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륙지존기 86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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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975회 작성일소설 읽기 : 대륙지존기 86화
제2장 유인(誘因) (7)
슈우우웅!
바람마저 검속을 따라가지 못했다. 각성된 후의 천득구는 이전의 천득구와 비교 자체가 불가능했다. 절대고수조차 천득구의 상대가 되지 못할 정도의 성취였다. 그러나 상대는 무진이었다.
“장난치지 말라고 했을 텐데.”
투아앙!
무진의 손날이 천득구의 검강을 아래서 위로 올려쳤다.
1천 장에 달하는 거암(巨巖)에 부딪친 듯한 충격을 받은 천득구였다. 검이 궤적을 잃고 헛지랄을 했다.
서슬 퍼런 붉은 안광을 번뜩이던 천득구의 표정이 일순간 ‘뜨악!’이 되었다.
‘들켰다!’
몽환을 죽이기 전부터 천득구는 천살성을 제어하였다.
천살성의 공능이 온몸을 휘젓자 자신감이 충만해졌다. 그 어떤 놈도 이길 수 있다는 마음이 용솟음쳤다.
내친김에 그 위력을 사용해 보고 싶었다. 상대조차 되지 못했던 무진과 대결해 보고 싶다는 무모함이 천득구를 지배했다. 일검이라면 충격을 받거나 물러설 것이라 생각했었다.
하지만 웬걸!
일단 부딪친 후 천득구는 바로 후회했다. 천살성의 기운을 모조리 다 일검에 처넣었건만 충격은커녕 도리어 충격을 받고 휘청거렸다.
천득구는 급 비굴해졌다.
“주…군! 잘못했습니다!”
“그럼 벌을 받아야지.”
“허억!”
대경실색한 천득구는 회피하려고 했지만 피할 수가 없다. 무진의 권력에 실린 기운이 천살성과 천득구의 모든 것을 제압해 버린 것이다. 빠져나갈 수도 몸을 움직일 수도 없는 지경에 처했다.
‘괜히 덤볐어! 괜히 나댔어! 그냥 있는 건데! 괜히 매를 벌었어!’
앙탈 부려봤자 소용없다. 무진은 실수를 용서할 정도로 아량이 넓지 않았다.
퍼어억!
“꾸웨웨웩!”
돼지 멱따는 소리와 함께 천득구는 30장 가까이 날아가서 처박혔다. 유성처럼 날아가서 처참하게 박혔다.
이제까지 특급전사들에게 당한 상처보다 무진의 한 방이 더 강했다. 단 한 방이지만 죽지 않은 게 다행이었다. 천살성의 기운을 전부 동원하여 몸을 보호하지 않았다면 몸이 터져 버렸을 것이다.
나무에 박힌 못이 되어 발버둥치던 천득구가 간신히 몸을 뺐다. 힘이 하나도 남지 않았다. 몸이 아프다고 아우성을 쳤다. 일어설 기력도 없는 지경이다. 손가락 하나 까딱하기도 힘들었다.
그때 무진의 목소리가 들렸다.
“일어서.”
벌떡!
순간적으로 몸이 반응했다. 천득구는 자신도 모르게 벌떡 일어서 정 자세를 취했다. 온몸의 뼈가 부서진 것 같은데도 일어설 수 있다는 것에 본인도 놀랄 지경이다.
“반항인가.”
“천…부당 만부당하십니다! 그저 주화입마에…….”
“난 거짓을 좋아하지 않아.”
“죄송합니다! 한 번만 봐주십시오! 절대 다시는 개기지 않겠습니다!”
“훗!”
역시 재밌는 놈이다. 죽이기에는 아까운 인재이며 독특한 놈이기도 했다. 천살성이면서 자존심보다는 목숨을 소중히 여기는 놈이다.
물론 무진의 주관적인 생각이었다. 천득구는 똑똑한 머리와는 다르게 이해득실을 따지는 성격이 아니다. 무진만 아니라면 제 스스로 주체하지도 못할 정도의 살성을 지니고 있었다.
이유가 어찌되었건 무진은 지존천마공과 천살성의 능력을 확인해 볼 수 있어서 만족했다.
“제법이긴 했다.”
“감사합니다! 주군!”
천득구는 한숨을 내쉬었다.
‘명줄이 10년은 확 줄었겠다.’
괜한 만용은 부리지 않는 것만 못하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절실하게 깨닫는 천득구다. 또한 다시는 무진에게 이빨을 내밀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무슨 짓을 해도 소용없다는 것을 느낀 것이다.
“호북으로 간다.”
“예.”
천득구는 주인을 따르는 충직한 개처럼 무진의 뒤를 조심스럽게 따랐다.
* * *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것이 전쟁이다. 본격적인 전투를 치르지는 않았지만 이미 시작된 것이나 다름없다. 정보전, 탐색전 등 전쟁을 수행하기 전에는 무수히 많은 심리전이 펼쳐진다.
심리전에서 우위에 서기 위해서는 정보가 필수적이다. 상대의 전략과 전술, 군사력을 파악해야 올바른 판단을 내릴 수 있다. 소수의 단병접전에서 아무리 많은 승리를 한다고 해도 전체적인 전쟁의 향방을 결정짓는 대전(大戰)에서 지게 되면 결국 패배를 하게 된다. 대전의 향방은 전력과 정보에 달렸다. 그렇기에 정보전은 전투보다 중요하다.
단단한 성곽을 중심으로 수성전을 펼치려는 명 제국도 정보의 중요성을 알기에 수시로 초원일대에 정탐병을 파병했다. 모든 성을 완벽하게 지킨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그렇기에 적의 동선을 파악해서 유동적으로 변화하는 전략을 세워야만 확실한 방비가 가능했다.
명 제국의 정탐병은 10명을 1조로 하여 1000명이 파견되었다. 초원일대를 잘 아는 자들로만 구성이 되어 있었다.
초원을 모르는 자는 초원에서 살아가기 힘들다. 넓게 펼쳐진 녹색의 초원은 생각만큼 아름답지도, 낭만적이지도 않다. 오히려 황량하고 메마른 것이 초원이다. 아무것도 모르는 자는 초원에서 하루를 버티지 못하고 죽는 일이 허다했다.
협곡과 협곡 사이의 그림자가 지는 곳에 매복을 한 이들이 있었다. 초원지대에 가려서 잘 보이지 않도록 녹색 장포로 위장을 하고 있었다.
“이 자식들이 왜 이제 와서 지랄이야!”
“조용히 해.”
“여기까지 놈들이 올 리가 없잖아.”
“그렇다고 해도 밤이니까 조용히 해라.”
지형이 그리 좋다고 할 수 없는 지대다. 기병이 움직이기에는 무리가 있는 지형이라 침입할 수 있는 장소로는 부적합했다. 이제까지 이곳을 통해 침입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걱정도 팔자다.”
“만사불여튼튼이라고 하잖아!”
“문자 쓰기… 커억!
말을 하던 진석의 목에 가는 혈선이 그어졌다. 그와 동시에 비명을 지르려던 승현도 그림자의 예리한 검에 목이 뚫렸다.
털썩! 털썩!
얘기를 나누고 있던 정탐병들 사이로 그림자가 다가왔다. 삽시간에 두 명의 목을 따고 나머지 정찰병의 숨통도 끊어 놓았다.
협곡을 유령처럼 타고 오른 그들은 지체하지 않고 곳곳에 퍼져 있는 정찰병들을 처리했다.
“시간이 없다. 어서 움직여라.”
“예.”
병력이 움직이는 시간과 정찰병이 사라진 것을 파악하는 시간과의 싸움이었다. 정찰병이 예정된 시간 안에 돌아가지 않으면 놈들이 눈치를 챌 수 있었다. 눈치 챈다 해도 준비할 시간이 없다면 상관없겠지만 그보다 빨리 움직이는 것이 아군의 피해를 줄일 수 있는 길이었다.
제왕성의 병력은 이제 25만에 달했다. 10만의 정예병을 중심으로 흩어진 초원의 부족민들을 규합한 결과였다.
대군을 결성한 제왕성은 잠시 동안 시간을 늦추면서 체계를 갖추었다. 강력한 군령으로 어느 정도 체계를 갖추자 곧바로 진격했다. 시간을 지체해봤자 손해 보는 것은 제왕성이었다.
8천왕은 계획한 대로 전략을 진행했다.
“전섬단이 정탐병을 쳤으니 이제는 출병할 때가 다가왔소.”
시간이 그리 많지 않았다. 이번 전쟁은 속도전이며, 기만전이었다. 명 제국이 예측한 이동동선대로 전쟁을 수행하지 않은 것이 관건이었다.
“군마를 이동시켜 놨으니 시간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을 것이오.”
“하북성을 지키던 놈들이 혼비백산할 것이 불을 보듯 뻔하겠군.”
제왕성은 병력을 두 부대로 나누었다. 부족민들로 구성된 부대와 제왕성의 정예병으로 구성된 병력으로 나누어서 부대를 운용하였다.
부족민들은 공성전에 특화되어 있지 않다. 기병으로서 넓은 평야를 대상으로 전투를 치르는 것에 익숙하기 때문에 놈들을 끌어내거나 성을 뚫고 지나가서 평지에서 전투를 펼쳐야 한다.
“정예전사들을 이끌고 성을 장악하기만 하면 전쟁은 우리의 계획대로 진행이 될 것이오. 그러니 한 치의 오차도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명심하시오.”
신속하게 회의를 끝내고, 출병을 서두르는 시기에 서신이 당도했다. 중원의 정보를 담당하고 있는 만귀당에서 보내는 특급서신이었다.
서신을 내용을 펼친 사자천왕 구양천강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무슨 일이오?”
“보시오.”
구양천강은 서신의 내용을 천왕들에게 보여주었다. 내용을 읽은 천왕들의 안색이 변했다.
“천왕과 특급전사들이 실종되다니! 도대체 중원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 것이란 말인가!”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를 할 수 없소이다!”
지옥천왕, 무영천왕, 건곤천왕이 중원으로 넘어간 것은 천왕을 제외하고 아무도 알지 못하는 비밀이었다. 제왕성 내에서도 기밀을 요하는 일이라서 대외적으로 알리지 않았다. 그렇기에 일의 심각성이 더 크게 다가왔다.
알고 있는 것과 모르는 것은 차이가 크다. 대계가 코앞에 다가온 시점에서 수상한 움직임이 보인다는 것이 무척이나 껄끄러웠다.
“우리가 놓치고 있는 일이 있는 것 같소이다! 칸의 도주도 그렇고, 갑작스런 실종도 의심 가는 것이 한둘 아니오!”
그러나 명확한 증거나 사실이 없다. 무엇이 어찌 된 일인지 만귀당에서도 알아내지 못했다고 했다. 답답함이 쌓여 가고 있었다.
“이런다고 달라지지는 않소이다. 우선은 계획대로 전쟁을 수행해야 하오! 지체하다가는 전쟁의 승패까지도 위험하게 될 수 있소!”
“사자천왕의 말이 일리 있소! 당장은 장성을 넘고 다시 모색해 봅시다.”
“그렇게 하는 게 좋을 것이오!”
속도전에서 시간을 끄는 것은 적에게 기회를 주는 일이었다. 탁상공론만을 해봤자 답이 나오지 않았다. 초원을 내달리는 전사들은 말보다 행동이 앞섰다. 시작한 이상 끝을 봐야 한다는 것이 그들의 생각이다.
“만약 이번 일이 누군가의 음모라면 절대 가만두지 않겠다!”
8천왕은 이를 악물었다. 제왕성을 상대로 음모를 펼친 것이 얼마나 무모한 것인지 확실하게 깨닫게 해줄 것이다.
* * *
섬서성과 북부초원의 경계 만리장성의 북쪽.
성곽을 지키던 병사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넓게 펼쳐진 초원사막지대의 끝에서 모래폭풍을 연상시키는 구름이 피어올랐기 때문이다.
모래폭풍은 무척이나 빨랐다. 말발굽 소리가 대지를 진동시켰다. 대비를 하고 자시고 할 시간적 여유가 없다는 것을 간파했다.
“적이…온다!”
둥! 둥! 둥!
성곽의 중심에 배치해 놓은 북을 쳤다. 전쟁 동원령이 내려지기는 했지만 섬서성 북쪽을 통해 적이 침입할 것이라는 예상은 하지 못했다. 성을 지키는 장군들조차 갑작스런 적의 침입에 놀라는 눈치였다.
“놈들의 목표가 하북성과 산서성이 아니었어!”
“이런 젠장!”
“어떡…하지?”
몽고놈들이 침입할 경우 시간을 지체하지 않기 위해서 최단 경로를 밟을 것이라고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놈들은 뜻하지 않게 우회로를 선택했다.
이전에 황궁을 공격하려다가 역으로 갇혀서 패퇴를 했던 몽고였다. 아무래도 섬서성을 발판으로 지배권을 늘리려는 것 같았다.
성을 오랫동안 지킬 자신이 없었던 그들은 곧바로 파발을 띄웠다. 시간을 끌면서 후퇴할 생각이었던 것이다.
이곳에 파견된 장군들은 전쟁을 경험해 보지 않은 초짜들이었다. 백전노장도 막아내기 힘든 상황에서 애송이 장군들이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슈슈슈슈슈슉!
하늘을 까맣게 덮은 화살이 내리꽂혔다. 말을 타면서 접근하는 전사들이 일시에 활을 쏘아대었다. 흔들리는 말에서 정확하게 활을 쏘아대는 제왕성의 전사들이었다. 개개인이 가진 전투수행 능력이 일반적인 병사들의 수준을 한참이나 초월했다.
푸우욱!
“크아아앗!”
성에서 쏘는 화살은 방패와 검으로 튕겨내고, 빠르게 접근해 왔다. 성벽까지 접근하는 것조차 막아내지 못했다.
성을 지키는 천호장 육봉달은 얼굴이 하얗게 탈색되었다. 가문이 지닌 배경으로 장군이 되었을 뿐이다. 또한 이번에 파견된 것은 단순히 지위상승을 위한 통과의례였다. 육봉달의 입장에서는 마른하늘에 날벼락을 맞은 상황이다.
“막…아!”
‘집에 가고 싶다!’
10배가 되는 적도 수성전을 하게 되면 막아낼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그것도 미리 대비를 하고 있어야 하고, 전술, 전략, 통제력이 뛰어난 장수, 하늘의 도움이 있어야만 가능한 것이다. 육봉달 같은 장수에게 그런 귀계나 통제력이 있을 리 만무했다.
더군다나 제왕성의 전투력은 일반적인 상식을 넘어섰다. 말을 타고 접근한 전사들이 말안장 위로 올라서더니, 성벽과 1장 떨어진 지점에서 갑자기 말을 밟고 뛰어올랐다. 단숨에 성벽 위까지 올라왔다.
무려 3장이 되는 높이를 넘어온 것이다. 빠르게 달리는 말을 갑자기 정지했을 때 발생하는 반발력을 발판 삼아 성벽을 넘어온 것이다. 물론 무공을 익히지 않은 병사들로서는 가능한 일이 아니다. 제왕성의 전사들이기에 가능한 수법이었다.
육봉달은 기가 막혔다. 사다리를 대지 않고 단순히 도약력으로 넘어오다니 그게 말이나 되는 병법인가! 일반적인 전술과는 완전히 궤를 달리했다.
“놈들을 막아!”
넘어온 수가 그리 많다고는 할 수 없다. 병사들이 막아낼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전사들의 무력을 너무 얕보았다.
사아아악!
“커어억!”
일시에 수십 명의 목숨이 전사들의 만곡도(蠻曲刀)에 쓰러졌다. 두 번 휘두를 필요도 없었다. 베어 버린 병사들은 다시 일어서지 못했다.
순식간에 성벽 위가 병사들의 피로 물들었다. 그와 동시에 성문이 박살났다. 성문을 부순 것은 단 1명이었다.
사자천왕 구양천강의 주먹이 성문을 치자 쇠로 덧댄 문이 종잇장처럼 구겨져서 날아갔다. 천왕들은 전투에 물러서 있는 자들이 아니었다. 그들은 직접 전쟁을 지휘하고 전투에 참여했다.
전쟁다운 전쟁이 아니었다. 일방적인 도륙이었다. 그동안 참아온 전사들은 피를 보기 위해 태어난 존재들 같았다. 병사들은 항복이라는 단어가 튀어나오기도 전에 목이 잘려 나갔다.
제왕성은 반 시진도 안 돼서 성을 점령했다. 성을 방비하던 병사들 대부분이 죽고, 일부는 사로잡혔다.
“시간이 없다. 곧바로 산서성으로 진격한다.”
산서성과 하북성의 경계지점 안문관에 초원부족으로 구성된 15만의 병력이 주둔하고 있다. 단단한 성벽과 좁은 지형으로 이루어진 안문관이다. 그곳을 통과해야 하북성으로 가는 최단로가 확보되기에 안문관은 초원에서 대륙으로 들어가는 통로와 같다.
제왕성은 안문관을 외부와 내부에서 동시에 공격하기로 작전을 세웠다. 안문관이 철혈의 방패라고 불리지만 안쪽에서 보급로를 차단하고 공격을 가하게 되면 속수무책일 것이다.
천왕들은 진격을 결정하면서 철무성과 실종된 천왕의 생사를 확인하기 위해서 전사들을 차출했다. 전사들을 이끌기 위해서 천왕 4명이 가기로 결정을 지었다.
사실 무리한 일이었지만 어쩔 수가 없다. 철무성을 구출하지 않는 이상 전쟁의 승패와는 상관없이 사분오열될 수 있었다. 반백년을 기다려온 혈신이야말로 그들의 구세주이기 때문이다.