격에 주춤거린 무진은 사피로와의 간격을 좁히지 못했다.
“제법 괜찮은 반격이다.”
무진은 궁지에 몰릴수록 사피로가 숨겨진 능력을 발휘하고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아직까지 발전할 여력이 있다는 것이다. 발전할 여력이 남았다는 말은 좋게 말하면 잠재력이 있다는 것이고, 나쁘게 말하면 아직은 애송이라는 뜻이 된다.
‘그러나 지금 발휘할 수 없다면 죽는다.’
잠재능력 따위는 사용할 수 없는 무용지물에 불과하다. 잠재력이 언제 발산될지 어떻게 알 수 있는가! 가지고 있는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여 패하는 것은 어리석음의 소치일 뿐이다.
무진은 현재 사용할 수 있는 역량만을 중요시했다.
무진이 빠르게 쇄도해 들어갔다.
사피로는 물러선 후 바람을 잡아채고, 움켜쥐었다. 이대로는 답이 없다는 결론을 내린 것이다. 마지막 비장의 수를 꺼내 들었다.
무진은 바람이 천잠사로 엮인 그물망처럼 변해 감싸는 것을 느꼈다. 바람의 그물망은 촘촘하기 이를 데 없었다. 일정 공간을 완벽하게 장악하며 압축시키는 바람으로 인해 무진은 움직임에 제약을 받았다.
사피로는 돌진하는 무진이 멈추는 순간 전력을 쏟아 부었다. 그의 내부에 숨 쉬고 있는 모든 능력을 개방한 것이다.
사피로의 전신이 붉게 달아올랐다. 피의 흐름이 빨라지면서 사피로의 몸도 과부하가 걸릴 지경이었다.
사피로의 몸이 터질 듯이 팽창했다. 바람 역시 사피로의 의지를 받아 강력한 힘을 발휘했다. 이미 통제할 수 있는 역량을 넘어서 있다고 봐도 무방한 상태였다. 인위적인 힘이 자연적인 힘과 결합하여 초극을 초월하였다.
‘이번 공격으로 끝을 내주마!’
마지막까지 숨기고 있었다. 밀리고 있는 상황에서도 발휘하지 않은 것은 무진이 알아차릴 수 있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이번에 끝을 내지 못하면 역으로 당할 수 있다는 것을 인식한 것이다. 그 정도로 무진은 위험한 존재였다.
“이때다!”
사피로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무진은 거미줄에 갇힌 것처럼 몸을 속박하는 거추장스러운 것들을 패력으로 찢어버리고 있었다. 그러나 사피로의 윈드 네트(풍망-風罔)는 찢어도 찢어도 다시 이어지며 무진을 가로막았다. 무진은 좀처럼 진격해 나가지 못했다.
찌릿!
등골을 타고 스며드는 한기가 느껴졌다. 무진은 등 뒤에서 불길한 무언가가 쏘아져오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눈으로는 찾아낼 수 없는 엄청난 속도였다. 보이지 않는 광속의 날카로운 독아(毒牙)가 무진의 등 뒤를 찔러 들어왔다. 수를 쓰기에는 늦어버린 것 같았다.
절체절명의 순간이다.
푸아아아앙!
폭발음이 터져나왔다. 사방을 압박하던 바람의 기운조차 갈기갈기 찢겨나가 버리고 말았다. 힘의 여파가 사방팔방으로 퍼지면서 능선의 너울이 잘려나가 평지가 되어버렸다.
사피로는 그것으로 만족하지 않았다. 가지고 있던 무력을 한 곳에 집중하여 거대한 오러탄을 만들어내었다. 본신전력의 총아가 한 점에 뭉쳐졌다.
“끝이닷!”
슈우우웅!
퍼어어엉!
허공이 터지고, 부서지고, 박살이 나고 있었다. 귀를 찢는 듯한 파공성으로 인해 대지 전체가 흔들렸다.
파괴력은 기하급수적으로 팽창하며 거대한 분화구를 만들어내었다. 허공에서 터진 오러탄의 위력이 지상으로 하강하며 버섯구름이 피어올랐다. 오러와 맞닿은 대지는 속절없이 녹아 들어갔다. 열기와 바람이 퍼져나가면서 평원 전체를 뒤덮었다. 살아 있는 모든 것을 지우려는 듯했다.
허억! 허억!
사피로의 호흡이 거칠어져 있었다. 전력을 쏟아낸 다음이라 호흡을 가다듬을 필요성이 있었다. 긴장감을 늦추지 않은 채 정면을 응시했다. 만일의 사태를 대비하기 위해서였다. 무진의 강렬한 존재감이 사피로의 두려움을 자극했다.
“살아 있다고 해도 무사하지는 못할 것이다!”
휘이이잉!
힘의 여파가 가라앉고, 바람이 불자 시야를 가리고 있던 먼지구름이 사라졌다. 사피로는 황폐해진 대지에서 무진을 찾아보았다. 하지만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았다. 이겼다는 것을 확신했다. 오랜만에 적수를 만나 승리했다는 사실에 사피로는 희열을 맛보았다. 이제까지 느껴보지 못한 환희였다.
“돌아와라.”
사피로는 소환했던 블라인드 랜스를 불렀다. 블라인드 랜스는 시야를 가리는 창이다. 대기와 동화되어 눈으로는 볼 수 없다. 또한 기운과 기세를 스스로 조절할 수 있는 에고 소드였다.
블라인드 랜스는 사피로가 탈각을 통한 절대무력을 얻었을 때 계약을 한 신기였다. 가문 대대로 내려오는 신기로서 선택한 자만이 사용할 수 있었다.
그런데 아무리 불러도 블라인드 랜스가 돌아오지 않았다.
“설마 소멸한 것인가!”
사피로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누천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가문의 보물이었다. 그렇게 쉽게 소멸해 버릴 물건이 아니다.
“이걸 찾나.”
움찔!
뜻하지 않은 음성이 들려왔다. 사피로는 소름이 돋았다. 등 뒤에 접근할 때까지 사피로는 눈치채지 못했다.
사피로가 신중을 기하며 조심스럽게 돌아섰다.
“어떻게?”
“제법 까다롭기는 했다.”
무진이 서 있었다. 폭발의 여파에 휘말린 흔적이 보이긴 해도 멀쩡했다. 더군다나 무진의 손에 블라인드 랜스가 들려 있었다. 주인의 손이 아니면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블라인드 랜스가 얌전한 고양이처럼 조용히 있었다.
“그걸 네놈이 어떻게 가지고 있지?”
“덕분에 좋은 걸 얻었다.”
무진은 원래부터 자신의 것인 양 블라인드 랜스를 수중에 넣었다. 사피로는 자신의 것에 대한 탐욕이 남다르다. 남에게 빼앗기고 참는 성격이 아니었다.
“그건 내 거다!”
“가지고 싶나.”
“감히! 조롱해! 절대 그냥 두지 않는다!”
“이성을 잃으면 안 되지.”
“닥쳐!”
사피로가 윈드 체인(풍쇄-風鎖)을 사용하려고 했다. 몸에 흐르는 혈류(血流)가 빠르게 흐르면서 바람을 불러모았다. 사피로의 몸이 바람의 구심점이 되었다.
“이번에는 빠져나가지 못할 것이다!”
“그럴 필요도 없지.”
“죽고 나서도 오만을 부릴 수 있을 것 같으냐!”
무진은 사피로의 분노를 즐겼다. 지니고 있는 능력으로도 어찌할 수 없다는 것을 체감했을 때 사람은 분노한다. 사피로도 그 범주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그는 지금 자신의 상태를 냉철하게 판단해야 했다. 부동심을 잃은 자는 큰 실수조차 인식하지 못한다. 그것이 파탄이 될 수 있음을 사피로는 알아야 했다.
“해봐라.”
“건방진!”
사피로는 전력을 다해 힘을 분출했다.
-윈드 네트(풍망-風罔).
강대한 힘을 가진 바람이 촘촘한 망이 되어 무진을 덮쳤다. 무진은 그 어떤 방어 자세도 취하지 않고 있었다. 그저 무진의 눈이 청백색으로 변하며 수라혼원심공이 자연스럽게 운용됐을 뿐이다. 그것만으로도 승부는 끝난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때였다.
기운을 발산하던 사피로의 전신 모공에서 핏물이 튀었다.
파팟! 파팟
주르르륵! 주르르륵!
혈관이 터지면서 핏물이 봇물처럼 터져나온 것이다. 삽시간에 전신이 핏물에 젖어 들어갔다. 사피로는 왜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인지 그제야 알게 되었다.
각성자의 능력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피의 흐름을 빠르게 해야 한다. 그런데 피의 통로인 혈맥이 한순간 장막에 가로막히면서 가속된 혈류량을 막아선 것이다.
과도한 흐름이 혈관에 집중되었다. 그로 인해 혈관이 터지고, 기운이 흐트러졌다. 통제하기 힘든 상황이 되어버렸다.
“이…럴 수가!”
무진은 애초부터 일격 일격에 수라탄강기를 부여했다. 적의 역량을 테스트하면서 지닌 힘의 본질을 파악하기 위한 계획이었다. 그 전까지 수라탄강기는 사피로의 내부에 차곡차곡 쌓여만 갔다. 그리고 모든 것을 파악했을 때 무진은 사피로의 몸에 잠들어 있는 수라탄강기를 깨웠다. 광포한 패력을 지닌 수라탄강기는 살아 숨쉬는 마물(魔物)이 되어 사피로의 내부를 파괴시켰다.
“이제 끝이군.”
“아…직 끝나지 않았다!”
“과연 그럴까.”
무진은 사피로를 가만두지 않았다. 사피로의 내부에서 날뛰고 있는 수라탄강기에 혼을 부여하여 더욱더 거칠고 난폭하게 만들었다.
“크으으윽!”
사피로의 입에서 쇠를 가는 듯한 거친 신음성이 터져나왔다. 지금은 무진을 상대할 여력이 없었다. 내부에서 날뛰는 기운을 몰아내야만 했다. 그러나 무진은 사피로에게 시간을 주지 않았다.
저벅! 저벅!
천천히 걸어와서 사피로에 복부에 우권을 꽂았다. 사피로는 무진이 다가옴에도 불구하고 두 눈을 부릅뜨는 것을 제외하고는 무방비였다. 움직일 수 없다는 무력감과 패배가 눈앞에 있다는 허망함이 사피로의 이성을 흔들어놓았다.
퍼어억! 우드드득!
“크어어억!”
사피로의 등이 새우등처럼 휘어졌다. 뼈가 으그러지는 것 같은 충격이었다. 사피로는 악다문 입술을 비집고 흘러나오는 신음성에 절망했다. 자존심이 하루아침에 무너지는 것 같았다.
무진은 숙이고 있는 사피로의 목을 잡고 들어올렸다. 한 손에 들린 사피로는 몸부림을 치며 빠져나가려고 안간힘을 썼다. 사피로는 덫에 사로잡힌 벌레처럼 허우적거렸다.
“너의 정체는?”
“내…가 말할 것… 같으냐!”
“고통스러울 텐데.”
무진의 의지가 원하자 사피로의 오른팔이 서서히 꼬여 들어가기 시작했다. 큰 고통이 지나가고 나면 작은 고통에는 감각을 느끼지 못하게 된다. 무진은 사피로를 서서히 피를 말렸다. 손가락에서 시작된 뒤틀림이 느리게 팔 전체로 퍼져나갔다.
사피로는 살이 뒤틀리고, 뼈가 부러지면서 전해지는 생생한 고통을 느꼈다.
우드드드득!
“크아아아악!”
팔이 뒤틀리면서 뼈가 부서져갔다. 부서진 뼈가 살을 뚫고 나와 붉은 핏물을 쏟아내었다. 극심한 고통이 사피로의 인내심을 지속적으로 시험했다. 그가 언제 이런 고통을 겪어보았는가! 만인을 지배하는 절대자로 살아왔던 사피로는 비참한 현실을 인정하지 못했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모든 것이 꿈만 같았다. 사피로는 몸부림치는 와중에 무진을 보았다.
부르르르!
한 치의 감정도 느껴지지 않았다. 잔인한 고통을 가하고 있는 자라고는 여겨지지 않는 평정심이다. 적의 고통 따위는 안중에도 두지 않는 자만이 가질 수 있는 기질이다. 그것은 그를 비롯한 절대자만이 가지고 있는 성향이었다. 무진도 그들과 같은 부류였던 것이다.
‘이…놈은 내가 말할 때까지 나를 고통…스럽게 할 것이다! 그러나 나는 사피로다! 절대 굽히지 않는다!’
패배했다고 해서 구차하게 목숨을 연명하고 싶지 않다. 죽는 한이 있더라도 자존심을 지키고 싶었다.
무진은 사피로의 자존심을 읽었다. 그러나 부질없는 자존심이다.
“지킬 수 있다면 말이지.”
무진은 해야 할 일을 수행하는 무자비한 처형자와 같았다. 당하는 자의 고통과 아픔은 생각하지 않는다. 무진이 다시 기운을 퍼뜨리자 다리까지 나선으로 뒤틀려 올라갔다.
우드드드득! 우드드드득!
뼈가 부러지다 못해 으스러지고 있었다. 부서진 뼈가 피부를 찌르면서 고통을 배가시켰다. 사피로는 억만년의 시간 속에 갇힌 기분이 들었다.
찰나의 시간조차 너무 느리게 가고 있었다. 참을 수 없는 고통에 미칠 것만 같았다. 남아 있는 자존심마저 산산이 부서지고 있었다.
사피로에게 무진은 철저한 파괴자였다.
“말해라.”
“닥…쳐!”
“버틴다고 달라지지 않는다.”
무한의 고통.
다물어진 이빨이 저절로 떨리고, 온몸의 신경세포가 고통으로 인해 아우성을 쳤다. 살아 있다는 것 자체가 고통일 뿐이다. 인간의 한계를 초월하는 지독한 고통의 연속이었다.
그보다 무서운 것은 무진이었다. 인간을 형체도 구분하지 못할 정도로 망가뜨리면서도 원하는 것을 얻기 전까지는 절대 멈추지 않았다.
“으아아아악!”
비명성이 평원 전체를 울렸다.
팔, 다리, 몸이 비틀리고도 사피로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단한 인내력이 아닐 수 없다. 무진은 숨이 넘어가기 직전에 사피로의 몸에 치료마법을 걸었다.
무진은 시간이 많다. 사피로의 정신력이 언제까지 강할 것이라는 기대 따위는 하지 않는다.
인간은 무한의 고통 앞에 무너질 수밖에 없는 나약한 존재다. 버틸 수 있다고 여기는 것은 오만이었다.
지옥 같은 고통의 반복이 계속되었다.
사피로의 정신은 넝마처럼 망가져갔다. 자존심에 금이 가고, 정신이 반쯤 나가버리고 말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복종하지 않는 것은 대단했다. 예상을 뒤엎는 끈질김이었다.
“제법이군. 그러나.”
이미 무너질 대로 무너졌다. 물어보지 않아도 대답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은 얼마든지 있었다. 무진의 눈이 청백색으로 변하면서 사피로의 정신을 꿰뚫었다. 굳게 닫혔던 문이 가차 없이 부서져나갔다. 막아서는 사피로의 정신력이 초라했다.
“안… 돼!”
부들! 부들!
무진은 사피로의 외침을 묵살해 버렸다. 사피로는 기억이 빨려 들어가는 것을 느꼈다. 안간힘을 쓰며 막아보려고 했지만 불가능했다. 무진은 사피로의 반항을 무참하게 짓밟았다.
“호오!”
사피로의 기억을 끄집어낸 무진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훌륭하군.”
무진은 사피로의 뒤에 버티고 있는 진실한 적의 정체를 파악했다. 그리고 그들이 무슨 짓을 벌이고 있는지 대략적으로 파악할 수 있게 되었다. 놈들의 방법은 충분히 위협적이면서, 효과적이었다.
이제 얻을 것은 다 얻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