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륙지존기 131화
무료소설 대륙지존기: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3,245회 작성일소설 읽기 : 대륙지존기 131화
제2장 암투(暗鬪) (2)
결국 입을 다물고 만 알리스타였다. 더 이상 대답을 해봤자 스스로의 존재감만 무너뜨릴 뿐이다. 차라리 적당히 신분만 확인하고 세르비안에게 안내를 했다면 이런 개망신은 당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자는 위험인물이다!’
에이프런도 위험하지만 무진은 더 위험한 존재다. 저런 자가 에이프런의 뒤에 버티고 있다는 것 자체가 꺼림칙했다. 무진의 신상을 확실하게 파악하는 것이 선결되어야 할 것으로 판단되었다.
‘백작부인의 뜻대로 하기 힘들겠어!’
무진은 알리스타의 머리 굴리는 소리까지 듣고 있었다. 스스로 냉철한 존재라고 여기는 것들은 꼭 뒤에서 수작을 부린다. 알리스타도 그런 놈들 중에 하나다. 무진은 알리스타를 장악하지 않았다. 알아서 적당히 부풀려서 세르비안에게 전해준다면 환영이었다.
무진의 행동은 세르비안뿐만 아니라 에이프런에게도 적용된다. 계획은 적당한 긴장감이 필수다. 스스로를 채찍질하고 경계를 늦추지 않아야 완벽하게 계획을 수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로써 에이프런도 좀 더 긴장하고, 방심하지 않을 것이다.
사람을 다스리는 것은 보기에 따라서는 쉽게 보인다. 하지만 직접 해보면 그것만큼 어려운 일이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사람은 개개인의 성향과 지닌 바 욕심, 욕망이 다르다. 그들의 모든 것을 포용하고, 지배하는 것이 쉽다고 할 수 없다. 반면에 무진은 대륙의 황제였다. 절대적인 패력으로 폭군이라는 말을 듣기는 했지만 사람을 부릴 줄 알았다.
에이프런, 알리스타, 세르비안은 무진의 손바닥 안에 있는 장기 말에 불과했다. 그 중에 에이프런이 장기의 왕으로 성장할 가능성이 있기는 해도 아직은 멀었다.
“가지.”
“저를 따라오십시오!”
알리스타는 술집 내부, 지하에 있는 비밀 통로로 무진과 에이프런을 안내했다. 이곳에서 200미터 떨어진 지점으로 가면 접선지가 있는데, 그곳에서 카이겔 백작가로 들어가는 은밀한 길이 있다.
어둠을 틈타 카이겔 백작가로 들어간 무진과 에이프런은 세르비안이 지정해 준 룸으로 들어갔다.
세르비안은 생각보다 신중한 편이었다. 덥석 제안을 물 것이라는 기대와는 다르게 하루 정도 시간적인 여유를 두었다.
안내된 방의 근처에 〈씨크릿 룸〉이라고 적혀 있었다.
무진과 에이프런이 들어온 룸은 백작가 내에서도 사람들의 시선이 막혀 있는 장소였다.
방까지 오는 통로가 한 곳이고, 그곳을 제외하고 방 안에 따로 비밀통로가 있었다. 외부에서 초빙된 중요한 인물들의 안전을 위해서 따로 만들어 놓은 장소다. 백작가 내의 안전지대로 통용이 된다. 그래서 백작가에서도 극소수의 인물들만이 방으로 들어올 수 있는 권한이 있다.
“사방이 막혀 있어 답답하긴 해도 제법 괜찮은데요.”
“그런가.”
“우리끼리 있는데 딱딱하게 굴지 말죠.”
“아직 어리군.”
“뭐예요! 나처럼 빵빵한 가슴을 지닌 여인이 어디 있다고!”
에이프런이 당당하게 가슴을 내밀었다. 확실히 크긴 컸다. 탱글탱글한 것이 사내들이라면 한 번만이라도 만져보기를 소원할지도 모른다.
반면에 무진은 성욕 따위에 얽매이는 인물이 아니다. 시작한 일을 마무리 짓지 않은 이상 다른 것에 정신을 팔지 않는다.
무진은 방에 들어오면서부터 마나의 기운이 다르다는 것을 느꼈다. 알리스타에게 물어보니 이곳은 외부에서 초대된 중요인사의 안전을 위해서 만들어 놓은 방이라고 했다.
하지만 그것만이 목적은 아닌 것 같았다. 방 안에 도청과 마법영상저장이 가능한 마법아이템을 비밀리에 설치를 한 것 같았다. 워낙 은밀해서 마나의 흐름에 민감한 고서클의 마법사가 아니면 감지하기 힘들었다.
일단 방에 들어올 때 기막을 쳐서 에이프런의 쓸데없는 소리는 새어나가지 않았다. 방심하고 있었다면 적에게 빈틈을 제공했을 것이다.
무진은 불규칙적인 마나의 흐름을 찾아서 방 안을 뒤졌다. 마법사가 아닌 이상 마나의 불규칙한 흐름을 파악하는 것이 어려울 것이다. 무진은 마나의 흐름을 파악한 뒤 숨겨져 있는 마법도청아이템을 찾아내어 부쉈다.
빠직!
“크아아앗!”
어딘가에서 소리를 감청하고 있던 인물이 놀라서 소리쳤다. 순간적으로 밀려오는 마나의 역류를 경험한 것이다.
무진은 마법도청아이템을 부숴버리고 난 후 에이프런을 바라보았다.
“조심성이 없어.”
“설마 마법도청아이템이 있을 줄 내가 알았나요!”
“그래서.”
“전 이게 아직도 있는 줄 몰랐다니까요!”
‘젠장! 이것들이 내 몸을 촬영해서 비싼 값에 팔려는 거야! 쩝! 짭짤하기는 하겠다! 이럴 줄 알았으면 도청탐지기라도 하나 구입해 놓을 걸 그랬네!’
메카닉왕국은 마법사가 아니더라도 마법도청아이템과 같은 마법아이템을 찾아낼 수 있는 탐지기계를 만들기도 했다.
한때 대륙을 시끄럽게 만들었던 몰래마법영상저장아이템 줄여서 ‘몰템’이라는 것이 대륙에 물의를 일으킨 적이 있었다. 대표적인 사건이 대륙 귀족들의 스캔들이었다. 그들의 은밀한 사생활을 몰템으로 촬영하여 대륙에 배포한 것이다.
당연히 사회적으로 엄청난 파장을 몰고 왔었다. 대륙의 귀족들은 불같이 화를 내며 자신의 사생활을 보호하기 위해서 상상할 수 없는 피 바람을 몰고 왔다. 범인들을 색출해 내고, 처참한 대가를 치르게 했다.
당시에 메카닉왕국에서 개발한 도청탐지기가 아니었다면 몰템은 아직까지 남아 있었을지도 모른다.
“주변에 보는 눈이 많다. 항상 조심해야 한다는 것을 명심하는 게 좋아.”
“알았어요! 다시는 이런 초보적인 실수는 안 할 테니 두고 봐요!”
“과연 그럴까.”
“저 아카데미 나온 여자예요! 절대 같은 실수 두 번 안 해요!”
“지켜보지.”
세르비안은 무진과 에이프런을 씨크릿 룸에 들여보내고, 알리스타를 불렀다.
“확실히 백작가의 피를 물려받은 모양이구나!”
“그렇습니다.”
카이겔 백작가의 문양이 있다면 백작가의 후손이 확실했다.
혈족을 확인한 세르비안의 눈동자는 이글이글 타오르고 있었다. 세르비안은 자신을 두고 미천한 계집에서 마음을 준 카이겔 백작을 증오했다. 그리고 카이겔 백작의 마음을 흔들어 놓고 아이까지 임신했던 계집 역시 증오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아니 훨씬 더 증오했다고 보는 것이 맞았다.
세르비안에게 에이프런은 미천한 계집의 딸이자, 증오했던 카이겔 백작의 더러운 피에 불과했다.
“어땠지?”
“보통이 아니었습니다. 최소한 상급의 오러를 수련한 흔적이 보입니다.”
“뭐야!”
나이를 계산해 보면 라이더스의 성취보다 더 뛰어났다. 카이겔 백작가의 혈통을 그대로 이어받았다는 반증이었다. 그것이 세르비안의 분노를 부추겼다. 자신의 아들보다 그년의 딸이 훨씬 더 뛰어난 재능을 이어받았다는 것이 불쾌했다. 세르비안의 눈동자에 살기가 맴돌았다.
“같이 온 놈은 누구지?”
“확인해 본 결과 왕국의 몰락귀족 중에 유일하게 살아남은 후손입니다.”
“흥! 몰락귀족이라고.”
“그렇다 해도 쉽게 볼 인물은 아닙니다. 그도 최소한 상급의 실력을 가지고 있을 겁니다. 더군다나 만만치 않게 조심스럽기까지 합니다.”
“그게 무슨 소리지?”
상급의 실력자가 에이프런의 옆에 자리하고 있다는 것은 쉽게 볼 일이 아니다.
“자세히 말해봐.”
“사실 제가 손을 써보지도 못하고 당했습니다! 또한 도청 역시도 실패했습니다!”
세르비안은 에이프런이 만만치 않은 조력자를 등에 업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장난감처럼 사용하다 버리려고 했건만 어려울 수도 있었다.
알리스타는 에이프런보다 무진이 더 위험하다고 생각했다.
“차라리 그냥 제거하시는 것이!”
“무슨 바보같은 소리냐! 지금 우리가 처한 상황이 그렇게 만만한 줄 알아! 네 말대로 그년과 그놈이 상급 이상의 실력자에 또 다른 조력자까지 등에 업고 있다면 제거하는 게 말처럼 쉬울 것 같아!”
“하지만 너무 위험한 자들입니다!”
“네 충정은 알겠지만 지금은 어쩔 수 없다. 어쩌면 차라리 잘된 것 같구나! 이 기회에 그년을 전면으로 내세워 페르만 자작을 제거하는 것도 괜찮겠지!”
에이프런과 페르만 자작은 충돌할 수밖에 없다. 직계혈통을 지닌 에이프런과 백작가 내에 탄탄한 세력을 구축한 페르만 자작은 상극이었다. 적당한 빌미를 주면 알아서 서로를 물어뜯을 것이다. 만신창이가 되었을 때 한꺼번에 처리해 버리면 그만이었다.
‘둘 다 끝장을 내주지!’
에이프런과 페르만 자작을 견제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라이더스의 병환을 고치는 것이 더 중요했다.
“라이더스를 치료할 방도는 찾았어?”
“필요한 약은 거의 다 구했습니다. 이제 조금만 더 기다리시면 됩니다.”
“서둘러야 해.”
“알겠습니다.”
라이더스만 일어서면 모든 것이 끝난다. 그때를 위해서 세르비안은 무슨 짓이든 할 수 있었다.
무진과 에이프런은 다음날이 되어서야 세르비안을 만났다. 세르비안은 전날의 독 오른 암고양이 같은 표정이 아니었다. 백작가의 안주인으로서는 품위와 미소를 잃지 않은 채 에이프런과 무진을 맞이했다.
에이프런은 처음으로 세르비안을 봤다. 만약 그녀의 속내를 알지 못했다면 감쪽같이 속았을지도 모른다. 겉과 속이 다른 여인의 표상을 지켜보는 것 같았다.
‘흥! 곧 가면을 벗겨주지!’
당한 만큼 갚는다. 에이프런의 인생철학이다. 무진으로 인해 에이프런의 인생철학이 처절한 고배를 마시기는 했어도 아직 유효했다.
세르비안의 눈동자가 약간이지만 흔들렸다. 에이프런의 미모는 그녀가 생각하는 수준을 한참이나 벗어나 있었다. 젊은 시절 그녀도 상당한 미모를 지닌 여인으로 평가받았지만 에이프런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인정하긴 싫어도 얼굴만 따지면 대륙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일 것이다.
‘그 반반한 얼굴을 다시는 들고 다니지 못하게 해주마!’
여인으로서의 질투와 아들보다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있다는 것에 대한 시기심이 세르비안의 마음을 장악했다.
속마음과 달리 에이프런과 세르비안은 가슴에 비수를 숨긴 채 미소를 지었다.
“만나 뵙게 되어서 영광이네요!”
“태어날 때 처음 보고 오랜만에 다시 보는구나!”
겉으로 보이는 분위기는 화기애애했다. 오랜만에 만난 가족의 상봉처럼 보였다. 일상적인 이야기들이 진행되어 갔다. 그러나 말 한마디 한마디를 자세히 살펴보면 그냥 흘려들을 내용이 아니다.
“그동안 뭐 하면서 지낸 거지?”
“적당히 세상을 구경하며 살았어요.”
“힘들었겠구나!”
“그렇지도 않아요. 그보다 오빠의 건강은 어떤가요!”
“조금씩 좋아지고 있다.”
에이프런은 자신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하지 않았다. 세르비안이 물어보는 것은 전부 두루뭉술하게 넘겼다. 세르비안도 정작 중요한 내용은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라이더스의 건강상태는 호전되는 것으로 세간에 알려지고 있지만 현실과는 달랐다.
‘제법이구나!’
‘만만치 않은데!’
여인들의 신경전이 대단했다. 웃고 있지만 웃는 것 같지 않은 묘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화기애애가 아니라 화기애매한 상황이 연출되고 있었다.
주변을 지키고 있는 세르비안의 가신들도 마른침을 삼키며 눈치를 보고 있는 상황이다. 두 여인의 말 한마디에 상황이 극 반전으로 치달을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에 두 여인의 중간에 어중간하게 대치하고 있는 무진은 다른 이들과 달리 차를 마시며, 내놓은 치즈케이크를 베어 물고 있었다. 에이프런과 세르비안이 신경전을 벌이든 말든 신경 쓰고 있는 모습이 아니다.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전혀 눈치를 챌 수 없었다.
무진의 입장에서 이 정도의 암투는 같잖을 뿐이다. 이보다 훨씬 치열하고, 독하며, 잔인한 암투를 밥 먹듯이 벌인 무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