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륙지존기 10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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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3,104회 작성일소설 읽기 : 대륙지존기 103화
제1장 지그프리트 (3)
꾸욱!
무진이 주먹을 가볍게 말아 쥐었다.
“원을 구성하는 무력은 구심점이 있기 마련이지.”
황궁의 전각에 버금가는 헬토네이도를 중심에서 바라본 무진이 주먹을 뻗었다. 가볍게 뻗은 주먹에서 푸른색의 섬광이 번쩍였다 사라졌다. 섬광은 헬토네이도의 중심을 뚫고 반대편으로 날아갔다.
그 순간 광포하게 회전하던 헬토네이도가 거짓말처럼 증발했다. 구심점을 잃은 헬토네이도는 바람을 형성할 능력이 소실되어 버렸다.
“뭐…야?”
지그프리트로서는 생각지도 않은 일이었다. 헬토네이도를 저런 식으로 와해시켜 버리는 존재가 있을 줄은 몰랐다. 너무나 쉽게 소멸시켜버려서 누가 보면 헬토네이도가 아무나 사용하는 저서클마법인 줄 착각할 수도 있었다.
‘설마 아니겠지!’
대륙십강 중에 2명은 의문의 존재들이다. 정체가 밝혀지지 않은 대륙십강의 일인이 눈앞에 있는 놈일 가능성이 있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곧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놈들이 할 일 없는 놈도 아니고, 자신에게 와서 괜히 싸움을 걸 이유는 없지 않은가! 시간이 남아돌지 않는 이상 그런 쓸데없는 짓을 할 놈들은 절대 아니었다. 지그프리트는 무진을 인간 중에서 조금 강한 놈으로 인정을 해주었다.
씨익!
무진의 입가에 걸린 미소를 본 지그프리트는 화가 치솟았다. 그 미소가 마치 자신을 놀리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웃어! 이런 미친놈이! 감히 내가 누군 줄 알고!”
지그프리트는 여력을 남기지 않고 모든 마력을 방출했다. 이 이상 인간에게 무시당하는 것은 자존심이 상했다. 지그프리트는 마법의 조종답게 고서클마법을 있는 대로 퍼부었다. 8서클에서 9서클 공격마법의 향연이었다. 마법은 현란함과 광포한 위력을 동시에 갖추고 있었다.
퍼퍼퍼퍼퍼펑!
쿠꽈꽈꽝!
다크포레스트를 진동시키는 광포한 힘의 분출이었다. 200미터 내의 모든 생명체가 완전히 소멸되어 버릴 수 있었다. 벼락처럼 뿜어져 나간 기가라이데인(뇌격)의 흔적으로 인해 지면이 녹아 버렸다. 지형이 변형되고, 숲은 망가져 갔다. 드래곤의 분노가 스치고 지나간 자리는 흔적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
“허억! 허억!”
모든 마력을 쏟아 부은 지그프리트는 마나의 소모가 꽤 컸는지 호흡이 거칠어졌다. 드래곤하트라는 방대한 마나저장소가 있기는 해도 9서클마법을 무한정으로 쓸 수는 없다.
숲의 일부분을 완전히 분쇄시켜버린 지그프리트는 만족스러워하며 승리의 포만감을 챙겼다. 아무리 인간이 강해도 드래곤의 마력을 정면으로 맞고 살아난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끝났다! 이놈! 감히 내 앞에서 잘난 체 한 대가다!”
어느 곳에나 지능이 있는 생명체가 있다면 사회가 형성된다. 드래곤이 막강한 존재이기는 하나 같은 드래곤들 사이에도 서열이 있기 마련이다.
드래곤서열 100위 권내에 들지 못했던 지그프리트는 굉장한 자격지심을 가지고 있었다. 무시당했다는 것을 느낀 순간 이성적으로 참을 수가 없었다.
“별것 아닌 놈에게 너무 과한 힘을 선사해 줬어. 죽어서도 영광으로 알고 뒈져라.”
일을 끝내고 다시 돌아가려는 순간이었다. 지그프리트의 눈동자에 멀쩡한 형태를 지닌 무진이 반사되었다. 동공으로 전해진 진실이 거짓말처럼 느껴졌다.
“어…떻…게!”
퍼억!
“크윽!”
주먹이 작렬했다. 배때기에 한 방 맞은 순간 지그프리트의 허리가 새우등처럼 구부러지면서 1년 전에 먹은 오우거가 소화되지 않았는지 다시 입 밖으로 튀어나오려고 했다.
퍼억!
이어지는 무자비한 격타. 주먹을 한 방 맞은 배때기에 다시 한 번 작렬했다.
맞은 데 또 맞은 지그프리트는 숨이 덜컥 멎어왔다. 배를 중심으로 뼈가 으스러지는 느낌이다. 또한 코와 입으로 흡입되던 호흡이 몸의 중심으로 이어지지 못하고 멈추어 섰다.
마법을 사용해야 한다는 생각조차 허공으로 날아가기에 충분했다. 다시 추스르려고 할 때 또다시 주먹이 날아왔다.
터어어엉!
관자놀이에 가해지는 충격으로 인해 머릿속에 간직하고 있던 기억들이 소실되는 기분이었다. 기억이 점점 희미해지는 기억상실증에 걸릴 것만 같았다. 그리고 이어지는 충격, 이번에는 주댕이와 아구창이었다.
퍼퍽! 퍼퍽!
고개가 좌우로 돌아가고, 전신이 새우등처럼 휘어졌다. 더 맞으면 죽을 것 같다는 생각이 뇌리에 가득 찼다. 어떻게 해서든 빠져나가야 한다는 생각에 전력을 다해 날아올랐다.
꽈악!
수직으로 날아오르려던 지그프리트가 허공에서 멈추었다. 아래를 내려다보니 무진이 지그프리트의 오른 발목을 잡고 있었던 것이다.
발목을 잡은 무진은 힘껏 휘둘렀다. 그러자 지그프리트의 신형이 채찍의 우아한 곡선이 되어 바닥으로 내리 찍혀졌다.
쿠우우우웅!
“크아아앗!”
하필이면 내리찍은 바닥에 날카로운 짱돌이 치솟아 있었다. 이마빼기를 찍힌 지그프리트가 사정없이 바닥을 뒹굴었다. 그 아픔은 경험해 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것이었다. 난생처음 당해보는 지독한 고통에 정신을 차리기 힘들었다.
고통은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일어서지 못하는 상태로 무진의 인정사정없는 매질이 이어졌다. 사방에 널려진 흔한 나뭇가지에 불과했지만 무진의 손에 들리자 천고의 신병이 되었다.
퍼퍼퍼퍼퍼퍼퍼퍼퍽! 파파파파파파팟!
지그프리트는 형체를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로 뒈지기 맞아야 했다. 넝마가 되어 버린 옷처럼 지그프리트의 잘생긴 얼굴이 핏물로 흥건했다. 찢겨진 피부 사이로 보이는 허연 뼈가 징그러울 지경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진은 별다른 감흥을 느끼지 않았다. 죽지 않은 것만으로도 다행으로 여겨야 한다는 표정이었다.
웜급 용생(龍生)에 오늘처럼 맞은 적이 처음이었던 지그프리트는 결국 기절하고 말았다. 차라리 기절하는 것이 낫다고 판단한 것이다.
꼴까닥!
무진은 게거품을 물며 기절한 지그프리트를 내려다보았다. 뼈는 튼튼한 편이지만 의지박약이었다. 지닌 능력이 아까울 지경이다.
“아직 죽으면 곤란하지.”
애초부터 죽일 마음은 먹지 않았다. 이 세상에 대한 의문점을 풀 수 있는 수단을 죽여 버리면 아무런 이득을 챙길 수 없다.
말이 통하지 않는 이상 말이 통하도록 교육이 필요했다. 무턱대고 덤벼드는 놈으로 봐서 성질이 급하고, 자존심이 강한 놈일 가능성이 컸다. 이런 놈일수록 여지를 남겨주면 다스리기 힘들다.
툭!
무진은 놈의 혈을 쳐서 다시 깨웠다.
“크으으윽!”
지그프리트는 정신이 들자 고통이 느껴졌다. 전신이 안 아픈 데가 없을 지경이다. 힘겹게 정신을 차린 지그프리트는 무진을 올려다보았다. 무심히 내려다보고 있는 무진이 마왕처럼 느껴졌다. 감정의 빛이 보이지 않는 무진의 손에 들린 몽둥이가 다가오고 있었다.
‘또!’
“쿠웩!”
퍼퍼퍼퍼퍼퍽!
정신이 들기가 무섭게 또다시 이어지는 구타.
매 맞는 드래곤이 불쌍하게 보였다. 절규하는 드래곤을 보면서도 일말의 동정심도 보이지 않는 무진이 무섭기까지 했다. 일단 시작을 한 이상 끝을 보고 있었다. 이어지는 구타에 또다시 지그프리트는 기절하고 말았다.
툭!
기절하기가 무섭게 무진은 혼혈을 두들겨 다시 깨웠다. 그리고 이어지는 무식한 매타작.
지그프리트는 무진이 마왕이 아니라 마신처럼 느껴졌다. 이유도 묻지 않는다. 그리고 죽이지도 않았다. 차라리 죽고 싶은 마음마저 들었다. 대든다는 생각은 저 멀리 허공으로 날아가 버린 지 오래였다.
폴리모프를 해도 이길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아니 다시 덤비면 어떤 고통이 기다리고 있을지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았다.
‘그…것보다 언…제 끝나는 거야!’
퍼퍼퍼퍼퍼퍼퍽!
이런 무식한 인간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재앙이었다. 죽이지는 않고 지속적으로 매타작만 하고 있었다. 끝없이 이어지는 매타작은 적응이 되지 않았다. 어찌나 교묘하게 때리는지 충격이 쌓이면 쌓일수록 배가되고 있었다.
그 이후로도 10번이나 기절과 구타가 반복되었다. 무진은 완전히 기진맥진해 있는 지그프리트를 허공섭물로 들어올렸다. 이제부터 본격적인 대화를 할 차례였다.
사아악! 뎅강!
끝을 알 수 없는 고목이 그루터기만 남기고 잘라졌다. 의자로 사용하기 위해서 자른 것이다.
무진은 그루터기에 앉은 채로 지그프리트를 바닥에 던져 놓고 깨웠다. 기력이 모두 소진된 지그프리트는 반쯤 풀린 눈으로 무진을 바라보았다. 감히 제대로 바라보지도 못했다. 무진에게서 광포한 지배자의 위압감이 번져 나왔기 때문이다. 세상을 지배하지 않고서는 만족하지 못하는 정복자의 기세였다.
‘너는 누구냐?’
움찔!
지그프리트는 뇌리에서 맴돌고 있는 무진의 음성에 놀랐다. 말이 아니라 마음에서 전해지고 있었다.
무진은 뜻을 전하기 위해서 통천심어(通天心語)를 사용했다. 상대의 마음을 관하여 뜻을 읽고 자신의 뜻을 전할 수 있는 상승의 심어였다. 소림의 혜광심어와 비슷하지만 능력은 하늘과 땅 차이다.
통천심어를 사용하는 한 무진은 상대의 말에서 진실까지도 파악할 수 있는 능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
“지…그…프리트!”
뜻은 전해도 역시나 말은 알아들을 수 없다. 무진은 곤란함을 느꼈다. 이 세상에 대해 알기 위해서는 말을 배울 필요가 있었다.
‘너의 말을 알아들을 수 없다. 내게 말을 가르쳐라.’
지그프리트는 순간 당황했다. 무진이 대륙의 언어를 모를 줄은 몰랐던 것이다. 그렇다면 자신이 물었을 때 대답을 하지 않은 것도 이해가 되었다. 괜히 혼자 오해하고 덤비다가 뒈지게 맞은 것이었다.
‘이런 떠그럴!’
상대가 보통 인간이었다면 상관없겠지만 괴물을 넘어서는 악마 같은 놈이었다. 이런 놈에게 헛수작을 부렸으니 죽지 않은 것만 해도 불행 중 다행이라고 할 수 있었다.
지그프리트도 오해를 풀고 대화를 해야 했다. 아직 죽이지 않은 것을 보아 살아날 가능성이 있었다. 그래서 지그프리트는 무진에게 마법아이템을 공손하게 바쳤다. 몸을 움직일 힘도 거의 없는 상태지만 삶에 대한 애착은 무척이나 강했다.
무진은 받아든 반지를 유심히 살폈다.
‘손가락에 끼우라는 것인가.’
끄덕! 끄떡!
어느 차원에서나 통할 수 있는 바디랭귀지를 구사하여 무진에게 뜻을 전했다. 무진은 망설이지 않고 손가락에 반지를 끼웠다. 정교하게 조각된 반지의 정중앙에 박혀 있는 작은 보석이 빛을 발했다가 사라졌다.
“이제 말이 통하지 않습니까?”
지그프리트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혹시나 화를 내지 않을까 두려움이 뭍어 나왔다.
‘음!’
반지의 효능에 무진은 놀랐다. 보통 반지는 아닐 것이라 예상은 했지만 설마 언어소통을 가능하게 해주는 능력이 있을 줄은 몰랐다. 반지의 능력에 의해서 언어가 해석되고, 말하는 단어의 뜻이 뇌리로 새겨졌다.
“놀랍군.”
“그…렇습니까! 다행입니다!”
‘뭐야! 마법아이템도 모르나! 이런 촌놈에게 내가 당한 거야?’
지그프리트는 무진이 마법아이템을 모르자 어이가 없는 표정이었다. 상상하기도 힘들 정도로 강한 존재가 마법아이템을 모른다는 것이 이해가 되는가! 대륙에 살고 있는 존재라면 당연히 알고 있어야 했다.
“생각이 건방지군.”
“예?”
‘뭐야, 내 생각을 읽는 거야?’
“또다시 그런 건방진 생각을 할 시에는 고통을 다시 느끼게 해주지.”
“안…그러겠습니다!”
기겁한 지그프리트는 입과 생각을 정지시켰다. 좀 전에 겪은 고통을 다시 겪고 싶지는 않았다.
리드마인드라는 마법을 사용하면 상대의 마음을 읽어낼 수도 있다. 그러나 마법도 사용하지 않고 드래곤의 마음을 꿰뚫어 보는 존재가 있을 줄은 상상도 못했다. 괜한 생각을 했다가는 바로 골로 갈 수 있다는 것을 명심했다.
무진은 가장 기본적인 것부터 물어 보았다. 천기의 흐름을 읽는 순간 기이한 기운과 전혀 다른 새로운 흐름이 느껴졌다. 중원대륙과는 다른 이질적인 느낌이었다. 만상의 흐름이 바뀔 수는 있으나 전혀 새로울 수는 없다.
“이 세상에 대해 말해라.”
“예?”
갑작스런 뜬금없는 질문에 지그프리트는 대답하지 못했다. 한순간의 망설임에 의해서 지그프리트의 고개가 돌아갔다. 빛이 번쩍이자 지그프리트의 얼굴에서 피가 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