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륙지존기 11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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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2,990회 작성일소설 읽기 : 대륙지존기 119화
제4장 동행 (2)
멸살진을 받아 살펴본 지그프리트, 제니아, 바이드론, 젠카르트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멸살진은 보통 무서운 진이 아니었다. 일단 진형에 걸리기만 하면 고룡급이라도 해도 무사하지 못할 것이다.
‘이런 굉장한 합격술이 있을 줄이야!’
‘제대로만 익히면 적수가 없을 거야!’
강해질 수 있다는 사실에 그들은 희열을 느꼈다. 무진과 생활을 하면서 자신들도 모르게 강함에 끌리게 되었다.
“멸살진을 과시하지 마라. 합결술이 강하다고 해도 결국에는 자신의 강함이 가장 중요하다. 스스로의 힘을 기르는 일에 자만하지 않는 게 좋을 거다.”
“명심하겠습니다!”
지그프리트는 이상함을 느꼈다. 오늘따라 무진의 말이 길다. 필요한 말을 짧게 하고 끝내는 것이 보통이었다. 평상시와 확실히 다르다는 것을 간파했다.
‘뭔 일 있나?’
무진에게 무슨 일이 있을 턱이 없다. 현재로서도 딱히 적수도 많지 않다. 레어에서 같이 생활을 했던 무진에게 특별히 다른 일이 있을 리가 없지 않은가!
여행을 떠나기 전에 수하들에게 목표를 내려주는 것이 무진의 특기였다. 일단 시일을 정하지 않은 긴 여정이 될 수도 있다. 그 시간 동안 나태해진 수하들을 단련시킬 필요성이 있었다.
“대륙을 여행할 생각이다.”
“갑자기 왜 그러시는지?”
지그프리트는 불안했다. 어쩐지 오늘따라 말이 많은 이유가 있었다. 지그프리트가 보기에 무진은 물가에 내놓은 마왕이었다. 마왕이 지나간 곳치고 멀쩡한 곳이 없는 것은 당연했다.
무진이 무슨 짓을 할지 감이 잡히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였다. 지그프리트는 불안감이 들면서도 한편으로는 해방감을 느꼈다. 참으로 이율배반적인 속마음이 아닐 수 없다.
‘이거 좋아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무진을 경험해야 하는 대륙의 존재들에게는 불행이었다.
제니아, 바이드론, 젠카르트는 무진이 여행을 떠난다는 말에 하마터면 환호성을 내지를 뻔했다. 목구멍으로 터져 나오는 환호성을 참아내는 것이 무척이나 힘들었다.
“언제 돌아오시는 겁니까?”
이미 결정이 난 사항이니 지그프리트가 차분하게 물었다.
“시일은 정하지 않았다. 다만 오래 걸릴 수도 있다.”
“어디서부터 여행을 하실 생각이십니까?”
“우선은 여기와 가까운 소니아왕국부터 시작하는 게 좋겠지.”
“그럼 필요한 물품을 챙기도록 하겠습니다.”
“그렇게 해라.”
무진은 내일 당장 출발할 생각이다. 마음을 정한 이상 머뭇거리는 것은 무진의 적성에 맞지 않았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두근거림이 사라지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 컸다.
무진의 방에서 나온 지그프리트, 제니아, 젠카르트, 바이드론은 따로 작당모의를 가졌다. 그들이 모시는 주군이 나가는 첫 대륙여행이다. 만반의 준비를 다해야 한다는 사명감을 느꼈다.
“그런데!”
“왜?”
“정말 나가시는 걸까?”
“그렇겠지.”
“그럼 정말 해방인가!”
“길어봤자 10년 내외다.”
“그게 어디냐!”
“누가 보면 네 수면기보다 긴 줄 알겠다.”
인간의 기준으로 따지면 10년이 길 수도 있겠지만 드래곤의 기준으로 따지면 한숨 잤다 일어난 시간보다 10배는 적을 것이다.
지그프리트 다른 녀석들과 달리 신중함을 잃지 않았다. 여행이라고 해도 언제든지 돌아올 수 있다. 마법아이템과 무진의 마법실력이라면 충분하고도 남는다. 언제 어느 때 돌아와서 확인할 수도 있다는 뜻이 된다.
“긴장을 풀지 않는 게 좋을 거야.”
“무슨 말이야?”
“여행 중에 한 번쯤 레어에 들를 수도 있을 것 아냐! 그때 우리의 풀어진 모습을 본다면 과연 주군이 가만있을까!”
모두는 고개를 끄덕였다. 항시 긴장의 끈을 놓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이제는 제법 익숙해졌잖아! 합격진도 연습해야 하고.”
“평소 게으르다는 생각은 한 번도 안 해봤었는데, 주군을 만나고 나서부터 얼마나 나태했었는지 절실하게 깨닫는다.”
“그러게 말이야!”
그들은 무진으로 인해 시간의 소중함을 깨달은 드래곤이 되었다. 찰나의 시간을 낭비하지 않는 존재는 언제든지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길을 열 수 있다.
제니아는 작당모의보다는 무진이 준 매화검법에 흠뻑 빠져 있었다. 화려하면서도 날카로우며 변화무쌍한 매화검법은 그녀가 생각하는 가장 이상적인 검법이었다.
무진이 제니아에게 준 매화검법은 화산의 매화검법과는 다르다. 패도를 지향하는 무진의 성향이 담겨 있었다. 화려하면서도 강력한 힘이 녹아 들어가 있다.
무진이 검법서를 주면서 한 말은 제니아에게 큰 깨달음을 주었다.
-노력하지 않은 검은 명검이라도 무딜 뿐이다. 검을 벼리는 것은 너 자신이 되어야 한다.
신검을 만드는 것보다 스스로의 실력을 갈고닦아야 한다는 뜻이었다. 무진과 대련을 하면서 그것을 뼈저리게 깨닫게 되었다.
제니아가 깨달음을 다시 한 번 되새기는 사이에 지그프리트는 무진의 여행을 위한 철저한 사전준비를 완성했다.
“우리가 할 일은 주군이 불편함 없이 대륙을 여행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여정에 필요한 사전지식을 담아 아이템을 만들고, 소소한 것에서도 불편함이 없도록 해야 돼! 지금부터 각자 맡겨진 임무를 잊지 말고 내일까지 완벽하게 준비하고 만들어와.”
“걱정하지 마!”
완벽한 준비를 해야 무진이 그나마 덜 찾아올 수 있기 때문에 그들은 최선을 다했다. 그날 하루가 지나가고 아침이 될 때까지 지그프리트, 제니아, 젠카르트, 바이드론은 철저한 준비를 위해 모든 것을 불태웠다.
무진이 떠나는 날.
지그프리트는 반지 하나를 무진에게 주었다.
“이게 뭐지?”
“용병패를 받기 전까지 대륙을 여행하려면 신분이 필요할 겁니다. 이것은 소니아왕국의 귀족을 나타내는 인장입니다.”
“알겠다.”
제국과 왕국을 지날 때마다 검열을 받는 것은 귀찮은 일이다.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귀족의 인장이 있다면 불편함은 없을 것이다.
무진은 지그프리트가 준 반지를 받고 난 후 돌아서려고 했다. 하지만 지그프리트의 준비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이것은 여행 시 필요한 물품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주군의 품위를 잃지 않기 위한 도구입니다. 이것은 귀찮은 일이 발생했을 시 간단하게 해결할 수 있는… 등등!”
“됐다.”
“그래도 사용방법을 아시는 것이…….”
“알아서 사용하겠다.”
“그럼 설명서를 이곳에 넣겠습니다.”
“그러도록.”
설명만 듣다가 날이 샐지도 몰랐다. 무진도 철저한 준비를 하는 편이지만 지그프리트의 준비는 과한 면이 없지 않아 있었다. 하룻밤 사이에 이 많은 것들을 준비했다는 것이 놀라울 따름이다.
“준비는 아주 잘했다.”
“감사합니다.”
“이 정도의 준비성이라면 내가 다시 돌아올 때 기대를 해도 되겠군.”
“물…론입니다!”
지그프리트는 등 뒤로 식은땀이 흘렸다. 칭찬인 것은 분명하지만 그 뒤에 이어지는 말이 심상치 않게 들렸다. 만일 돌아와서 확인했을 때 실력이 늘지 않으면 가만두지 않는다는 협박보다 더 무서웠다.
“그럼 돌아와서 보지.”
“무사히 다녀오십시오!”
“그러지.”
지그프리트를 비롯한 수하들은 안타까움이 묻어나는 표정으로 무진을 배웅했다. 그리고 무진이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졌을 때, 아주 작게 속마음을 분출시켰다.
‘야호!’
‘해방이다!’
‘부디 오래 오래 여행하십시오!’
작은 환호성이었다. 무진이 언제 다시 돌아올지 모르니 쉽사리 맘에 있는 말도 꺼내지 못했다.
* * *
“죽었나?”
“그렇습니다.”
어둠 속에 일렁이는 작은 불빛을 사이에 두고 두 사람이 앉아 있었다. 은밀한 대화를 나누기에는 적합한 밀폐된 공간이었다.
빛 사이로 보이는 자는 나이가 제법 있었다. 각이 서린 얼굴에 연륜이 묻어나는 주름이 있었다. 또한 매서운 눈빛은 평범한 노인과는 거리가 멀었다. 먹잇감을 노리는 맹수처럼 사나우면서도 교활했다.
“일에 동원된 녀석들을 처리하는 것도 끝냈겠지.”
“이미 처리했습니다. 놈들이 밝혀낼 수 있는 방법은 없습니다.”
“잘했군.”
일을 꾸민 자의 입장에서 사사건건 방해했던 존재가 사라졌다. 눈엣가시 같은 놈이 사라지니 속이 다 후련해졌다.
“그보다 놈의 숨겨둔 후계자가 또 있다지.”
“워낙 철저하게 신분을 감춰놓아서 이제까지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병석에 있는 놈이야 이미 병신이니 상관없지만, 놈이 돌아오면 계획이 뒤틀릴 수 있으니 사전에 처리하도록.”
“알겠습니다.”
그의 눈가에 살기가 번들거렸다. 막아서는 장애물만 없었다면 언제든지 왕국을 집어삼킬 수 있었다. 이제 그 시기가 다가오고 있었다. 조금이라도 후환거리가 되는 것들은 모두 다 처리해 버릴 생각이다.
* * *
저벅! 저벅!
날이 저물도록 산길을 걷고 있는 청년이 있었다. 인적이 드문 산길은 홀로 걸어가기에는 무척이나 위험하다. 다크포레스트와 같은 마수의 숲은 아니더라도 대륙의 산에는 몬스터와 맹수가 제법 있었다.
하지만 청년의 얼굴에 두려움이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다.
휙! 휙!
청년의 신형이 무척이나 빨랐다. 분명히 걷고 있는 것 같은데 한 걸음에 10여 미터씩 나아가고 있었다. 신법을 빠르게 전개하여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거리를 축약하여 뻗어나가는 축지성촌(縮地成寸)과 같았다.
“아직 멀었군.”
무진은 지그프리트의 레어에서 벗어나면서 무공을 테스트하고 있었다. 수련 시 생각났던 영감을 모태로 신법을 좀 더 세밀하게 갈고닦았다.
“완벽한 축지는 되지 않는군.”
축지법(縮地法).
말 그대로 거리를 축약하는 방법이다. 과거 신선술의 일종이라고 일컫는 전설적인 수법이다.
많은 무인들이 축지에 도전하려고 했지만 성공한 예는 없다. 축지는 신법과는 다르다. 거리를 완벽히 통제하고 공간의 틀은 벗어나야 한다. 뮤켄대륙의 경우 블링크, 워프가 있을 수 있지만 순수한 무력으로 축지에 성공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무진의 경우도 완벽한 축지와는 거리가 있었다. 다만 신법과 궤를 달리하는 축지의 기본을 터득한 것은 대단한 성과였다.
무진은 날이 어둡게 되자 쉴 수 있는 평평한 장소를 찾았다. 꽤 많은 거리를 이동했는데, 아직도 인적이 있는 장소가 나오려면 제법 걸릴 것 같았다. 지그프리트의 레어와 인간 사회와의 거리가 상당하다는 뜻이 되었다.
사실 공간이동마법이 있는 드래곤에게 거리는 별다른 제약이 되지 않았다. 또한 드래곤은 인간과 같은 공간 안에서 사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가끔씩 인간사회를 경험하는 것은 유희의 일종일 뿐이다.
가장 중요한 이유는 수면기다. 인간의 탐욕은 끝이 없다. 드래곤레어에 있는 보물을 훔치기 위해서 만용을 부리는 인간들이 종종 있다. 레어를 지키는 가디언만으로 충분하기는 하지만 만에 하나라도 수면기에 인간이 쳐들어오면 여간 곤란한 것이 아니었다.
“아공간 오픈.”
솨악!
허공에 공간이 열리자 무진은 그 안에 손을 집어넣었다. 보이는 것 중에서 마법수정구를 꺼냈다.
“잠을 잘 수 있는 용품이 뭐지?”
-여행시 주군의 편안한 잠자리를 위해서 3호 수정구를 넣어 놓았습니다. 주군의 편의를 위해서 마법물품 모두에 사용자 인식 마법진을 설치했습니다. 최초의 사용자에게만 허용이 되도록 설계했습니다. 물품의 사용은 변환이 가능합니다. 일단 꺼낸 물품에 마력을 불어넣고 바닥에 놓으면 3초 후에 원하는 물품이 나옵니다. 물품의 사용 후에 다시 마력을 불어넣으면 원래의 수정구로 돌아가도록 되어 있습니다.
수정구에서 지그프리트의 목소리가 들렸다. 수정구 안에 무진이 필요한 물품의 사용설명서를 밤새도록 수작업으로 목소리를 집어넣은 지그프리트였다. 마법진을 이용한 수정구라 영구보관이 가능하고 웬만한 충격에도 변성작용이 일어나지 않는 견고함을 지니고 있었다.
무진은 지그프리트의 특제사용설명서 대로 아공간에서 3호 수정구를 꺼냈다.
“변환.”
퍼어엉!
뚝딱!
마력을 불어넣고 변환이라고 말하자 3초 후에 아담한 집이 생겨났다. 간단하게 쉴 수 있는 공간이 튀어나오기를 바란 무진은 설마 수정구를 던지자 집이 나올 줄은 몰랐다.
무진은 수정구에서 마법진이 발휘되는 그 순간의 흐름을 느꼈다.
“아공간 안에 만들어 놓은 집을 넣어 두었다는 말이지.”
수정구는 아공간을 열어 집을 옮겨놓는 문과 같은 역할을 했다.
지그프리트의 경우 차원마법진에 관해서는 신의 경지에 다다라 있는 드래곤이다. 다른 드래곤들이 생각하기도 힘든 잡다한 것들을 만드는 것쯤은 문제도 아니다. 아공간 집 소환 마법수정구의 경우도 차원게이트를 여는 마법진의 연구 성과에서 얻어낸 것들이었다.
이 밖에도 필요한 물품을 압축해서 아공간에 만들어 놓은 것들이 꽤 되었다. 지그프리트는 만들기만 했을 뿐 직접 사용해본 적이 없어서 이번 기회를 빌미로 무진에게 사용해 보도록 했다.
“별 걸 다 만드는군.”
생각지도 않은 마법물품에 무진은 만족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