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륙지존기 104화
무료소설 대륙지존기: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3,286회 작성일소설 읽기 : 대륙지존기 104화
제1장 지그프리트 (4)
“묻는 말에 대답해라.”
한 번만 더 망설이면 죽여 버리겠다는 협박보다 더 무서웠다. 지그프리트는 지체하지 않고 대답했다. 드래곤이라서 그런지 세세하게 알고 있는 지식이 많았다.
무진은 말없이 지그프리트의 설명을 듣기만 했다. 지금 당장은 이 세상에서 대해서 아는 것이 없는 상태다. 필요한 질문은 대답이 끝난 후 하면 되었다.
“뮤켄대륙이라.”
지그프리트의 눈에서 거짓이 있는지 읽어보았지만 아니었다. 무진이 느낀 대로 이 세상은 전혀 다른 세상이었다. 지금까지 알고 있던 세상과는 다른 차원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지그프리트는 뮤켄대륙의 역사를 차근차근 설명해 나갔다. 주신에 의해서 탄생한 뮤켄대륙의 역사적 진실과 그에 대한 연대기를 조목조목 서술했다. 역사적으로 있었던 큰 사건을 중심으로 서술해 나갔다.
“신이 존재한단 말인가.”
신의 존재.
중원대륙에서도 신을 믿기는 하지만 이처럼 사실적으로 묘사하지는 않는다. 신의 능력이 직접적으로 보였다면 사실일 것이다.
‘한 번쯤 만나보고 싶군.’
신의 절대적인 힘과 겨루어 보고 싶은 무인으로서의 승부욕이 솟구쳤다. 그러나 아직은 신의 능력에 범접하지 못한다는 것을 느꼈다. 신의 능력이 정말 지그프리트의 말대로라면 100번을 싸워도 1번도 이길 수 없을 것이다. 무진은 승산이 없는 불가능한 도전이라는 것에 피가 끊어 올랐다.
중요한 사건을 중심으로 서술해 가던 지그프리트는 순간적으로 의문이 들었다. 설명하고 있는 내용이 비록 모두가 아는 내용은 아니더라도 뮤켄대륙에 살고 있는 자들이라면 한 번쯤 들어봤을 내용이기도 했다. 그런데도 무진은 전혀 모르는 내용을 듣고 있는 것처럼 반응하고 있었다.
‘뭐야? 다른 세상 사람도 아니고! 응? 다른 세상!’
완전히 다른 세상에서 온 사람과 같다. 사용하는 언어도 지그프리트가 이제까지 알고 있는 대륙의 언어와는 전혀 다른 체계였다. 뮤켄대륙에 대해서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 존재라면, 답은 나왔다.
‘설마 성공한 건가?’
무진이 차원게이트에서 나왔다는 가설이 증명된다. 오랜 세월의 연구가 성공했을 가능성이 있었다. 차원의 문을 인위적으로 연 최초의 드래곤이 된 일대의 혁명적인 일이었다.
그렇지만 지그프리트는 성공의 축배를 들 수 없었다. 마법진의 성공으로 인해 그는 죽도록 맞았다. 더군다나 무진이 어떤 존재인지 이제는 갈피를 잡지 못할 지경이다. 인간인 것 같기는 하지만 인간 같지 않은 사악함과 무지막지한 강함을 가지고 있었다.
무진으로 인해 뮤켄대륙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지그프리트는 예상할 수 없었다.
‘설마 이놈에 의해서 대륙이 변하지는 않겠지.’
뮤켄대륙에는 지그프리트보다 강한 존재들이 많다. 그들 전부를 이긴다는 것은 불가능이었다. 한 인간으로 인해 세상이 변하는 일은 없다고 생각했다.
지그프리트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세상이 어찌 되었던 우선은 마법의 성공여부를 알고 싶은 충동이 들었다. 이미 벌어진 일을 되돌릴 수 없다면 확인이라도 해야 속이 시원할 것 같았다.
“저 혹시 다른 차원에서 오신 겁니까?”
“그렇다.”
“정말입니까?”
“네 말이 사실이라면 거짓이 아니겠지.”
무진은 거짓을 말할 이유가 없다. 지그프리트의 설명을 토대로 상황을 해석하면 무진은 차원을 이동한 것이 맞았다. 차원이동이 아니고서는 작금의 상황을 설명하기 힘들었다.
“드디어 연구가 성공했다!”
혁명적인 연구성과를 지그프리트는 자화자찬했다. 불안하기는 하지만 성공한 것은 사실이었다. 이후의 일은 다시 고민해 보면 될 것이다.
‘음!’
무진은 지그프리트가 무언가를 연구했다는 것을 파악했다. 아무래도 그것은 차원이동에 관한 연구였을 것이다.
무진은 무(無)의 공간에 갇혀 있으면서 빠져나갈 방법을 궁리했다. 무 차원의 공간에서 힘을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을 구상한 것이다.
진법처럼 기의 흐름을 파악하는 것 가지고서는 불가능했다. 무공간에서 유(有)의 능력을 창조해 내야 했다. 그것은 기나긴 사투와 같았다. 오랜 시간이 흘러도 완전한 답을 내지 못했다.
다만 무공간에서 공간의 일정 부분을 흔들 수 있을 정도의 능력을 창조해 낸 것이 전부였다. 그것만 가지고서는 무공간의 영역을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결과를 도출하기 어려운 답답한 상황에서 무진은 일그러지는 공간의 형태를 발견했다. 힘을 방출한 것이 아니라 외부의 공간에서 발휘된 힘에 의해서 일정 부분의 공간이 뒤틀리는 것을 본 것이다.
무진은 그 순간이 마지막 기회가 될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무공간에서 창안한 뒤틀린 힘의 역량을 발휘했다. 무진의 힘과 외부의 힘이 상충하여 공간이 열렸다.
한동안 무진은 열려진 공간을 지켜보았다. 공간은 한정된 시간 동안 유지되었다. 오랜 시간 고민할 만큼 기다려주지 않았다. 그래서 무진은 최선을 다해 공간을 빠져나왔다.
결과적으로 지그프리트는 무진이 무의 공간에서 빠져나올 수 있게 해준 은인이 되었다.
‘우연인가.’
우연일 수도 아닐 수도 있다. 포기하지 않은 무진의 노력과 지그프리트의 집념이 결합한 산물이었다. 뜻하지 않은 우연이 겹쳐 필연으로 결과를 도출해낸 것이다.
‘다시 넘어갈 수도 있을까.’
무진은 무차원의 공간에서 얻은 역량을 다시 한 번 사용해 보았다. 혼돈의 무학이라고 이름 지은 무력은 이 세상의 기운과 반응하지 않았다.
내부에 쌓인 혼돈의 힘이 아직은 미약했다. 또한 그 힘을 다시 쌓을 방법이 지금으로는 딱히 없었다. 방법이 있다면 지그프리트의 능력과 무진의 역량을 동시에 발전시켜야 한다.
‘우선은 이놈을 내 것으로 만들어야겠군.’
차원이동을 할 수 없다고 해도 지그프리트는 무진에게 유용한 존재였다. 세상에 대한 지식을 이 정도로 축적하고 있다는 것만 해도 대단한 능력이었다. 무력뿐만 아니라 지닌 바 지식도 무진에게는 반드시 필요한 것들이었다.
“제법 능력이 출중하군.”
“뭐, 그 정도야 당연한 것입니다!”
무진의 칭찬에 지그프리트는 당연하다는 반응이었다. 드래곤이 되어서 그 정도의 지식도 갖추지 못하고 있다면 일족에게 비웃음을 당할 것이다.
물론 지식적인 측면에서만 보면 지그프리트는 일족 중에서도 제법 뛰어난 축에 속한다. 마법과 마력이 지식을 따라가지 못해서 당하고 살고 있을 뿐이었다.
“한 가지 묻고 싶군.”
“무엇을 말입니까?”
“이 세상의 인간은 너와 같은가.”
“그게 무슨?”
“너의 실체는 인간이 아닌 것 같다.”
“아!”
지그프리트의 실체를 무진은 꿰뚫어 보고 있었다. 인간의 외형을 갖추고는 있지만 속은 달랐다. 내부에 숨 쉬고 있는 모습은 광포함과 오랜 세월의 연륜, 나태함이 갖추어져 있었다.
드래곤이라는 존재를 모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단숨에 자신이 실체를 파악한 무진의 능력에 지그프리트는 순수하게 감탄했다.
“저는 인간이 아닙니다. 이 모습은 인간의 모습으로 변장한 것입니다. 저의 실체는 드래곤입니다.”
“드래곤?”
지그프리트는 드래곤의 위대함을 차근차근 설명했다. 대부분은 객관적으로 설명을 했지만 위대한 존재라는 자부심과 자존심에 관해서는 지극히 주관적으로 서술했다. 대륙십강이라는 인간 같지 않은 괴물들을 제외하면 드래곤이 최강의 종족이라는 것은 사실이니 말이다.
‘용인가.’
드래곤의 외형만 봐서는 용일 수 있었다.
신과 다수의 이종족이 살아 숨 쉬는 기이한 대륙이다. 용이 존재한다고 해서 이상할 것도 없었다. 무진의 호승심을 자극하는 내용이었다. 신과, 드래곤, 그에 필적하는 존재들이 있다. 대륙을 일통하고 따분함을 느끼고 있었던 무진에게 색다른 즐거움을 선사해 주기에 충분했다.
‘좋군.’
무진의 입술이 작은 호선을 그렸다. 그 뜻 모를 웃음을 본 지그프리트는 소름이 돋았다.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다만 불길함이 지그프리트의 뇌리를 흔들었다.
“많은 것을 알고 있군.”
“감사합니다.”
“너의 능력이 내게 필요하다.”
“예?”
“내 뜻에 따르면 살려주겠다.”
“저보고 수하가 되라는 것은 아니겠지요!”
“맞다.”
“저는 명색이 드래곤입니다!”
“그래서.”
표정 없는 무진이다. 감정의 기복이 전해지지 않은 무조건적인 전달이었다.
지그프리트는 인간의 수하가 되고 싶은 마음이 눈곱만치도 없다. 아무리 그래도 지그프리트는 드래곤이었다. 이제 막 성룡이 된 드래곤도 아니고 웜급의 드래곤이다. 다른 것도 아니고 인간의 꼬봉이 되라니, 그게 말이 되는가! 무척이나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다.
대륙 역사상 인간의 꼬봉이 된 드래곤은 없었다. 물론 간혹 마왕을 물리치기 위해서 용사의 스폰서 역할을 한 적은 있어도 꼬뽕은 절대 아니었다.
“싫…습니다!”
지그프리트는 드래곤의 자존심을 지키고 싶었다.
“그럼 죽어라.”
무진은 가차 없었다.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손을 들었다. 무진의 손을 타고 허공으로 무형의 기운이 응축되어 날카로운 검을 형성되었다. 무형검의 날카로움은 보는 것만으로도 목이 잘려나가는 환상을 선사해 주었다.
지그프리트는 당장에라도 목이 뎅강 잘릴 것 같은 중압감을 받았다. 빈말이 아니라 여기서 다시 한 번 거절하면 목 없는 드래곤이 되어 버릴 것이다. 나중에 부활하면 듀라한이 친구 하자고 할지도 모른다.
‘나는 드래곤이야! 자존심으로 뭉쳐진 드래곤이 여기서 굽힐 수는 없다! 그래 용감하게 거절하고 드래곤답게 자연의 품으로 돌아가는 거다!’
무형검이 지그프리트의 목 바로 앞에까지 접근했다. 시간이 많지 않았다. 마음을 정한 지그프리트는 대답했다.
“하겠습니다! 시키는 일은 뭐든지 하겠습니다! 항상 친절 봉사를 으뜸으로 생각하며 주군을 보필하겠습니다!”
“진정인가.”
“물론입니다. 제가 한 입으로 두말하는 드래곤은 절대 아닙니다!”
지그프리트의 자존심은 모래처럼 허물어지는 얕은 성벽에 불과했다. 삶에 대한 애착이 자존심을 무너뜨리고 말았다. 마음으로는 굳게 결심했지만 막상 죽는다고 생각하자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자존심이고 뭐고 일단은 살고 봐야 했다.
‘우선은 살고 보자. 마력을 회복한 후 공간 이동하는 거야! 그럼 지가 어떻게 날 쫓아오겠어!’
살수만 있다면 한 입으로 두말은 물론 백 말 이상도 할 수 있었다. 오우거 똥에 굴러도 중간계가 신계보다 낫다는 말은 괜한 고대어가 아니었다. 막상 경험을 해보면 당연한 반응일 것이라고 지그프리트는 스스로 위안을 했다.
“네 말을 믿지.”
“감사합니다!”
무진의 눈이 지그프리트의 눈을 응시했다. 청백색의 기운이 지그프리트의 눈동자를 투영하여 뇌리를 관통했다. 지그프리트는 뇌전이 머리 속을 꿰뚫어 버리는 것 같은 충격을 받았다.
저절로 헛바람이 터져 나왔다.
“헛!”
-통천지배안(通天地排眼)-영혼각인(靈魂刻印)
천검신을 흡수한 무진은 천극영안을 통해 새로운 영역을 개척했다. 통천안의 능력과 천극영안의 능력을 결합, 상대의 영혼을 금제하여 복종시킬 수 있는 방법이다. 영혼을 금제하는 대법이라 일단 걸리면 빠져나갈 수 있는 방법은 존재하지 않는다.
아직 완벽한 경지에 올라서지는 않아 아무나 통제할 수는 없지만 지그프리트의 경우는 기력이 다해 있었고, 방심한 상태라 바로 걸려들었다.
한동안 지그프리트는 무진의 시선을 피하지 못했다. 봐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거부할 수 없는 상태였다.
마력이라도 온전했다면 이처럼 허무하게 당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드래곤의 정신력은 인간이 상상하는 그 이상의 완전한 존재다. 무진이 마법을 사용하지 못한다는 것에 방심한 결과였다.
백청색의 신비한 영안이 점점 사라져 원래의 눈동자로 변해갔다. 무진은 통천지배안을 거두어들이고 지그프리트의 상태를 주시했다. 완전하지 않은 힘을 처음 발휘하는 것이라 완벽하게 통제가 되는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무진은 시험삼아 명령을 내려보았다.
“머리를 땅에 박는다.”
지그프리트는 얼토당토않은 표정을 지었지만 몸은 이미 반응하고 있었다. 움직일 기력도 없는 지그프리트가 머리를 땅에 박는 것이 아닌가! 생각만 해도 우스운 짓을 몸소 하고 있는 자신이 기가 막혔다. 자신이 왜 이런 짓을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 상태로 전진한다.”
질! 질! 질!
황당함 그 자체다. 아무리 그래도 이건 정말 아닌 것 아닌가! 하지만 지그프리트는 땅바닥에 머리를 박고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해서는 안 되는 쪽팔린 짓이라는 것을 알지만 이율배반적으로 해야 한다는 당위성이 지그프리트를 지배했다.
-반드시 해야 한다. 이것을 해야만 내가 살아가는 존재를 증명할 수 있다!
‘내가 왜?’
지그프리트는 미칠 것 같았다.
무진은 지그프리트가 생각과 생각 사이에서 고민하고 있는 것을 파악했다. 통천지배안의 효능이 아직은 완벽하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완벽했다면 명령을 하는 즉시 망설이지 않고 행동했을 것이다. 무진은 시간을 들이면서 좀 더 가다듬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일어서.”
벌떡!
지그프리트가 바닥에서 일어났다. 그는 죽을 맛이었다. 어찌된 일인지 몰라도 무진이 자신에게 알 수 없는 금제를 가했다는 것을 알았다. 마음속으로 불만을 표출하는 것만으로도 충격이 오고 있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무진에 대한 존경심과 복종심이 견고해지고 있었다.
‘이런 젠장!’
금제를 풀 수 있는 방법이 없는 이상 무진에게서 벗어나는 것은 불가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