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륙지존기 118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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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3,071회 작성일소설 읽기 : 대륙지존기 118화
제4장 동행 (1)
흑!
또르르륵!
눈물이 흘러내린다.
제니아는 난생처음으로 눈물을 흘렸다. 지그프리트에게 진 것은 둘째치고, 별안간 자신의 주인 된 인간에게 개처럼 쳐 맞았다. 인간에게 굽실거려야 한다는 것이 싫었던 그녀였다.
하지만 반항을 하려고 해도 무진을 보면 그런 생각이 들지 않는다. 무조건 굴복해야 한다는 진리만이 자리했다. 왜 그런 마음이 드는지 이해를 하기 힘들었다.
그리고 얼마 후에 대련이 시작되었다. 그녀는 무엇을 해야 할지 잘 몰랐다. 인간이 드래곤에게 도전하는 것도 이상하지만 1 대 4의 대련이었다. 드래곤 넷을 인간 혼자서 맞상대하다니 그게 상식적인 일인가!
헛웃음만 나올 지경이다. 그러나 곧 그것이 잘못된 생각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일방적으로 구타당하는 드래곤.
그 안에 제니아도 포함되었다. 무진은 여자라고 해서 사정 봐주지 않았다. 공평하다 못해 반항이 더 심한 제니아를 죽일 듯이 박살냈다. 엄마한테도 맞지 않고 곱게 자랐던 그녀는 난생처음으로 무자비한 구타세례를 받았다.
자존심이 강한 그녀조차도 무진의 가혹한 주먹 앞에서는 무릎을 꿇었다. 그녀가 보기에 무진은 인간이 아니라 악마와 같았다. 악마도 무진에 비하면 애송이였다.
일방적으로 맞은 날 제니아는 서럽게 울었다. 태어나서 그날처럼 서글프게 운 날은 처음이었다.
세상이 떠나가라 울고 나자 오기가 생겼다. 이대로 무진에게 당하고만은 살 수 없다고 다짐했다. 그때 지그프리트가 다가와서 그녀의 등을 두드리며 격려를 해주었다.
“힘을 합하면 고비를 넘길 수 있을 거다.”
“정말!”
“그럼.”
제니아는 그날따라 찌질하게 보아왔던 지그프리트가 다르게 보였다. 자신에 비견되는 무력과 바이드론, 젠카르트를 통솔하는 카리스마는 대단했었다. 비호감이었던 지그프리트에게 호감이 생겼다.
그에 반해 지그프리트는 순수하게 제니아를 위로하려고 했던 말은 아니었다. 제니아가 위축되어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하면 무진의 가혹행위를 지그프리트가 감당해야 한다.
그런 일은 사전에 방비할 필요가 있었다. 행복은 혼자서만, 고통은 분배라는 마도시대의 성인 드래곤이 한 말이 있지 않은가!
그리고 6개월이 지났다.
그동안 제니아는 최선을 다했다. 무진을 이기기 위해서 지그프리트, 젠카르트, 바이드론과 최강의 합격진을 만들었다. 이 정도라면 고룡급도 상대할 수 있을 것이라 자신했었다.
그러나 무진은 평범한 인간이 아니었다. 합격진의 약점을 순식간에 파악하는 것도 모자라서 마력을 와해시켜버렸다. 그리고 깨닫게 되었다. 아무리 발버둥쳐도 무진을 이길 수 없다는 것을.
빠져나올 수 없는 지옥의 구렁텅이에 빠지고 말았다는 생각에 제니아는 두 번째로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처음처럼 펑펑 울지는 않았지만 서글픈 마음은 전보다 더했다. 항상 오만했던 자신이 쓸모없다는 자괴감과 빠져나갈 수 없다는 절망감이 교차하고 있었다.
풀이 죽어 있는 제니아를 본 지그프리트가 다가왔다. 사실 지그프리트는 제니아를 찾고 있었다. 어딘가에서 울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후배들을 다스리는 것도 고참의 몫이다.
‘뭐야, 그 정도에 또 기가 죽었나.’
지그프리트는 제니아가 생각보다 예민한 성격을 지녔다고 보았다.
‘하긴 이전의 행동은 지금의 주군을 보면 애교지.’
지그프리트로서는 이대로 제니아를 방치할 수만은 없었다. 무진과의 대련에서 큰 비중을 담담하게 된 제니아였다. 그녀가 힘을 잃으면 전체적인 균형이 무너지게 된다.
“괜찮아?”
“아니.”
“그렇게 힘들어?”
“그래.”
“시간이 좀 더 지나면 괜찮아 질 거야.”
“정말!”
“그럼.”
제니아의 옆에 앉은 지그프리트는 평소에 하지 않는 닭살스러운 멘트를 서슴없이 했다. 자신이 생각해도 오금이 저려오는 단어들의 조합이었다. 다시는 그런 말을 하고 싶지 않았지만 하지 않을 수가 없는 상황이다.
스윽!
제니아가 지그프리트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었다. 지그프리트는 그 순간 속으로 움찔거렸다.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게 행동했지만 상당히 놀라고 있었다. 예상치도 못한 돌발적인 제니아의 기습이었다.
‘이거 뭔가 이상하게 돌아가네.’
지그프리트가 원하는 상황이 아니었다. 솔직히 지그프리트는 제니아에게 마음이 눈곱만치도 없다.
생각을 해봐라! 그동안 자신을 무던히도 괴롭혔던 마녀를 이제 와서 사랑한다는 것이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는가! 제니아의 머리통을 밀치고 ‘어따 대고 들이대! 내가 그렇게 쉬운 남자인 줄 알아!’라고 외쳐야 정상이었다.
그런데 웃기는 것은 차마 그녀를 내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렇게 싫지만은 않은 느낌이다.
“고마워.”
“아…냐! 뭐 동료로서 그 정도는 당연하지.”
제니아가 좀 더 가까이 다가오자 지그프리트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제니아의 숨결이 목을 타고 얼굴에 닿을 때마다 지그프리트는 현기증이 났다. 그녀의 호흡에서 달콤한 향기가 흐르는 것 같았다.
“좀 더 열심히 하면 인정받을 수 있을 테니 평소에 너로 돌아와.”
“그럴까.”
“물론이지.”
지그프리트는 좀 전과 달리 진심으로 제니아를 위로했다. 제니아도 그런 마음을 느꼈는지 자신도 모르게 좀더 지그프리트의 얼굴에 다가갔다.
지그프리트는 제니아의 숨결이 점점 다가오자 참기 힘들었다. 제니아의 눈동자와 입술에서 시선을 뗄 수 없었던 것이다. 지그프리트는 갑자기 용기가 샘솟았다.
일촉즉발의 순간 지그프리트는 제니아의 입에 입을 맞추었다. 예전이라면 감히 생각도 할 수 없는 무지막지한 행동이었다.
전신을 흐물거리게 만드는 짜릿함이 감돌았다. 그 한순간의 황홀감은 잊지 못할 흔적을 마음속에 남기게 해주었다.
지그프리트와 제니아는 정신을 차리기 힘들었다. 이제 막 성룡이 된 드래곤도 아닌데, 처음으로 느끼는 열풍이었다. 그 느낌이 너무나 좋아서 깨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응?’
지그프리트와 제니아가 고개를 들어 누군가를 보았다. 인기척이 느껴서 바라본 장소에 눈에 익숙한 존재가 버젓이 서 있었다.
그는 무척이나 흥미롭다는 듯이 지그프리트와 제니아를 응시했다. 관찰자의 입장에서 피 실험체의 실험결과를 바라보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지그프리트와 제니아가 놀라서 동시에 소리쳤다.
“주…군!”
“주군이 여긴 왜?”
무진의 뒤로 바이드론과 젠카르트가 서 있었다. 그들도 흥미롭다는 듯이 지그프리트와 제니아를 지켜봤다.
이때까지 서로를 못마땅하게 여겼던 것들이 딱 달라붙어 있다는 것이 몹시 생경했다. 흥미로운 관찰대상을 바라보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생각 같아서는 ‘얼레리! 꼴레리!’라는 단어를 외치며, 방방 뛰고 싶다는 충동을 느꼈다.
“둘이 사귀는 사이였나.”
“그…런 것이 아닙니다!”
“아무런 사이도 아닌데 서로 부둥켜 안고 입을 맞추었단 말이지.”
무진은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물었다. 그러자 지그프리트와 제니아는 안절부절못하고 서로를 바라볼 뿐이었다. 이 상황에서 아니라고 말하기에는 정황증거가 너무나 명백했다.
“그게…저……!”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는 제니아와 지그프리트였다. 오늘 일을 트집 잡아 무진이 무슨 짓을 할지 몰랐기 때문이다.
이유가 어찌 되었던 무진이 만들어온 체계에 들어오게 된 지그프리트와 제니아다. 같은 틀에 속한 이들끼리 레어연애를 하게 되면 체계가 망가질 수도 있는 것이다.
“좋군.”
“예?”
“서로 좋아할 수도 있지.”
“정말입니까!”
“그래.”
무진을 제외한 모두가 놀랐다. 피도 눈물도 없는 악마가 어떻게 사랑을 당연하게 받아들인단 말인가!
바이드론과 젠카르트도 화들짝 놀라서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러나 이어지는 무진의 말에 모두는 허탈감을 느꼈다.
“서로를 느낀다는 것은 호흡을 일치시킬 수 있다는 뜻이 되겠지. 합격술에 가장 중요한 것은 혼과 호흡을 맞추는 것이니 말이야. 앞으로가 기대가 되는군.”
“그…렇습니다!”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다들 ‘그럼 그렇지’라는 표정들이었다. 무진은 지그프리트와 제니아가 서로를 좋아하든 말든 상관하지 않았다. 맡은 바 일에 지장을 주지 않는다면 무진이 관여할 일이 아니다.
무진은 합격술의 발전을 기대하는 눈빛을 보냈다. 지그프리트와 제니아는 할 말은 잃었다.
“그보다 드래곤은 현신한 채로 사랑을 나누나?”
“예?”
“그럼 산이 부서질지도 모르겠군.”
무진은 사실을 말했을 뿐이다. 드래곤의 거대한 신체를 감안하면 산이 부서져도 이상하지 않으니 말이다.
무진의 진지한 말투에 그들은 대꾸하지 못했다. 부끄러운 얘기를 전혀 감정이 실리지 않은 채로 말을 하니 이상하기까지 했다.
“사랑을 하더라도 적당히 하도록.”
무진은 할 말을 마치고 사라졌다. 남겨진 그들은 서로를 바라보며 허탈한 표정을 지었다.
“이게 저런 식으로 딱딱하게 할 말이냐?”
“잘 들어보면 농담 같은데, 전혀 농담 같지 들리지도 않았어!”
“진실이니까 더 문제지!”
“그보다 너희들 언제부터 그렇고 그런 사이였냐?”
“우린 전혀 몰랐다!”
바이드론과 젠카르트의 물음에 지그프리트와 제니아가 정신을 차렸다. 무진의 무미건조한 말투에 정신이 건조하게 말라버린 상태였다.
“우리 사이는 너희들이 상관할 바 없잖아!”
“그러게!”
지그프리트와 제니아가 노려보자 바이드론과 젠카르트는 입을 다물었다. 더 물고 늘어졌다가는 뒷일을 감당하기 어려웠다.
이것이 서열 1위, 2위의 힘이었다. 서열 3위와 4위는 알아서 눈치 채고, 기는 것이 신상에 이로웠다.
지그프리트와 제니아의 애정행각이 발각된 지 3개월이 흘렀다. 그 뒤로 지그프리트와 제니아는 공개연애커플이 되어 주위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게 되었다.
물론 무진은 예외대상이었다. 수하들의 사랑에는 일절 관심을 두지 않았다. 지금 당장은 사랑보다 무력을 증진시키는 것이 중요했다.
수하들의 실력이 몰라보게 성장하기는 했지만 현재로서는 만족할만한 수준이 아니었다.
“카이젠.”
-예.
“얼마나 회복됐지?”
-이제 모든 기능을 정상적으로 작동시킬 수 있습니다.
“다행이군.”
카이젠과 카무트는 지그프리트의 브레스를 맞고 상당부분이 망가져 회복 중에 있었다.
카이젠의 경우는 혼돈력을 기반으로 회복이 거의 다 되어 있는 상태고, 카무트는 조금 더 시간이 걸리고 있었다. 부서진 기계의 수리가 오래 걸리는 이유는 무진의 혼돈력이 완벽하기는커녕 많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마법을 배우느라 한동안 혼돈력에 매진하지 못한 이유도 있지만 수련을 하기 위해서는 카이젠과 카무트가 동시에 필요했다. 완전체로 합체를 한 후에 수련을 해야 한다.
물론 합체를 한 후 수련을 할 수 있을지도 확인이 되지 않은 상태다. 이론적인 계산은 완벽하지만 실제적인 운용이 가능할지는 미지수다.
사실상 혼돈력을 수련하기 위해서는 카이젠과 카무트뿐만 아니라 결계까지도 필요하다. 그 모든 것을 충족시켜가며 수련하는 것이 무척이나 까다로웠다.
“수련하기 힘들군.”
-방법이 없지는 않습니다.
“방법이 있단 말인가.”
-혼돈력을 기반으로 한 신기는 저희를 제외하고 3개가 더 있습니다. 그들을 다 모으신다면 혼돈력을 수련하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어디 있는지 아나?”
-신기가 존재한다는 것을 알 뿐, 어디에 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그럼 소용없는 것 아닌가.”
무진은 실제적으로 사용할 수 없는 힘을 찾아 대륙 전체를 돌아다닐 생각은 없었다. 혼돈력이 탐나는 능력이기는 하나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는 것을 찾기는 사막에서 바늘을 찾는 격이었다.
-신기는 혼돈력에 반응합니다.
“내가 움직이면 신기가 반응할 것이라는 뜻인가.”
-그렇습니다.
무진의 눈가에 의미를 알 수 없는 기운이 번들거렸다. 이제까지 한마디도 없던 카이젠이 신기를 모으는 일을 거론한 것이 마음에 걸렸다. 무언가 다른 뜻이 있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무진은 카이젠의 정확한 의도는 모르지만 모른 척 따라주기로 했다.
“그럼 여행을 한번 해보지.”
어차피 이제는 대륙을 한번 돌아볼 계획이었다. 지금까지 지그프리트의 레어에서 시간을 보낸 것은 뮤켄대륙에 대한 지식을 쌓기 위한 일환이었다.
가만히 앉아서 얻을 수 있는 지식은 대부분 습득했으니 뮤켄대륙을 실제적으로 살펴볼 때가 다가왔다. 무진에게 시간은 그리 의미가 크지 않다. 긴 시간이 걸리더라도 상관하지 않을 생각이다.
대륙을 정복하기까지의 과정에 무진은 희열을 느꼈었다. 그러나 20년의 지배기간은 무진에게 권태로움을 주었다. 호적수가 없다는 것은 투신지체를 타고난 무진에게는 무미건조한 세상이었다.
반면에 뮤켄대륙은 무진이 지배했던 세상보다 뛰어난 자들이 많다. 적이 뛰어날수록 무진은 전율을 느꼈다. 그들을 하나 둘씩 굴복시키고, 뮤켄대륙을 집어삼키고 싶다는 욕망이 꿈틀거렸다.
무진은 타고난 본성을 억제하려고 하지 않았다. 하고 싶다면 무슨 짓을 해서도 이루고 마는 패황의 기질을 가지고 있었다.
‘얼마나 대단한 존재들인지 우선은 견식을 해 봐야겠지.’
마음을 정한 무진은 드래곤들을 불러 모았다.
무진의 부름에 지그프리트, 제니아, 바이드론, 젠카르트는 하던 일을 멈추고 곧장 달려왔다.
수하들을 불러들인 무진은 한동안 입을 열지 않았다. 묵묵히 그들을 바라보며 주시할 뿐이었다.
무진의 시야에 들어온 그들은 긴장한 모습이 역력했다. 속으로 떠들 수도 없다. 마음까지 꿰뚫어 보는 무진의 눈빛이었다. 잘못 걸리면 그날 하루 지옥이 기다리고 있었다.
“지그프리트.”
“예! 주군.”
“차원게이트를 어느 정도나 완성했지?”
“마법진의 수식과 표식을 좀 더 정밀하게 가다듬기는 했지만 아직은 많이 부족합니다.”
“가능성은?”
“거의 없습니다.”
“올리도록.”
“알겠습니다.”
무진은 가타부타한 말을 이어가지 않았다. 필요한 말을 할 뿐이다. 제니아, 바이드론, 젠카르트에게도 각각 필요한 것들을 전달했다.
마지막으로 무진은 그들에게 하나의 합격술을 가르쳤다. 그동안 합결술을 가르치지 않은 것은 스스로 궁리하게 만들기 위해서였다.
무진은 밀영대의 멸살진(滅殺陣)을 마법사용에 적합하도록 바꾸었다. 무력을 기반으로 한 멸살진은 소수로 대규모의 적을 상대할 때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이었다.
반면에 마법은 대단위 전투에 효율적이었다. 서로 장점이 완전히 다른 것을 하나로 융합한 멸살진을 만들기 위해서 무진은 제법 고심을 해야 했었다.
더군다나 앞으로 상대해야 할 자들은 홀로 상대하기 힘들지도 모른다. 그들을 상대하기 위해서는 합결술의 보완이 시급했다. 무진은 멸살진을 통해 마법의 전투력을 한곳에 집중할 수 있도록 보완하고, 밀집과 분산의 속도를 높였다.
“빠른 시일 내에 멸살진에 익숙해지는 게 좋을 거야.”
“최선을 다해 결과로 보여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